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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순위와 데이터로 보는 자동차 정보

왜건의 나라 독일에 부는 거센 SUV 바람


눈치채셨는지 모르겠지만 이 블로그는 SUV에 대한 얘기가 비교적 적습니다. 아무래도 개인 취향이 SUV에 큰 매력을 못 느낀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겁니다. 독일에 살면서 몸으로 느끼고 배우는 자동차 문화는 SUV 보다는 왜건에 대한 관심을 자연스럽게 불러 일으켰습니다.  우리나라와 달리 유럽은 왜건과 해치백이 자동차 문화를 주도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일까요?


아우디 A6 올로드 콰트로. 사진=아우디

 

몇 년 전부터 늘 갖고 싶은 차 1순위는 온오프로드 겸용 모델 '올로드 콰트로' 였습니다. SUV만큼 지상고가 높은 건 아니지만 기존 왜건보다 차고를 높일 수 있어 조금이라도 더 높은 위치에서 운전할 수 있습니다.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것도 어느 정도는 가능하고요. 짐칸 넉넉하면서 동시에 세단의 정숙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고속 안전성은 SUV가 따라올 수 없는 매력이기도 합니다. (아우토반이 있으니까 막 달릴 수 있다는) 심지어 아우디는 560마력의 고성능 모델인 RS6를 오로지 왜건으로만 팔고 있죠.



아우디 RS6 아반트. 사진=아우디


우리나라에서 RS6를 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폴크스바겐 파사트 바리안트. 사진=netcarshow.com


독일에서 중형차 부문 판매 1위를 늘 달리는 폴크스바겐 파사트의 약 70%는 왜건이라고 합니다. 특히 회사나 렌터카 업체 등, 법인들이 이처럼 왜건을 선호하는데요. 실용적이라는 것이 그 첫 번째 이유입니다. 



볼보 V60. 사진=볼보


우리나라에서도 팔리고 있는 볼보 왜건 V60인데요. 제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세단인 S60가 좀 더 팔리지 않을까 예상됩니다. 하지만 독일에선 8:2 비율로 왜건과 세단의 판매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마쯔다6 왜건. 사진=netcarshow.com


유럽에서는 마쯔다6 신형의 경우도 이처럼 왜건의 디자인에 높은 점수를 주지 세단에는 큰 관심이 없습니다. 제 눈에도 마쯔다6 모델은 세단보다 왜건이 더 예쁩니다. 현대 i40 역시 마찬가지죠. 세단형은 판매량도 극히 적고 스타일 또한 왜건과 비교가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몇 년 전 독일 공항 주차장에서 찍은 사진인데, SUV나 일반 노치백 세단 보다는 왜건이 훨씬 많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얌체같은 운전자가 주차한 차도 (그 옆은 물론),




심지어 경찰차들도,




어느 유명 관광지 전통 레스토랑 주차장의 모습에서도,




독일을 스쳐지나가는 헝거리에서 온 스코다 옥타비아도,


모두 모두가 왜건입니다.  그만큼 독일, 아니 유럽은 왜건이 주도했던 곳이었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지금 '왜건이 주도했던' 이라는 과거형 표현을 썼죠? 네, 이런 <왜건천국 기타지옥> 분위기가 언제부턴가 바뀌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독일 아우토빌트 같은 전문지에서는 올해를 기점으로 SUV와 왜건의 판매 비중이 같아질 것이며, 내년부터는 판매량이 역전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놓았습니다. (이미 2년 전에)


배신(?)할 거 같지 않던 왜건 사랑이 왜 이렇게 바뀐 걸까요?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유는 기술력입니다. SUV가 오프로드 전용에서 포장도로 위를 달리는 온로드 용으로 급격히 '전공교체'를 하면서 안락함과 실용성이라는 두 가지 가치를 계속 발전시켜 나갔고, 최근들어 고속 주행에서도 상당한 수준의 안정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단이나 왜건의 장점에 다가가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다 확장성 측면에서 왜건은 SUV에 경쟁이 안됩니다. 왜건은 노치백 세단의 가지치기 모델처럼 되어 있지만 SUV는 그 자체로 독립된 영역을 갖고 있고, 소형 SUV에서 대형, 그리고 오프로드 전용까지 그 범위가 무척 넓다는 것이 큰 특징 중 하나입니다.  


아우디가 소형 Q1을 앞으로 내놓을 예정인데 그렇게 되면 Q1, Q3, Q5, Q7까지, 거기에 Q9은 물론 Q6, Q4, Q8 등등, 마음만 먹으면 계속해서 모델을 늘려갈 수 있는 상황입니다. 현대도 iX25, iX35, iX45 (산타페), iX55(베라크루즈) 등으로 이름을 붙이면서 여차하면 iX 65, 75, 85, 95, 105(?), 15 등으로 넓힐 수 있습니다. 가정을 했을 때 말이죠.



통계로 확인해 보자!


몇 년 사이 SUV가 부쩍 늘어난 것이 보입니다. 제 눈은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실제로도 그럴까요? 최근 5년 동안 독일의 SUV 판매량 통계가 이를 증명해 줍니다. 


2009년 판매량 : 244,792대

2010년 판매량 : 295,254대

2011년 판매량 : 360,105대

2012년 판매량 : 461,244대

2013년 판매량 : 464,198대


올 해는 아직 정확한 통계가 안 나왔지만 작년 수준을 넘을 것으로 보입니다. 5년 후인 2020년에는 90만대의 SUV가 독일에서 판매가 될 것이라고 예측되고 있는데 이는 매년 십만 대 씩은 늘어나야 도달이 가능한 수치입니다. 대단히 가파른 상승곡선입니다. 올 10월까지의 차종 별 점유율을 봐도 SUV의 성장이 한 눈에 보이는데요.


경차(Mini) &소형차(Kleinwagen) 점유율 : 26.4% 

준중형(Kompaktklasse) 점유율 : 26.4

중형(Mittelklasse) &준대형(Obere Mittelklasse) 점유율 : 16.4

대형(Oberklasse) 점유율 : 1.0%

SUV 점유율 : 17.2%

미니 밴 & 승합차 점유율 : 9.7%

스포츠카 점유율 : 1.3%

기타 점유율 : 5.4%


다양한 SUV 모델들이 고객들을 향해 유혹의 손짓을 보내고 있다는 증거가 이런 통계를 통해 확인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모델이 많다고 해서 판매량이 꼭 느는 건 아닐 겁니다. 소비자들이 느끼는 SUV만의 매력이 없지 않고서는 이런 가파른 상승세를 설명할 수 없겠죠. 여기서 독일인들이 SUV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서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자료:아우토빌트)


질문 : 당신은 왜 SUV를 좋아하십니까? 


1위 : 높은 좌석이 좋아서 (77%)

2위 : 넓은 실내공간 (71%)

3위 : 안전하다는 느낌 때문에 (58%)

4위 : 고급스럽고 스포티한 디자인 (46%)

5위 : 오프로드 주행이 가능해서 (44%)


질문 : 당신은 다음 차로 SUV를 선택할 의향이 있나요?


남자 운전자 : 그렇다 (63%)

여성 운전자 : 그렇다 (46%)

합계 : 55%


역시 높은 시트포지션이 주는 탁 트인 시인성이 SUV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혔습니다. 실내 공간과 안전성이 그 뒤를 이었는데요. 이 안전성은 물론 탑승자에 대한 안전성입니다. (덩치가 주는 이런 이점들 때문에 일부에선 SUV를 이기적인 차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함)


무엇보다 다음 차로 SUV를 고려한다는 응답자가 남녀를 가리지 않고 높게 나왔다는 점인데요. 가장 직접적으로 독일에서 SUV의 판매가 늘어날 것임을 알려주는 대목이 아닌가  싶습니다. 실제로 SUV는 연비나 환경 등에서는 세단에 비해 떨어집니다. 이 역시 하나의 통계로 확인이 가능한데요. 독일에서 판매되는 SUV 79개 연비 평균과 75개의 이산화탄소 배출 평균치를 계산했더니 이렇게 나왔습니다. 


SUV 평균 연비 (공인연비 기준) 

가솔린 : 리터당 11.76km

디젤    : 리터당 15.87km


준중형 세단 평균 연비 (공인연비 기준)

가솔린 : 리터당 18.18km

디젤    : 리터당 24.39km


이산화탄소 배출량 

SUV : 173.3g/km

준중형 세단 : 118.1g/km


여기에 비싼 가격도 단점이 될 수 있겠죠. 제조사는 마진이 높으니 SUV 판매 전략에 더 집중할 것이고, 소비자는 거기에 호응해서 SUV 구매를 하게 되는 '순환구조'가 짜여진 것입니다. 이런 분위기는 급기야 SUV를 쳐다도 안 봤던 럭셔리 브랜드들까지 이 시장에 달려들게 하고 있습니다. 이러다 왜건이 유럽에서 사라지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까지 들게 됩니다. 그만큼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는 의미겠죠. 


현재까지 독일 내 신차 판매량 상위 50위 안에 SUV는 9개의 모델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소형 SUV와 CUV가 늘어나면 그 숫자는 더 늘어날 것입니다. 왜건이 그동안 유럽에서 누려왔던 이미지는 '실용성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들이 타는 쾌적한 차'였습니다. 이제 이 이미지가 SUV로 급격히 넘어가고 있습니다. 과연 SUV의 거센 바람은 잠시 불다 사라질 돌풍일까요, 아니면 계속 불어대는 계절풍일까요? 변화에 굼뜬 독일이기에 이 불어오는 바람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집니다.


2014년 SUV 상위 10개 모델 (11월까지의 집계, 자료; 독일연방자동차청)

1위 : 폴크스바겐 티구안 (57,690대)

2위 : 오펠 모카 (25,274대)

3위 : BMW X1 (23,292대)

4위 : 포드 쿠가 (23,097대)

5위 : 아우디 Q3 (22,853대)

6위 : 닛산 캐시카이 (22,474대)

7위 : 스코다 예티 (21,067대)

8위 : 아우디 Q5 (19,644대)

9위 : 마쯔다 CX-5 (17,895대)

10위 : 현대 iX35 (16,951대)


티구안. 사진=폴크스바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