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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대당 64억 손해보는 부가티, 계속 만드는 이유


지난 여름 독일에서는 폴크스바겐 마틴 빈터콘 회장의 발언 때문에 상당히 시끌시끌했었습니다. 본사에 직원들 2만 명을 모아놓고 판매량이 떨어지는 모델들을 단종하고 연구 개발 비용도 줄여나갈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죠. 기타 여느 기업에서 자연스럽게 나올 법한 이야기였지만 2018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동차를 판매하는 브랜드가 되겠다고 목표를 세운 마당에 모델 수를 줄이겠다는 것은 다소 의외로 들렸습니다. 


그런데 속을 들여다 보면 이해가 될 법도 합니다. 우선 연구 개발비가 대폭 증가한 것에 비해 그에 따른 이익율이 비례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판매량이 중국 시장에서의 선전으로 전체적으로 늘긴 했지만 아메리카 대륙 등에선 아직도 고전 중에 있습니다. 그래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불필요한 지출을 줄여 영업이익율을 높이겠다는 게 경영진의 판단이었습니다. 일단 2017년까지 50억 유로를 줄이기로 계획을 세운 상태입니다. 그런데요. 아주 쥐어짜듯 살림살이를 하겠다고 천명한 마틴 빈터콘 회장도 어쩔 수 없는 자회사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부가티(Bugatti)입니다.


부가티 그랜드 스포츠. 사진=netcarshow.com



▶기록적인 적자를 기록한 부가티


폴크스바겐의 보고서를 보니까 올 3분기까지 부가티 판매량은 '36대'였습니다. 브랜드 전체가 한 해동안 50대를 채 팔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폴크스바겐이 부가티를 인수하고 베이론이 등장한 이후 2005년부터 계속해서 이 놈의 회사는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그 적자는 작년 뉴욕 증권거래서의 한 애널리스트의 분석에 따르면 한 대 팔 때마다 약 460만 유로, 그러니까 우리 돈은로 약 64억을 손해 보며 판 게 됐다며 사람들의 턱을 빠지게 하고 말았습니다. ㅎㄷㄷ 



64어억!!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는 '미친 짓' 같아 보입니다. 베이론의 경우 보유하고 있는 것만도 부담스러운 일인데요. 하루동안 부가티 베이론을 몰고 논다(?)고 가정했을 때 그 하루 소비되는 비용이 우리 돈으로 2천만 원 수준이라고 합니다. 뭐 좋습니다. 사는 사람이야 충분히 감당을 할 수 있는 부류겠으니 그렇다쳐도, 64억 씩 손해를 보며 파는 회사는 뭘까요?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정말 호랑이처럼 무서운 폴크스바겐의 마틴 빈터콘 회장의 이 쥐어짜기 경영계획에서 부가티는 열외라는 사실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바보같은 경영이 가능한 걸까요?



▶"부가티는 페르디난트 피에히가 사랑하는 브랜드~"


1932년형 부가티 르와이얄과 함게 포즈를 취하고 있는 에토레 부가티. 사진=netcarshow.com


1909년에 자동차 회사 부가티를 만든 이는 에토레 부가티라는 이태리인이었죠. 예술가들로 가득했던 그의 집안은 이태리에서 프랑스로 이사를 갔고, 에토레 부가티는 몰스하임이라는 곳에서 공장을 짓게 됩니다. 그가 만든 자동차들은 성능에서도 놀라웠지만 무엇보다 모든 부품 하나하나까지 예술혼을 담아냈던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죠. 위 사진 속 르와이얄과 같은 자동차를 보면 어느 정도 감이 오실 겁니다. (휠 좀 보세요.)


당시 판매가도 엄청났습니다. 롤스로이스는 속된 말로 쨉도 안 됐을 가격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아쉽게도 왕족이나 귀족에게 단 여섯대만이 판매가 된 채 경제공황 속에서 제대로 꿈을 펼치지 못하고 맙니다. 이 부가티가 우여곡절 끝에 1998년 당시 폴크스바겐 회장이었던 페르디난트 피에히에 의해 인수되게 되는데요. 그의 자서전에 보면 뿔뿔히 흩어졌던 부가티의 각 종 상표권(우산, 은수저 세트, 가죽제품 등등)을 최대한 사모으는 집착에 가까운 열정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철저했던 나름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부가티가 가지고 있던 예술성과 브랜드의 고급스러운 가치를 온전히 유지하고 싶었다는 것이었죠. 그의 노력으로 부가티는 폴크스바겐 그룹의 식구가 되었고, 베이론이라는 모델을 통해 백년 전 부가티의 가치는 되살아날 수 있게 됐습니다.


2009년형 부가티 베이론. 사진=netcarshow.com

   



▶예술하는 부가티,

기술부리는 부가티~


레젠드 시리즈의 마지막 에토레 부가티의 실내. 사진=netcarshow.com


레젠드 시리즈임을 알리는 로고. 사진=netcarshow.com


레젠드 시리즈 마지막 모델 에토레 부가티. 단 세 대만이 만들어진다. 사진=netcarshow.com


아우디 때문에 차체 경량화에 매우 관심이 많았던 피에히 현 폴크스바겐 그룹 이사회 의장은 부가티의 경량화 역시 높게 평가했습니다. 그리고 과거 에토레 부가티의 그 가치를 현재의 부가티에서도 실현하고 싶어했죠. 1000마력이 넘는 힘과 시속 400km/h가 넘는 속도를 유지하면서도 안락함까지 갖춘 스포츠카를 만든다는 건, 말 그대로 최고의 기술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바로 그 기술력에 대한 욕망을 피에히 의장을 따를 사람을 독일 자동차 업계엔 없을 거라 봅니다.


포르쉐에 있을 때부터 자신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자동차를 꿈꿔 온 페르디난트 피에히 의장에게 부가티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브랜드였습니다. 그룹 내 최고 기술자들이 모여 할 수 있는 온 갖 기술을 다 발휘했고, 없는 기술까지 짜내면서 탄생시킨 것이 바로 부가티였죠. CEO인 볼프강 뒤르하이머는 이러한 부가티 브랜드를 '자동차의 최고 가치'라고 자신 있게 말했고, 페르디난트 피에히 의장은 "고품격 명차의 가치를 계속해서 유지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 연비는 포기해도 상관없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정말 포기했음)


페르디난트 피에히에 의해 현재 폴크스바겐 그룹 회장의 자리에 오른 마틴 빈터콘이, 독일 자동차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피에히 의장이 사랑해 마지 않는 부가티를 건들 수는 없는 일일 겁니다. "돈 아껴야 해!"라는 일성을 경영진들이 내도 부가티 만큼은 언터쳐블이고, 이런 분위기는 2016년에 공개될 베이론의 후속 모델인 시론(Chrion)을 통해서 다시 한 번 확인 될 것으로 보입니다.



독일 자동차 매체들에 공개된 베이론 후속 모델로 얘기되고 있는 시론(혹은 시롱)의 모습. 아우토빌트의 고급 월간지인 모터레뷰 2015년 1월호 표지에 실릴 사진으로, 특종이라는 표시와 함께 시론으로 예상되는 사진이 실렸습니다. 1500마력에 최고속도 460킬로미터. 헤네시 베놈과의 '최고 빠른 양산차'라는 자존심 경쟁 중에 있죠. 시론은 베이론처럼 전설적인 부가티 레이서의 性에서 따온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차 가격은 우리 돈 약 28억원. 사진출처=motor-talk.de



▶일부의 비판, 

그래도 흔들림 없이 간다


미국의 블룸버그 통신은 얼마 전, 부가티에 대해서 이미지와 노하우라는 두 가지 가치를 붙잡고 가려고 하고 있지만 과연 그게 현실적인가라며 비판적인 기사를 쓴 적이 있습니다. 95%의 사람들이 부가티가 폴크스바겐 브랜드에 속해 있는 걸 모른다는 게 그 근거 중 하나였고, 과연 부가티에서 발휘된 기술이 티구안 같은 차에 적용이 된 게 있느냐는 것이 두 번째 비판의 이유였죠. 


이런 지적에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부가티라는 브랜드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 브랜드가 폴크스바겐 자회사인지 당연히 모를 것이고, 적어도 95%의 미국인들 보다는 유럽에서는 훨씬 많은 사람들이 부가티가 어느 그룹의 것인지 알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부가티가 이뤄낸 예술성과 그 기술력의 역사를  계속 이어가고 싶어하는 피에히 의장의 뜻이 살아 있는 한 부가티는 계속 도전을 멈추지 않을 거라 봅니다.


또 이 수퍼 럭셔리 스포츠카에 적용된 기술이 직접적으로 티구안에 적용이 안되어도, 어떤 형태로든 기술적 진보를 통한 자동차의 발전을 가져올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기 때문에, 블룸버그의 지적 보다는 F1 팀 한 해 운용비용 보다 우리의 부가티 유지비용이 더 적다고 얘기하는 폴크스바겐의 객기(?) 발언에 지지를 보내게 됩니다. 


단순히 계산기 두드려서, 얼마 남고 얼마 손해보냐는 셈법으로는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부가티에 대한 폴크스바겐의 투자는, 자동차라는 것을 만드는 사람들의 열정이 무엇인지를 또 다른 방법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과연 고령의 피에히 의장이 죽고 난 다음에도 부가티가 유지될 수 있을지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만, 바라기는, 그 엄청난 손해나는 장사 속에서도 계속해서 문화적, 기술적 도전을 이어가주길 바랍니다. 이런 고집 하나 쯤은 자동차 역사에 긍정적으로 기록되어도 좋지 않겠어요?


에토레 부카티와 르와이얄 스케치. 사진=netcarsho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