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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독일 할배 할매들은 제복 입지 않은 교통경찰



요즘 더위 탓인지, 통 신차 소식이랄지 뭐 그런 기름냄새(?)나는 자동차 관련한 글을 쓰는 게 힘이 듭니다. 차에 대한 감흥을 잃어 버린 건 아닌가 살짝 걱정이 되기도 하고요. 어쨌든 어떤 포스팅을 할까 (사실 준비해 놓은 것들 있긴 하지만) 이런 저런 자동차 관련한 소식들 뒤적이다 엊그제 겪은 일을 이야기해드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독일인들의 이미지는 크게 '무뚝뚝하고' '원리원칙 따지고' '성실하다' 는 것 정도가 아닐까 해요. 그런데 이 일반적으로 표현되는 특성들이 직접 와서 살며 부딪혀 보니 틀리지 않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이 중에서 일상에서 가장 많이 만나게 되는 게르만 특성이라고 한다면 성실함과 원칙적이다는 점이 될 거 같습니다. 무뚝뚝하다는 것에 대해선 사람마다 경험치나 느끼는 지점이 다를 수 있어 일단 열외로 하겠습니다.

 

그 중에서 '원칙', 바꿔 표현하면 융통성 없는 면은 시도 때도 없이 경험하게 됩니다. 정말 수많은 삶의 동선에서 이를 확인하게 되는데요. 이 특성이 잘 드러나는 것 중 하나가 교통문화와 관련한, 그것도 동네 할배 할매들의 묘하리 만큼 공통되게 드러나는 태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포스팅 제목을  요즘 분위기에 편승해 달아봤는데요. 제복 입지 않은 교통경찰, 동네 할배 할매들의 이야기 시작합니다~

 

 

1. 횡단보도에 바퀴가 닿아 있네요

 

사진은 아주 전형적인 독일의 50대 60대 부부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친절하고 눈만 마주쳐도 굿텐탁, 모르겐~하고 미소 띄우며 인사를 건네줄 것 같은데요.  그런데 이런 친절해 보이는 동네 이웃이라고 해도, 이 사람들은 아닌 건 아니라고 확실하게 상대에게 이야기를 해줍니다. 한 2년 전쯤이었을 거예요. 아는 후배를 마중나갔다가 지하철역에 좀 일찍 도착을 했습니다.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자니 곧 도착을 할 거 같고, 그렇다고 시동을 켜고 길거리에 서 있기는 애매하고, 암튼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마침 지하철 역 주변을 보니 주차장도 꽉 차 있고 해서 개구리 주차 식으로 인도에 차를 반쯤 걸치고 깜빡이를 켠 채 시동을 껐습니다. 물론 차에서 내리지 않았죠. 독일은 인도턱이 매우 낮아 개구리 주차라고 해봐야 어렵지도 않습니다. 

 

1~2분 정도면 도착을 할 거라 차량 주행에 지장도 없고 보행에도 지장이 전혀 없는 곳에서 그렇게 대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지 어떤 분이 창문을 똑똑~하고 두드리더군요. 70은 족히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 한 분이 창문을 내려보라는 손짓을 하셨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창문을 내렸고,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무슨 일이냐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운전석쪽 앞바퀴를 가리키며 "횡단보도 라인을 지금 살짝 물고 있는데, 여기에 차를 이렇게 세워두면 안돼요." 라고 말을 하더군요. 얼른 내려서 확인하니 정말 횡단보도 금을 살짝 물고 있었습니다. 제가 제대로 확인을 하지 못했다고 미안하다고 하자 그제서야 미소를 머금은 그 분께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사실 별 거 아니지만, 누군가 여기에 이렇게 차를 대기 시작하고 그것이 용인되면 우리가 만든 룰은 의미가 없게 됩니다. 서로 안전하자고 만든 룰이니 잘 지킵시다." 

 

처음엔 이런 정도 가지고 저러시나 좀 머쓱했지만 그분의 말씀이 틀린 건 아니었습니다. 작고 하찮은 것을 지키는 태도들이 모여 큰 룰과 원칙이 무너지지 않고 세워져 나갈 수 있는 거 아니겠냐는 물음에 동의한다면, 그 관점에서 그 분의 말씀은 100% 맞다고 봅니다. 아~ 물론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숨이 막힐 정도의 원칙주의자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다만 독일엔 동네마다 저런 할배들이 제법 많이 있다는 거...

 

지난 토요일 찍어 본 저희 동네 지하철역 모습. 복잡할 거 하나 없는 풍경이지만 모든 게 약속처럼 움직이고 정리되어 있습니다. 정형화 된 독일을 잘 보여주는 동네라고나 할까요;;

 

 

2. 이 곳에서 이러면 안됩니다~   

시승기를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의 일입니다. 저희 동네 시청이 참 예뻐요. 이미 소개가 한두 번 되어서 이 블로그 찾는 분들 중에  기억을 하는 분들도 제법 되실 텐데요.  보통은 이 시청 밖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업무를 보러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날이 아마 일요일인가 했을 거예요. 시승차를 시청 건물을 배경으로 해서 찍고 싶어 어떻게 하나 잠시 고민하고 있는데 동행한 친구가 5분 정도면 될 텐데 그냥 차를 잠시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자고 제안을 하더군요. 시민들에게 늘 공개된 시청이고 그날은 업무도 없는 일요일이고 하니 한 쪽에서 몇 컷만 얼른 찍고 나오면 되겠지 싶어 동의하고 차를 시청 마당 안쪽으로 몰고 들어갔습니다.

 

정확하게 i40 때의 일인지는 모르겠네요. 암튼 이 자리는 맞습니다;;

 

사람도 그리 많지 않고 해서 시청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산책을 나온 노부부가 그런 저희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할머니께서 이곳은 차량이 들어올 수 없는 곳이라고 얘기를 하시더군요. 그래서 저희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차를 찍어 한국에 있는 분들께 소개를 하려고 합니다. 이왕이면 제가 사는 도시를 알릴 겸 시청 건물을 배경으로 찍고 있어요.  차는 곧 뺄게요." 

 

이 정도 얘기하면 보통은 아 그래요?. 하고 넘어가는데 이 할머니 그냥 안 물러서시더군요.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그래도 이 곳에 차를 가지고 들어 오면 안됩니다. 그러니 차를 지금 바로 빼주세요." 라고 정색하고 얘길 했습니다. 일단 원하는 사진을 몇 컷 찍었기에 알았다고 하고 차를 빼 시청 밖으로 나왔습니다. 불법적인 일을 한 것도 아니고 한쪽에서 사진 몇 장 좀 찍는다고 저리 정색을 하나? 싶어 좀 서운한 마음이 들더군요.

 

그런데 사실 그 곳은 자전거나 유모차를 끌고 나오는 주민들, 조깅을 즐기는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는 공간입니다. 공식적으로 시청의 허가를 받은 것도 아니고 외부인이 차를 가지고 들어가면 안되는 것도 맞습니다. '원칙'이라는 눈으로 보면 그 분의 정색이 저의 서운함에게 미안해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그 이후로 시청을 배경으로 한 사진찍기는 포기를 해야 했습니다. 그 할머니 또 만나면 그 땐 진짜 혼날 거 같았거든요. ^^ 그 정도도 이해 못해주나 서운한 마음이 순간 들었지만 저렇게 분명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분들이 많다는 건 사회가 아직은 건강하다는 증거가 아닌가 하는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3. 깜빡이를 안 켰네요?

지난 주말 아내와 동네 마트에 다녀 왔습니다. 차로 5분이면 닿을 곳에 있어서 저희에겐 동네 담배가게 마냥 친근하게 느껴지는 곳인데요. 마트 주차장이 굉장히 넓고 여러 대의 차를 주차할 수 있게 되어 있고, 마트도 대로변 안 쪽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한가하고 여유로운 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내가 적당한 곳에 차를 세웠고 저는 트렁크 안에 머릴 드밀고 반납할 빈병을 챙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소리가 들려 올려다 봤더니 60대 초반 정도 되는 아주머니 한 분과 아내가 마주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더군요. 처음엔 신경을 안 썼는데 깜빡이 뭐라 뭐라 얘기가 나오길래 차에 대해 뭘 묻나 싶어 다가갔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이런 얘길 하시더군요.

 

" 차가 들어오는 걸 봤는데 우회적 깜빡이 신호를 안 넣으셨더라고요. 방금 전에 제 앞 차가 그렇게 해서 하마터면 추돌사고가 날 뻔했죠. 이런 곳에서 꼭 방향지시등 켜는 걸 잊지 말아 주세요."

 

평소에 저 보다 더 꼼꼼하게 운전을 하는 집사람이 어쩌자고 그 날은 방향지시등 켜는 걸 잊었는지. 그리고 하필이면 그 때 또 아주머니 한 분이 그걸 지켜 보게 되었는지. 집사람이 자신도 평소엔 잘 지키는데 오늘은 깜빡했다며 말을 했습니다.  "제 말 기분 나쁘게 안 들었으면 좋겠어요. 사람들 많은 곳이니까 우리 서로 조심조심했으면 해요. 즐거운 주말 되세요~" 

 

환하게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넨 아주머니께서는 먼저 마트로 들어갔습니다. "매번 나한테 운전 잘하라 잔소리 하시더니 오늘 한방 먹으셨네?" 제가 웃으며 아내를 살짝 놀렸습니다. 아내는 "그러게?" 라고 말하며 피식 웃었습니다. 어찌 보면 사소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런 작은 실수? 혹은 규칙을 깨는 행위에 대해 독일이란 사회는 구성원들 스스로가 감시자가 되고 그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 스스로가 규칙을 지켜야겠다 늘 노력하고, 그걸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이죠. 답답해서 어찌사누? 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건 답답함이 아니라 자연스러움이 아닐까요? 당연한 이야기를 당당하게 하는 사회. 아직도 저는 이런 독일이 낯설지만 또 한 편으론 부럽습니다. 어때요, 확실히 독일엔 제복 안 입은 교통경찰들이 참 많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