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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러시아의 못생긴 전기차 때문에 강제 소환된 멀티플라

며칠 전입니다. 언론을 통해 굉장히 이상하게 생긴 자동차 하나가 소개됐습니다. 이름이 앰버(Amber)인데요. 모스크바 폴리테크닉대학교에서 개발했다고 하는 전기차입니다. 그런데 이 차가 화제가 된 것은 성능이나 뭐 그런 게 아니라 생김새 때문이었습니다.

앰버 / 출처=Motor1.com

 

보자마자 든 생각은 해저 깊은 곳에 사는 정체 모를 생명체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전기차는 학생들이 취미 삼아 만든 게 아닙니다. 우크라이나 침공 전 BMW, 현대와 기아, 포드 등의 세계적인 자동차 브랜드의 모델을 생산한 적이 있는 칼리닌그라드의 Avtotor 공장에서 2025년부터 생산하게 될 모델이죠.

중국산 부품이 일부 들어간 순수한 러시아산 전기차가 될 거라고 하는데 형태 자체가 상당히 독특하긴 합니다. 물론 이 모습 이대로 양산되는 건 아니라고 하지만 큰 변화가 없다면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전기차가 되지 않겠나 싶습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언론에서도 이 차 생산 소식을 전하던데, 전쟁 중인 적국의 전기차 생산 소식까지 전하는 걸 어떻게 봐야 할지어쨌든!

이 소식을 접한 많은 해외 네티즌들은 한 자동차를 소환했습니다. 이탈리아 피아트가 만든 멀티플라였습니다. 1998년부터 2010년까지 2세대에 걸쳐 생산된 MPV였는데요. 최대 6명까지 태울 수 있었던 차였습니다. 6명까지 태워야 했기에 전장보다는 전폭과 전고에 신경을 썼고, 스타일보다는 기능에 더 집중했던 모델입니다.

멀티플라 / 사진=favcars.com
사진=favcars.com

 

앞서 소개한 앰버를 보며 사람들이 멀티플라를 떠올린 이유는 전면부 헤드램프와 부드러운 라인을 보며 닮았다고 느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튼 1세대 멀티플라를 저도 독일 도로에서 마주친 적이 있는데 처음 봤을 때의 그 매우 낯설고 신선(?)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런데 이 못난이 멀티플라는 그 뿌리를 찾아 거슬러 가면 의외로 귀염귀염한 모델에 도달하게 됩니다. 바로 피아트 600입니다.

피아트 600 / 사진=favcars.com

 

피아트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작은 차 수요가 있을 것으로 보고 1955년 피아트 600이라는 모델을 내놓습니다. 2도어 4인승 모델로 1969년까지 만들어진 히트 모델이죠. 유럽 각국에서 다양한 이름으로 피아트 600이 생산 판매되었기 때문에 말 그대로 유럽 국민차라 불릴 수준이었습니다.

피아트는 600 기본형이 나온 이듬해인 1956년 사업적 용도까지 고려한 피아트 600 MPV 버전 600 멀티플라를 추가로 선보입니다. 마치 독일의 마이크로버스가 라인강의 기적을 만드는 데 일조한 것처럼, 600 멀티플라 역시 소방차부터 택시, 그리고 캠핑용으로 다양하게 변주되면서 이탈리아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자동차가 되었습니다.

택시로 많이 이용되었던 600 멀티플라 / 사진=favcars.com
캠핑에도 많이 사용되었다 / 사진=favcars.com

 

600 멀티플라는 최대 6명까지 태울 수 있었고, 택시의 경우 4명까지 태울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 600 멀티플라의 영광을 재현해 보고자 피아트가 600을 빼고 후속작을 되살린 것이 못생긴 자동차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멀리플라입니다. 1999년 탑기어는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차로 멀티플라를 꼽기도 했습니다.

실내 디자인도 요상했던 멀티플라 / 사진=favcars.com

 

2004, 1세대에 쏟아진 비난을 지워내기 위해 많이 다듬어진 멀티플라를 내놓지만 2010년 조용히 단종이 되며 파란만장했던 역사는 마침표를 찍게 됩니다. 다만 전기차 시대를 맞아 멀티플라의 정신(?), 그러니까 기능에 충실한 새로운 모습의 멀티플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하게 되는데요.

멀쩡해진 2세대 멀티플라 / 사진=피아트
못생긴 차 세계에선 멀티플라와 쌍벽을 이루는 폰티악 아즈텍 / 사진=favcars.com

 

하지만 상처만 남은 멀티플라라는 이름을 다시 끄집어낼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습니다. 폰티악 아즈텍, 쌍용 로디우스와 함께 못생긴 자동차 리스트에 늘 이름을 올리는 멀티플라. 괜한 러시아 전기차 때문에 원하지 않게 소환되고 말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