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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쏟아지는 대형 SUV' 걱정은 주차 문제만이 아닙니다

3월 시작과 함께 신차 수입 소식이 많이 들립니다. 특히 1~2년 전부터 시작된 대형 SUV의 인기로 전장 5m 이상 되는 (한국 기준) 초대형 SUV 수입 소식이 연일 나오고 있습니다. 워낙 관심이 높은 차종이다 보니 소비자 반응 또한 나쁘지 않은데요.

 

전장 5m, 전폭 2m 넘는 SUV에 대한 기대와 우려

현대자동차의 팰리세이드는 국내 시장에 전장 5m 수준의 SUV가 얼마나 인기를 얻을 수 있는지 잘 보여줬습니다. 수입차 업체들도 발 빠르게 대응했습니다. BMW X7의 경우 작년 한국에서 수입 대형 SUV 중 가장 많이 판매(2,669)가 됐습니다. 이 차는 전장이 5,151mm에 전폭이 2미터나 됩니다.

 

가리지 않고 이처럼 덩치 큰 SUV 수요가 있다 보니 여러 브랜드가 한국 시장에 전장 5m 전후의 SUV를 내놓고 있습니다. 특히 덩치 하면 두 말이 필요 없는 미국산 SUV 공략이 올해는 눈에 띌 전망인데요. 링컨 내비게이터, 뉴 포드 익스페디션, 쉐보레 타호, 5세대 풀체인지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지프 그랜드 체로키 L 등입니다.

2021년형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 사진=캐딜락 

 

모두 차의 길이가 5미터를 넘깁니다.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ESV(롱바디)의 경우 무려 5,766mm의 전장을 보여주죠. 전폭이 2m를 넘기는 것은 당연하고 전고 역시 1.84m에서 1.9m 이상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런 거대 SUV들은 이미 한국에 들어와 있는, 역시 한 덩치를 자랑하는 레인지로버, 메르세데스 GLS, 그리고 BMW X7 등과 경쟁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 언론에서 이와 관련해 다룬 기사에는 4백 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그중 추천 수가 많은 순서대로 절반 정도인 2백여 개의 댓글을 읽어보았는데요. 댓글 내용에 놀랐습니다. 추천이 가장 많은 베스트 댓글은 물론, 확인한 것의 90% 정도가 주차 문제를 언급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아파트나 빌딩 주차장을 주로 이용하는 한국 운전자 입장을 생각하면 당연한 반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덩치 큰 SUV가 세워져 있으면 문콕 염려부터 할 수밖에 없고, 또 타고 내리기 어려운 좁은 공간으로 인해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러니 운전자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염려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좀 더 마음 편히 탈 수 있도록 주차 공간을 넓혀주고 차로 또한 넓혀주었으면 좋겠다는 의견들도 여러 개 눈에 보였습니다. 그런데 대형 SUV에 대한 이런 반응을 보며 한 가지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환경을 걱정하는 댓글은 (거의) 없는 걸까?'

 링컨 내이게이터 / 사진=링컨  

 

같은 날 전해진 볼보 소식

대형 SUV 관련 기사가 노출되며 많은 관심을 끌었던 그 날, 또 하나의 의미 있는 기사가 소개됐습니다. 바로 볼보 소식이었는데요. 볼보는 2030년까지 내연기관과 완전히 이별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순수 전기차 브랜드로 전환하겠다는 의지를 구체적 시기와 함께 다시 한번 공식화한 것입니다.

 

볼보만이 아니죠. 이 소식이 전해지고 며칠 후 폭스바겐도 전기차 관련 소식을 전했습니다. 2030년까지 유럽에서 판매되는 폭스바겐 자동차의 70% 이상이 배터리 전기차가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원래 폭스바겐은 같은 기간, 전기차 판매 비중을 35%까지 만들 것이라고 했는데 그 계획을 두 배 이상 늘려 잡았습니다.

 

물론 이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재규어랜드로버 역시 '리이매진' 프로젝트를 지난 2월 중순 공개하며 재규어는 2025년까지, 랜드로버는 2030년까지 모든 라인업을 전동화하기로 했습니다. 수소연료전지차를 위한 투자도 아낌없이 하기로 하는 등, 계속해서 자동차 회사들은 전기차 전문 브랜드로의 전환을 공식화하고 있습니다.

 전기차 C40 리차지 / 사진=볼보  

 

주요 브랜드 전기차 전환 계획

제너럴 모터스 : 2035년까지

재규어 : 2025년까지

랜드로버 : 2030년까지

볼보 : 2030년까지

포드 : 2030년까지

폭스바겐 : 2030년까지 유럽 판매 차량의 70% 이상 전기차

현대자동차 : 2040년까지 세계 주요 시장에서 판매되는 모델 모두 전동화

 

이 외에도 다임러와 아우디, 푸조 시트로엥 등도 전기차로 라인업을 일부 또는 모두 교체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했거나 다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거의 모든 자동차 회사들이 배터리, 혹은 수소연료전지를 이용한 전기차만을 판매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할 수 있겠는데요.

 

구체화하는 지구촌의 전기차 시간

그렇다면 140년간 이어져 온 엔진 자동차의 시대를 왜 끝내고 전기차로 돌아서려는 걸까요? 자동차 회사들이 전기차에 매료되었기 때문에? 더 많은 이익이 보장되니까? 가장 크고 직접적 이유는 환경 규제입니다.

 

우리는 현재 지구온난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는 인간 삶 자체를 위협합니다. 많은 온실가스가 지구온난화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이산화탄소고, 이런 이유로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려는 노력이 모든 나라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입니다.

 

자동차도 예외는 아니어서  배출 기준을 지키지 않으면 천문학적인 벌금을 물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아예 엔진이 달린 자동차를 더는 허용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자동차를 만들어 팔아야 하는 자동차 회사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전기차를 만들 수밖에 없고, 전기차에 올인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왔습니다.

 

전기차 판매만 허용하기로 한(또는 계획한) 국가(또는 지역)와 시기 (자료=ICCT)

노르웨이 : 2025

스웨덴 / 덴마크 / 슬로베니아 / 아이슬란드 / 아일랜드 / 네덜란드 : 2030

스코틀랜드 : 2032

잉글랜드 / 카보베르데(아프리카) / 미국 캘리포니아주 : 2035

캐나다 / 프랑스 / 스페인 : 2040

코스타리카 : 2050

 

2020년 말 기준 국제 청정 교통 위원회(ICCT)가 밝힌 전기차만 판매를 허용하거나 허용하는 것을 계획하는 국가와 지역은 위와 같습니다. 여기에 2030년부터 유류 자동차 판매를 전면 중단하기로 한 중국 하이난도 포함되죠. 또 이스라엘 정부 역시 공식화한 것은 아니지만 2030년까지 되도록 전기차 판매가 100% 이뤄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내연기관 자동차의 끝을 알리는 이른바 타임라인을 정한 국가들이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이며, 이런 국가적 움직임은 환경 규제에 강하게 저항하던 자동차 회사들로 하여금 빠르게 전기차를 선택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자동차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2018년 기준 세계 12위에 해당합니다. 국민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기준으로 하면 미국보다는 적지만 중국보다 많다고 하죠. 지속가능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우리나라의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합니다. 이는 국가, 정부만의 노력으론 이뤄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자동차를 바라보는 시선이 좀 더 환경 중심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성능, 디자인, 첨단 기능들, 안전성 등, 여러 기준이 있지만 이젠 환경에 얼마나 친화적인지를 소비자 입장에서 따지고 물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한국 시장에서 사업을 펼치는 자동차 기업들도 긴장하고 이 부분에 더 신경을 쓸 것입니다.

지난해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대형 수입 SUV X7 / 사진=BMW  

 

앞서 언급한 대형 SUV들은 무게만 해도 2.5톤에 이릅니다. 수입이 예정된 링컨 내비게이터 (3.5리터 가솔린 엔진 장착 모델)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315g/km입니다. BMW X7도 상대적으로 적다고는 하나 xDrive 50i의 경우 260g/km, xDrive 40i 205g/km나 배출됩니다. 그나마 이것도 제조사 자료로 실제 도로 주행에서는 더 배출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들이 대략 40~80g/km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고 할 수 있겠는데요. 제조사들은 한 쪽에선 전기차 브랜드로 가겠다고 하면서 다른 한 쪽에서 거대한 덩치의 비환경적인 SUV로 돈벌이를 하고 있습니다. 대형 SUV 유행이 자동차 업계의 자극적 마케팅의 결과물은 아닌지 냉정히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해는 없었으면 합니다. 어느 특정 브랜드, 특정 모델을 비판하려는 의도로 이 글을 쓰는 게 아닙니다. 크고 좋은 자동차를 소비하고 싶은 마음을 이해 못 하는 바도 아닙니다. 미래를 위해, 다만 우리의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자동차를 환경적인 관점에서도 따져야 한다는 걸 이야기 드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자동차를 다루는 전문 매체들도, 또 일반 신문이나 방송도 앞으로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소개하거나 경쟁 모델들끼리 비교를 한다든지 하며 환경적인 측면을 강조해 다룰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소비자와 언론이 제조사에 깐깐하게 굴어야 하고 정부 또한 그런 분위기를 구조적으로 만들어나가야 대한민국 자동차 시장도 더 빨리 친환경 분위기로 전환될 수 있을 것입니다.

 

작은 습관들이 모여 큰 결과를 만든다고 하죠. 앞으로는 자동차를 탈 때, 선택할 때, 이야기할 때, 그 중심에 환경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게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하지만 의미 있는 노력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