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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어느 자동차 회사 회장의 소신 발언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의 말은 그 의미가 다르게 다가옵니다. 정치인의 말, 대중 스타의 말, 또 거대한 기업을 이끄는 경제인 등의 말이 그런데요. 예를 하나 들어 보죠. 지난해 12월 테슬라 오너이자 CEO인 일론 머스크는 독일 아우토빌트가 주관하는 자동차 관련 시상식에 참여하기 위해 독일을 찾았습니다.

그때 인터뷰를 합니다. 그리고 혹시 경쟁사에 대한 인수나 합병을 생각하고 있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일론 머스크는 만약 테슬라와 합치고 싶다고 누가 말한다면 (그에 대해) 대화를 했을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적대적인 방향이 아닌, 원만한 합의를 통한 인수나 합병은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이 발언이 나온 후 미국의 한 언론이 테슬라의 합병 대상으로 벤츠를 소유하고 있는 다임러가 적격이라는 기사를 냅니다. 브랜드 이미지나 가치, 그리고 기업의 현재 경영 구조나 상황 등, 여러 조건이 다임러가 잘 맞는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일론 머스크가 다임러와 합병하고 싶다고 말한 것도 아닌데, 어쨌든 이 기사로 꽤 시끄러워졌습니다.

다임러의 위기설, 독일 자동차 기업들의 경영 구조, 지분 구조 등에 대한 분석 기사가 매일 나오는 등, 12월 내내 화제였습니다. 워낙 관심을 받고 있는 기업의 오너가 한 말이었기에 더 그랬겠지만, 어쨌든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의 말이 어디까지 퍼져나가고,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잘 보여 준 경우가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일론 머스크의 발언이 있고 얼마 후, 아우디 회장 마르쿠스 뒤스만(Markus Duesmann)의 인터뷰 기사 하나가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의 발언은 이전까지 자동차 기업 회장들에게선 볼 수 없었던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우선 그는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아우디는 판매량이 10% 감소했고 이익도 그만큼 줄었다고 한해 사업 결과를 밝혔습니다. 물론 좋은 상황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겨낼 수 없는 어려움은 아니었다고 말을 이어갔죠. 그의 다음 말이 뜻밖이었습니다.

 

독일 자동차 산업에 대한 정부 지원금을 저는 반대합니다.”

 

마르쿠스 뒤스만 / 사진=아우디  

코로나19 확산으로 자동차 공장들이 가동을 멈추는 등, 지난봄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때부터 독일 자동차 업계는 물론, 경제계와 정치권 일부에서 독일 경제의 핵심인 자동차 산업을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를 연일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업계를 대표하는 독일 자동차 공업 협회(VDA)는 메르켈 총리에게 신차에 대한 정부 보조금 지급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이 요구는 언론과 여론의 강한 반발을 사며 없던 일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기준으로 일정 수준 이하의 CO2 배출량을 보이는 SUV에 대한 보조금 요구가 나왔습니다.

연방정부는 내연기관 자동차에 대한 보조금 지급 대신 전기차 보조금을 크게 올리기로 결정합니다. 모델에 따라 최대 9,000유로까지 보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 전기차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습니다. 독일에서만 배터리 전기차가 2020 19 5천 대가량이 팔렸고, 플러그인하이브리드를 포함하면 40만 대 수준이 보조금 혜택을 받으며 판매됐습니다.

독일 전기차 판매량 변화도. 2020년 급격하게 늘어났다 / 출처=VDA  

그러자 독일 정부는 전기차 보조금을 2025년까지 이어가기로 결정합니다. 여기에 오래된 트럭을 폐차하고 새 트럭을 사면 최대 우리 돈으로 2천만 원 가까이 보조해주기로 했습니다. 물론 독일의 이 보조금엔 제조사의 돈도 포함이 되지만 어쨌든 수십억 유로의 새로운 보조금 덕에 시장은 빠르게 회복되었고, 업계의 손해율도 예상보다 낮아졌습니다.

그런데 이런 보조금 지급에 대해 다른 사람도 아닌 자동차 회사 회장이 직접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철회를 주장한 것입니다. 자동차 업계 전체로 보면 완전히 반대되는 입장이기에 당황할 만도, 또는 비판할 만도 하지만 그의 이 발언에 대한 업계 내 어떤 반응도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마르쿠스 뒤스만은 자동차 회사들은 보조금이 없어도 견딜 수 있다며 오히려 이런 큰돈이 필요한 곳은 공연을 못 하고 이벤트를 하지 못하는 문화 산업 쪽이라고 말을 이어갔습니다. 맥주가 팔리지 않고, 가게들이 문을 닫고 있으며, 얼마나 많은 식당이 폐업을 하는지 보라며 크게 안타까워했습니다. 아마추어 밴드에서 드럼을 치기도 했던 그였기에 이런 발언을 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합니다.

엔진 개발 엔지니어로 출발해 다임러와 BMW에서 F1 머신 개발도 진행했었던 마르쿠스 뒤스만 회장 / 사진=아우디  

그러고 보니 지난 5월 독일 언론에서 분석한 자료 하나가 떠오릅니다. 쥐트도이체차이퉁은 독일 완성차 업체들이 각각 100조 원 이상의 이익을 지난 10년 동안 냈다고 했습니다. 경제지 한델스블라트는 독일 제조사들이 수십 조의 사내유보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 유동성에 문제가 전혀 없다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마르쿠스 뒤스만의 돌발 발언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완성차 업체들엔 효자 종목 그 자체인 SUV에 대한 비판을 한 겁니다. “ SUV가 필요치 않습니다. SUV를 운전하지도 않죠.”라고 말했습니다. SUV의 보행자 보호 능력이 많이 나아졌지만 그럼에도  좁은 도로와 SUV가 양립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실제로 아우디가 부피가 덜 큰 새로운 컨셉의 자동차를 개발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아우디의 경우 독일에서 판매되는 SUV의 비중은 약 40%가 조금 안 됩니다. 라인업이 많다면 그 비중은 더 늘었을 겁니다. 유럽을 벗어나면 SUV의 비중은 더 올라가죠. 이렇듯 중요한 SUV를 비판한 것입니다.

아우디 SUV 중 가장 많이 팔린다는 Q3 / 사진=아우디  

예전 포르쉐 회장이 SUV에 대해 조심스럽게 비판적 의견을 낸 적은 있지만 아우디 회장만큼 분명한 어조로 반대 의사를 공개적으로 낸 업계 CEO는 마르쿠스 뒤스만이 처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양반 확실히 보통은 아니란 생각입니다. 뭔가 대단한 배경이 있는 걸까요? 사실 아우디 회장 자리에 오른 건 2020 4월로, 1년도 되지 않습니다.

폭스바겐 안에서 성장한 사람도 아닙니다. BMW에서 넘어 온, 어찌 보면 아직 세력을 제대로 만들지도 못한 이방인 경영자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눈치 안 보고 소신대로 말했습니다. 혹시 이번 인터뷰로 매우 보수적인 폭스바겐 감독 이사회로부터 경고를 받거나 하진 않을까요?

글쎄요. 지금까지 상황은 전혀 그런 낌새는 안 보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오히려 대중의 반응은 그의 발언에 긍정적입니다. 업계 내의 비판도 안 보입니다. 무엇보다 폭스바겐 그룹을 이끌고 있는 헤르베르트 디스 회장이 최근 마르쿠스 뒤스만 회장을 높이 평가한다는 인터뷰가 실린 기사가 나왔을 정도로 현재 그의 위치는 확실해 보입니다.

마르쿠스 뒤스만 (좌)와 헤르베르트 디스(우) / 사진=아우디  

공교롭게도 헤르베르트 디스와 마르쿠스 뒤스만 모두 BMW에서 일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이런 인연만으로 마르쿠스 뒤스만을 높이 보는 건 아닐 겁니다. 현재 폭스바겐 그룹 기술 개발을 총괄하고 있을 만큼 능력에 대한 그룹 내 기대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율주행이나 전기차 개발, 또 각종 소프트웨어 등, 그간 해온 것과 다른 형태의 기술 개발까지 도맡아 부담을 느끼면서도 테슬라와의 경쟁에도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마르쿠스 뒤스만의 이번 발언을 보면서 오너 그룹 눈치 안 보고 소신 있게 이야기하는 전문 경영인의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폭스바겐 그룹의 기술 개발이나 아우디의 경영을 앞으론 조금 더 관심을 두고 지켜보게 될 듯합니다. 그의 앞으로 행보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