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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SUV, 이기적인 자동차에서 배려하는 자동차로

지난 주말 독일 남부 뮌헨에서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습니다. 친척을 만나기 위해 뮌헨을 방문한 엄마와 아이들이 탄 오펠의 소형차 코르사가 BMW X5와 충돌해 코르사에 타고 있던 4명의 탑승자 중 3명이 사망한 사건이었죠. X5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아야 했지만 미처 대응하지 못해 발생한 안타까운 사고였습니다.


이후 일부 언론에서 SUV에 대한 비판적 기사를 싣기도 했는데요. 쥐트도이체 차이퉁은 SUV 사고 위험성이 큰 것은 운전자의 문제라기보다는 SUV가 갖고 있는 구조적 이유가 더 크다는 주장을 폈습니다. 2011년 SUV 교통사고를 분석해 보고서를 작성한 독일 자동차 보험협회 조사 부서 책임자인 지그프리드 브록크만은 쥐트도이체 차이퉁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번 사건이 전형적인 SUV 사고의 결과와 같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전형적인 SUV 사고는 어떤 것을 말하는 걸까요?

사진=볼보


무거운 SUV, 높은 SUV

사고가 난 두 차량의 경우 X5는 2톤이 넘지만 오펠 코르사는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무게의 차이가 큰 두 차량이 충돌하게 되면 작은 차가 받게 되는 충격파는 훨씬 더 클 수밖에 없고, 당연히 작은 차에 탑승한 이들이 받게 될 사고 위험도는 높아지게 됩니다. 


또 SUV는 세단보다 전고가 높죠. 특히 측면에서 이처럼 전고가 높은 SUV에 받히게 될 경우 높이와 무게로 인해 세단 탑승자는 심각한 부상을 당할 확률이 상대적으로 올라가게 된다고 쥐트도이체 차이퉁은 전했습니다. SUV가 보행자 충돌 테스트 등에서 많은 개선을 이뤄내긴 했지만 차와 차가 부딪쳤을 때 상대 차량에 주는 위험도는 과거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경차와 C세그먼트와의 충돌 테스트 장면 / 사진=ADAC


SUV에 대한 비판들

독일 일각에서는 '이기적인 자동차'로 SUV를 부르며 예전부터 이러한 위험성에 대해 비판이 있어 왔습니다. SUV 충돌 안전성을 법적으로 더 강화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부터, 환경에 더 해를 가하고 있다는 정치인의 비판, 거기에 일부 사회학자들은 크고 강한 차를 통해 자신을 과시하는 욕구가 SUV에 담겨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높은 곳에서 남을 내려다보는 구조를 통해 자연스럽게 심리적 층위가 만들어진다는 것이죠.

사진=랜드로버


분명 SUV는 장점이 있는 자동차입니다. 높은 지상고 덕에 탁 트인 시야를 확보할 수 있고, 타고 내릴 때 관절이나 허리 등에 부담이 덜하며, 묵직한 차체는 탑승자에게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줍니다. 그리고 나름의 실용성도 중요한 장점이라 하겠습니다. 왜 요즘 SUV가 대세인지 확실히 이러한 장점들이 설명을 해주고 있죠?


하지만 반대로 '이기적인 자동차'라는 불편한 이야기를 듣기도 합니다. 크고 무거운 SUV가 작은 차 앞에서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는다던가, 또는 급하게 차선을 변경해 끼어들 때의 위압감, 큰 SUV로 인해 전방의 도로 상황이 제대로 확인 안 될 때의 불편함 등도 SUV 운전자들이 생각해 볼 부분입니다.


더 조심하고 더 배려하는 태도 필요

사진=기아


복잡한 도심에서 SUV는 가급적 우측 차로를 이용하는 게 좋고, 좀 더 일찍 방향 지시등을 켜 차로 변경을 다른 차들에게 미리 알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SUV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모든 자동차 운전자들이 가져야 할 기본적 태도겠죠. 하지만 크고 무거운 SUV나 트럭, 버스나 승합차 등이 이런 배려의 태도를 먼저 보인다면 도로의 안정감이나 쾌적함은 훨씬 더 크고 빠르게 바뀔 것입니다. 


SUV가 이제부터라도 '이기적인 자동차'가 아닌 '배려하는 자동차'로 이야기될 수 있기 위해 필요한 게 무엇인지 고민했으면 합니다. 나와 내 차의 안전만이 아닌, 도로를 함께 이용하는 이웃의 안전까지도 같이 생각하는 그런 건강한 고민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