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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현대 아슬란 '솔직히 이 차가 뭔 죄가 있나요?'


작년 10월 중순, 한 언론에서 현대가 10월 말에 내놓을 새로운 대형(준대형급) 자동차 아슬란의 사전 예약이 1700대에 이르렀다는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고객의 반응이 무척 뜨거우며 영업일수 기준으로 하루에 250대가 계약되고 있다고 현대 관계자의 말을 인용 보도했죠. 


작년 11월 말, 또 다른 신문은 역시 현대차 관계자의 말은 인용, 지금까지(11월 26일 기준) 3700대가 예약됐고 출고된 차량은 1,000~1,500대라고 밝혔습니다. 예약과 출고된 차량간 차이는 생산 지연에 따른 것이라고 밝혀 다른 요인은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올 1월 초, 언론들은 일제히 아슬란의 지난 달까지 두 달 동안 판매량은 2,551대라고 전했습니다. 현대가 론칭 때 밝혔던 12월 말까지 6천대 판매 목표에는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결과를 얻은 것입니다. 이런 수치가 만약 2015년에도 계속된다면 22,000대 목표 근처에도 못 가는 상황을 맞게 됩니다. 현대에겐 발 등에 불이 떨어진 셈입니다. 


현대 아슬란. 사진출처=다음 자동차


아슬란이 처음 나온다는 얘기가 돌 때부터, 그리고  세상에 공개됐을 때부터 많은 사람들이 '과연 이 차가 성공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팽팽한 의견 대립을 보였습니다. 저는 그냥 남의 일처럼 입 꾹 다물고 있었죠. 어느 정도 판매량이 나오면 그 결과를 보면서 제 의견을 말해도 되겠다 싶어서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얘기를 할 때가 된 거 같네요.


오늘 포인트는 아슬란이라는 차가 성능면에서 좋은 차이냐 아니냐, 디자인이 좋냐 나쁘냐 등이 아닙니다. 이 차에 해주고싶은 이야기는 전혀 다른 내용입니다. 다소 감정 이입을 해서 표현한다면, ' 참 불쌍한 녀석'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왜냐고요? 한 번 들어 봐 주시죠.



▶태어난 목적이 희한한 차


보통 신차가 등장하면 그 차가 왜 나왔는지, 그리고 목표가 뭔지, 어떤 철학이 담겨 있는지, 경쟁상대는 누구인지 등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뭐 안 하는 브랜드도 있겠습니다만 정상적인 자동차라면 이런 배경이 당연히 있겠죠. 그런데 아슬란이 처음 나왔을 때 현대차 사장님이 언론에 한 이야기는 그 색깔이 사뭇 달랐습니다. 


“아슬란 출시를 왜 했냐면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쏘나타, 그랜저 탄 고객들이 나중에 다들 수입차를 고르는 거죠. 그래서 개발했어요.”


그러니까 아슬란이 만들어진 목적은, 수입차로 넘어가는 고객들에게 우리도 이런 좋은 차를 괜찮은 가격대에 내놓고 있으니 많이 사랑해달라는 것쯤으로 해석 할 수 있겠습니다. 무지막지하게 밀고 들어오는 수입차, 그 중에서도 독일차 등에 속절없이 내준 고급 차 시장을 사수하거나 가져오겠다는 게 아슬란이 만들어진 목적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그런지 현대차 한 임원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 아슬란은 철저히 고객 맞춤형 차"였습니다. 일종의 기획상품인 거죠. 한국 중장년층이 어떤 차를 선호하는지 따져 실내 공간 넓고 정숙하고 안락함이 강조된 그런 차를 내놓은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수입차들에게 빼앗긴 시장을 되찾아야겠다 본 것이죠. 제가 그간 우리나라에 만들어진 차들의 탄생 배경을 다 알 수가 없어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이런 목적성을 띤 차가 과연 있었는지 궁금하네요.



초코파이와 제네시스


그런데 바로 이 부분이 아슬란의 약점이라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디자인의 호불호나 안락함과 안전을 강조하느라 보강되지 못한 연비 등, 구체적 부분적 논란이 중요한 게 아니라, 과연 아슬란만의 철학과 비젼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동양제과(현 오리온)가 내놓은 초코파이 아시죠? 초코파이가 히트를 치자 경쟁 제과 업체들이 초코파이와 같거나 비슷한 상품 등을 내놓습니다.


한 때 경쟁사들 공격에 오리온 초코파이가 주춤하기도 했지만 어느 누구도 오리온 초코파이를 뛰어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오리온은 情이라는 자신들만의 고유한 마케팅 전략을 통해 난공불락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과자로 자리잡게 했고, 그 명성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시장 독식을 막고자 만들어진 다른 기획 초코파이들은 시장을 장악하지도, 그렇다고 독자적인 가치를 인정받지도 못한 영원한 아류로 남았을 뿐입니다. 


초코파이 타령을 한 이유를 아시겠죠? 아슬란의 목적이 고객들 입맛 맞는 몇 가지 장점을 조합해 수입차를 방어하는 것이라면 자신만의 가치로 특화된 외국 모델들과 과연 경쟁이 되겠느냐는 겁니다. 이는 현대 제네시스와도 확연하게 갈리는 부분입니다. 제네시스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차를 만든 이들은 대단한 자부심과 자신감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도 이런 차를 만들 수 있다는 무언가가 그들 속에 담겨 있고, 이것이 고스란히 차에 묻어 난 것입니다. 고객들도 제네시스 디자인 논란이 언제 있었냐는 듯 이제는 잘생기고 잘 달리는 고급 세단으로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현대가 제네시스를 통해 자신들의 차만들기 철학의 기초를 세우고 있다는 신호를 줬다면 아슬란에는 그런 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즘 고객들은 예전과 다릅니다. 정보를 얻는 경로도 다양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어떤 차로 드러낼지 선택의 폭 또한 넓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의 중요한 요소는 더 이상 옵션과 공간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브랜드가 갖고 있는 이미지, 그리고 차 안에 스며있는 엔지니어링까지도 종합적으로 볼 줄 알게 된 것입니다. 이런 고객들을 아슬란으로 상대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아슬란. 사진출처=현대자동차 홈페이지



고객 타겟이 너무 노골적인 차


또 하나의 구체적인 문제를 들라면 아슬란하면 나오는 얘기가 대기업 임원용이라는 꼬리표입니다. 40대이상 50대까지, 기업 임원들이 이 차를 법인용으로 흡수해주는 게 중요한 전략 포인트라는 거죠. 실제로 이를 위해 영업에 상당한 공을 들인 것으로 압니다. 삼성과 아슬란 관련한 MOU까지도 체결하는 등 신경을 많이 썼지만 이 차를 대기업들이 지금 외면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랜저와 SM7 같은 대안이 있고, 좀 더 위로 가면 제네시스와 K9 같은 모델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법인 수요가 따라주지 않으면 판매량 계획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차를 만들었다는 게 현대의 아쉬운 전략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어떤 분은 다양한 모델이 나오면 고객의 선택의 폭이 넓어져 좋은 거 아니냐고 말하는데요. 아슬란의 경우는 다양성의 즐거움 보다는 모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충돌의 이미지가 시장에 벌써 새겨졌다는 게 문젭니다. 이런 점이 디자인이 닮았네 아니네 하는 등의 논란으로까지 구체화 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현대차 관계자는 후륜의 피로감이 전륜 아슬란을 찾는 요인이 될 거라고 했죠. 하지만 이 기준을 수입차가 아닌 자사 모델에 대입해 보죠. 제네시스(후륜)에 피로감을 느낀 사람들이 과연 아슬란으로 넘어올까요? 더군다나 제네시스 경쟁상대로 여긴 5시리즈나 E클래스, 그리고 아우디 A6를 타는 고객들이 말입니다. 임원들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그렇다고 경쟁 수입차 운전자들 마음을 붙잡기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자동차에 숨을 불어 넣기를


그러니 이런 얘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이제 현대차 정도됐으면 자동차를 만들 때 기획상품처럼 차를 내놓아선 안됩니다. 자동차 안에는 그 차만의 가치와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기술에 대한 도전, 브랜드 가치를 생각하는 목표의식, 전통을 세우겠다는 기준 등이 저 밑바닥에서부터 마련된 자동차라야 고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습니다. 현대차가 자주 쓰는 '프리미엄'이란 단어를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이걸 저는 숨을 불어넣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좀 엉뚱한 얘기인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옛날 영화 넘버쓰리가 떠오르네요. 한석규, 최민식, 송강호, 이미연.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나온 건달 영화였죠. 지금 봐도 놀라운 유머와 위트의 대사들로 가득한 뛰어난 오락영화라 생각합니다. 그 영화 속 여러 장면들 중에 최민식 검사와 건달 한석규가 포장마차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는데요. 정확하진 않지만 깡패보다 더 입이 거친 검사 최민식이 이런 대사를 한 게 기억납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X같아 하는 말이 뭔 줄 아냐?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야...솔직히 죄가 무슨 죄가 있어? 죄를 저지르는 X같은 놈들이 나쁜 거지." 


왜 이 대사를 기억 더듬어가며 꺼냈는지 굳이 설명을 드리진 않겠습니다. 아슬란이 반등의 기회를 잡고 판매량을 늘려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어떤 차를 만들어야 할지에 대한 현대차의 본질적 고민이 좀 더 치열하게 이뤄졌음 하는 바람입니다. 솔직히 아슬란이 무슨 죄가 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