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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당신의 안전벨트는 안녕하십니까?



포스팅 제목을 보고, ' 또 무슨 잔소리를 하려고?' 라고 생각하신 분 계시죠? 네, 잔소리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국가가 제대로 국민에게 이런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면 개인이라도 나서서 떠들어야 하지 않겠나 싶은데요. 오늘은 간단한 자료와 제 개인적인 경험을 묶어 '안전벨트'와 관련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내 차 운전하는데 이 정도 쯤이야...

한국도로교통공단에서 발표한 우리나라 안전띠 착용률이 어느 정도인지 혹시 아시나요? 고속도로의 경우  2007년에 92%였습니다. 그 다음 2008년에는 오히려 조금 줄어들어 89%였고, 그 다음 해인 2009년에는 거기서 또 줄어 88% 수준이었습니다. 이 정도만 해도 꽤 괜찮은 수치라고요?

 

운전 법규 좀 잘 지킨다는 나라들을 좀 보면요. 우선 오래된 자료가 남아 있는 프랑스의 경우 1980년에는 94%, 1990년에 91%, 2000년에 96%, 2008년에 99%였습니다. 독일은 2000년과 20008년 모두 98%였고 일본도 1990년에 84% 수준이었던 게 2008년에는 98%까지 올랐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나타난 착용률은 모두 운전자 기준입니다.

 

고속도로가 아닌 일반도로에서는 우리나라 운전자의 착용률이 88%로 고속도로와 큰 차이가 없었지만 조수석에 탄 동반탑승자의 경우 74%로 많이 떨어집니다. 프랑스나 독일이 일반도로에서 95% 이상인 것과 그 차이가 더 벌어지는 내용이죠.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이 정도는 옛날에 비하면 많이 늘었다는 생각입니다. 사실 요즘은 운전자들이 자신의 차에 올라 시동을 켜기 전에 안전벨트 매는 모습이 매우 자연스러워졌거든요.

 

또한 조수석에 타는 사람에게도 벨트 매는 것을 권하는 모습도 자연스러워졌습니다. 교통선진국 수준에 비교하면 아직 10% 이상 처지지만 조금만 더 노력하면 비슷해질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그런데요. 문제는 이런 운전자 중심, 마이카 중심의 안전벨트 착용과는 달리, 뒷좌석이나 공공교통을 이용 시에 안전벨트 착용 수준은 여전히 많이 떨어져 보였습니다.

 

 

뒷좌석은 천하무적이랍니까?

한국에서 다른 분들의 차를 탈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여러 명이 타면 뒷좌석에 주로 자리를 하게 되는데요. 그 때 저는 안전벨트에 손을 가져가게 됩니다. 어느 새 저도 독일 운전 환경에 동화되어 간 것이죠. 그런데 주변을 살피면 저만 벨트를 착용하려고 하고 있더군요. 웃으면서 "벨트 안 해요?" 라고 하면 그제서야 어색한 모습으로 착용을 합니다. 혹은 연배가 더 높은 분들의 경우는 달릴 것도 아니고, 여기서 저기 잠깐 가는데 안전벨트는 무슨...이러시기도 합니다.

 

자신이 운전자일 때는 안전벨트를 그래도 많이 하는 편인데, 자신이 운전자가 아닌 경우엔 이상하게 안전벨트 착용하는 것을 불편해 합니다. 혹시 뒷좌석 안전벨트 착용이 운전자를 못 믿는 행위로 비춰질까 배려 차원(?)에서 안 하시는 건 아니겠죠? 고속도로에서는 전좌석 안전벨트 착용이 이미 오래 전부터 법으로 정해져 있죠. 도시는 그렇다쳐도 고속도로에선 그래도 좀 착용을 하겠거니 했는데 웬걸요...

OECD 산하 국제교통포럼의 국제도로교통사고센터(IRTAD)라는 곳에서 각 국 자료를 모아 정리한 내용을 보니까 좀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우리나라 고속도로 주행 자동차의 뒷좌석 안전띠 착용률은 2007년에 4%, 2008년에 4%였다가 그나마 2009년에 많이 올라 12% 수준이 되었습니다. 스웨덴은 74%, 독일은 이 자료에는 없지만 제가 아는 바로는 약 80% 이상, 일본도 46% 수준이었습니다.

뉴질랜드가 87%니까 천지차이가 나네요. 독일이나 다른 나라들은 법규가 까다롭고 벌금이 쎄서 그런 거 아니냐고 반론을 펼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도 엄연히 법으로 착용을 강제하고 있고 벌금도 물게 해 놓고 있습니다. 무조건 법으로만 따질 건 아니라는 거죠. 전체적인 교통문화에 대한 인식의 문제가 여기서 드러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공공교통에선 어떨까요?

이미 다 아시겠지만 2012년 11월 24일부터 지역과 지역을 오가는 버스, 그러니까 고속버스나 시외버스, 관광버스, 그리고 택시까지 포함해 모든 도로에서 전좌석 안전벨트 착용이 법으로 정해졌습니다. 그런데 공항리무진을 이용할 때도, 지방을 내려가는 시외버스를 이용할 때도, 서울로 올라오는 고속버스를 탔을 때도, 안전벨트를 매는 승객은 저 하나뿐이었습니다.

 

제가 되게 모범적인 시민이고 교과서 같은 남자라서 그런 건 아니고요. 그냥 독일에서 살다 보니 이 곳 분위기가 그렇기에 저 역시 그걸 따랐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몸에 익어버린 습관이 되어버렸습니다. 습관대로 한 것인데, 그게 한국에선 눈에 띄는 행동이 되어버린 것이죠.

 

인상 깊어서 적어놓은 문구가 있는데 고속버스 내에 이런 글귀가 붙어 있었습니다. "우리 00고속의 목표 : 승객을 가족처럼 최고로 모시겠습니다. 안전벨트 착용은 나의 생명을 지켜줍니다. " 안전벨트가 생명을 지켜준다는데 아무도 자신의 생명엔 관심이 없는 듯, 고속으로 달리는 버스 안에서 벨트를 매지 않고 있는 현실. 이걸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택시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문을 열고 승객이 타면 안전벨트를 착용하라는 안내멘트가 나오더군요. 잘 됐네 싶어 착용을 했습니다. 혹시 다른 승객들은 어떠나 싶어 며칠에 걸쳐 지켜봤습니다. 하지만 벨트 맨 승객을 찾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함께 택시를 탔던 분이 워낙 야무지게 벨트를 매셔서 제가 다 깜짝 놀란 적이 있는데요. 그런 분들이 별종 취급이나 당하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안전띠 착용은 버릇으로 만들면 됩니다. 당장 습관이 들 때까지 귀찮고 남의 시선이 좀 의식이 되겠지만, 그 단계만 넘어가면 그 때부턴 자연스러운 행동이 되고, 그러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고, 누가 뭐라고 해도 개의치 않는 행동으로 자리하게 됩니다.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어린이 시트를 신경 쓰듯, 이제 여러분 자신과 동승자들의 안전을 위해, 그리고 대중교통에서의 안전을 위해, 당신의 안전벨트를 썩히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1903년 독일인이 비행기 안전을 위해 고안한 안전벨트. 자동차에는 1930년대에 적용이 처음으로 됐죠.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여전히 안전벨트는 당신이 앉아 있는 좌석 바로 옆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외면하지 마시고 반갑게 녀석을 착용해 주세요...

 

웃자고 올린 그림입니다. 오해없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