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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어느 평범한 독일인이 전하는 독일 차 이야기

 

작년에 제가 어느 평범한 독일인과 독일의 자동차에 대해 인터뷰했던 거 기억하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지난 원고들 정리를 하다가 찾았는데, 다시 읽어 봤는데 내용이 괜찮더군요. 자뻑이냐고요? 제가 잘한 게 아니라 그 독일 아저씨의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가 새삼스럽게 와 닿았습니다. 내용을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도 그렇고, 다시 한 번 읽는 분들에게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아 이 블로그에 기록을 남기는 마음으로 올리니까 찬찬히 읽어보셨음 합니다.    

 

인터뷰라는 것은 인터뷰를 청하는 사람(인터뷰어)이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느냐에 따라 인터뷰를 받는 사람(인터뷰이)으로부터 꺼낼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는 법이다. 하지만 이번엔 그렇지 못했다. 아니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냥 동네 아저씨 한 분 모셔놓고 차에 대해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그와의 대화는 최대한 편안하고 가볍게 접근해야만 했다. 사실 독일인들과 자동차에 대해 얘기할 때 꼭 물어야지 하는 준비된 질문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 날은 이런 질문들을 자연스럽게 대화 속에 녹여내는 것에 신경을 쓰면 됐다.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은 인구 2만 명 정도의 작은 도시 하수처리시설을 관리감독하는 몬제 (61세) 씨다. 구체적으로 직업을 물었더니 하수처리 마이스터라고 한다. 실제로 그의 집은 하수처리장 안에 있으며 오랜 세월 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정년을 몇 년 남겨놓지 않은 편안한 인상의 독일인은 사진을 찍겠다고 하자 집에서 입고 있던 옷 그대로인데 괜찮겠냐며 머쓱해 한다.

 

그냥 자연스럽게 이야기 나눈다 생각하면 좋겠다고 전했더니 그제서야 얼굴이 펴졌고, 자신의 15년 된 파사트와 함께 포즈를 취해주었다.

 

이게 몬제 씨의 애마 4세대 파사트다. 1996년에 나온 4세대 모델인데 그의 차는 1997년식이란다. 15년을 함께 했다는데 킬로미터는 고작(?) 17만 킬로미터밖에 안 되었다. 차 안을 찍으려니 세차를 하나도 안 해 더럽다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세차 안 했다는 말 진짜예요?" 라고 묻고 싶을 만큼 엔진룸은 깨끗했고 실내도 정돈되어 있었다. 역시 전형적인 독일인이란 생각이 든다. 여자들은 집안 청소를 성스러운 의식을 치르듯 하고 남자들은 차를 닦고 관리하는 것에 자신의 자존심을 건다. 게르만들 민족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 바로 청소다. 닦고 정리하는 일에 이력이 난 사람들, 이들을 누가 말리랴 싶다. 시간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사진 몇 컷 더 찍고 바로 질문을 던졌다.


스케치북 : 반갑습니다. 간단히 자기 소개 좀 부탁합니다.

 

몬 제 : 그냥 평범한 독일인이에요. 하수처리장 관리감독관이고, 현재는 아내와 둘이 살고 있죠. 물론 아이들은 다 컸고, 알아서들 잘 살고 있습니다.(웃음) 음, 그리고 VW 차들만 3대를 몰았네요.

 

스케치북 : 폴크스바겐만 고집한 이유라도 있으신지...

 

몬 제 : 특별한 이유는 없고 그냥 안전한 차니까. 사실 더 좋은 차를 몰고는 싶은데 비싸잖아요.(웃음)

 

스케치북 : 몬제 씨도 독일 차가 비싸다고 생각하시는군요.

 

몬 제 : 그럼요. 그런데, 독일 차 퀄리티를 생각한다면 지불해도 될 수준의 금액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스케치북 : 비싼 값을 한다는 거군요?

 

몬 제 : 네.

 

스케치북 : 그렇다면 독일 차의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보세요?

 

몬 제 : (잠시 생각하다) 솔직하게 말해야겠죠? 저는 품질 면에서 기본적으로 다른 차들 보다 독일 차들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독일인들에게 독일 차는 자부심을 갖게 합니다.

 

스케치북 : 그렇게 자부심 많은 독일 차의 점유율을 보면 60% 대란 말이죠. 요즘은 한국이나 일본 자동차들이 부쩍 판매를 늘려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봐야 할까요?

 

몬 제 : 가격이죠. 독일사람들이 독일 차를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독일 차를 타기엔 가격적인 부담이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 한국이나 일본 차들 중에는 좋은 차들이 있잖아요? 디자인이나 서비스 등 여러 가지 장점을 외국 메이커들도 갖고 있기 때문에 어느 나라의 차를 타느냐는 크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봅니다. 그냥 개인의 취향에 따른 선택이라 봐요. 물론 퀄리티를 꼼꼼히 따진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스케치북 : 그럼 몬제 씨는 독일 자동차 회사들의 특징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몬 제 : BMW는 역시 스포티합니다. 벤츠는 나이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클래식한 점이 있고요. 아우디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젊은층이 타는 차로 보입니다. 포르쉐는 두 말할 필요 없는 차이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죠. 개인적으론 벤츠를 타고 싶은데 아까 말했듯 제 월급으로는 유지하기 힘듭니다.(웃음)

 

스케치북 : 벤츠가 왜 그렇게 좋으세요?

 

몬 제 : 품질 때문이죠. 벤츠에 대한 믿음이 있어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어떻게 보는지 모르겠지만 저처럼 나이가 어느 정도 된 사람들은 벤츠에 대한 향수와 동경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스케치북 : 벤츠는 벤츠인가요? (웃음) 그렇다면 벤츠 외에 관심이 가는 메이커나 차는 없습니까?

 

몬 제 :  아우디 A3가 눈에 띄더군요.

 

스케치북 : A3라… 좀 의외인데요?

 

몬 제  : 자식들이 다 컸기 때문에 우리 내외에게 큰 차는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콤팩트하면서 운전하기 편한 차에 관심이 가는데 A3가 그래 보이네요.

 

스케치북 : 자동차를 선택하는 본인 만의 기준은 뭔지 궁금합니다.

 

몬 제 : 안전도 중요하지만 저한테 안락함이 우선 순위입니다. 제가 장거리 운전을 많이 하고 좋아하죠. 휴가 땐 남프랑스나 스페인까지 차로 이동을 하는 편인데요. 1천 킬로미터에서 2천 킬로미터 이상 운전을 하기 때문에 장시간 달려도 덜 피곤한 차가 저한텐 중요한 부분입니다.

 

 

스케치북 : 아까 차에 보니까 아데아체(독일 최대 운전자클럽) 스티커 붙어 있던데, ADAC가 도움이 많이 되던가요?

 

몬 제 : 그럼요.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도 좋고, 사고가 났는데 바로 고치기가 불가능하다면 1시간 안에 대차를 해주는 등 대응력이 아주 빠르죠. 전 무척 만족합니다.

 

스케치북 : 아우토반을 많이 이용한다고 하셨는데, 이 Autobahn이 독일 차들의 발전에 큰 도움을 줬다고 보는데, 동의하시나요?

 

몬 제 : 속도가 빨라지는 만큼 운전자를 위한 안전성이 중요하게 부각되는 곳이 아우토반입니다. 때문에 아우토반을 통해 독일 차들이 발전했다고 보는 시각은 매우 정확한 관점이고, 실제로도 그렇게 발전이 되었죠.

 

스케치북 : 독일인들은 대체적으로 운전법규를 참 잘 지키는 편인데요. 몬제 씨는 이게 법과 국민성 중 어느 쪽이 더 큰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십니까?

 

몬 제 : 국민성이라고 봐요. 신호등의 위치가 정지선을 넘어가면 안 보이게 되어 있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국민들이 법을 철저히 지키겠다는 의지나 성향이 없다면 아무리 제도가 좋아도 완성되기 힘들다고 봅니다. 그리고 보행자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점도 법규를 잘 지키는 것과 무관치 않다고 생각해요.

 

스케치북 : 한국의 서울 같은 도시는 미국 뉴욕처럼 엄청나게 크고, 사람도 많고, 차도 많고, 많이 막히고 그럽니다.

 

몬 제 : 물론 독일도 출퇴근 시간에 막히긴 하지만, 서울이나 뉴욕처럼 큰 도시가 없어서 그런지 운전하며 한국인들처럼 스트레스는 받는 일은 덜하다고 봅니다. 한국 운전자 여러분! 교통체증에 맨날 그렇게 서 있기만 하면 뭔 재미가 있겠어요? 그건 운전이 아닙니다. 한적한 교외로 나가세요. 그리고 주위를 즐기세요. 그게 운전입니다.(웃음)

 

저만치서 몬제 씨 부인이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마무리를 할 시점이었다. 갑자기 어려운 질문 하나를 불쑥 꺼내 들었다.

 

스케치북 : 가만히 자동차 역사를 보면, 초기엔 프랑스가 매우 발달을 했었죠. 그러다 어느 시점부터 독일 차들이 앞서나가기 시작했고, 이젠 유럽마켓에서 독일 차와 프랑스 차의 차이는 더욱 커졌습니다. 물론 전 세계적으로 보면 그 차이는 더 커졌죠. 왜 그렇게 역전되었다고 생각하세요?

 

몬 제 : 프랑스 차는 처음엔 매우 혁신적이었어요. 시대를 풍미했었죠. 그런데 자동차가 갈수록 안전성이 부각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시대적 흐름에 독일 차들은 발빠르게 대응했어요. 에어백 같은 걸 적용하거나 그밖의 안전장비를 개발하는 속도에서 독일 차들은 앞서나갔고, 결국 그런 것이 프랑스와 독일 차의 위치를 역전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전 보고 있습니다.

 

그냥 평범한 동네 아저씨의 수준이 이정도란 말인가? 순간 깜짝 놀랐다.

 

스케치북 : 2050년에 내연기관을 통한 이동수단이 유럽 내에선 사라지게 될 거라고 얘기가 나오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몬 제 : 자연환경을 생각하면 좋은 일이죠. 하지만 정말 그렇게 될지는 지켜봐야 할 거 같네요. 뭐 내연기관을 대신할 게 나온다면, 그리고 운전의 재미가 그대로 유지될 수만 있다면 전 뭐 별 상관 없습니다.

 

스케치북 : 끝으로 하나만 더 물을게요. 자동차로 독일을 여행한다면, 꼭  가보라고 권해줄 곳이 있습니까?

 

몬  제 : 정말 많죠! 전 바이에른 주를 권합니다. 뮌헨도 좋고, 노이슈반슈타인성이 있는 퓌센도 차로 가기 좋습니다. 린더호프나 보덴제도 좋고, 북쪽으로는 베를린 포츠담이나 드레스덴을 추천하고 싶어요. 볼 곳도 많고, 갈 곳도 많은 독일입니다. 지리적으로도 유럽 중앙에 위치했기 때문에 꼭 한 번은 한국 분들이 오셨음 좋겠어요.

 

스케치북  : 관광청 홍보대사하셔도 되겠는데요? 오늘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몬  제 : 저도 무척 즐거웠어요.

 

악수를 나누며 헤어지는데 불쑥 한 가지 더 묻고 싶어졌다.

 

스케치북 : 몬제 씨에게 자동차는 뭔가요?

 

몬 제 : 글쎄요… 저에겐 자동차란...그냥 이동수단일 뿐이에요. 그냥 이동수단. (웃음)

 

호탕하게 웃으며 답한 그의 마지막 말은 의외로 싱거웠다. 하지만 이미 인터뷰 내내 보여준 독일 차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그가 차를 얼마나 아끼는지를 생생히 느꼈기에 오히려 이런 대답이묘한 울림이 되었다. 저런 자동차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이 그저 아무것도 아닌 것인 냥 얘기하는 그의 모습이 부럽고 멋져 보였던 것이다.

 

독일이란 나라는 자동차와 참 궁합이 잘 맞아 보인다. 교통법규를 지키는 데 있어 어느 나라 국민들 보다 철저하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자동차라는 기계덩어리는 신뢰를 준다. 잔꾀를 부리기 보다는 우직한 곰처럼 꾸역꾸역 밀고 나가는 국민성은 또한 자동차 문화 역시 그렇게 만들어 가고 있다. 아무리 봐도 자동차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 나라는 호기심과 즐거움이 가득한 곳이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몬제 씨의 파사트는 앞으로도 5년 이상은 끄덕 없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