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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한국문화, 독일인 독일문화.

이럴 때 난, 한국이 생각난다. (2편)

 

 

지난 1편에선 독일의 하향평준화 미용실과 야식 배달에 대한 소회(?)에 대해 적었었는데요.

 

오늘은 국제도시의 지하철 풍경에서 느낀 것과 우체국에서 경험한 속상한 얘기를 한 번 적어보

 

도록 하겠습니다.

 

 

 

3. We are the World?

 

독일 중에서도 프랑크푸르트는 여타 대도시들 답게 외국인 비율이 매우 높은 도시입니다. 공항

 

과 금융 등의 중심 도시여서 그런지 매 년 수 만 명의 외국인이 전출하고 또 그만큼이 전입해오

 

고 있는 재미난 동네죠. 길거리에서 잘 들어보면( 잘 듣기 쉽지는 않지만) 독일어가 아닌 다양한

 

언어들이 수 없이 쏟아져 나옵니다. 특히 지하철을 타보면 이런 경험을 매우 일상적으로 할 수가

 

있는데..좀 지난 일입니다.

 

 

제가 이용하는 S-Bahn은 근거리 철도 개념으로 앞뒤 좌석이 서로 마주 보고 앉아 가게 되어 있습니

 

다. 그 날도 전 창가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는데 잠시 후 맞은편 좌석에 여학생 두 명이 앉았습니

 

다. 뭐라 얘기들 하는데 불어더군요. 그렇게 그녀들이 수다를 떠는 동안 저의 옆 빈 좌석은 한 남자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남자가 상대편 여학생들에게 마카로니 치즈 보다 열 배는 느끼해보이는

 

썩소를 날리지 않겠습니까? 그 남자 여학생들에게 작업 멘트를 던지기 시작하는데 가만 들어보니 자신을

 

우크라이나에서 왔다고 소개하며 아는 프랑스어 "봉쥬르" "쥬템" 등을 끄집어내는데 으 닭살~어쨌든 그

 

여학생들이 재밌다는 듯 호응을 보이자 남자는 옳커니 하는 표정으로 독일어할 줄 아냐며 그녀들에게 본

 

격적으로 농을 붙입니다. 그녀들은 친절하게도 그 남자의 말을 받아 줍니다. 학교 휴학하고 독일어 공부

 

하러 왔다는 뭐 그런 얘기. 이렇게 남자의 작업이 본 궤도에 올라 막 박차를 가하려는 찰나, 여대생들은

 

간단한 눈인사만 남긴 채 내려야 했고  치즈남은 뻘줌했던지 저를 보고 씨익~ 웃더니 들고 있던 광고지

 

에 얼굴을 파묻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읽는 척 해댑니다...ㅋㅋ

 

 

불쑥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프랑스 여자들에게 우크라이나 남자가 독일어로 작업을 거는 것을

 

한국인이 듣고 있는 풍경...이 것이 프랑크푸르트 아니 외국인들이 뒤엉켜 사는 모든 도시의 단면이 아닐

 

까요?  언젠가는 한국의 지하철에서도 외국인들과 한국인들이 뒤섞여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에대해 한국어가 됐든 영어가 되었든, 대화하는 모습들이 일상의 그림이 될 겁니다. 그 때, 당신은 무얼하

 

고 있을까요......?

 

 

 

4. 오스트 코리아는 뭐꼬?

 

밖에 나와 살면서 속상한 것들 중 하나가 한국이란 나라를 참~~사람들이 모르고 있구나 라는

 

사실입니다. 삼성이 어쩌니 현대가 어쩌니 하며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나라가 된 듯 하지만 실상은

 

여전히 한국에 대해 퀴즈문제 나오면 틀릴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것이죠. 이 부분에 대해선 할 말도

 

많고 속상한 일도 많으니까 여기에 다 풀어내놓진 않겠습니다. 어쨌든 지난 주에 우체국에서 겪은 일

 

을 하나 적어보겠습니다.  

 

 

한국에 작은 소포를 보내야 해서 장을 본 다음 마트에 붙어 있는 우체국에 갔드랬습니다. 물건을

 

포장하고 무게를 달고 가격을 조절하는 와중에 우체국 직원인 아주머니가 이렇게 묻더군요.

 

" 어디로 보내신다구요?"

 

" 코리아요."

 

" 코리아...(안내책자 뒤적이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오스트 코리아인가요?"

 

"..."

 

오스트 코리아라니. 아무리 세상 돌아가는 거 관심이 없는 주부직원일지라도 남,북한 정도는 알고 있겠

 

거니 했더니만 튀어나온 말이 오스트 코리아였습니다. 아내가 저를 보며 피식 웃습니다. 제가 슬쩍 뿔이

 

난 걸 안 아내가 다가 와, 동서독이랑 헷갈려나 봐. 라며 말하는데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하려고 했지만

 

속이 상하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사실 이 날, 이 여자분 보다 더 저를 화딱지 나게 했던 건 핸드폰 매

 

장에서 터키 출신 직원이 우리보고 "중국에서도 통화를 하실 건가요?"라고 물었던 것이었습니다.

 

'이젠 아예 대놓고 중국인이라 하네.' 라고 속으로 뿔을 삼켰는데 와이프는 이 판매사원의 성의 없는 태

 

도 때문에 또 화가 나버렸습니다. 이래저래 부부속이 뻘개진 하루였답니다.

 

 

부디, 우산 받쳐드린 동네 할머니로부터 일본에서 왔느냐는 말, 술 취한 젊은애들이 장난스레 이소룡 흉

 

내내며 히히덕 거리는 모습, 핵폭탄 만드는 나라에서 왔느냐는 등의 오해와 몰이해에서 벗어나고 싶습니

 

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거 잘 알고 있지만 중국과 일본 사이에 껴 있는 작은 분단국으로서가 아니라 존

 

중받는 나라의 국민으로 살아갈 날이 빨리 오길 바랄 뿐입니다. -3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