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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한국문화, 독일인 독일문화.

독일 TV 프로그램에는 10가지 색깔이 있다

하루의 일과가 끝나고 해가 뉘엿뉘엿 넘아가면 도심의 불빛들은 잿빛 도심을 형형색색으로 밝힙니다. 퇴근 후 동료들과 맥주 한 잔을 나누는가 하면, 친구들과의 저녁약속으로 분주한 사람들도 있죠.. 대한민국의 흔한 저녁풍경입니다. 
 
하지만 독일이란 나라는 우리의 모습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요. 한마디로 집약하면 '집으로'입니다.... 동료들끼리 술 잔 나누는 일도 흔하지 않고 거의 대부분은 집으로 가 휴식을 취하게 되죠. 이렇기 때문에 독일인들에겐 주중의 여과를 즐기는 일에 TV는 매우 핵심적이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는 바로는 이 독일 TV 프로그램들이란 게 한 마디로 말해서 재미가 없다는 겁니다. 이런 얘기하면 수 많은 게르만 병정들이 달려들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제 생각은 바뀌지 않을 거 같은데요. 하지만 이런 재미와는 상관없이 독일 방송은 한국의 텔레비젼 환경과는 다른 몇 가지 특징들이 있습니다. 대충 10가지로 나눠봤는데요. 짧게짧게  그 특징들을 짚어보도록 하죠.

1. 황금시간대 시작은 
                   저녁 8:15분!


우리나라 9시 뉴스에 해당되는 게 독일은 8시 뉴스입니다. 그런데 좋합 뉴스라고 해서 우리처럼 1시간 가까이 한꺼번에 보여주지 않고 딱 15분 뉴스로 끝을 냅니다. 뉴스는 짧게짧게 여러번 나눠 보여주기 때문에 이런 게 가능한데요. 15분은 철저하게 지켜지게 됩니다. 그리고  뉴스가 끝난 시간 즉, PM 8: 15분부터 본격적인 황금시간대가 펼쳐지게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미드 '프린지' 홈페이지

2. 황금시간대를 점령한 것은 뭐? ...미드

뉴스가 끝나고 나면 주요 채널들에선 독일 드라마가 아닌 미국드라마 즉, 미드들이 황금시간대를 휩씁니다. 독일 드라마도 있긴 하지만 너무 재미가 없기 때문에 주로 초저녁 시간대에 편성이 되는 편이죠. (한국 드라마 생각하셨다간 욕나올지도 모릅니다.)

 간혹 규모가 큰 독일의 드라마나 시리즈 물이 있긴 하지만 정말 흔치 않죠. 뭔가 어설픈 느낌도 나고... 그래서 그 자리를 미국 미니시리즈들이 대신하고 있습니다. 월요일 저녁을 예로 들어볼까요? 우선 프린지가 방송됩니다. 그게 끝나면 다시 휴먼타겟이라는 미국산 액션시리즈가, 그리고 그 것에 이어 수퍼내츄럴이란 미드가 바통은 이어받게 됩니다. 한마디로 미드 삼단 콤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게 바로 독일 최대 방송국 프로지벤(Pro sieben)의 편성입니다.

조금씩 다르긴 해도 공영방송이나 전문 채널이 아닌 종합편성 채널은 미국 프로그램들이 독일의 온 안방을 점령했다고 보셔도 과언은 아닙니다. 재밌으면 그만이라고 쿨하게 이해를 해버려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한국 같으면 이런 문제로 심야토론 같은 거 아마 하지 않을까 싶네요.



3. 오~ 분데스리가!!

독일인들의 축구사랑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습니다. 사실 독일 뿐 아니라 유럽의 웬만한 나라들 모두가 축구를 최고의 스포츠로 여기고 있죠. 따라서 축국와 관련된 프로그램들이 다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독일만 해도 분데스리가 경기는 물론, 분데스리가 2부리그 경기도 매주 꼭 한 경기씩 방송을 통해 보여줍니다. 주말동안 치열하게 펼쳐진 분데스리가 경기가 끝나면 전문가라는 전문가들은 다 나와 입체화면을 놓고 전술의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서로 해설자끼리 의견을 달리해 논쟁을 펼치기도 합니다.

심지어 방청객들과 함께 어제 있었던 경기에 대한 열띤 토론을 하기도 하죠. 바이에른 뮌헨과 같은 인기팀에서 뉴스거리라도 나오면 일주일 내내 그와 관련된 소식들이 방송을 탈 정도로 시청자들은 축구 프로그램에 관심을 보내고 있습니다.

 
좌측에 보이는 사진은 2009년 독일국가대표 골키퍼 로베르트 엔케의 장례식을 스포츠채널이 중계를 해줄 때 제가 찍은 것인데요. 마치 국장을 중계하듯 엄숙한 가운데 하노버 팬들이 경기장에 모여 고인을 추모합니다. 방송은 이를 끝까지 생방송으로 보여주죠. 중간에 편성 문제로 자르거나 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축구 없는 독일은 생각할 수 없죠. 그러니, 독일 방송에서 분데스리가와 관련된 프로그램이 많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그리고 스포츠 전문 채널에서는 우리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비인기 종목이라 할 만한 스포츠들을 자주 방송으로 내보내는데 현장엔 언제나 관중들이 가득차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핸드볼, 다트, 스누커 등은 매우 인기가 있고, 그밖에 컬링이나 스키점프, 승마 등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되죠. 겨울이 되면 온 갖 겨울 스포츠란 스포츠는 다 구경할 수 있는데요...비인기 종목 선수들 이 얘기들으면 부러워할 거 같네요.




4. 수 많은 자동차 관련
                   프로그램들!

'축구만 있나? 여기 자동차도 있다!'...독일을 특징짓는 또 다른 것, 바로 자동차죠. 이 자동차와 관련돼
제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프로그램만 해도 10개가 넘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것만... 

사실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 입장에서 자동차는, 시청률을 보장하면서도 상대적으로 쉽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프로그램이 많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탑기어와 같은 메가히트 프로그램은 없지만 정말 다양한 채널을 통해 자동차와 그 문화를 소개하고 알리고 있는 점은 자동차 블로거로서 가장 부러운 점이 아닐 수 없는데요. 한국에서도 이제는 자동차관련 프로그램들이 좀 생겨나야하지 않을까요? 세계 5위 생산국가라면서 말예요...




5. 퀴즈와 토론은 즐거워?

독일엔 다양한 규모의 퀴즈 프로그램들이 시청자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왼쪽에 보이는 '누가 백만장자가 될 것인가?' 같은 큰 규모의 퀴즈프로그램에서부터 지역방송의 작은 것들까지, 정말 퀴즈에 살고 죽는 사람들 처럼 브라운관 안의 세상은 문제 맞히기에 여념이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초저녁부터 늦은 밤시간까지 토론하는 사람들을 또 어찌나 많은지요.

갖가지 독일 내의 이슈는 물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구촌 문제까지 토론의 주제는 넓고 다양합니다.  지기 싫어하고 따지기 좋아하는 독일인들의 특성 때문에 토론이 뜨거워질 때도 있지만 대체적으론 지루할 정도로 침착함들을 잃지 않기 때문에 어지간히 관심 있는 사람들 아니고서는 채널고정이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널 곳곳에서는 오늘도 머리 맞대고 앉아 뭐라고 그렇게들 떠들어 대고 있습니다.




6. 다큐 그리고 보통사람들...

우리나라로 치면 '스폰지' 같은 프로그램인 '갈릴레오'. 일주일 내내 하는 채널로 대단한 정보량과 규모를 자랑한다.


독일 방송의 특징 중에 또 하나는 다큐나 시사 정보 프로그램들이 대단히 많다는 것인데요.

자연 다큐멘터리나 역사, 여행 등의 일반적인 다큐는 물론이고 르뽀 형식의 프로그램에서부터 고발 프로그램까지 너무나 다양한 다큐와 시사 정보 프로그램들이 제작 송출되고 있습니다.
 
음식점 주방의 청결도를 단속하는 공무원들의 암행을 동행취재한다거나, 세관직원들이 공항이나 고속도로변에서 밀반입 하는 물건들을 찾아내는 등의 고발 프로그램들은 상당한 고정 시청자들을 갖고 있죠.

그리고 또 하나... 일반인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방송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직업에 도전한다든가, 해외 각 지에서 정착해가는 가족들의 과정을 찬찬히 보여주죠. 특히 문제 있는 가족들의 문제 해결 프로그램과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같은 프로그램들은 많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조금은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출연을 해서 그런지 그런지 다음 날 tv 프로그램 관련된 신문 리뷰에서도 꼭꼭 다뤄질 정도죠.

우리나라처럼 연예인들 거의 모든 프로그램을 점령한 것과는 분명 다른 분위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7. 4시간 짜리 생방송이라고?

왼쪽에 보이는 것은 독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 중 하나인 '랍을 이겨라!' 라는 겁니다.

독일에서 가장 유명하고 저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슈테판 랍(Stefan Rabb)이라는 방송인이 다섯 명의 일반인 후보 중 시청자들이 뽑은 한 명과 다양한 대결을 펼치는 그런 프로그램인데요.

랍을 이겼을 경우, 많게는 2백만 유로(30억) 정도를 획득할 수 있기 때문에 완전히 로또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엄청난 사람들이 출연신청을 한다고 하는데요. 복권하고 비슷해서 이번 회에서 랍을 못 이기면 그 금액이 누적이 되는 그런 원리입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이 금요일 저녁 8시 15분에 시작을 하는데 어떤 경우엔 자정을 넘겨서까지 계속 진행이 되기도 합니다. 많은 방청객들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대결을 응원하는 가운데 작은 퀴즈나 게임에서부터 엄청난 규모의 시설을 이용한 대결까지 약 20여가지의 대결이 매우 흥미롭게 펼칩니다. 그러다보니 평균적으로 3시간 이상이 소요되는 것이죠.  누가 이길지를 묻는 시청자 ARS 전화의 경우, 당첨된 사람들에겐 자동차를 선물로 줄 정도로 스케일이 엄청납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의 특징이 매 주 하는 것이 아니라 길게는 몇 개월에 한 번 뭐 이렇게 비정규편성이 된다는 겁니다. 

독일엔, 이런 식의 프로그램이 몇 개 있죠. 4시간짜리 생방송...그래도 최고의 인기를 누린답니다.




8. 집...집....그리고 또 집...!

독일 텔레비젼을 처음 접했을 때의 기억입니다.  한 며칠 호기심에 텔레비젼을 시청하는데, 왜 이렇게 집과 관련된 프로그램들이 많은 건지요...

저는 처음에 하우스TV라고 해서 전문 채널이 따로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큰 규모의 방송국들이 경쟁적으로 집과 관련된 프로그램들을 내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른 쪽 사진에 보이는 프로그램의 경우,  부동산 중개인들이 나와서 집을 구입하고자 하는 고객이나 새롭게 살게 될 월세집을 구하는 세입자들과 함께 알맞는 집찾기를 하는 뭐 그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방송이 되는 프로그램인데요. 인터넷 홈페이지엔 그 날 방송에서 새로 계약이 된 집이나 중개인에 대한 평점을 매기는 코너가 있을 정도로 인기와 관심이 높은 편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했던 '러브하우스' 처럼 사연 있는 시청자들의 집을 멋지게 고쳐주거나, 집을 새로 짓는 과정을 다큐처럼 보여주기도 하고, 홈쇼핑에선 직접 집을 수리하거나 집을 단장하는데 필요한 공구들이 많이 팔려나가기도 할 정도로... 독일 텔레비젼은 집과 관련된 방송을 많이 내보냅니다. 

저는 이런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한국에서 만약 이런 집찾기 방송이 생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고 혼자만의 상상도 해보았는데요. 독일에서 집은...투자나 투기의 목적이라기 보다는 주거의 목적. 평생 자신이 생활할 삶의 공간으로서의 의미로 자리하기 때문에 아마도 이런 방송들이 가능하지 않나 싶습니다.




9. 별 걸 다 더빙하는 방송들

제가 아직도 독일 방송에서 이해가 잘 안가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독일어 더빙입니다. 영화나 미드와 같은 것들이야 그럴 수 있다고 치죠. 하지만 뉴스에서 5초 정도 인터뷰한 내용까지도 자막이 아닌 더빙을 한다는 것입니다. 

뉴스 정도는 자막이 더 편해보이는데 그런 것들 까지도 목소리를 입히는 걸 보면서 혹시 '문맹율이 높나?' 뭐 이런 생각까지 들 정도였으니까요. 이런 더빙은 독일 극장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외국 영화를 상영할 때 모두 독일어로 더빙을 합니다. 톰 크루즈나 안젤리나 졸리의 오리지널 목소리를 모르는 독일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가 이해가 되는 것이죠. 그나마 다행인 것은, 찾기는 어려워도 자막 상영관이 있다는 건데요. 하지만 텔레비젼? 네... 여긴 이유없습니다. 무조건! 무엇이든 다 독일어로 입혀버린답니다.




10. 독일 텔레비젼의 밤 12시는 홍등방송!

마지막으로 독일 방송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바로 반라, 올누드의 여성들이 거침없이 방송에 나온다는 겁니다. 성인물 광고가 법적으로 허용이 되기 때문에 몇몇 채널들을 통해 노골적인 포르노성 광고가 전파를 탑니다. 물론 중요한 부위를 가리기는 하지만 어떨 땐 완전히 다 벗은 몸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대로 노출시키죠. 우리 입장에선 상상도 못할 그럴 일 아닙니까?

거기다 성적소수자들을 위한 게이방송이 있어 밤 늦은 시간엔 브라운관을 통해 특이한(?) 광경도 볼 수가 있는데요.이렇듯 성적인 광고가 판을 치는 독일...성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들 나름의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인지 저는 아직도 헷갈립니다.

그런데  성인광고물들을 통해서만 벗은 몸을 보는 게 아닙니다.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면  저녁 시간에도 얼마든지 상반신 노출 정도는 어렵지 않게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볼 수가 있는 것이죠. 

한국에서 처음 독일에 온 부모들이 걱정하는 것도 이런 개방화된 독일 방송으로부터 아이들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라고 하는데요. 하지만 얼마전 한국 모 프로그램에서 다뤘듯, 한국의 초등생들 상당수가 인터넷을 통해 성인물을 접하고 있다 하잖습니까? 가려서 될 게 아니라면 차라리 어느 정도 공개를 하는 것도 방법이 될 거 같은데...그래도 아직까지  한국사회에 적용하기엔 여러가지로 무리수가 따를 겁니다.


마무리...

'별 게 다 얘기거리네요.' 라고 어느 독일인이 제게 얘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온 이방인의 눈에는 정말로 별 게 다 얘기거리가 되는 거 같습니다. 오늘 다룬 것들 외에도 우리와는 다른 독일 TV 방송의 특징들은 찾아보면 더 있을 겁니다. 하지만 오늘 다뤄 본 내용들 정도면 독일의 텔레비젼 문화를 이해하는데 충분하지 않을까 싶네요.

제가 재미없는 독일 TV라고 시작했죠? 네...그 생각은 변하지 않을 거 같습니다. 다만, 점점 이런 독일 방송에 익숙해져가고, 환경에 적응하는 제 자신은, 인정해야 할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