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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남몰래 운전면허증 갱신한 아버지의 사연


<면허증, 그리고 첫 운전>

제대하던 그 해 봄.  또래 친구놈들 보다 조금 늦은 나이에 면허시험에 도전했던 저는 운 좋게도 첫 시험에서 합격을 하게 됩니다. 그 합격은 저에게 사회의 성숙한 구성원으로의 합류를 알리는 자랑스럽고도, 일종의 성스러운 의식과도 같은 것이 되어주었죠.

뭔가 대단한 것을 성취한 냥 한껏 들뜬 청춘의 머리 속은 이 때부터 온통 뭇 여성들의 시선을 뚫고 달려나가는 멋진 드라이버 모습으로 가득하게 되죠..  득의만면하여 집으로 돌아온 저는 부모님께  별 것 아니라는 듯 면허증을 내밉니다.

" 그렇게 대견한 표정으로 안 보셔도 돼요. 남들 다 따는 면허인데요 뭐..." 하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외치고 있었습니다. " 대단하지 않아요? 난 천잰가 봐!!! 그 어려운 코스들을 어찌나 멋지게 돌아나왔는지 모르실 거예요. 주행은 또 어떻구요!. 으하하하하 이제 다 주거쓰. 내가 간다!!!!" ... 세상을 다 가진 듯 기쁨이 밤새 가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아파트 주차장을 빠져나와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러 가는 길. 그런데 주차창 한 켠을 노란색 이삿짐 트럭이 자릴하고 있더군요. 제가 보기엔 아무리 봐도 통과가 불가능한 바늘구멍 같은 공간이었지만 무심하고 잔인한 이삿짐센타 아저씨들은 빨리 안 지나가고 뭐하냐며 계속 재촉을 해댔고, 초보의 첫 운행임을 들키기 싫었던 저는 가속페달을 있는 힘껏, 시속 20km로 밟은 채 멋지게 통과를 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잠시 후...

                                     " 찌~~~~이~~~~익"

어디서 차 긁히는 소리같은 게 나더군요. 전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아니 사실 그게 무슨 소리인지를 몰랐다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트럭을 통과하며 저는 룸미러에 비춰진 아저씨들의 놀란 표정에 정말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래, 놀라셨겠지. 암 이렇게 능숙한 운전 흔치 않잖겠어?'... 그렇게 왼쪽 뒷바퀴쪽 휀다에 깊고 진하게 박힌 노란색 상처를 품고 저는 세계 최고의 드라이버가 된 채 친구들에게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로 부터 배운 1년>

 베란다에서 저의 만행(?)을 묵묵히 지켜보셨던 아버지는 이후로 근 1년 동안의 운전교육을 통해 건방진 초보에게 진짜 필요한 것들이 뭔지 철저하게 알려주셨습니다. 앞 차와의 간격을 유지하는 것과, 항상 룸미러와 사이드 미러를 보며 주변의 상황을 파악하는 방법...눈에 안 보이는 겨울철 도로의 결빙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안전벨트 습관과 양보운전에 대한 방법 등등. 평소에 말 없기로 유명한 아버지는 1년 동안 가장 수다스러운 사람이 되어버렸죠. 수 많은 잔소리(?)들이 때론 지겨워 짜증도 났지만 그런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올바른 운전습관은 길러지지 못했을 겁니다.

그 때 아버지가 해주신 말씀들 중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게 있습니다.

" 니가 결코 운전을 잘한다는 생각을 하면 안돼. 너는 세상에서 가장 운전을 못 하는 사람이어야 해..." 

무슨 뜻인지 이해도 안됐고 와닿지도 않았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멋지게 핸들 잡아돌리며 휠스핀으로 아스팔트에 내 흔적 남기고 싶었고, 기어 변속 멋지게 하며 최고속도로 스피드 즐기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으니까요.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운전을 못한다는 마음으로 운전을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한참의 시간을 지내보내고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면허 갱신, 그리고 꿈>

칠순을 넘기신 아버지는 몇년 전부터 조금 불편해진 몸 때문에 운전을 안하고 계십니다. 아니, 못한다고 얘기하는 게 정확하겠군요. 한 때 어린 아들 눈에 최고의 드라이버였던 아버지셨지만 무심한 세월 앞에선 그저 한 장의 색바란 사진 속 주인공으로 남아 계실 뿐입니다. 뭐 한편으론 이제 운전대 안 잡고 맘편히 지내시는 게 더 낫다고 애써 위로를 하기도 합니다만...

그런데 얼마 전 전화통화 중 아버지가 운전면허를 갱신하셨다는 얘기를 어머니께서 해주시더군요.

" 면허증 갱신요? "

" 그래...나도 몰랐고 김서방도 아버지가 어디가시는지 대답을 안하시는 통에 몰랐다고 하더라구...그런데 엊그제 슬쩍 면허증을 보여주는 거야. 갱신 기간이라서 새로 한 거라고. 꼭 면허층 처음 받아든 사람처럼 좋아하던데?"

선뜻 무슨 의미인지 못 알아먹은 제게 어머니는 말을 이으셨습니다.

" 내가 그랬지, 당신은 운전도 안 하면서 그거 뭣하러 갖고 있느냐고...그랬더니 니 아버지가 그러시더라. 면허증이라도 있어야 덜 늙는 거 같다고...그리고 꼭 한번 예전처럼 운전대 쥐고 운전을 할 수 있었음 좋겠다고. 그래서 면허증을 못 버리시겠댄다..."

웃으며 얘기하고 있었지만 어머니의 목소리 끝이 떨리는 게 느껴졌습니다. 전화를 끊고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습니다. 가슴 저 뒤쪽에서부터 묵직한 게 밀려오는 느낌 때문이었죠. 나에겐 별 것 아닌 면허증이 아버지에겐 희망이 되어주고 있었던 셈이었습니다. 운전을 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전, 다음 한국방문 때 아버지께 핸들을 쥐어드릴 계획입니다. 그리고 바람좋은 날, 단 1킬로미터라도 좋으니 차창 모두 열고 신나게 함께 달려볼 생각입니다. 상상이 되네요.  다시 7살로 돌아간 아들의 경외에 찬 눈빛을 받으며 멋지게  운전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