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그러죠. BMW 팬들을 B당, 메르세데스 벤츠 팬들을 M당이라고. 저처럼 VW에 관심 있어 하는 사람들은 V당이라고 해도 괜찮을 텐데 아직까지 V당이라는 표현은 없는 듯 보입니다.
이 참에 '우리끼리V당'이라도 하나 만들어볼까 싶기도 한데 문제는, 공식화시키면 글이 편향될 우려가 있고, 또한 V당원이면서 VW차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본질적 문제에 부딪히게도 됩니다.
뭐 V당이 되었든 아니든 개인적으로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VW에 대한 다양한 공부를 해나가고 싶은데요. 오늘은 그런 계획의 일환으로 예전부터 준비해온 포스팅 하나를 올려볼까 합니다.
자동차역사라는 건, 정말로 관심 있어 하는 분들 아니면 굳이 파고 들어갈 필요까진 없겠죠. 하지만 적어도 VW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고 한다면 기본적인 내용 정도는 알아두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요. 폴크스바겐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맞았던 때와 사건, 그리고 인물에 대해 아주 간단하게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그럼 역사속으로 함께 떠보시죠~
폴크스바겐 역사를 이야기하기 위해선 나찌, 히틀러가 빠질 수 없죠. 히틀러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진 차가 바로 VW의 첫 자동차였기 때문인데요. 사실 이 전쟁광과 관련돼 이 차를 디자인한 페르디난트 포르쉐와 그 가족들은 끊임없이 역사에 의해 평가되고 연구되고 있습니다.
굉장히 복잡하고 어려운 그 상황을 여기서 다 이야기하는 건 불가능하구요. 한가지 에피소드만 말씀 드리면, VW라는 회사 이름이 원래는 포르쉐가 될 뻔했었다는 겁니다. 히틀러가 설계를 맡은 포르쉐 박사의 이름을 따 공장이름을 짓고자 했지만 그는 끝까지 반대했죠.
위의 사진은, 첫 번째 만들어진 비틀을 앞에 두고 히틀러가 연설을 하는 모습인데요. 1935년 7월 첫 프로토 타입의 모델이 나무와 쇠를 소재로 만들어졌고, 1938년 5월에 드디어 첫 비틀이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 차가 그 유명한 쉬빔바겐(Schwimmwagen)입니다. 쉬빔은 독일어로 '수영'이라는 뜻인데요. 물속에서도 달릴 수 있도록 비틀을 개조한 모델이죠. 첫 모델은 폴란드 침공 이틀 후에 만들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 쉬빔바겐은 이미 1년 전부터 준비가 됐던 군용모델이죠. 처음엔 타입128로 명명되었다가 1942년 후 타입166( T166)으로 바뀌게 되는데요. 전쟁기간 동안 총 14,276대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 콧수염 아저씨는 누구신가요? 영국군 아이반 허스트 (Ivan Hirst) 대령으로 엔지니어이자 폴크스바겐이 사라질 뻔한 위기에서 구해낸 인물이기도 합니다. 아시다시피 독일은 패전 후 영국, 미국, 프랑스에 의해 분리 통치됩니다. 그리고 전후 연합국측에선 전쟁의 도구로 사용되었던 VW공장을 없애버리려 합니다. 하지만 볼프스부르크 공장을 지켜내면서 20,000대의 주문도 받아내는 등 지속적으로 이 회사를 지키게 됩니다.
이 사람이 독일을 사랑해서 이런 조치를 취했다기 보다는 엔지니어로서 장차 영국에도 이런 공장을 짓기 위한 하나의 샘플로 남겨두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이 사람의 노력으로 1948년 완전하게 볼푸스부르크 공장이 독일로 이양되게 됩니다. 아이반 허스트는 어쨌든 독일의 자동차 역사에 있어 매우 의미 있는 인물로 기록될 영국인입니다...
폴크스바겐을 알리는 유명한 로고 VW는 1948년 독일로 완전히 이 공장이 넘어오면서 정식으로 10월 1일 상표등록을 마치게 됩니다. 이 로고가 독일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자동차 메이커의 상징이 될지 그 때 그 사람들은 알았을까요?
VW하면 비틀, 비틀하면 VW! 이 명백한 등식의 시작은 앞서 말씀드린 1938년이었죠. 이후, 1952년에 2단과 4단 기어의 비틀이 나오게 되고, 1954년엔 그 유명한 공랭식 박서엔진을 얹은 30마력의 모델이 출시됩니다. 이전인 1950년에 수출용 모델이 나오는데요. 그 때 마력수가 34PS였습니다.
1978년 독일에서는 더 이상 비틀을 생산하지 않게 됩니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계속적으로 이 모델이 만들어지는데요. 2003년 멕시코 공장에서 나온 모델을 끝으로 비틀은 생산을 끝내게 됩니다.
이후로 뉴비틀 그리고 다시 새로운 비틀로 비틀의 전설을 이어가려고 하지만, 포르쉐박사의 손자이자 VW의 살아 있는 전설 페르디난트 피에히에 따르면 비틀이 2천백만 대 이상이 팔려나간 것을 오히려 포르쉐 박사는 싫어했을 거라고 합니다. 많이 팔리는 양산 모델 보다는 창조적이고 실험적인 자동차에 포르쉐는 더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라는군요. 결국 그는 바람대로 포르쉐 시리즈들을 통해 창조적 스포츠카의 세계를 구현해내게 됩니다.
아~ 제가 좋아하는 불리(Bulli)입니다. 제 블로그 HOME (메인화면)에 보시면 이 불리에 대해 따로 포스팅한 게 있으니까 궁금하신 분들은 꼭 읽어봐주세요. 1950년 타입 1 (T-1)이라는 아주 단순하게 명명된 이 미니버스가 등장하면서 독일인들의 라이프 스타일은 일대 변화를 맞이합니다.
단순히 패밀리카 뿐 아니라 라인강의 기적이라 불리우는 경제기적의 숨은 주역으로 불리는 놀라운 역할을 해내게 되는데요. T1으로 시작된 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델은 현재 T5(Team이라고 불리움)까지 나와 그 역사를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처음 나온 T1만큼 설레이게 하진 못하네요.
이 흐릿하고 볼품(?)없어 보이는 사진은 의외로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아우토 유니온 즉, 지금의 아우디의 전신인 이 회사가 다임러 벤츠에서 VW으로 넘어왔죠. 이게 1965년 일인데요. 당시 아우토 유니온은 모회사인 VW과는 별개인 완전히 독자적인 길을 가게 됩니다. 이것이 지금의 VW 그룹 정책의 초석이 되게 됩니다. 아우디라는 멋진 메이커가 벤츠에 계속 남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페르디난트 피에히가 아우디를 살려내지 못했을 테니 지금의 Audi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겠죠?...
조르지오 쥬지아로...비틀로 인해 되려 VW엔 적자가 누적되게 되고 경영은 위기를 맞게 됩니다. 이런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나온 모델이 1974년에 만들어진 그 유명한 VW 골프죠. 그리고 이 골프의 디자인을 담당했던 사람이 바로 사진에 보이는 이태리 디자인의 좌장 조르지오 쥬지아로였습니다. 비틀의 둥글둥글한 분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싶었던 VW의 바람을 멋지게 이뤄준 사람이죠. 지금까지 2천6백만 대 이상이 팔려나간 이 모델의 성공신화는 언제까지 이어질까요? 이왕 올린 거 제가 아끼는 사진 한 장 더 올려봅니다!
골프를 디자인한 세 명의 디자이너, 조르지오 쥬지아로, 하르트무트 봐르쿠스, 그리고 발터 드 실바가 각각 자신들이 디자인한 1세대, 4세대, 그리고 6세대 옆에서 함께 포즈를 취해주고 있습니다. 이게 전통이고 이게 역사입니다. 자신들의 자동차가 진행되어오는 모든 과정을 이렇게 멋지게 한 장의 사진으로 담아 설명해주고 있는 거...정말 멋지지 않나요? (너무 저 혼자 감동했나? )
VW하면 이제 볼프스부르크에 있는 이 '아우토슈타트'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2000년, 이전 독일 화폐로 약 8억5천만 마르크라는 엄청난 돈(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 8천억 정도 되지 않나 싶습니다.)을 들여 40헥타르 공간에 완성한 복합 자동차 타운인데요. 박물관에서부터 체험관과 주변의 고급호텔, 그리고 이벤트홀까지 실로 엄청난 자동차공간입니다.
나중에 아우토슈타트에 대해선 별도의 포스팅을 해보겠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곳이 관심을 끄는 것은 VW의 새차를 주문한 고객들이 자신의 차를 받으로 왔을 때 보게 되는 타워죠.
엄청난 높이의 이 타워를 통해 자동으로 자신의 차가 실려 내려오는 광경은, 고객의 심장을 터뜨리기에 더할나위 없이 멋진 이벤트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포스팅의 마지막은 VW의 페르디난트 피에히 의장입니다. 그에 대해선 아우디를 지금이 있게 만든 장본인으로 제가 포스팅을 한 바가 있습니다. 고집스런 엔지니어이자 피에히 가문으로 포르쉐에서 아우디로 그리고 다시 폴크스바겐으로 이어지는 인생여정 속에서, 자신만의 강력한 리더쉽을 통해 지금의 아우디와 VW을 만들어낸 전설과 같은 인물입니다.
1993년부터 2002년까지 VW 회장을 역임했고, 이후에는 VW이사회 의장의 자리에서 최고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현재 한국수입차협회 회장이자 폭스바겐 코리아 사장으로 있는 박동훈 씨 조차도 피에히 옆에서 그의 카리스마에 압도당해 숨소리 조차 제대로 낼 수 없었다는 전언이 있었을 정도였는데요. 젊었을 땐 좀 바람끼도 많아서 결혼했다가 유부남으로 다른 여자를 좋아해서 이혼하고 그 여자랑 결혼했고, 또 그 결혼 생활 중에 다른 여자와의 사이에 아이를 낳는 등, 엄마가 다른 자녀들도 상당히 많은 흠많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동차에 대한 열정, 기술, 꿈, 그리고 경영에 있어서 그는 독일을 대표하는 아니, 세계 자동차업계를 대표하는 최고의 인물이라고 말하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너무 간단하게 정리해서 좀 불만인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정리하는 저는 보통 어려운 작업이 아니네요. 앞으로도 이런 역사와 재미난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들도 더 공부하고 찾아내 함께 나눌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이 참에 '우리끼리V당'이라도 하나 만들어볼까 싶기도 한데 문제는, 공식화시키면 글이 편향될 우려가 있고, 또한 V당원이면서 VW차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본질적 문제에 부딪히게도 됩니다.
뭐 V당이 되었든 아니든 개인적으로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VW에 대한 다양한 공부를 해나가고 싶은데요. 오늘은 그런 계획의 일환으로 예전부터 준비해온 포스팅 하나를 올려볼까 합니다.
자동차역사라는 건, 정말로 관심 있어 하는 분들 아니면 굳이 파고 들어갈 필요까진 없겠죠. 하지만 적어도 VW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고 한다면 기본적인 내용 정도는 알아두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요. 폴크스바겐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맞았던 때와 사건, 그리고 인물에 대해 아주 간단하게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그럼 역사속으로 함께 떠보시죠~
폴크스바겐 역사를 이야기하기 위해선 나찌, 히틀러가 빠질 수 없죠. 히틀러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진 차가 바로 VW의 첫 자동차였기 때문인데요. 사실 이 전쟁광과 관련돼 이 차를 디자인한 페르디난트 포르쉐와 그 가족들은 끊임없이 역사에 의해 평가되고 연구되고 있습니다.
굉장히 복잡하고 어려운 그 상황을 여기서 다 이야기하는 건 불가능하구요. 한가지 에피소드만 말씀 드리면, VW라는 회사 이름이 원래는 포르쉐가 될 뻔했었다는 겁니다. 히틀러가 설계를 맡은 포르쉐 박사의 이름을 따 공장이름을 짓고자 했지만 그는 끝까지 반대했죠.
위의 사진은, 첫 번째 만들어진 비틀을 앞에 두고 히틀러가 연설을 하는 모습인데요. 1935년 7월 첫 프로토 타입의 모델이 나무와 쇠를 소재로 만들어졌고, 1938년 5월에 드디어 첫 비틀이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 차가 그 유명한 쉬빔바겐(Schwimmwagen)입니다. 쉬빔은 독일어로 '수영'이라는 뜻인데요. 물속에서도 달릴 수 있도록 비틀을 개조한 모델이죠. 첫 모델은 폴란드 침공 이틀 후에 만들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 쉬빔바겐은 이미 1년 전부터 준비가 됐던 군용모델이죠. 처음엔 타입128로 명명되었다가 1942년 후 타입166( T166)으로 바뀌게 되는데요. 전쟁기간 동안 총 14,276대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 콧수염 아저씨는 누구신가요? 영국군 아이반 허스트 (Ivan Hirst) 대령으로 엔지니어이자 폴크스바겐이 사라질 뻔한 위기에서 구해낸 인물이기도 합니다. 아시다시피 독일은 패전 후 영국, 미국, 프랑스에 의해 분리 통치됩니다. 그리고 전후 연합국측에선 전쟁의 도구로 사용되었던 VW공장을 없애버리려 합니다. 하지만 볼프스부르크 공장을 지켜내면서 20,000대의 주문도 받아내는 등 지속적으로 이 회사를 지키게 됩니다.
이 사람이 독일을 사랑해서 이런 조치를 취했다기 보다는 엔지니어로서 장차 영국에도 이런 공장을 짓기 위한 하나의 샘플로 남겨두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이 사람의 노력으로 1948년 완전하게 볼푸스부르크 공장이 독일로 이양되게 됩니다. 아이반 허스트는 어쨌든 독일의 자동차 역사에 있어 매우 의미 있는 인물로 기록될 영국인입니다...
폴크스바겐을 알리는 유명한 로고 VW는 1948년 독일로 완전히 이 공장이 넘어오면서 정식으로 10월 1일 상표등록을 마치게 됩니다. 이 로고가 독일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자동차 메이커의 상징이 될지 그 때 그 사람들은 알았을까요?
VW하면 비틀, 비틀하면 VW! 이 명백한 등식의 시작은 앞서 말씀드린 1938년이었죠. 이후, 1952년에 2단과 4단 기어의 비틀이 나오게 되고, 1954년엔 그 유명한 공랭식 박서엔진을 얹은 30마력의 모델이 출시됩니다. 이전인 1950년에 수출용 모델이 나오는데요. 그 때 마력수가 34PS였습니다.
1978년 독일에서는 더 이상 비틀을 생산하지 않게 됩니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계속적으로 이 모델이 만들어지는데요. 2003년 멕시코 공장에서 나온 모델을 끝으로 비틀은 생산을 끝내게 됩니다.
이후로 뉴비틀 그리고 다시 새로운 비틀로 비틀의 전설을 이어가려고 하지만, 포르쉐박사의 손자이자 VW의 살아 있는 전설 페르디난트 피에히에 따르면 비틀이 2천백만 대 이상이 팔려나간 것을 오히려 포르쉐 박사는 싫어했을 거라고 합니다. 많이 팔리는 양산 모델 보다는 창조적이고 실험적인 자동차에 포르쉐는 더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라는군요. 결국 그는 바람대로 포르쉐 시리즈들을 통해 창조적 스포츠카의 세계를 구현해내게 됩니다.
아~ 제가 좋아하는 불리(Bulli)입니다. 제 블로그 HOME (메인화면)에 보시면 이 불리에 대해 따로 포스팅한 게 있으니까 궁금하신 분들은 꼭 읽어봐주세요. 1950년 타입 1 (T-1)이라는 아주 단순하게 명명된 이 미니버스가 등장하면서 독일인들의 라이프 스타일은 일대 변화를 맞이합니다.
단순히 패밀리카 뿐 아니라 라인강의 기적이라 불리우는 경제기적의 숨은 주역으로 불리는 놀라운 역할을 해내게 되는데요. T1으로 시작된 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델은 현재 T5(Team이라고 불리움)까지 나와 그 역사를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처음 나온 T1만큼 설레이게 하진 못하네요.
이 흐릿하고 볼품(?)없어 보이는 사진은 의외로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아우토 유니온 즉, 지금의 아우디의 전신인 이 회사가 다임러 벤츠에서 VW으로 넘어왔죠. 이게 1965년 일인데요. 당시 아우토 유니온은 모회사인 VW과는 별개인 완전히 독자적인 길을 가게 됩니다. 이것이 지금의 VW 그룹 정책의 초석이 되게 됩니다. 아우디라는 멋진 메이커가 벤츠에 계속 남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페르디난트 피에히가 아우디를 살려내지 못했을 테니 지금의 Audi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겠죠?...
조르지오 쥬지아로...비틀로 인해 되려 VW엔 적자가 누적되게 되고 경영은 위기를 맞게 됩니다. 이런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나온 모델이 1974년에 만들어진 그 유명한 VW 골프죠. 그리고 이 골프의 디자인을 담당했던 사람이 바로 사진에 보이는 이태리 디자인의 좌장 조르지오 쥬지아로였습니다. 비틀의 둥글둥글한 분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싶었던 VW의 바람을 멋지게 이뤄준 사람이죠. 지금까지 2천6백만 대 이상이 팔려나간 이 모델의 성공신화는 언제까지 이어질까요? 이왕 올린 거 제가 아끼는 사진 한 장 더 올려봅니다!
골프를 디자인한 세 명의 디자이너, 조르지오 쥬지아로, 하르트무트 봐르쿠스, 그리고 발터 드 실바가 각각 자신들이 디자인한 1세대, 4세대, 그리고 6세대 옆에서 함께 포즈를 취해주고 있습니다. 이게 전통이고 이게 역사입니다. 자신들의 자동차가 진행되어오는 모든 과정을 이렇게 멋지게 한 장의 사진으로 담아 설명해주고 있는 거...정말 멋지지 않나요? (너무 저 혼자 감동했나? )
VW하면 이제 볼프스부르크에 있는 이 '아우토슈타트'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2000년, 이전 독일 화폐로 약 8억5천만 마르크라는 엄청난 돈(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 8천억 정도 되지 않나 싶습니다.)을 들여 40헥타르 공간에 완성한 복합 자동차 타운인데요. 박물관에서부터 체험관과 주변의 고급호텔, 그리고 이벤트홀까지 실로 엄청난 자동차공간입니다.
나중에 아우토슈타트에 대해선 별도의 포스팅을 해보겠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곳이 관심을 끄는 것은 VW의 새차를 주문한 고객들이 자신의 차를 받으로 왔을 때 보게 되는 타워죠.
엄청난 높이의 이 타워를 통해 자동으로 자신의 차가 실려 내려오는 광경은, 고객의 심장을 터뜨리기에 더할나위 없이 멋진 이벤트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포스팅의 마지막은 VW의 페르디난트 피에히 의장입니다. 그에 대해선 아우디를 지금이 있게 만든 장본인으로 제가 포스팅을 한 바가 있습니다. 고집스런 엔지니어이자 피에히 가문으로 포르쉐에서 아우디로 그리고 다시 폴크스바겐으로 이어지는 인생여정 속에서, 자신만의 강력한 리더쉽을 통해 지금의 아우디와 VW을 만들어낸 전설과 같은 인물입니다.
1993년부터 2002년까지 VW 회장을 역임했고, 이후에는 VW이사회 의장의 자리에서 최고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현재 한국수입차협회 회장이자 폭스바겐 코리아 사장으로 있는 박동훈 씨 조차도 피에히 옆에서 그의 카리스마에 압도당해 숨소리 조차 제대로 낼 수 없었다는 전언이 있었을 정도였는데요. 젊었을 땐 좀 바람끼도 많아서 결혼했다가 유부남으로 다른 여자를 좋아해서 이혼하고 그 여자랑 결혼했고, 또 그 결혼 생활 중에 다른 여자와의 사이에 아이를 낳는 등, 엄마가 다른 자녀들도 상당히 많은 흠많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동차에 대한 열정, 기술, 꿈, 그리고 경영에 있어서 그는 독일을 대표하는 아니, 세계 자동차업계를 대표하는 최고의 인물이라고 말하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너무 간단하게 정리해서 좀 불만인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정리하는 저는 보통 어려운 작업이 아니네요. 앞으로도 이런 역사와 재미난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들도 더 공부하고 찾아내 함께 나눌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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