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토하우스라는 독일 자동차 매체가 있습니다. 제조사 관련한 소식뿐만 아니라 딜러, 정비, 정책 등, 자동차 전반에 대해 다루는 곳인데요. 며칠 전 이 매체에 제네시스의 기함이죠, G90이 유럽에 올해 안에 출시된다는 소식이 올라왔습니다. 단신으로 처리할 수 있는 내용이었지만 어쩐 일인지 상당히 자세하게 관련 소식을 전했습니다.
해당 매체는 G90을 한국에서 시승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기사에서 이를 언급했죠. 그 내용을 정리하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크고 편안하다. 소재도 고급스럽다. 콕핏은 클래식 라인에 충실하고 과하지 않다. 한국에서 첫 테스트 때는 덜 능동적인 주행 능력을 비판했는데 유럽 시장을 위해 섀시와 스티어링을 개선한 듯하다. 소음 차단이 뛰어나고 승차감도 고급스럽다.'
차 자체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볼 만한 내용이 기사 중에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유럽 시장에서 그럼에도 이 차가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 그 가능성에 대해서는 낮게 보는 듯했습니다. 사자굴에 들어가기 위해서 무장을 잘해야 하는데 G90은 판매에 절박하지 않은 듯하다고 표현했죠.
해당 매체는 '우리도 아주 고급스럽고 품위 있는 차를 만들고 내놓는다'는 걸 보여주는 것에 더 포커스가 맞춰졌다는 뉘앙스로 G90 유럽 진출을 바라봤습니다. 많이 팔릴 세그먼트도 아니지만 이 급엔 너무 쟁쟁한 모델들이 많고, 이들과 경쟁은 쉽지 않다고 내다본 것입니다. 그들의 입장은 비교적 명확했고, 성패를 표면에 대놓고 잘 이야기하지 않는 매체들 특성에 비춰보면 상당히 이례적으로 전망을 했다고 보여집니다.
'G90의 출시가 독일 시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독일 현지 제네시스 고위 임원의 발언도 소개했는데, 여기서의 도움이라는 표현은 판매보다는 이미지 개선(앞서 말한 품위 있고 고급스러운 차 만들 수 있음)에 무게중심이 더 가 있다고 보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벤츠부터 벤틀리, 롤스로이스 등, 엄청난 브랜드와 그 브랜드에서 내놓는 기함들이 즐비한 유럽에서 노네임(해당 매체의 표현) 한국 브랜드의 기함이 판매로 성공을 노리기는 현실적으로 힘듭니다.
만약, 정말로 현대차가 제네시스를 북미와 달리 이미지 개선용 브랜드, 혹은 고급의 이미지를 얻기 위한 브랜드로 유럽에서 활용하고 싶은 것이라면 철벽같은 고급 플래그십 시장에서 엔진이 아닌 전기차로, 전기차 고급 럭셔리 브랜드로 전환하는 게 그나마 성공의 확률을 조금 더 높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기사를 본 후 이번에는 독일 연방자동차청에서 내놓은 상반기 제네시스 모델에 대한 판매자료를 들여다봤습니다. 그런데 판매량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제네시스 모델들이 현대차 모델로 분류되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제네시스 G70이 아니라 현대 G70으로 기록되었다는 얘기죠. 아무리 신생이라고는 해도 엄연히 자체 브랜드가 있는데 왜 이런 식으로 처리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현대차 관계자라면 연방자동차청에 강하게 정정을 요구할 겁니다.
사소하게 넘길 부분이라고 생각하면 할 수 없지만 어쨌든 이런 것 하나하나가 저는 제네시스가 유럽에서 얼마나 험난한 길을 가야 할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차의 유럽 본진, 제네시스의 유럽 본진인 독일에서 이런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 사소한 일인지 잘 모르겠네요.)
판매 결과도 아픈 대목입니다. (현대차 모델로 분류된) G70의 2023년 1월부터 6월까지 판매량은 100대가 전부였습니다. G80의 올해 상반기 독일 내 판매량은 더 적어 44대였습니다. 그나마 기대가 된 SUV 모델들도 기대에 못 미친 것은 마찬가지였는데요. GV60이 158대, GV70은 266대, GV80은 73대였습니다. 참고로 독일에서 역시 쉽지 않은 도전 중인 비슷한 럭셔리 브랜드 SUV 모델들과 같은 기간 판매량을 한번 비교해봤습니다.
GV70 : 266대
GV80 : 73대
캐딜락 XT4 : 117대
DS DS7 크로스백 : 410대
렉서스 NX : 480대
렉서스 RX : 347대
GV70에 대한 기대가 그래도 많았는데 역시 제네시스 모델 중에는 가장 판매량이 높았습니다. 하지만 한국이나 북미 등에서 보여준 결과와 비교하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시간이 지나도 지금과 같은 분위기, 환경 속에서는 렉서스 수준을 크게 뛰어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합니다. 그냥 버티고 있다는 게 맞는 표현인 캐딜락보다는 더 좋은 결과를 얻고 있지만 판매량으로 독일 3사와 볼보는 물론 재규어 등, 유럽 기존 브랜드와 경쟁할 수 있는 수준까지 성장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제네시스는 모회사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유럽에서도 투자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 흐름을 이어받아 이젠 기함 G90까지 유럽 땅을 밟게 됩니다. 하지만 G90은 이미 들어와 있는 모델들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경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G90 진출이 그들이 바라는 대로 유럽에서 제네시스와 현대차 그룹의 브랜드 이미지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제네시스는 유럽 진출 전부터 험난한 여정이 예상됐습니다. 파괴적일 정도로, 이슈가 될 정도로 색다른 콘셉트, 혹은 기술력, 혹은 마케팅으로 무장을 해도 뚫기 쉽지 않은 곳인데 지금과 같은 형태의 도전으로는 원하는 결과를 얻기 힘들 겁니다. 속상하더라도 현대차는 이런 현실을 인식하고 새로운 전략을 세워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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