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토요타에 대한 관심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관심을 끌 만한 얘깃거리도 별로 없습니다. 수소차 미라이가 나왔을 때 잠시 이슈 중심에 서긴 했어도 그 정도를 제외하면 조용합니다. 유럽 진출이 오래되었지만 미대륙이나 동남아시아 등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과 비교하면 유럽에선 너무 조용히 장사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렉서스까지 들여오는 등, 많은 투자를 했지만 사실 투자 대비 결과는 그리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물론 내구성에 대한 브랜드 이미지는 상당히 좋습니다. 그런데 그게 다입니다. 프리미엄 브랜드 쪽에서는 렉서스가 전혀 힘을 못 쓰고 있고, 토요타 또한 양산 시장에서 현상 유지에 만족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냥그냥 이어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디자인에 대해서 얘기할 게 없습니다. 왜 이렇게 디자인을 못 하냐는 얘기들은 가끔 나옵니다. 전반적으로 밋밋하지 않으면 너무 튑니다. 적정선이 없는 느낌입니다. 어떤 모델에선 기괴한 느낌까지 받게 되죠. 이해가 안 됩니다. 시장 파악을 못 하는 브랜드도 아니고, 기업 역량이 안 되는 곳도 아닌데 도대체 왜 디자인이 이처럼 매력적이지 못한 걸까요?
그런데 2개의 모델을 보고 '어? 도요타도 이제 디자인 쪽에서 정신을 차린 건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모두 최근에 공개된 모델들로 세단은 아닙니다. 첫 번째는 랜드 크루저 250입니다. 이미 많이들 소식 들으셨을 겁니다. 이 차는 일부 지역에서는 랜드 크루저 프라도라는 이름으로 판매 중이고 유럽의 경우 그냥 '랜드 크루저'로 판매되고 있습니다.
북미 등에서 팔리는 랜드 크루저 300은 너무 커서 유럽 같은 곳엔 안 들여오는 모양입니다. 랜드 크루저 250은 이 300의 바로 아래 세그먼트입니다. 2009년 유럽에 4세대가 나왔을 때 '못생긴 SUV가 하나 더 탄생했구나' 했는데 이게 지금까지 버티고 있습니다. 그나마 계속 디자인을 다듬어왔고 최근 것은 봐줄 만해졌습니다. 그래도 감성 자극엔 한참 부족합니다.
그런데 토요타가 공개한 랜드 크루저 250은 디자인에서 일단 사람들의 시선을 확실하게 잡아끌었습니다. 독일 매체들 반응도 비슷했죠. 스타일과 성능 모두에 칭찬과 기대한다는 분위기의 글들이 이어졌습니다. 토요타는 이 차를 내놓으며 '원형으로의 회귀'라고 메시지를 분명히 했습니다. 과거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되살린 것인데요. 요즘 토요타 느낌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주 잘 뽑혔습니다.
FJ 크루저 느낌도 조금 나지만 그보다는 좀 더 오프로더 느낌이 진중하게 느껴지는, 헤리티지에 충실한 그런 해석의 결과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 랜드 크루저 70 부분변경 모델도 공개했는데 1984년의 오리지널 70에 가깝게 다듬어졌습니다.이건 뭐 거의 복각 수준입니다. 얘도 참 멋집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호주와 같은 일부 시장에서만 판매가 될 것이라고 하더군요.
일단 여기까지 보면서 토요타가 이번엔 일을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맨날 이상한(?) 디자인의 자동차들만 보다가 뭔가 제대로 된 걸 내놓았다 싶었죠. 그런데 이번엔 인도네시아에서 또 아주 괜찮은 모델을 토요타가 공개했습니다. 인도네시아 국제 오토쇼에 랑가라는 이름의 콘셉트카를 내놓은 겁니다.
픽업인데 무척 박시합니다. 콤팩트하기도 하고요. 거친 듯한 느낌도 있지만 야무져 보이고 일단 예쁩니다. 실제로 인도네시아 시장에 저렴한 가격에 내놓을 것이라고 합니다. 랜더링 대회도 열었는데 거기서 나온 디자인인지 모르겠지만 다양한 이미지의 랑가가 공개됐습니다. 욱일기 디자인이 들어간 바보같은 디자인도 있기는 했지만 그걸 빼면 다 예뻤습니다.
참고로 랑가는 자바어로 영웅을 뜻하는 롱고에서 영감을 받아 지었다고 합니다. 네이밍도 좋고 차 디자인도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이런 픽업은 인도네시아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 출시돼도 많은 관심을 받을 거 같습니다. 특히 유럽에서요. 이쯤 되니 토요타가 디자인을 못 한 게 아니라 그냥 안 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얘들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왜 지금까지 그랬나 모르겠습니다. 디자인은 취향을 타는 것이라 사람마다 느낌이 다를 겁니다. 그래도 보편적으로, 공통으로 좋은 자극을 주는 디자인 요소는 있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토요타 모델들이 이를 잘 건드린 게 아닌가 합니다. 디자인이 점점 산으로 자동차 브랜드들이 있는데 좋은 디자인 경쟁, 선의의 경쟁이 다시 펼쳐졌으면 합니다. 토요타 디자인, 조금 기대를 하고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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