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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자동차 속도와 사망사고는 비례하지 않는다?

짧은 글 하나 올립니다. 얼마 전 독일의 자동차 매체 아우토모토운트슈포트가 흥미로운 자료를 소개했습니다. 유럽 각국의 고속도로에서 사망사고가 얼마나 일어났는지 비교한 것이었는데요. 정확하게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EU 국가별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였습니다. 

 

유럽위원회가 만든 자료였는데 핀란드가 7명으로(기준은 고속도로 1000km) 가장 적었고 불가리아가 가장 많은 72명이었습니다. EU 평균은 30명이었는데 독일 아우토반이 이 평균치와 같았습니다. 해당 매체는 유럽 각국의 고속도로 최고제한속도도 함께 보여줬습니다.

 

앞서 가장 사망자가 적은 핀란드의 경우 고속도로 제한속도는 시속 120km였으며, 3위 덴마크(18)는 시속 130km였죠. 또 벨기에(제한속도 120km/h)의 경우는 57, 이탈리아(제한속도 130km/h) 67명으로 상당히 많은 편이었고, 31명이었던 스페인(제한속도 120km/h) 28명이었던 네덜란드(제한속도 시속 100km), 슬로바키아(30), 폴란드(39) 등은 제한속도가 없는 독일과 차이가 크지 않았습니다.

독일 아우토반 전경 / 사진=위키피디아

 

아우토모토운트슈포트는 이 자료를 통해 고속도로의 제한속도가 낮다고 해서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그에 비례해 낮은 게 아니라는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독일은 유럽에서 고속도로 이용량이 가장 많은데 독일 이외 지역 운전자들이 독일 아우토반을 많이 이용한다는 점도 교통사고 통계에서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또 물류 허브답게 유럽 여러 나라 화물차가 아우토반을 통해 동서남북으로 이동하고 있고, 이런 화물차의 교통사고 또한 그 비중이 높은 편이라고 전했습니다. 독일 이외 국가의 운전자들이 아우토반 사고율을 올린다는 뉘앙스죠? 어쨌든 이런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듯, 아우토반의 속도를 제한하는 것이 안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해당 매체의 주장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요즘처럼 교통안전에 민감한 분위기 속에서 흐름에 반하는 주장이 나올 수 있는 걸까요?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독일 아우토반은 무제한 도로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많은 운전자가 시속 200km를 넘나들며 운전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한 통계를 보면 2022년 아우토반을 달린 자동차 중 약 82%가 시속 130km 이하로 달렸습니다. 그다음 10.35%가 시속 130~140km로 달렸습니다. 시속 160km 이상으로 달린 운전자는 전체의 1.41%밖에 안 됐는데 이는 2021년의 1.74%와 비교하면 오히려 더 준 것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독일 아우토반의 평균 주행 속도가 이처럼 해가 갈수록 줄고 있기 때문에 제한속도를 정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실제 제가 운전을 해봐도 추월할 때를 제외하면 시속 130km 전후로 운전을 가장 많이 하게 됩니다.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시속 160km 달릴 일은 없죠.  설령 초고속으로 운전을 하더라도 짧은 구간일 뿐입니다.

속도 제한 없음 표지판은 독일 아우토반의 특징을 드러내는 것 중 하나다 / 사진=위키피다아

 

두 번째는 아우토반을 이용하는 운전자들이 고속도로 이용법을 상당히 잘 숙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측 차로를 통한 추월은 없고, 1차로 역시 추월할 때만 이용하고 추월 후에는 바로 2차로나 3차로로 차로를 변경합니다. 아시는 것처럼 독일은 운전면허 취득 과정이 까다롭습니다. 무척 철저하게 이론과 실기 교육을 받죠.

 

그런 과정을 통해 면허증을 취득한 운전자들 덕에 생각보다 아우토반은 위험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아우토반의 실제 흐름은 그렇게 빠르지 않다. 그리고 좋은 운전면허 교육 과정을 통해 좋은 교통 문화가 독일에는 있다. 이런 배경에서 해당 매체는 아우토반의 속도제한이 사고라는 관점, 안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큰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반론을 편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이처럼 독일 매체의 주장을 소개한 이유는 제한속도의 효용성을 무시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교통 정책이 제한속도를 낮추는 것에만 매몰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제한속도는 안전한 도로 교통을 위한 필수 요소입니다. 특히 도시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다만, 그것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먼저 올바른 운전을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 그래서 제대로 운전할 줄 아는 운전자가 배출되는 도로 시스템과 문화를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전제되었을 때 다양하고 유연한 교통 정책도 논의될 수 있는 것이며, 정책의 효율성도 높일 수 있습니다. 안전하고 좋은 교통 문화는 튼튼한 기초, 기본기 위에서 나온다는 걸,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