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스케치북다이어리는 데이터 기반한 소식을 전하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조금 다른 형식의 글쓰기도 해보려 합니다. 그걸 위해 <자동차에 대한 매우 주관적인 이야기>라는 코너를 만들어봤습니다. ‘한 달 몇 편을 쓰겠다’ 이런 규칙 같은 건 없습니다. 그때그때 느낌 올 때마다 때론 독설처럼, 때로는 응원가처럼 노골적(?)인 제 의견을 담은 글을 쓸 생각입니다.
내용에 동의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생각의 방향이 같든 다르든, 어떤 문제를 끄집어내 함께 짚어보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생각의 ‘거리’를 공유해보자는 것이죠. 그러니 편하게 읽어주세요. 오늘은 첫 번째로 대형 SUV에 대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한국 자동차 시장은 요즘 새로운 흐름이 하나 만들어졌습니다. 대형 SUV의 인기입니다. 현대 팰리세이드는 주문이 밀려 차를 인도받기까지 5~6개월이나 걸린다고 하더군요. 이런 분위기가 한국만의 것일까요? 중국도 큰 차가 잘 팔리고, 미국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유행을 한 번 타면 강하고 크게 만들어지는 그런 소비 특성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더 트렌디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팰리세이드/ 사진=현대자동차
누군가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유럽도 변하는 게 아니나며 BMW가 X7 같은 큰 SUV를 내놓은 것을 예로 들었습니다.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X7은 유럽이 핵심 소비 지역은 아닙니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북미나 아시아, 또 중동 시장 등을 겨냥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입니다.
물론 유럽인들도 안락하고 편의 장비 잘 갖춰진 차를 타고 싶어 합니다. 돈이 많이 드는 게 문제겠죠. 또 돈을 떠나 실용주의적인 성향도 어느 정도를 고려할 부분이고, 이들의 문화도 따져봐야 합니다. 인도와 차도 모두 크고 넓은 우리와 도로 환경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조금만 차가 커도 주차가 만만치 않고, 다른 차(운전자)의 시야를 쉽게 가리게 됩니다.
차의 가격은 비싸지, 도로는 여유롭지 않지, 거기에 오래도록 작은 차에 익숙한 문화이고. 이런 여러 이유가 뒤섞인 곳이다 보니 어지간해서는 큰 SUV가 발붙이기 어렵습니다. 유럽에서 장사하는 한국이나 일본, 포드와 같은 미국 기업이 내놓는 대형 SUV를 유럽에서 판매하지 않는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여기에 또 하나 이유를 붙이자면 바로 환경 문제입니다.
요즘 유럽은 하루가 멀다고 SUV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피로감을 호소할 정도인데요. 환경 시위도 일상이 돼 버렸고, 그 시위에서 SUV가 비판받는 것도 흔한 일이 돼버렸습니다. 이렇다 보니 환경을 빼고 자동차를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정책도, 사회 분위기도 모두 그렇습니다. 생각하시는 것 그 이상이라 보면 됩니다. 얼마 전 리서치 자료를 하나 봤는데, 독일에서 자동차를 살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게 뭐냐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답이 나왔을까요.
1위는 비용입니다. 응답자의 88%가 가격, 금융 조건, 재판매 가치 등을 꼽았습니다. 2위는 86%였던 운전느낌, 그러니까 주행 만족도였습니다.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부분이라 해야겠네요. 세 번째가 눈에 띕니다. 79%가 응답한 환경 친화성이었습니다. 자동차 브랜드값이나 차의 디자인 등을 꼽은 사람들은 의외로 많지 않았습니다. 독일 결과지만 유럽 전체 분위기와도 크게 어긋나지 않으리라 봅니다. 한마디로 환경에 대한 인식이 자동차를 선택이라는 행위에까지 일정 부분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 상황을 한번 보죠. 한국은 도시 규모가 크고, 많은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도시 도로 또한 넓고, 크고, 복잡합니다. 굳이 비교한다면 유럽보다는 북미와 좀 더 가깝다고 해야 할 거 같습니다. 큰 차가 굴러다니기 그리 나쁘지 않은 환경이라는 것이죠. 여기에 소비 성향도 대형 SUV 인기를 거듭니다. 큰 차 선호도가 높은 편입니다. 한 가지 깜짝 놀란 게 있습니다. 쏘나타와 K5 신형 전장이 4.9미터를 넘겼다는 겁니다. 4.9미터 전장은 유럽 기준으로 보면 준대형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그랜저랑 전장 길이가 큰 차이가 안 납니다.
새로 나올 준중형 아반떼 전장도 길어질 게 분명합니다. 당연합니다. 중형급이 4.9미터를 넘겼으니 세그먼트 사이의 간격을 유지하려면 더 키울 수밖에 없습니다. 소비자는 크기에 매료되고, 제조사 역시 마진 좋은 큰 차가 많이 팔리면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더 편안하고 더 안전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소비자들은 그런 차를 타야 안심이 되고, 또 작은 차 탄다고 무시당하고 싶지 않은 심리도 같이 작동됩니다. 결국 소비자 선택과 제조사 전략이 잘 맞아떨어진 게 대형 SUV 시장이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잘 안 보이는 게 있습니다. 바로 환경입니다. 크고 무거운 차가 발생시키는 문제가 있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이런 부분은 거의 공론화 되지 않고 있습니다. 가끔 다음 자동차 칼럼 코너에 환경과 관련한 자동차 글을 쓰는데 별로 환영받지 못합니다. 호기심을 갖고 클릭을 유도할 만한 그런 주제는 아니기에 반응에 대해서는 이해 못하는 바 아닙니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보다는 대형 SUV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졌으면 좋겠습니다. 인기를 끌고 많이 소비되는 것만큼, 그 차가 가진 비판적 문제도 함께 다뤄지는 것 말이죠. 우리나라는 대단히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국가 중 하나입니다. 이산화탄소는 지구온난화의 핵심 요소입니다. 정치 이념, 종교적 신념 등과 굳이 연결시키지 않아도 환경은 우리 생존의 문제입니다. 그러니 결코 소홀하게 다뤄져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살고 있고,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위한 근본적인 문제이니까요.
이쯤 오면 “이게 대형 SUV만의 문제는 아니잖아요?”라고 반론을 하실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더 나아가 자동차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육식을 줄이고 생활 패턴을 바꾸는 것이 지구온난화를 늦추거나 완화하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화석 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산업 자체가 환경친화적으로 바뀌는 게 더 중요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자동차를 이야기하는 사람입니다. 자동차를 중심에 놓고 그 관점으로 이야기를 하는 게 제 역할입니다. 그런 점은 이해를 구하겠습니다.
큰 차를 선택하셨거나 또 구입 예정인 분이 혹 이 글을 읽는다면, 우리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요? 나의 선택 안에서 내가 환경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무언지 고민하는 겁니다. 급제동 급출발 안 하기, 과속 안 하기, 짧은 거리는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하기 등,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실천해 보는 겁니다. 하지만 이런 행동의 변화는 인식의 변화가 없이는 이뤄지지 않습니다. 행동은 관심이 있어야 따라올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러니 이제부터는 자동차를 이야기할 때 환경도 함께 떠올려 봤으면 좋겠습니다. 조금 더 환경에 친화적인 차인지, 이런 부분에 관심을 기울이는 그런 자동차 회사인지, 미래를 어떻게 이야기하고 약속하는지 등을 바라보는 겁니다.
물론 이것은 내연기관이 들어간 자동차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기차도 환경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다만 이런 각론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에서부터 발전 시켜야 합니다. 그러니 깊고 복잡한 이야기는 잠시 접고, 자동차와 환경을 연결 짓는 그 기본부터 사회의 주요 이슈로 만들어 나가야겠습니다.
휘뚜루마뚜루 이야기했는데 정리를 해볼게요. 대형 SUV 인기는 계속될 듯합니다. 우리의 소비 패턴, 제조사의 전략 등을 고려하면 어렵지 않게 예상되는 부분입니다. 선택 그 자체를 제가 감히 하라 마라 할 수도 없고 그럴 마음도 없습니다. 단지, 우리의 이런 선택이 환경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자는 겁니다. 자동차를 환경과 연결지어 바라보는 그런 사회, 우리가 함께 다져 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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