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독일에서는 제법 큰 자동차 관련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처음으로 전기차에 대해 정부 차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한 것이죠. 뉴스가 전해진 당일과 이후까지도 신문 1면이 이 소식으로 도배가 되다시피 했고 이와 관련한 다양한 목소리들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보조금에 대해 환영하는 목소리 보다 뜻밖(?)에도 반대의 목소리가 더 커 보였습니다. 왜 그랬던 것일까요?
사진=BMW
우선 왜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은지 알아보기 전에 보조금이 앞으로 어떤 형태, 어떤 기준으로 지급이 되는지 간단히 설명을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원금 수준
순수 전기차 : 4,000유로 (1유로에 환율 1,300원 기준으로 520만 원)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 3,000유로 (390만 원)
언제부터?
2015년 5월 중순부터 지급
규모와 재원은 어디로부터?
총 12억 유로 (1조5천6백억 원)를 독일연방정부와 자동차 제조사가 절반씩 부담
언제까지?
이 금액은 약 40만 대 수준에 해당되며 2020년까지 한시적으로 지급될 예정이나 보조금이 완전히 소진되는 시점에 따라 빨라지거나 늦어질 수 있음
모든 전기차가 대상?
차량 기본가 6만 유로 (7천8백만 원) 이상은 보조금 지금 대상에서 제외
참고로 기본가 6만 유로는 볼보 V60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56,900유로)나 메르세데스 C350e (51,500유로) 수준이며, BMW X5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와 테슬라 모델 S 등의 고가 모델들은 제외.
볼보 V60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 사진= 볼보
독일 정부의 추가적 지원책
정부는 3억 유로를 들여 15,000개의 충전소를 설치할 예정이며 이 중 2억 유로는 급속충전기를, 나머지 1억 유로는 일반 충전기 설치에 쓰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역시 2020년까지 이 계획을 마무리할 것으로 밝혔는데요. 여기에 업무용으로 전기차를 구매한 경우 회사에서 전기를 충전할 때 세금 감면 혜택도 추가적으로 줄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일단 정부의 발표에 대해 자동차 업계는 모두 환영의 뜻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경제학자와 일부 정치인들, 그리고 환경보호론자들은 이번 보조금 혜택에 대해 반대의 뜻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특히 환경을 정치 메시지의 중심에 두고 있는 녹색당이나 환경보호단체 등에서 반대를 한 것은 얼핏 보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왜 이런 비판들이 나왔던 걸까요?
독일 전역에서 반대의 목소리
독일의 대표적 정통 보수언론인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지와 인터뷰를 한 대표적 환경보호 협회 분트(BUND)는 이번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조치는 자동차 제조사들에게 주는 거액의 선물이라며 반대의 뜻을 분명히 표했습니다. 전기차 활성화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반대하지 않지만 세금을 이렇게 쓰는 것에는 찬성할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무엇보다 분트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의 경우 진정한 친환경 차량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여기에도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고 했습니다. 경제계 일부에서는 더 강한 비판이 이어졌는데요. FAZ와 인터뷰를 한 Ifo (경제연구센터) 클레멘스 푸에스트 대표는 "보조금 지급은 심각한 실수다. 6억 유로의 세금은 친환경을 위한 연구 개발에 투자되는 게 맞다"라고 의견을 내기도 했습니다.
특히 그는 자동차 제조사들이 보조금 혜택을 얻게 하기 보다는 배기가스를 발생시키는 그들에게 오히려 더 많은 부담을 줘야 한다며, 세금을 이렇게 쓰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 자동차 부품업체인 보쉬의 회장 또한 보조금 지급이 당장 반짝하는 효과만 있을 뿐 본질적으로 전기차 활성화의 길이 될 수 없다며 반대의 뜻을 표했습니다.
그 외에도 저명한 또 다른 경제학자도 "정부는 전기차 연구를 지원하는 것에만 책임을 지면 된다. 배터리나 소재 개발, 그리고 인프라 구축 등이 그것이다." 라며 역시 반대 의견을 냈습니다. 이들뿐 아니라 독일의 많은 네티즌들도 대체로 보조금 지급에 반대 의견을 냈는데요. 이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대략 이렇게 정리될 수 있을 듯합니다.
지난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E골프를 둘러보고 있는 메르켈 총리 / 사진=폴크스바겐
세금을 제대로 쓰라는 국민들 목소리
독일 정부, 비판적인 국민 설득이 과제
일단 세금이 모두에게 혜택으로 돌아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제조사와 부자들의 주머니만 도와줄 것이란 점을 문제 삼았습니다. 우리나라와 비교를 하면 액수도 작을 뿐만 아니라 보조금 절반을 제조사들이 부담하고 있지만 국민 세금이 특정 집단과 계층에게 이익이 되는 정책 그 자체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반대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또 연구개발 등에 비용을 쓰거나 대중교통에 투자를 해야 하는 게 맞는다는 의견들도 굉장히 많았는데요. 사실 독일 정부 입장에서는 디젤 게이트로 인해 발생한 반디젤 정서를 활용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메르켈 총리는 2020년까지 독일에 전기차 백만 대 시대를 열겠다고 이미 공약을 한 바 있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현재 상태로는 메르켈의 공약은 1/3도 달성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이번 보조금 정책을 통해 100%는 아니더라도 공약의 절반 수준까지 전기차가 독일 내에서 돌아다닐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고, 이 정도는 돼야 메르켈도 국민과 야당으로부터 비판을 최소화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정치적 이유까지 포함된 보조금 정책에 대해 여당인 기민당 내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있는 상황이라 독일 정부는 이처럼 전 영역에 걸쳐 나타나고 있는 보조금 정책 반대 목소리를 어떻게 이해시켜 설득할지 또 다른 큰 고민을 안게 됐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독일 경제개발평가 자문 위원인 크리스토프 슈미트 씨의 발언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보조금은 전기차 판매에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2020년까지 전기차 백만 대 목표는 추가적 노력이 이뤄지지 않으면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다. "라고 FAZ와의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덧붙여 경제적 관점에서 봤을 때 이 비현실적인 목표 (메르켈의 전기차 백만 대 계획)에 매달리기 보다는 그 목표의 기한을 좀 더 미루고 그에 맞게 장기적으로 정확한 정책을 펴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조언을 했습니다.
결국 이번 전기차 보조금에 대한 독일인들의 생각은 세금을 정치적 목표 달성을 위해 일부에게 이익이 돌아가게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처음에는 보조금을 준다는데, 배기가스가 전혀 나오지 않는 전기차가 활성화되면 환경과 건강에도 좋은데 왜 환경단체까지도 이를 반대할까 싶었는데, 속내를 들여다보니 그 반대에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먼 나라의 이야기이지만 왠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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