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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벤틀리와 롤스로이스, SUV로 맞붙는다


라이벌이 있다는 건 대중의 시선을 끄는 또 다른 힘이 되기도 합니다. 벤츠에겐 BMW와 아우디가 있고, 포드에겐 GM이 있었죠. JEEP에겐 랜드로버가 있고 페라리에겐 람보르기니가 있습니다. 그리고 영국산 럭셔리 브랜드로 묘한 인연과 경쟁구도를 세기를 넘어 이어오고 있는 롤스로이스와 벤틀리가 있습니다. 이제 이 두 브랜드가 1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새로운 SUV 경쟁을 펼칠 것으로 보이는데요. 오늘은 이 두 브랜드의 묘하게 같거나 묘하게 다른 행보에 대해 한 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왼쪽=롤스로이스 엠블럼. 오른쪽=벤틀리 엠블럼. 사진=netcarshow.com


▶영국에서 태어나 독일로 넘어 오다


롤스로이스와 벤틀리는 모두 영국에서 만들어진 자동차 회사들이죠. 롤스로이스는 자동차와 비행기 엔진 등을 만드는 회사로, 벤틀리는 자동차 전문 회사로 출발합니다. 롤스로이스가 1906년 설립됐고 벤틀리가 1919년에 설립됐으니 큰 차이는 없지만 1931년 벤틀리가 롤스로이스에 흡수되면서 오랫동안 '롤스로이스-벤틀리'라는 브랜드로 역사를 이어 오게 됩니다.


1970년대 들어서며 경영난에 허덕이던 롤스로이스-벤틀리는 잠시 영국정부가 소유했다 비커스라는 회사로 넘어가게 되고, 다시 1998년 독일 BMW에 롤스로이스가, 역시 독일 브랜드인 폴크스바겐에 벤틀리가 넘어가게 됩니다. 이 과정이 다소 복잡했는데요. 그와 관련한 이야기는 기회가 되면 정리를 한 번 하도록 하겠습니다. 


롤스로이스 = 제한판매 전략 

  벤틀리 = 리미트 없는 판매 전략


롤스로이스와 벤틀리는 영국을 대표하는 럭셔리 브랜드라는 것 외에도 여러 면에서 비교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차이라면 역시 판매전략이 아닐까 합니다. 롤스로이스는 제한판매 전략을 계속해서 고수하고 있습니다. 1년에 7천대 이상 팔지 않는 게 그들의 중요한 전략이죠. 희소성 가치를 고객들에게 부여하는 것인데요. 그에 반해 벤틀리는 많이 팔면 팔수록 좋다는 주의입니다.


벤틀리 CEO 볼프강 뒤르하이머는 독일의 한 자동차전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새로운 SUV가 라인업에 들어오면 15,000대 정도를 연간 판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전체 판매량은 계속해서 늘려갈 것이라고 밝혔는데요. 수억 원짜리 자동차가 이처럼 대량 판매되는 예가 없다는 점에서 벤틀리의 공격적 전략이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하면서, 한 편으로는 이런 식으로 나가다 브랜드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닐지 조금 우려가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전략 차이에 따라 주력 차종도 다소 차이가 있죠. 롤스로이스는 팬텀이나 고스트 같은 전통적 형태의 세단이 주력 모델이고 여기에 최근 쿠페 모델인 레이스 정도가 추가되었다면 벤틀리는 컨티넨탈 GT 같은 쿠페 모델 등이 판매를 이끌고 있습니다. 트랙에서 레이스용으로 경주를 벌이는 등, 롤스로이스가 쇼퍼드리븐 타입이라면 벤틀리는 직접 운전하는 럭셔리카로 이미 자리잡았습니다. 


롤스로이스 팬텀. 사진=netcarshow.com


벤틀리 컨티넨탈 GT. 사진=netcarshow.com



벤틀리 컨버터블. 사진=netcarshow.com


롤스로이스 실내. 사진=롤스로이스 홈페이지



벤틀리 SUV = 벤테이가(Bentayga) 

  롤스로이스 SUV = 컬리넌(Cullinan)


벤틀리는 아우디 그룹에 속해 있고 롤스로이스는 BMW가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 얘기는, 두 독일 자동차 회사의 기술력이 영국풍 럭셔리 브랜드에 얼마나 잘 녹아들었는가 라는 관점에서 재미난 비교를 할 수 있다는 뜻도 됩니다. 어떻게 보면 아우디와 BMW의 대리전 양상이라고 볼 수 있겠죠. 그리고 이를 가장 잘 증명할 것이 바로 SUV 모델들이 될 것입니다. 


벤틀리 SUV 컨셉카 EXP 9F. 사진=netcarshow.com


*Q7과 X7으로부터

우선 벤틀리가 내놓게 될 SUV는 내년에 첫 선을 보이게 됩니다. 롤스로이스는 1년 후인 2017년에 내놓게 되는데, 두 브랜드 모두 첫 도전입니다. 당연히 SUV 노하우가 없기 때문에 핵심 기술은 모두 아우디와 BMW로부터 오게 되는데 벤테이가는 아우디 Q7이 기본이 되고 롤스로이스 SUV인 컬리넌은 BMW가 새롭게 내놓을 대형 SUV X7을 기본으로 하게 됩니다. 다만 실내 디자인과 소재 등은 롤스로이스와 벤틀리 특유의 수작업에 따른 특성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벤틀리는 현대적으로, 그리고 롤스로이스는 전통적인 이미지를 입을 것으로 얘기되고 있습니다. 


*이름의 유래

벤틀리 SUV의 이름은 벤테이가(Bentayga)로 정해졌죠. 스페인령인 그란 카나리아 섬에 있는 바위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도대체 왜 저 이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벤틀리 (Bentley)의 Bent라는 부분과 벤테이가의 Bent 부분이 겹치는 점도 작명에 영향을 준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 얘기는 벤틀리 CEO 볼프강 뒤르하이머가 직접 밝힌 부분으로, 가볍게 던진 농담쯤으로 보면 될 거 같습니다.


벤틀리 SUV의 이름에 비하면 롤스로이스 SUV의 이름 컬리넌(Cullinan)은 어느 정도 어울려 보인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컬리넌은 1900년 초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세계 최고 크기의 다이아몬드 이름으로 자그마치 3,100캐럿의 어마어마한 다이아몬드였다고 합니다. 컬리넌이란 이름으로 롤스로이스와 다이아몬드라는 두 럭셔리 사이에 연결고리가 생겼다 볼 수 있겠죠?


*벤테이가 디젤 有, 컬리넌 디젤 無

두 브랜드가 내놓을 SUV에서 가장 큰 차이라면 디젤의 유무가 아닐까 합니다. 일단 벤틀리의 경우 V8, 혹은 V6 디젤 엔진이 올라가게 됩니다. 그 전에 W12 가솔린 모델과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엔진도 나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가격은 가장 상위급이 3억 후반대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에 비해 롤스로이스는 V12 가솔린 엔진과 V8 하이브리드 정도로 엔진이 장착될 것이라고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체차이퉁이 전했습니다. 하지만 디젤은 계획에 없다고 했는데요. 계획이야 언제든 시장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단정하긴 어렵겠지만 확실히 고급스러움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어떤 의지가 읽혀지는 행보가 아닌가 싶습니다. 일단 가격은 3억 중후반 대에서 형성될 듯 보이는데 이렇게 되면 비교적 가격 차이가 적기 때문에 직접적인 경쟁을 시장에서 펼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SUV라는 대세 흐름을 벤틀리와 롤스로이스에 적용한 모회사들의 판단이 과연 옳았는지는 벤틀리가 내년에 내놓을 벤테이가를 시작으로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일각의 우려와는 달리 벌써 돈 많은 고객들이 군침을 삼키고 있다는 소식들이 전해지고 있어 벤틀리와 롤스로이스 관계자들에게 기대를 안겨주고 있는데요. 


과연 이 자존심 높은 럭셔리 브랜드가 SUV 시장에서 기대대로 모두 좋은 결과를 얻게 될지, 아니면 둘 중 하나만 승리의 미소를 짓게 될지, 그것도 아니면 둘 다 팬들의 외면을 받게 될지, 100년을 이어오고 있는 묘한 인연이 만들 새 경쟁구도를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겠습니다.


롤스로이스의 드롭헤드(컨버터블). 사진=롤스로이스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