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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자동차 싫다던 그, 자동차 왕국을 세우다

 

며칠 전이죠? 제너럴 모터스(GM)가 가지고 있는 브랜드 중 하나인 쉐보레를 유럽에서 2016년까지 완전히 철수시키겠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독일에서도 제법 비중있게 이 문제가 기사화되기도 했는데요. 쉐보레의 유럽시장 철수에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곳은 유럽 수출용 쉐보레의 90% 이상을 차지했던 한국GM이었습니다. 한국GM이 생산하는 자동차 전체 물량의 20%가 이 결정으로 사라지게 된 것이죠. 

 

당장 제 2주주인 산업은행이 난리가 났습니다. 이 발표로 인해 한국GM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 봤기 때문인데요. 그럼 왜 쉐보레를 유럽에서 빼느냐? 논리는 간단합니다. 판매부진에 따른 실적악화라는 거죠. 마케팅 비용 등 들어갈 돈은 점점 더 많아지는데 차는 안 팔리고, 그러니 이럴 바엔 자회사인 독일 오펠과 영국 복스홀에만 집중하고 쉐보레를 빼버려야겠다. 뭐 이렇게 마음을 먹은 모양이에요.

 

 

GM의 결정, 모든 건 맞물려 있다?

오펠이 작년에 휘청거리고 공장이 몇 개가 문을 닫니 마니, 오펠 브랜드 자체의 생존까지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위기였는데, 결국은 그 오펠을 살리고 쉐보레를 빼버리기로 한 것입니다. 오펠에 집중하기로 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봐야 할 거 같습니다.

 

일단 오펠 브랜드가 유럽에선 더 유명하죠. 당연히 판매량도 많습니다. 또 하나는 메르켈의 무언의 압력이 작용을 한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깊은 속사정이야 모르겠지만 '오펠 이대로 망하게 놔두면 가만 안둘껴!'라고 독일 정부가 채찍질도 하고 뭔가 당근도 주고 그랬던 것이 아닌가 추측을 해봅니다. 어쨌든 오펠은 상당히 피해를 최소화하고 투자액도 기대 이상의 액수로 정상화에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그리고 나서 공교롭게도 한국GM이 거의 전량을 담당하는 쉐보레의 유럽 모델들을 끊어버리기로 결정이 난 것이죠. 오펠은 인지도 면에서 쉐보레 보다 훨씬 높지만 판매하면서 적자가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유럽에서 얼마나 쉐보레가 죽을 쒔는지 모르겠지만 한국GM의 경우 오히려 감사보고서를 뜯어 보면 흑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나 있는데요. (프레시안에 관련한 기사가 있음)

 

유럽에서 쉐보레가 안 팔리고 수출조차 포기할 정도의 어려움이 있다면 그 여파가 한국GM에도 와야 하는데 그리 큰 영향을 받은 거 같진 않더군요. 물론 복잡한 기업 내부의 사정을 겉만 보고 단언하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에 조심스럽긴 하지만, 묘하게 상황이 돌아가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지난 5월 박근혜 대통령 방미 때를 기억하시나요?

 

 

통상임금문제는 곧 구조조정의 밑밥?

대니얼 애커슨 GM 회장은 이미 2월에 5년 간 한국GM에 우리 돈으로 8조 2천억이라는 자금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리고 박대통령 방미 때 이를 다시 확인했지만 '엔저 문제와 상여금을 포함한 통상임금 문제가 해결이 되면...'이라는 조건을 하나 달았었죠. 결국 서울고등법원은 상여금과 가족수당도 통상적인 임금에 포함이 된다는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GM 회장의 요구가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리게 된 셈이고, 공교롭게도 이후 쉐보레 유럽 철수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오래 전부터 GM이 한국GM에 큰 뜻이 없고 생산기지화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돌았습니다. 신차를 개발하고 생산하는 종합적인 역할이 아니라 그냥 조립 판매 정도로 축소시킨 거죠. 생산성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도 계속 나오면서 남북 대치상황이 갖는 리스크를 또 하나의 명분으로 중국으로 완전히 옮겨 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들이 계속 이어져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모든 게 다 구조조정을 하기 위한 것이라는 얘기들이 언론을 통해 나오고 있습니다.

 

자, 상황이 이렇게 되니까 예전부터 GM에 대해 갖고 있던 불안감, 그리고 경영 마인드에 대한 불신은 더 커졌습니다. 이상하게 미운짓만 하는 기업으로 보이고, 또 그런 것만 기억이 되더군요. 토요타, VW 등과 판매량 1위 자리를 놓고 싸우는 거대 기업 GM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그러다 한 인물에 저의 생각이 고정됐습니다. 바로 GM의 창업자 윌리암 듀란트였습니다.

 

윌리엄 듀란트. 사진=위키피디아

 

1900년 대의 시작과 함께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은 프랑스와 영국, 그리고 독일 등의 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가게 되죠. 바야흐로 자동차의 시대가 미국에서 핵폭발하듯 펼쳐지게 된 것입니다. 포드의 대량생산 시스템과 알프레드 슬론이 주도한 GM이 이런 역사의 주인공들이었습니다.

 

 

 

'자동차 빌리' 거대 왕국의 초석을 다지다

포드자동차를 세운 헨리 포드가 기계를 만질 줄 아는 사람이었다면 GM을 만든 윌리엄 듀란트는 어렸을 때부터 장사에 탁월한 감각을 갖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윌리엄 듀란트는 부자집 아들내미였는데요. 할아버지 제재소 일을 돕기 위해 고등학교를 중퇴합니다. 그런 윌리엄 듀란트는 2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우연히 타본 마차에 매료돼 은행에서 돈을 빌려 마차 만들던 곳을 인수해버립니다. 그가 마차 제작소를 인수하던 해는 독일인 벤츠와 다임러가 자동차라는 것을 특허등록한 해이기도 했습니다.

 

윌리엄 듀란트는 마차 제작을 통해 충분히 쓰고도 남을 만큼의 부를 축적했습니다. 그런 그의 눈에 자동차라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죠. 근데 듀란트의 눈엔 이 자동차라는 게 너무 위험하고 거칠고 시끄러운 물건으로만 보였습니다. 실제로 그 당시 자동차는 굉장히 비판을 많이 받는 상황이었죠.

 

사업도 잘되고 있는 그에게 이런 위험한 자동차는 관심 밖의 물건이었습니다. 자신의 딸에게 조차 자동차를 절대 타지 말라고 당부를 할 정도로 적대시했죠. 그런데 역시 사업가의 촉이라는 건 무시를 못하나 봅니다. 1900년부터 사람들이 자동차의 안전에 관련해 정부에 다양한 요구를 하기 시작합니다. 윌리엄 듀란트는 사람들이 자동차에 열광하는 모습, 그리고 안전에 관련한 다양한 요구의 목소리다 쏟아지는 것을 보면서 앞으로 자동차가 대세가 될 것이라는 걸 직감하게 됩니다. 그토록 자동차를 싫어하던 사람이 단번에 자동차에 올인을 하게 됩니다.

 

그는 뷰익이라는 자동차 회사를 발견합니다. 차는 잘 만드는데 데이빗 뷰익은 회사 운영엔 영 젬병이었습니다. 회사 상태가 엉망진창이었죠. 여기에 듀란트는 투자를 하게 되고 자동차 판매에서 진가를 발휘하면 '자동차 빌리'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는데요. 뷰익이 자기 지분 팔고 나가 헛튼 짓하다 망해 먹은 것과는 달리 듀란트는 뷰익을 정상적인 회사로 되돌려 놓게 됩니다. 이 때 사업 파트너였던 사무엘 맥 로린이란 캐나다인이 듀란트에게 요즘 표현으로 펌프질을 했던 모양이에요. 윌리엄 듀란트는 큰 밑그림을 그리고 뷰익의 지주회사인 GM을 미시간 플린트란 곳에 세우게 됩니다.

 

제너럴 모터스 본사. 사진=위키피디아

1908년 윌리엄 듀란트는 GM이라는 지주회사를 설립하고 그 안에 자동차 회사들과 부품회사들을 하나씩 하나씩 인수해 들여놓게 됩니다. 뷰익, 올즈모빌, 캐딜락, 오토모빌 등 자동차회사 13개 부품회사 10개를 싹 사들이게 되죠. 그 당시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사업형태를 윌리엄 듀란트는 시도한 것인데요. 그런데 너무 욕심이, 의욕이 과했던 것일까요? 2년 만에 자신이 세운 회사의 오너자리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은행에서 마구잡이로 차입했던 돈이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이죠. 은행 컨소시엄에 의해 쫓겨나듯 회사를 떠났습니다.

 

 

 

재기의 파트너는 '쉐보레'

 

레이서와 엔지니어로 스타였던 루이스 쉐보레. 사진=위키피디아

 

뷰익의 레이싱팀에 몸담고 있던 루이스 쉐보레는 스위스에서 태어난 가난한 이민자였습니다. 하지만 탁월한 자동차 운전 실력 덕분에 그는 미국에서 레이서로 스타의 자리에 오르게 되죠. 윌리엄 듀란트에 눈에 그런 쉐보레는 자신의 재기에 가장 적합한 대상이었던 모양입니다. 33세의 루이스 쉐보레는 본인의 이름을 딴 '쉐보레 자동차'의 공동 경영자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물론 듀란트에 의해서.

 

몇몇의 투자자와 함께한 듀란트와 쉐보레는 고급 자동차인 '클래식 6'를 내놓게 되고 이것이 좋은 반응을 시장에서 얻게 됩니다. 그런데 윌리엄 듀란트는 루이스 쉐보레와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무겁고 비싸고 큰 엔진의 자동차가 아니라 가볍고 작은 엔진을 쓰는 보다 저렴한 차를 만들기를 바랬죠. 엔지니어의 입장에서 차를 만들기 바랬던 쉐보레와 사업가의 마인드였던 듀란트가 충돌을 하게 됩니다.

 

결국 듀란트에 의해 쉐보레는 직책이 강등당하게 되고 이에 충격을 받은 쉐보레는 회사를 박차고 나와 자동차 회사를 따로 차리게 됩니다. 하지만 쉐보레의 뜻대로 회사는 운영되지 못한 채 무너져 내리게 되죠. 말년엔 자신의 이름을 딴 쉐보레 자동차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다 쓸쓸하고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쉐보레가 그렇게 비참한 길을 갈 때 윌리엄 듀란트는 차곡차곡 GM의 주식을 사모아 드디어 6년 만인 1916년 GM 사장의 자리로 복귀하게 됩니다. 물론 쉐보레는 GM에 합병되게 되죠. 하지만 그의 복귀 이후 GM 전체의 매출은 떨어지고 주식도 덩달아 추락합니다. 회사는 어려운 상황인데도 그는 개인 부채를 갚기 위해 상상 이상의 돈을 가져다 쓰게 되고, 결국 1920년 두 번째 축출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자리는 알프레드 슬론이란 전문경영인에게 넘어갑니다. 

 

 

망하고 또 망하고...

하지만 듀란트는 이번에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듀란트 자동차' 회사를 설립하고 저가형 모델을 출시하죠. 하지만 결국 오래 버티지 못하고 회사는 문을 닫게 됩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자동차가 아닌 볼링장 체인 사업에 손을 대지만 이것 역시 시원찮은 성과를 내게 되고 결국 그는 전 재산이 250불이라며 파산신청을 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그는 GM이 주는 연금 형식의 돈으로 살다 1947년 세상을 떠납니다.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탁월한 사업가적 감각을 가지고 있던 듀란트였지만 통제되지 않은 그의 야망은 '자동차 빌리'를 실패하게 만들었습니다. 만약 윌리엄 듀란트가 엔지니어였다면, 아니면 엔지니어적인 마인드가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GM의 역사는 어땠을까 상상을 해보게 됩니다. 

 

지금 잘나가는 자동차 회사들 상당수는 창업자들이 모두 자동차 기술자들이었죠. 그에 비해 GM을 세운 윌리엄 듀란트는 많이 팔고 많은 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만 가득찼던 세일즈맨이었습니다. 그의 야망의 에너지가 조금만 자동차 그 자체에 대한 열정으로 분할되었어도 GM의 역사, 윌리엄 듀란트의 역사는 바뀌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창업자 빌리 듀란트를 보면서 밥 루츠 전 GM 부회장이 말한 재무주의자들이 판쳤던 (빈카운터스) GM의 모습이 어쩌면 태생적인 것은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요즘 벌어지는 쉐보레 관련한 일련의 소식들을 보면서 그 흐름이 지금까지도 계속해 이어지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과연 GM은 어떤 회사인가요? 그리고 한국GM의 운명은 또 어떻게 될까요? 계속되는 GM 쉐보레 관련한 우울한 소식들을 위로 윌리엄 듀란트의 얼굴이 겹쳐 보이는 건 또 왜일까요? 묘하게도 듀란트를 보면, 저는 GM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