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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포르쉐 타이칸, 911을 추월하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걸 느끼냐고 누군가 제게 묻는다면 요즘 많이 느낀다고 답을 해야 할 거 같습니다. 엔진 자동차가 전기차와 공존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부터도 낯선데, 더 나아가 아예 전기차가 주도할 그리 머지않은 미래를 위해 엔진 자동차가 서서히 퇴장을 준비하고 있다는 게 심경을 꽤 복잡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저처럼 전통적(어쩌다 이런 표현을 쓰게 되었는지)인 자동차, 그러니까 엔진이 들어간 자동차에 매료돼 오랜 시간을 보내온 이에게 뭔가 조금 슬픈(?), 반대로 보면 상당히 새로운 의미가 되는 뉴스 하나가 전해졌습니다. 지난 10월 중순이었는데요. 독일 시사지 슈피겔은 포르쉐의 전기차 타이칸이 판매량에서 포르쉐 911을 처음으로 추월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전기 스포츠카 타이칸 / 사진=포르쉐 

 

'무슨 소리지? 911 잘 나가고 있는데 타이칸이 911 판매량을 넘어섰다?' 나온 지 2년 정도밖에 안 된 전기 스포츠카가 스포츠카의 대명사이자 세계 곳곳 골수팬 가득한 911을 판매량에서 넘어서다니요. 궁금해서 1월부터 9월까지 독일의 신차 판매량을 우선 확인해 봤습니다.

 

2021 1~9월 포르쉐 주요 모델 판매량 (자료=독일자동차청)

포르쉐 911 : 6,174

포르쉐 카이엔 : 3,188

포르쉐 마칸 : 3,558

포르쉐 타이칸 : 3,177

 

일단, 독일에서는 압도적으로 911의 판매량이 많았습니다. 카이엔 등장, 박스터나 카이맨 등장, 여기에 마칸까지 나오면서 911이 판매량에서 크게 밀리며 그 위상에 걸맞지 않은 실적을 보였던 게 엊그제 같은데, 적어도 독일에서는 911이 다시 판매량을 끌어올리며 자존심을 지켰습니다. 독일인들의 911 사랑은 누가 와서 뜯어말려도 소용이 없을 정도이니 이해가 가는 결과라 해야겠네요. 그렇다면 유럽 전체로 보면 어떨까요? 올 상반기 성적을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2021년 상반기 포르쉐 주요 모델 유럽 판매량 (자료=카세일즈베이스닷컴)

포르쉐 911 : 8,684 (2020 : 7,049)

포르쉐 718 : 3,194 (2020 : 2,999)

포르쉐 카이엔 : 8,513 (2020 : 8,470)

포르쉐 마칸 : 7,413 (2020 : 6,925)

포르쉐 타이칸 : 6,991 (2020 : 3,231)

911 / 사진=포르쉐

 

유럽 시장 전체로 넓혀보니 차이가 제법 줄기는 했으나 여전히 911이 판매량에서 1위 자리를 지켰습니다. 독일 내수 시장의 판매량에 힘입은 순위 수성이라 해야겠죠? 그런데 눈에 띄는 건 타이칸 판매량 변화입니다. 본격 출시된 2020년에 비해 두 배 이상 팔린 겁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세계 시장 전체로 보면 더 컸습니다.

 

2021 1~9월 세계 시장 포르쉐 판매량 (자료=포르쉐)

포르쉐 카이엔 : 62,451

포르쉐 마칸 : 61,944

포르쉐 타이칸 : 28,640

포르쉐 911 : 27,972

포르쉐 파나메라 : 20,275

포르쉐 718 (박스터 + 카이맨) : 15,916

 

대륙별 1~9월 판매량 (자료=포르쉐)

북미 : 63,025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 97,841 (중국 : 69,789)

유럽 : 56,332

 

세계 시장 판매량은 유럽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릅니다. SUV 카이엔과 마칸이 압도적이네요. 특히 타이칸이 출시 2년 만에 911을 밀어냈다는 게 가장 큰 변화라 할 수 있겠는데요. 코로나 팬데믹이 전기차 수요를 끌어 올렸고, 이 영향을 아예 안 받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포르쉐 정도의 고가 스포츠카 브랜드는 그런 외부 변화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타이칸에 대한 호기심? 또는 기대와 만족감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됩니다.

잘 나가고 있는 타이칸 / 사진=포르쉐 

포르쉐가 9월까지 글로벌 시장에서 팔아치운 자동차가 217,000대가 넘습니다. 따라서 전체의 10% 이상을 타이칸이 담당했다고 볼 수 있을 텐데요. 특히 북미와 아시아 등에서 포르쉐 판매량이 상대적으로 더 늘었습니다. 이런 결과는 유럽의 단단한 911 아성이 북미나 아시아 시장에서의 더 많은 타이칸 구입으로 깨졌다고 추측을 가능하게 합니다.

 

, 단순하게 판매량만으로 시대의 흐름, 그 변화를 이야기한다는 게 조금 무리는 있죠. 하지만 수십 년 독일 스포츠카의 상징으로 자리하고 있는 911 판매량을 신생 전기차가 뛰어넘은 것은 앞으로 우리 개인 이동성이 어떤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인지를 미리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특히 마니아적인 성격이 강한 스포츠카 브랜드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더 임팩트가 크지 않나 싶습니다.

911 / 사진 =포르쉐

포르쉐는 2030년까지 딱 한 개의 모델을 제외하고 모두 전기차로 대체될 예정입니다. 환경을, 미래를 생각한다면 이 변화는 막을 수 없습니다. 변화의 과정에서 전기차의 비판받는 요소들도 하나씩 개선되거나 제거되겠죠. 그렇게 시나브로 전기차는 우리 도로를 가득 채우게 될 겁니다.

 

그나마 반가운 소식(?)이라면 포르쉐가 남기겠다고 한 하나의 모델이 911이라는 겁니다. 브랜드의 정체성 그 자체이니 쉽게 911을 포기하긴 어려울 겁니다. 결국 911의 존재, 911과 박서 엔진의 조합을 회사는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붙잡고 가겠다는 얘기인데 과연 얼마나 버틸지, 어디까지 끌고 갈 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론 911의 생존기가 좀 더 오래도록 전해졌으면 합니다.

클래스는 영원하...라 / 사진=포르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