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가 2021년부터 판매에 들어갈 전기차 iX를 공개했습니다. 프로토타입이기는 하지만 틀에서 큰 변화는 없을 듯합니다. BMW는 비교적 일찍 i3와 같은 모델을 통해 순수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었죠. 하지만 본격적인 전기차 시장을 대비한다는 느낌은 덜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내놓은 iX는 다릅니다. 미래 이동성을 단단히 준비했고, 그 끝에 나온 모델입니다.
iX /사진=BMW
전장이 거의 5m에 이른다고 하니 이 정도면 X5 수준의 모델이라 보면 될 거 같습니다. 독일의 한 전문지는 1억 초반에 판매가가 결정되지 않겠냐고 예상했습니다. 두꺼운 팬덤층의 브랜드이다 보니 기다리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iX에 대한 기대가 실망으로 변한 느낌입니다.
iX / 사진=BMW
차의 성능이나 고급감, 또 유럽 신연비측정법(WLTP) 기준으로 완충 후 최대 600km를 달릴 수 있을 것이라는 배터리 능력에 대해 실망을 나타낸 이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고개를 가로젓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디자인입니다. 낯선 후면, i3를 떠올리는 옆 모습 등은 전면부 디자인이 주는 뜨악함에 가려졌죠. 디자인에 대한 어색함은 저만 그럴까요? 아뇨. ‘베엠붸’를 사랑하는 독일인들 반응도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독일의 한 자동차 전문지 유튜브 채널에 달린 댓글 중 좋아요가 많았던 몇 개만 보겠습니다.
Claudio de Lembach라는 닉네임의 네티즌은 ‘장난 아니라 진지하게, iX 앞모습은 마치 언짢은 비버 같아. (Jetzt mal im Ernst. Der iX sieht von vorne aus wie ein grantiger Biber.)’라고 했습니다. 거기에 달린 답글은 더 심해서 ‘벌거숭이두더지쥐 같네 (Wie ein Nacktmul)’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비버는 저스틴 비버가 아니에요. (실제로 독일어 Biber로 검색하면 이 형님이 검색됨) 동물 비버(Beaver), 그 비버입니다. 그런데 비버를 언급한 사람은 저 네티즌만이 아닌, 꽤 여럿이었습니다. iX의 거대한 키드니 그릴을 보고 자연스럽게(?) 비버의 앞니를 떠올린 것인데요. (참고로 답글에 달린 벌거숭이두더지쥐가 궁금한 분들은 직접 검색해보시기 바랍니다. 차마 사진 가져오기가…)
비버 / 사진=unsplash
비버는 귀엽기라도 하지 / 픽사베이
또 Pat4best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못생겼어! (unfassbar hässlich!)’라고 했고, Düül Crimson이라는 닉네임의 네티즌은 ‘고맙다 BMW. 늬들 차를 사지 않는 걸 쉽게 만들었어. (Danke BMW ihr macht es mir verdammt leicht eure Autos nicht zu kaufen!)’라고 했습니다. 재앙(Katastrophe)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한 걸 보면 보통 디자인에 실망한 게 아닌 듯합니다. ‘아니, 그냥 아냐 (Nein einfach nein)’, ‘BMW 지금 뭐 한 거냐?’ 등의 탄식에 가까운 반응들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디자이너는 부끄러워해야 한다. (Der Designer sollte sich schämen)’는 의견도 있었습니다만, 사실 이게 디자이너만의 문제는 아니죠. 결국 결정은 최고 경영진들이 하는 것이니까요. 키드니 그릴은 BMW의 상징 그 자체입니다. 이 키드니 그릴이 없는 BMW를 상상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브랜드의 정체성이고, 이를 어떻게 구현하는가에 따라 BMW의 디자인은 박수받고 욕먹었습니다.
1933년 첫선을 보인 303 전면부의 키드니 그릴 / 사진=BMW
303 등장 전까지 BMW 디자인은 이렇듯 평범(?)했다 / 사진=이완
역시 30년대 등장한 명작 중 하나인 328 / 사진=이완
1933년 303 모델은 키드니 그릴이 최초 적용된 양산 모델이었습니다. 둘로 나뉜 거대한 그릴은 전체적인 차체 흐름과 잘 어울렸습니다. 1950년대엔 알브레히트 괴르츠가 디자인한 아름다운 503과 507 컨버터블에 변형된 세로형과 가로형 그릴이 적용되기도 했죠.
아름다운 망작 507 / 사진=BMW
이후 1960년대 들어서며 ‘뉴 클래스’ 시대를 선언한 BMW는 3시리즈의 시작인 1500과 1600, 1800 등을 통해 다시 한번 멋진 전면부 디자인이 탄생합니다. (왜 이런 훌륭한 유산을 놔두고) M1이나 MZ1과 같은 모델에는 또 그에 맞게 아주 작아지기도 했습니다.
정말 예쁜 1600의 전면부 디자인 / 사진=이완
2002 터보 너무 좋다~ / 사진=BMW
앤디 워홀의 아트카 M1. M1의 그릴은 검지와 중지를 넣으면 꽉 낄 듯 작았다 / 사진=BMW
1990년대 시작과 함께 또 한 번의 중요한 그릴 변화가 이뤄집니다. 3시리즈 등에 우리에게 익숙한 가로형 키드니 그릴이 적용됐고, 이 가로형은 지금까지 30년 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90년이라는 긴 변주 과정에서도 키드니 그릴은 생존했고, 또한 디자인 균형을 유지하려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런 흐름을 깨고 7시리즈나 X7과 같은 플래그십 모델들에 대형 그릴이 적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가로형으로 변화를 맞은 키드니 그릴 / 사진=이완
크다! X7 / 사진=이완
아드리안 반 후이동크는 이 선택이 7시리즈의 가장 큰 시장인 중국을 의식한 것이라고 솔직하게 밝힌 바 있는데요. 하위 모델과 구분 짓기 위한 차별화 결과라는 게 그의 설명이었지만 옳은 선택이었는지 다시 묻고 싶습니다. 이렇게 삐걱 거린 그릴 디자인은 신형 4시리즈에서 또 큰 변화를 맞습니다. 단순히 커지기만 한 게 아닌, 균형미 사라진 과한 세로형 그릴로 바뀐 것입니다.
신형 4시리즈 / 사진=BMW
당시 디자인 책임자였던 도마고 듀케는 모델별로 그릴을 달리 가져가겠다고 했습니다. 키드니 그릴이라는 기본은 유지한 채 모델의 특성을 살리는 쪽으로 그릴을 맞춰가겠다고 밝힌 것입니다. 그 발언 후에 나온 게 iX입니다. 7시리즈부터 보이던 ‘과잉’이 결국 폭발한 것입니다.
iX / 사진=BMW
어디까지 가려는 걸까요? BMW 디자인 말입니다. 디자인만 좋다고 차가 좋은 건 아니죠. 반대로 좋은 차 만들어 놓고 디자인에서 맥 빠지게 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하루빨리 BMW가 정신 차려 아름다웠던 키드니 그릴 시대로 되돌아갔으면 합니다. 여전히 BMW를 아끼는 구 오너의 순수한 바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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