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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잘못된 운전자를 본 당신의 선택은?


지난 토요일에 겪은 일입니다. 급히 살 게 있어 집 근처의 작은 쇼핑센터에 갔습니다. 크리스마스 전이라 그런지 쇼핑센터를 찾는 자동차들의 행렬이 여간 긴 것이 아니더군요. 보통 들어가는 라인이 둘인데 이 날은 하나로 합쳐졌고 그래서 주차장 입구부터 차들이 엉킨 상태였죠. 차단기 앞 다 왔는데 왼쪽으로 차 한 대가 붙기에 양보를 해줬습니다.


문제는 주차장 안에서 차 댈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뱅뱅 몇 바퀴를 돌아야겠다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까 양보했던 차량의 젊은 남녀 커플이 저를 알아 보더군요. 남자분이 손가락으로 공간 하나가 있다고 알려줬고 저는 반가운 마음에 바로 그 쪽으로 차를 가져다 댔습니다. 


차에서 내려 서로 고맙다며 눈인사를 건네는데 옆에 있던 여성분이 조용히 그러더군요. " 두 분 모두 지금 잘못한 거 아세요? " 슬쩍 웃으며 그녀가 가리킨 바닥엔 진입이 금지된, 그러니까 일방통행 화살표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반대로 진입을 한 것이죠. 아차싶었습니다.


남자 친구로 보이던 그는 다른 차들을 방해한 것도 아니고 통로 옆 주차공간이 비어 주차를 한 거니 그런 정도는 괜찮은 거 아니냐라고 했지만 여자는 꽤나 단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습니다. '그래도 그건 아니지. 다른 사람들도 너처럼 말하게 될 거고, 그럼 이 화살표는 아무 가치도 없게 되는 거야.' 순간 마주하고 있던 제 얼굴은 부끄러움에 상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여자는 즐겁게 쇼핑하라는 인사를 건네고는 자리를 떴습니다. 둘은 가면서도 뭐라뭐라 하더니 이내 남자가 미안하다는 듯 제스쳐를 취하며 여자친구에게 가볍게 키스를 건냈습니다. 일종의 용서를 구하는 행위였다고나 할까요? 환하게 웃는 그녀의 옆 모습을 보며 저는 뻘쭘한 상태로 쇼핑센터로 들어갔고, 그렇게 하루를 찜찜하게 보내야 했습니다. 의도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약속을 지키지 않은 운전자인 것은 분명했으니까요.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사진입니다



▶피곤한 사회일까 건강한 사회일까?


독일에서 운전을 하다 보면 사실 어렵지 않게 만나게 되는 경우입니다. 꼭 운전에 국한된 건 아니지만 대체로 자동차로 인해 이런 경험들을 하게 되는데요. 예전에 아내와 함게 겪었던 일을 말씀 드린 적 있었는데 못 읽은 분들을 위해 짧게 요약을 해보겠습니다. 


달리는 교통법규라고 별명을 지어준 아내가 어쩌다가 마트 입구로 우회전해 들어가며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았고, 그걸 지켜보고 있던 독일 아주머니 한 분이 차에서 내린 아내에게 다가왔습니다. 아주 따뜻한 표정으로 그러더군요. "다음부터는 깜빡이를 켜주세요. 사람들과 차가 뒤섞인 곳이니까 더 조심하고 정확하게 운전해야 한답니다." 그러면서 기분 나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듣지 않아 줬음 좋겠다는 이야기를 미소와 함께 덧붙였습니다. 


우린 둘 다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고, 오히려 그 상냥한 충고에 고맙다는 인사를 건냈습니다. 당연히 그 이후로는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마트 입구에선 방향지시등 켜는 걸 잊지 않게 됐죠. 이런 경우도 있었습니다. 잠깐 차를 정차시키고 있는데 누가 창문을 툭툭 치더군요. 독일 할아버지 한 분이 "횡단보도 위에 이렇게 차를 대놓으면 안되오." 라고 노려보는 표정으로 한 마디 하고는 쌩하니 가시더군요.


횡단보도 끝 쪽에 살짝 물린 정도였는데 속된 표현으로 '얄짤'이 없더군요. 좀 심한 거 아닌가 싶어 약간 기분이 상하긴 했지만 틀린 얘기도 아니었고, 결국 이후부터는 횡단보도 근처에서는 절대로 차를 세우지 않게 습관이 들었습니다. 또 그런 경우 만나, 그런 할아버지의 무서운 표정을 보기는 싫었거든요.



이렇듯 독일이란 나라에서는 끊임없는 잔소리와 충고들이 언제고 날아옵니다. 대체로 나이가 드신 분들이 이런 윤리선생님의 역할을 담당하지만 젊은이들 중에서도 가끔은 볼 수 있습니다. 사회 자체의 분위기가 이러니 특별히 어색할 것도, 이로 인해 큰 다툼이 일어날 것도 없습니다. 그냥 그들의 문화인 것이니까요.


토요일 그 처자의 이야기를 듣고 집에 와 저는 우리나라에서 운전할 때의 기억들이 끄집어 내봤습니다. 내가 실수를 했을 때, 혹은 내가 다른 운전자의 잘못된 운전을 봤을 때,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 곰곰히 되씹어 봤지만 선뜻 풀어놓을 만한 에피소드는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고작 있어 봐야 얌체 끼어들기 하는 운전자에게 길을 안 내주거나, 깜빡이를 켰음에도 자리를 비켜주지 않던 운전자에게 몇 마디 떠들고 마는 게 전부였던 것 같습니다. 횡단보도를 물고 신호대기하던 차를 눈썹에 힘주고 쳐다보던 수준이었다고나 할까요? 그러고 보니 화풀이 수준의 소심한 대응만 있었지 적극적으로 잘못에 대해 이야기를 건넨 적이 없었습니다. 아, 한 가지! 얼마 전 한국을 찾았을 때의 일이 기억나는군요.


아파트 단지 입구가 약간 내리막으로 되어 있는 곳이었죠. 대로로 진입하기 위해선 좌회전 신호를 받아야 했기 때문에 차량들 여러 대가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25인승 버스 한 대가 우회전해 아파트 입구로 들어오려 했습니다. 그런데 입구 쪽 우측 차선 옆으로 세워져 있는 승합차 때문에 회전각이 좁아져 학원버스가 약간 주저하는 게 보였습니다. 어렵게 아파트로 진입하긴 했지만 승합차 운전자는 통화를 하느라 바쁜지 상황을 전혀 모르는 눈치였죠.


어머니와 함께 걸어가다 그 광경을 본 저는 승합차 쪽으로 향했습니다. 조심스럽게 창문을 두드렸고 그 분에게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차들이 들어오는 입구인데 계셔서 다른 차들이 애를 먹고 있네요. 조금만 안 쪽으로 들어가 주면 서로 안전할 거 같습니다." 혹이라도 기분 나쁠까 봐 조심스럽고 최대한 예의를 갖춰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통화를 끝낸 승합차 운전자께서 "미안합니다. 급하게 전화를 하게 돼서요." 그리곤 바로 차를 몰고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지켜 보던 어머니가 한 마디 하시더군요. "괜히 뭐라 훈수하다 시비라도 붙으면 어쩌려고 그래." "그래서 웃으면서 좋게 말했어요. 저 분도 잘 받아주시네요 뭐." 대답은 드렸지만 문득 '내가 지금 낯선 행동을 한 걸까?' ' 혹시 꼰대질을 한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자 그 순간이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저의 생각은 다르지 않습니다. 서로의 잘못된 운전에 대해 충고를 아끼는 것 보다 이처럼 솔직하게(하지만 친절하게, 화난 얼굴로 창문 두드려 목소리 높이는 순간 말짱 도루묵) 이야기를 건넬 수 있어야 더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말 잘못 건냈다 뭔 봉변을 당할지도 모르는데...라는 항변은 일종의 잘못된 방어기제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충분히 적대적이지 않게, 얼마든지 서로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당장은 어색하고 '니가 뭔데?' 라는 시선에 불편할 수 있겠지만, 이런 행동 하나하나가 모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운전을 바꿀 수 있는지, 그렇게 사회가 더 안전하고 건강해질 수 있는지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좀 더 이런 일에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어쩌면 이런 작은 시도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요? 궁금합니다. 잘못된 운전자를 보았을 때, 당신은 어떻게 행동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