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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자동차 역사에서 증기차는 왜 사라졌을까?

세계최초로 자동차를 만든 사람은? : 칼 벤츠. 그럼 그가 최초로 자동차를 만든 때는? : 1886. 그 자동차의 이름은? : 페이턴트 모토바겐. 만약 퀴즈쇼 결승에 이런 문제가 나왔다고 치죠. 그리고 위와 같은 답을 했다고 하죠. 그러면 정답으로 인정될 겁니다. 하지만 따지고 들자고 하면 이게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거 아세요이 정답에 대한 반론은 지극히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서 나오는 것이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그렇다면 칼 벤츠가 자동차의 아버지가 아니란 얘긴가요


칼 벤츠와 고트립 다임러. 우리는 이 두 명의 독일인 이름을 자동차 역사책 맨 첫 장에서 만나게 됩니다. 왜냐하면 자동차를 만든 최초의 인물들로 알려졌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그건 절반만 사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그 나머지 절반의 이야기를 간단히 해보겠습니다. 과연 1886년이 자동차의 첫 시작점이었는지, 또 이 내연기관자동차 외엔 다른 건 없었는지 등에 대해서 말이죠.

 

 

그런데 지금부터 함께 할 이야기는 결코 새로운 사실이 아닙니다. 자동차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들은 익히 알고 있을 내용이죠. 하지만 우리와 같은 보통의 자동차팬들에겐 새로운 이야기로 비춰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만큼 자동차 역사에 대해 우린 의외로 모르는 부분들이 많기 때문일 텐데요. 어쩌면 이 내용을 통해 뭔가 새로운 관점이 자리할 수도 있지 않겠나 조금은 기대해 봅니다.

  

 

 

4행정 가솔린엔진의 탄생

 

1879 12 31. 칼 벤츠는 오토라는 기술자가 고안한 엔진을 참고해 독자적인 가솔린엔진 개발에 성공합니다. 0.75마력 1기통 2행정의 엔진이 태어난 것이죠. 그리고 1885당시 유행하던 세발 자전거를 변형해 자동차를 만든 칼 벤츠는 이듬해인 1886 1 29,  ' 4행정 가솔린엔진으로 움직이는 자동차'라는 개념으로 특허를 얻게 됩니다. 이게 역사의 시작점이라 흔히 말하고 있습니다.

 

 

한편 니콜라스 오토(위에 언급된 내연기관의 아버지) 밑에서 일하던 고트립 다임러와 동료 빌헬름 마이바흐는 1882년에 독립해 함께 엔진 연구에 몰두하게 되는데요. 결국 오토의 것 보다 힘이 강하고 가벼운 엔진을 4바퀴 마차에 장착하게 됩니다. 그리고 칼 벤츠와 같은 해인 1886년 특허등록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의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이죠

 

Patent Motorwagen

 

 

 

또 다른 자동차들

 

하지만 사람의 힘(자전거)이나 말(마차)의 힘을 빌려 달리는 개인용 이동수단 외, 그러니까 다른 동력원으로 움직인 자동차는 이 두 사람에 의해 처음 만들어진 건 아니었습니다. 물을 펄펄 끓인 보일러가 증기를 만들어내는 증기기관. 흔히 산업혁명의 꽃이며 증기기차로 잘 알려진 이 외연기관이 자동차와 무관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1769년 프랑스인 N-J 퀴뇨가 최초로 도로용 증기자동차를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하지만 프랑스인 아멜데 볼레가 만든 라 망셀이라는 걸 최초의 증기자동차로 보는 게 일반적입니다. 작년인가 이 차가 경매에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어쨌든 라 망셀이 만들어진 때가 1878년이니까 칼 벤츠의 특허등록 해 보다 8년이나 앞섭니다. 하지만 이 증기자동차가 대중화 된 건 알베르 드 디옹과 조르주 부통이 함께 1883년에 만든 모델이 나오면서였죠.

 

그리고 이런 가솔린자동차, 증기자동차 외에 거의 비슷한 시기에 사랑을 받았던 게 있는데 그게 바로 전기자동차였습니다. 정확히 언제 탄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략 1880년대 후반으로 보면 되지 않나 생각됩니다. 실제로 전기차는 당시 가장 유명한 미래의 교통수단으로까지 각광을 받았었죠. 1898 63km/h의 최고속도를 낼 정도로 기술이 발달돼 있었는데요. 1899년에는 그 유명한 '자메 콩탕트'라는 전기차가 최초로 시속 100km/h 넘어서게 됩니다

 

드 디옹의 만든 증기자동차 모습

 

 

 

치열한 각축전, 그리고 서서히 드러나는 우열

 

이처럼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는 내연기관의 자동차뿐 아니라 증기자동차와 전기자동차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때였습니다. 그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 나라가 미국입니다. 1900년경 미국 자동차 시장의 40%가 증기기관자동차였습니다. 그 다음이 38%의 전기차였고, 22%가 가솔린자동차였습니다. 뉴욕 같은 대도시는 전기차 점유율이 50%였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습니다.

 

 

이렇게 세 자동차는 경쟁관계에 있었지만 또 비슷한 구조와 디자인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커다란 자전거 바퀴에 고무를 씌운 것이나, 벨트를 이용해서 엔진의 힘을 전달하는 것 등이 공통점이었죠. 하지만 장단점에선 각각 분명한 차이를 보였습니다. 증기차는 의외로 조용했습니다. 증기 엔진의 효율도 계속 개선돼 장거리 여행도 가능케 했습니다. 증기기관 특유의 소리는 소음이 아니라 사운드라며, 마치 우리가 현재 엔진소리에 열광하는 것과 같은 사람들도 당시엔 많았다고 하는군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증기자동차는 너무 무거웠습니다. 또 보일러의 탱크 압력이 불안정해서 매우 불안했죠. 오히려 동력 효율을 끌어올리다 보니 잔고장 적은 차라는 인식은 사라지게 됐습니다. 점점 복잡해지면서 무겁기만 했던 증기차는 결정적으로 전기자동차나 가솔린자동차에 비해 미래지향적인 기술이 아니라는 사람들의 인식 앞에서 힘없이 무너져내리게 됩니다.

 

 

반면에 전기차는 증기자동차와는 달리 가장 촉망받았습니다. 스위치 하나면 바로 시동을 걸 수 있었고, 조용했으며, 깨끗했습니다. 그래서 점잖은 신사나 숙녀들에게 인기가 많았죠. 가속성도 좋았기 때문에 뭐하나 빠질 게 없었죠. 이러다 보니 전기차는 당시 상류층 이미지와 잘 맞아 떨어졌고, 그들의 소비로 인해 잘 나가게 됩니다. 하지만 전기 자동차도 피해갈 수 없는 약점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장거리 주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죠.

 

 

21세기인 지금도 이 축전지 문제가 전기차의 해결 과제인데 그 당시는 오죽했겠습니까? 그래서 대도시 중심, 시내 중심의 운행을 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택시나 우체국차, 구급차 등의 공적 영역에서 점점 소비가 되게 됩니다. 이때 이러한 전기차의 약점을 극복하려고 에토레 부가티나 페르디난트 포르쉐 같은 자동차 기술자들이 전기와 내연기관의 장점을 합친 하이브리드자동차를 개발하기도 했죠. 하지만 기술적으로 번거롭고 비싼 가격 때문에 이내 사라지게 됩니다

 

 

사실 그 당시에 증기차와 전기차가 분명한 약점을 갖고는 있었지만 가솔린자동차만큼은 아니었습니다. 시끄럽고 냄새나고, 시동 거는 건 또 왜 그렇게 위험하고 힘들었는지 여성들은 어지간해선 엄두를 낼 수 없었고, 남자들도 엔진을 켜기 위해 레버를 돌리다 갈비뼈가 부러지기도 했습니다. 변속 같은 경우도 무척 어려웠기 때문에 이래저래 불만이 많은 차였습니다. 그런데 이 위험스럽기까지 한 내연자동차가 어떻게 해서 경쟁자들을 물리칠 수가 있었을까요?

 

 

 

스피드, 그 거친 욕망에 불을 지피다

 

시동을 거는 게 어렵던 문제는 개발자들에 의해 자동장치가 개발되며 마감됐습니다. 기어 변속의 어려움은 모험가들에겐 자동차를 정복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여기게도 했습니다. 속도의 경쟁은 증기차나 전기차 모두 비슷했지만, 거칠고 시끄럽고 위험한 가솔린자동차는 오히려 이러한 위험성이 모험심과 정복욕을 갖게 하는 유행으로 바뀌게 되어버립니다. 운전 자체에서 스릴을 느끼게 됐고 스피드를 통해 강렬한 자극을 받게 된 것이죠

 

 

증기차나 전기차의 얌전하고 조용한 주행이 오히려 사람들의 호기심과 도전욕을 반감시키게 됐습니다. 특히 가솔린자동차는 장거리운전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를 받아낼 수 있었던 것이 주요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스피드 경주와 장거리 경주 모두에서 가솔린자동차는 사람들의 관심의 중심에 놓이게 됐습니다. 우리가 지금 느끼고 있는 자동차의 맛을 이미 그 당시 사람들도 뜨겁게 공유를 했던 것이죠.

 

 

여기에 증기차 등을 제한하는 법이 각국에서 만들어지면서 더욱 가솔린자동차의 미래는 밝아졌습니다. 또 군사력이 팽창되던 당시에 군부의 요구와 지원을 받은 가솔린자동차가 받게 됨으로써 사실상 이 세 가지 형태의 자동차 전쟁은 그 서막을 내리게 됩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각축전이 급속도로 가솔린자동차의 승리로 기울게 됩니다.

 

 

 

역사는 승자의 편에서

 

4행정 내연기관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자동차 역사의 절대적 지위에 놓여 있습니다. 전기 기술이 발전돼 하이브리드나 전기차가 다시금 주목을 받고는 있지만, 여전히 거칠고 강한 내연기관은 자동차를 소비하는 사람들에겐 큰 매력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가솔린자동차의 승리가 없었더라면 칼 벤츠와 고트립 다임러가 자동차 역사의 최초가 되는 일도 어쩌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오래 내연기관차가 역사의 주인공으로 살아갈지 모르겠지만, 그 동안만큼은 지금이 자동차 역사의 첫 장은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자동차의 역사라는 거, 승자의 입장에서 씌여진 이야기가 아닐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