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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한국인이 좋아하는 차, 유럽인이 좋아하는 차

인종, 민족, 지역, 국가 등에 따라 문화는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역사가 깊을수록 문화의  대비감은 더 선명한데요. 자동차는 과연 어떨까요? 125년이란 자동차 역사는 비교적 다른 영역에 비하면 짧은 편이고, 이 기간을 통해 만들어진 문화 역시 그리 깊다고 볼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다져진 삶의 양태에 맞춰진 자동차 문화 역시 지역이나 국가별로 다양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크게 보면 북미와 아시아, 그리고 유럽 정도로 자동차 문화를 구분지을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남미나 중동 등에서도 어떤 차별화된 점들이 있겠죠.

예를 들어 자동차의 최고 격전지랄 수 있는 미국같은 곳은 차체도 크고 배기량도 엄청 큰 차들을 선호합니다. 땅도 넓고 도로도 넓으며 기름값도 그동안 저렴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유럽에서 발달된 디젤승용이나 SUV는 미국에선 그닥 인기가 없습니다. 디젤가격이나 가솔린 가격의 차이도 없을 뿐더러, 요즘은 좋아졌지만 화려하고 안락한 승차감을 좋아하는 떡대(?)들에겐 디젤의 소음과 진동은 불편할 뿐이었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아시아와 유럽의 경우는 어떨까요? 북미에 대해선 제가 아는 바가 거의 없기 때문에, 오늘은 대한민국과 유럽의 자동차에 대한 선호도를 통해 제가 보고 경험한 문화적 차이를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의 경험과 판단에 근거한 내용이기에 객관성을 보장하긴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전혀 엉뚱한 소리를 할 정도는 아니니까 이에 대한 판단은 내용을 다 읽어 보신 여러분의 판단에 맡겨보도록 하겠습니다.





1. 노치백을 좋아하는 한국, 해치백을 좋아하는 유럽


위에 소개해 드린 두 개의 모델은 각각,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준중형 골프와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다는 준중형 아반떼입니다. 이 두 모델의 가장 큰 차이라면 역시 트렁크가 실내 공간과 연결되어 있는 해치백 모델과 트렁크가 별도로 분리된 노치백 모델이라는 것이죠.

해치백에 대한 얘기는 몇 차례 제가 포스트해서 아는 분들은 이미 많이 아실텐데요. 실용성과 핸들링을 중요하게 여기는 유럽인들에게는 절대적 선택을 받고 있습니다. 사실 실용성에서의 해치백의 의미가 더 크다고 할 수 있겠죠. 그렇다면 유럽인들에게 왜 해치백이 실용적일까요?

예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유럽은 배달 문화가 아주 특수합니다. 어지간한 물건들은 죄다 자신들이 직접 실어 나르는데요. 가장 큰 이유는 비싼 인건비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물건을 배달시키려면 시간도 걸릴 뿐만 아니라 비용이 매우 비쌉니다. 소파나 침대 같은 큰 가구들은 어쩔 수 없이 배달을 시키지만(트럭 렌트해 직접 옮기는 게 일반적이지만...) 직접 옮길 수 있는 어지간한 물건은, 그 양이 많더라도 뒷좌석을 접어 트렁크와 연결해 쓸 수 있는 해치백 자동차를 통해 직접 처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형급으로 넘어오면 해치백이 아니라 왜건으로 바뀌게 되죠. SW(스테이션 왜건), 바리안트, 투어링 등의 표시들이 모두 왜건형 세단을 뜻하는 말들인데요. 준중형보다 주로 중형급 이상에서 사용되는 왜건이 역시 공간에서 더 우위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나이가 있으며(경제적 이유) 실용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운전자는 역시 왜건을 애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서 왜건은 짐차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실제로 틀린 말은 아니죠. 하지만 요즘의 왜건은 스타일까지 갖추면서 실용파들에게 미학적인 즐거움까지 선사해주고 있습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확실히 뒷좌서과 짐칸이 분리된 3박스형의 노치백을 좋아합니다. 왠지 짐칸과 뒷좌석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자신의 신분과 연결짓기 좋아하는 인식으로 인해 격을 떨어트린다 판단을 하는 게 아닌가 짐작됩니다. 뿐만 아니라 직접 배달을 해야하는 유럽에 비해서 우리나라는 배달 문화가 엄청나게 폭넓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굳이 짐싣는 공간을 많이 확보하지 않아도 되는 점도 노치백 선호의 한 이유가 될 수 있겠씁니다.





2. 가솔린을 좋아하는 한국, 디젤을 좋아하는 유럽



 유럽에서 가솔린 승용차와 디젤 승용차의 비율이 왜 이토록 비등한지에 대한 정확한 이유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디젤차가 우리나라에 비해 엄청나게 많이 팔리고 있으며, 너무나 일반화 되어 있다는 점만은 분명한데요. 도대체 왜 이럴까요?

저는 이 점도 역시 유럽의 실용적인 생활습관과 연결지어 생각해보게 됩니다. 비록 디젤엔진 모델이 초도 구매비용에 있어서는 동일한 가솔린 모델에 비해 비싸지만 (엔진 자체가 비싸니까 당연하겠죠?) 유지 관리비에서는 디젤자동차가 더 경제적이죠. 뿐만 아니라 자동차 뒤에 카라반이나 화물적재함을 싣고 달릴 일이 많은 유럽에선 디젤의 높은 토크가 좀 더 운전에 도움을 주지 않나 싶습니다. 

쉽게 말해서, 아우토반 등에서 신나게 달릴 일이 많은 사람들은 스포츠카를, 힘 좀 쓰고 많은 짐 싣는 일이 많은 운전자들은 디젤차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디젤차가 친환경적이라는 말들도 있지만 여전히 디젤차를 선호했던 과거에 디젤차는 검댕이 같은 거 엄청 내뿜는 차로 그닥 친환경적인 차의 이미지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환경 척도로 치는 이산화탄소에 있어서는 분명 디젤차가 가솔린에 비해 우위에 있고, 이런 점은 환경에 대해 높은 책임의식을 갖고 있는 유럽에서는 무시못할 가치가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덜덜덜~거리고 우다다다~시끄러운 엔진음을 내던 디젤승용은 비싼 재산의 개념이었던 자동차에 맞지 않는 컨셉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고정관념은 시간이 지나면서 아주 뿌리깊게 자리를 했는데요. 그나마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SUV나 연비좋고 정숙하기까지 한 디젤 승용차들로 인해 인식이 많이 나아졌다 보여집니다. 






3. 안락한 차를 좋아하는 한국, 운전이 재밌는 차를 좋아하는 유럽


유럽과 한국의 자동차에 대한 선호도 차이에서 굉장히 큰 의미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 바로 안락함과 핸들링에 대한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도심주행, 가족 중심의 라이프 스타일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는 뒷좌석의 안락함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 점은 비싼차든 그렇지 않은 모델이든 가리지 않고 동일하게 중요한 부분입니다. 부모님도 모셔야 하고, 때론 동료들이나 친척도 태워야 합니다. 물론 사춘기의 쑥쑥 자라나는 아이들도 쾌적하게 동승해야 하죠.

하지만 유럽은 반대입니다. 유럽의 생활은 운전석과 보조석 중심입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면( 가면허기간까지 하면 16세부터 면허 가능) 탈탈 거리는 똥차라도 다들 지들 차를 갖고 다니고 싶어하고 실제로 그렇게 합니다. 부모의 집에서 일찍 독립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자녀들이 떠난 뒷좌석은 빈공간, 실용적인 짐을 싣는 공간으로써의 역할이 주된 것이죠. 이런 점 때문에 해치백이 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 점 역시 과거에 제가 해치백에 대한 내용을 포스팅하며 다뤘던 내용입니다..  어쨌든 이런 특색 있는 문화적 차이 때문에 유럽에선 운전자가 즐겁게 운전할 수 있는 핸들링이 매우 큰 의미를 두고 있고, 그것에 맞게 기술도 발전해왔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쾌적하고 안락한 공간에 더 의미를 부여합니다. 부디 넓고 안락한 승차감에 좋은 핸들링과 제동력까지 갖춘 차들이 대한민국에 더 많아지길 바라겠습니다. 그렇다면 더할나위 없는 좋은 자동차가 탄생하는 것일 테니까요.






4. 큰 차를 좋아하는 한국, 작은 차를 선호하는 유럽


경차든 대형 플래그십이든 우리나라에서 생산돼 한국에서 많이 팔리는 차들은 유럽에서 만들어지는 차들 보다 확실히 길고 넓으며 머리쪽 공간도 여유롭습니다. 현대나 기아차가 유럽형이라고 내놓는 차들 조차 유럽차들 보다 확실히 커 보이는데요. 

소형급인 i20 같은 모델은, 준중형인 골프에 맞먹거나 BMW1시리즈 보다 더 큰 게 아닌가 하는 착시현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전장과 전폭, 그리고 전고가 비교 우위에 있습니다. 그래서 늘 한국차에 대한 유럽의 평가는 저렴한 가격에 공간이 넉넉한 괜찮은 차로 얘기가 되는 것입니다.

수출을 하는 현기차 입장에선 개런티나 위에 언급한 부분들로 판매율을 높일 수밖에 없다고 이해할 수 있지만 한국 내에서 조차 이런 분위기는 매우 절대적이기까지 한데요. 왜 그럴까요?

역시 과시하려는 의식과 함께, 가족 중심, 여러명이 자동차를 이용하는 경향이 큰 차를 선호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보여집니다. 여기에 더해서 넓은 도로도 한 몫 거들고 있는데요. 우리나라 도로나 인도는 좁은 유럽의 도로나 인도에 비하면 광활(?)하기까지 합니다. 

반면에 유럽은 선조들이 다져놓은 문명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는 분위기 탓에 도심의 도로들은 대부분 좁고 꼬불꼬불합니다. 독일 정도나 길이 넓고 곧을까 이태리나 스페인등은 어지간한 도심에선 넓고 큰 차가 불편할 수 있는 것이죠. 스위스 같은 산악지형이 많은 나라 역시 큰 차보다는 작은 차가 더 유용합니다. 





결론


우리나라는 가족 중심, 뒷좌석 중심의 자동차 문화가 유럽 보다 훨씬 큽니다. 그리고 여전히 자동차는 자신의 지위나 부를 드러내는 과시의 대상이기도 하죠. (이 점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세상 어디나 똑같겠죠.)   

반면에 유럽은 실용적인 면이 많이 강조됩니다. 그리고 뒷좌석 보다는 운전석 중심의 자동차 문화라 볼 수 있습니다. 도로도 우리나라에 비하면 평균적으로 좁고 구불구불한 곳이 많습니다. 핸들링이나 슬라롬이 중요한 가치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햇볕에 환장(?)하는 유럽인들에게 카브리오는 또 다른 유럽의 특색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스포츠카에 카브리오 조합은 유럽피언 누구나 꿈꾸는 동경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오픈카는 아직 낯설죠. 이는 오픈카를 만드는 한국제조사의 기술 부족과, 비용의 부담으로 인해 뚜껑없는 차를 많이 접하지 못한 이유도 있고, 배기가스 많은 도심주행  탓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유럽과 한국은 자동차에 있어서 분명한 문화적 차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럽차들이 한국시장을 더 많이 찾아가고, 한국인들의 생활반경이 지금 보다 넓고 또 다양해질수록 유럽식 운전문화를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이들이 많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물론 반대로 보면 한국식 운전문화가 유럽에서도 적용될 수 있겠죠.  

그러나 이런 특징들은 서로가  날 것 그대로가 아닌, 우리의 혹은 그들의 색채와 감각에 맞게 변화해 유럽식, 혹은 한국식으로 적절히 변화돼 적용되지는 않을까요?.. 앞으로 우리나라의 운전 문화, 그리고 그에 따른 자동차의 형태는 또 어떻게 변화될까요? 이런 물음에 5년 후 대한민국 길거리 풍경을 상상해 보며 오늘 포스팅 마칩니다. 멋진 한 주들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