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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독일 아우토반 이용자 눈에 비친 한국형 아우토반 논쟁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는 광주와 전남 영암을 잇는 한국형 아우토반을 건설하겠다고 했습니다. 지역 발전 공약 중 하나였죠. 최근 전국체전에 참석한 윤 대통령에게 전남지사가 이 도로 건설을 다시 건의했습니다. 공약 중 하나였으니 당연히 중앙정부도 긍정적으로 지원을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건설 타당성 조사에 들어갔다는 소식도 전해졌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어떻게 이야기가 진행되는지 지켜만 볼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도로 건설과 관련해 나오는 얘기는 주로 경제적인 효과와 관련한 것들이었습니다. 일부 비판적인 목소리도 있긴 했지만 아우토반이라는 게 들어섰을 때 생길 수 있는 중요한 변화와 이에 대한 대책 등, 피부로 느끼게 될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루는 기사 등을 거의 볼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독일에서 아우토반을 자주 이용하고 있는 입장에서 건설 전에 반드시 짚어야 할 점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미리 말씀을 드리지만 이 글은 정치적으로 어떠한 의도도 없습니다. 이점 분명히 밝힙니다.

독일 아우토반 전경 / 사진=스케치북다이어리

 

전남 아우토반 건설 좋은 이유

현재 아우토반 형태의 도로 건설이 얘기되고 있는 광주~영암 구간은 약 47km라고 합니다. 독일과 비교하면 어느 수준일까요? A7이라는 아우토반이 있는데 총길이가 962km로 독일 내에서 가장 깁니다. 비교도 안 되죠? 하지만 이렇게 긴 아우토반만 있는 건 아닙니다. 반대로 5km 이하의 아주 짧은 구간들도 있습니다. 47km 정도의 길이라면 달리기에 아주 만족스럽다고는 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부족하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지역 형편과 사정에 맞춰야 하는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광주~영광 구간 아우토반은 효율적이냐는 질문을 던질 수 있겠습니다. 일단 나온 내용을 보니 현재 1시간 10분 정도 걸리는 통행시간이 25분까지 단축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정도면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그렇다라고 답을 할 수 있겠습니다. 또 정부나 지자체는 이 도로가 자율주행자동차 개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독일 남부 뮌헨으로 연결되는 아우토반이 하나 있는데요. 이곳은 편도 4~8차로로 상당히 규모가 큽니다. 아우디와 BMW 본사가 이곳에 있어서 그런지 이 아우토반 한쪽에 자율주행차 테스트를 위한 전용 차로가 만들어졌습니다. 기존의 차로 중 일부 구간(가장 우측 차로)을 이용한 것으로, 어쨌든 고속 주행과 관련한 자율주행 데이터를 얻기에 이곳만큼 좋은 곳은 없을 겁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 완성차 업체도 분명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자주 말씀드렸지만 독일에서 포르쉐나 벤츠, 아우디나 BMW와 같은 브랜드가 나오고 이런 브랜드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독일인들 특유의 기계 엔지니어링에 대한 높은 관심과 수준뿐만 아니라 무제한 질주가 가능했던 아우토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우토반에서는 자동차들이 빠르게 잘 달리고 잘 멈춰야 합니다. 제조사들도 당연히 도로 특성에 맞는 차를 개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도로가 자동차 성능 경쟁력을 키우고 자동차 문화를 만든 것이죠.

 

우리나라에 이런 무제한 질주가 가능한 도로가 생긴다면 국내 자동차들의 달리기 품질(?), 성능 또한 지금보다 더 좋아질 것입니다. 또 스피드 관광이라는 표현도 등장했더군요. 운전 좋아하는 전국의 드라이버들이 이곳을 찾게 될 겁니다. 마치 독일 주변 네덜란드나 스위스 등에서 주말에 아우토반을 오로지 달리기 위해 넘어오는 무수한 자동차들이 있는 것처럼 어쩌면 이런 효과를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거기다가 영암에는 최고 수준의 서킷이 있습니다. 또한 자동차 관련한 크고 작은 사업체들도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런 연관 사업도 지금보다는 더 활성화되지 않겠나 생각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한국에 아우토반과 같은 도로가 들어서는 것도 좋아 보입니다. 그냥 좋은 정도가 아니죠. 하지만 이런 기분 좋은 그림으로 상상을 하기 전에 놓쳐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반드시 해결책을 함께 제시할 수 있어야 하는 것들인데요.

 

아우토반 이용법은 아세요?

A8 아우토반 전경 / 사진=위키백과 & Joe MiGo

 

독일의 아우토반은 무조건 속도제한 없이 마구잡이로 차들이 달리는 도로가 아닙니다. 철저하게 약속된 운전을 해야만 하는 곳입니다. 이 약속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데 작은 규칙 하나라도 깨진다면 엄청난 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1차로는 추월차로라는 것입니다.

 

차가 정상적인 속도로 주행을 할 때 1차로는 앞지르기를 할 때만 사용합니다. 추월이 끝났다면 다시 2차로나 3차로로 돌아와야 합니다. 당연히 우측 차로를 이용한 추월도 금지되어 있습니다. 만약 편도 3차로의 아우토반이라면 3차로는 가장 느리게 달리는 차들이 이용합니다. 3차로에 차가 없다면 굳이 3차로를 비워놓고 2차로로 운전하는 것도 아우토반에선 하면 안 되는 운전입니다. 편도 3차로 아우토반을 기준으로 내용을 정리를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1차로는 추월할 때만 사용한다

2. 우측 차로로 추월하면 안 된다

3. 기본 주행 차로는 가장 우측 차로이며, 이곳이 비어 있을 때 2차로 주행은 하지 않는다

4. 1차로가 가장 빠르고, 2차로가 그다음, 3차로가 가장 느리게 달리는 차들이 이용한다

 

물론 예외는 있습니다. 차가 막히거나 서행을 할 때 1차로로 주행을 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하지만 도로가 풀리면 다시 위에 나열한 규칙에 의해 운전을 해야 합니다. 이런 규칙이 잘 지켜지기 때문에 생각보다 아우토반에서의 사고는 많지 않습니다. 또한 거리를 운전해도 이런 규칙에 맞춰 달리면 피곤함이 훨씬 덜 합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고속도로 상황은 어떻습니까? 1차로 정속주행을 너무나도 당당하게 하는 차들이 많습니다. 1차로나 2차로가 여유가 있음에도 굳이 우측 끝차로를 이용해 추월하는 차들도 굉장히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제대로 룰이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시속 200km를 넘나드는 운전을 하게 한다?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따라서 아우토반의 건설이 이뤄지는 것과 함께 우리나라 운전 면허 취득 과정도 이에 맞게 강화되고 철저해져야 합니다. 독일처럼 아우토반 주행 연습도 가능해져야 하고 (일부 구간에 한해) , 야간 운전 연습도 필요합니다. 또한 이미 면허를 취득한 운전자들 중에도 제대로 이런 교육을 못 받고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도 많기 때문에 많은 홍보와 대국민 교육도 필요합니다. 과연 이런 부분도 고려가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여기서 제가 사진 한 장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이 사진의 비밀 아닌 비밀

사진=A66 아우토반 사고 때 모습 / 사진=위키백과 & Achim Engel

 

A66이라는 독일의 2005년 아우토반 사진입니다. 이 사진을 소개한 후로 정말 많은 커뮤니티에 돌아다닌 것으로 압니다. 아우토반에서 사고가 났는데 응급차가 올 수 있도록 흔한 표현으로 길 터주기를 해준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장면 연출은 어떻게 해서 가능했을까요? 그냥 저 운전자들 수준이 높아서? 아닙니다. 물론 교통 문화 의식 수준도 얘기할 수 있겠지만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독일에선 아우토반을 달릴 때 명심해야 할 내용이 하나 있습니다. 만약 갑자기 달리다가 차들이 아주 느리게 서행하게 된다면 레퉁스가세Rettunggasse(비상주행차로)를 위해 좌우로 밀착해 운전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1차로의 차들은 중앙분리대에 바짝 붙어서 달리고, 우측 차로의 경우 우측 끝 라인을 물고서 달려야 한다는 것이죠. 

 

이렇게 해야 차가 멈췄을 때 자연스럽게 긴급차로가 형성됩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평소처럼 운전을 했다가는 수많은 차들이 길 터주기를 위해 좌우로 움직여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아우토반에서 차들이 막혀 서행할 때는 좌우로 밀착해서 달리라고 처음부터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이런 부분들까지 고려를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 외에도 진입로 합류하는 방법, 차로가 줄었을 때 합류법 등, 크고 작은 아우토반 이용법이 있습니다. 화물트럭들의 경우는 더 까다롭습니다. 물론 독일이라고 모든 운전자가 규칙대로 운전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도로이기에 서로 최대한 배운 대로 플레이를 하는 것이 나와 모두의 안전을 위한 길임을 대부분 잘 알고 있습니다. 낮은 제한속도의 우리나라 고속도로 상황이나 이용 문화에 맞춰 시속 200km를 넘나드는 아우토반을 생각한다면 많은 문제에 부딪히게 될 것입니다.

 

또 환경적인 부분도 해결 과제입니다. 독일에서 아우토반 제한속도 얘기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속도에 제한을 두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양, 그리고 달리며 나오는 타이어 미세먼지나 제동 시 발생하는 오염물질, 그리고 도로 위의 엄청난 양의 부유먼지 등은 어떻게 할 것인가요?

 

독일 아우토반의 주변이 자연 친화적인 것, 많은 구간이 나무와 숲으로 되어 있는 것은 풍경의 아름다움과도 관련 있지만 이런 오염물질을 최대한 억제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며, 엄청난 소음을 막기 위한 방지책의 일환이라는 점도 한국형 아우토반 건설을 추지하는 당사자들이 알아야 할 겁니다.

A15 아우토반 전경 / 사진=위키백과 & Ra Boe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 노력에는 마음으로 박수를 보냅니다. 하지만 이 특별한 도로(무제한으로 달리는 도로)가 환경과 이용자의 안전을 얼마나 고려한 것인지는 반드시 따져야 합니다. 타당성 조사가 제대로 이뤄져야 하는 이유죠. 그래서 여기서 언급한 우려점들이 현실화하지 않도록 해결책을 마련해야겠습니다. 그런 다음 한국형 아우토반을 달릴 수 있도록 해도 늦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