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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순위와 데이터로 보는 자동차 정보

'오직 가격으로 승부한다' 유럽에서 가장 싼 SUV들

초기 자동차는 누구나 살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신문물에 관심을 가진 일부 귀족에 의해 주로 자동차가 팔려나갔기 때문에 아주 비싸고 귀한 물건이었죠. 그러다 헨리 포드가 양산 시스템을 개발해내면서 누구나 월급 모으면 살 수 있는 게 됐습니다. 생산 혁명이 장벽을 없앴고, 사람들의 삶의 형태를 크게 바꾸는 문화혁명으로 이어졌습니다.

 

유럽도 이 거대한 변화를 피할 순 없었는데요.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고가의 럭셔리 자동차와 실용적이고 가성비에 초점이 맞춰진 자동차가 공존하는 시장으로 자리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런 흐름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 필요 없고, ‘난 오직 가격이 저렴한 자동차, 그냥 싸게 부담 없이 타고 다닐 수 있는 그런 자동차를 원한다는 고객이 있다면 유럽에서는 이를 찾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렴한 가격에 초점을 맞춘 자동차 중 현재 유럽에서 살 수 있는 가장 싼 SUV 5개 모델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유럽 국가별 가격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를 평균내 계산하는 게 가장 좋겠지만 오늘은 제가 있는 독일 판매가를 기준으로 해봤습니다. 한 가지 참고하실 것은 여기서 소개가 될 가격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단순히 환율로 계산하면 차 가격이 결코 싼 게 아니기 때문에 물가 개념으로 설명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1만 유로는 환율로는 1300만 원이 넘는 수준이지만 요즘 우리나라 물가가 상당히 오르기도 했고 해서 그냥 편의상 1만 유로는 우리 돈 1천만 원이라고 해도 크게 무리는 없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2만 유로라면 2천만 원이 되겠죠? 물론 제 뇌피셜이니만큼 그냥 비교를 위한 참고 수준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순위는 아우토뉴스라는 매체를 참고했습니다.

 

5위 : 스즈키 이그니스

사진=스즈키

 

2000년부터 판매된 경차급 SUV입니다. 일본, 아시아, 유럽 등에서 판매될 때 각각 이름이 달랐는데 어쨌든 작고 저렴한 모델을 찾는 고객을 위한 일본 스타일의 모델이라는 기본 콘셉트는 변화 없이 모든 시장에 적용됐습니다. 현재 판매 중인 모델은 2016년에 내놓은 2세대로 그때 2세대가 유럽에 처음 출시됐을 때 판매가는 11,900유로부터 시작됐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한 물가 개념으로 환산하면 1200만 원짜리 SUV였던 것입니다.

 

지금은 이 가격이 많이(?) 올라 16,410유로부터 시작되고 있는데요. 83마력 마일드 하이브리드 자연흡기 엔진에 5단 수동변속기 조합입니다. 에어컨과 LED 헤드램프가 기본사양인데 예전엔 에어컨과 LED 헤드램프는 선택사양이었습니다. 가격이 오른 이유가 있죠? 전장은 3.70m

 

4위 : 토요타 아이고 X

사진=토요타

 

4위도 일본 브랜드입니다. 토요타는 경차 모델 아이고의 변형 아이고 X를 내놓았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크로스오버 모델이라고 하는 게 정확한 구분이 아닐까 합니다. 아이고는 2005년 시트로엥, 그리고 푸조 등과 함께 도시형 모델을 개발해 내놓습니다. 상당히 인기가 있었고 폴크스바겐 그룹의 시티카들과 치열하게 경쟁했습니다.

 

그러다 토요타는 아이고를 2021년까지만 생산하고 올해부터는 아이고 X만 생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모델 역시 전장이 3.7m 수준의 경차급 모델로 공차 중량이 950kg을 넘지를 않습니다. 디자인도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오던 모습에서 아이고 X로 바뀌면서 훨씬 좋아졌죠. 출력은 72마력밖에 안 되지만 최고속도는 160km까지 나오는 등, 도심형 크로스오버 모델로는 충분한 능력을 보여줍니다.

 

캔버스탑은 피아트 500을 떠올리는데, 유럽 감성에 맞는 구성을 하려는 노력이 보입니다. 판매가는 15,890유로부터 시작됩니다. 유턴할 때 회전 지름이 4.7미터밖에 안 되니 비좁은 공간에 최적화한 모델이 아닐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부담스러운 디자인이 어느 정도 정상(?) 범위 안으로 들어온 듯해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3위 : 라다 4x4

사진=라다

 

러시아 모델이죠. 1970년대부터 러시아를 대표하는, 하지만 상품성은 악명이 높은 그런 차였습니다. 2020년 디자인 변경이 있었는데 하필 그 해부터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 더는 이 차를 수입하지 않으며 유럽 여러 곳에서 이제 보기 어렵게 됐습니다. 르노5의 느낌이 나는 (실제로 르노5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짐) 이 사륜구동 소형 SUV의 가격은 15,490유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 자동차 수출은 이제 더 어려워졌습니다. 설령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유럽이 러시아 자동차에 문을 연다고 해도 그땐 전기차가 아닌 이상 설 공간이 더 좁아져 있을 겁니다. 가끔 독일 도로에서 탈탈거리며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라다의 해외 시장 공략도 이렇게 끝이 나는 건지, 더 지켜봐야겠습니다.

 

2위 : 다치아 더스터

사진=다치아

 

다치아는 루마니아 브랜드로 르노가 유럽에 저렴한 자동차를 공급하겠며 인수해 크게 성공시킨 브랜드입니다. 다치아는 유럽산 가성비 끝판왕이죠. 그리고 오늘 주인공인 더스터는 소형 SUV에 속합니다. 1.0리터 3기통 가솔린 엔진의 최고 출력은 90마력이나 돼죠. 수동 변속기도 5단이 아닌 6단짜리를 쓰고 있습니다. 구성도 알차고 실용성도 높이 평가되는 그런 모델입니다.

 

독일에서도 엄청나게 팔리는 다치아 모델들은 서민의 개인이동을 가장 가까이서 돕는 그런 브랜드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더스터의 최저가는 14,550유로. 쉽게 말해 1500만 원으로 소형급 SUV를 탈 수 있다는 (중고가 아님) 건데, 정말 멋진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아 가성비 끝판왕 SUV 2위로 밀어낸 모델이 있습니다.  

 

1위 : 피아트 판다 크로스

사진=피아트

 

판다는 피아트 500과 함께 대표적인 이탈리아산 경차입니다. 1980년 처음 등장했으니 역사가 짧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현재 판매 중인 모델이 3세대입니다. 1세대의 경우 무려 22만에 세대교체가 될 정도로 한번 나오면 오래오래 버티는 스테디셀러입니다. 투자 대비 성과가 큰 모델이라고 할 수 있죠. 2세대부터는 오프로드용 판다 크로스도 함께 나왔습니다. 농부들이 막 험하게 몰아도 되는 그런 차를 만들었고, 역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2014년부터는 SUV이지만 앞바퀴굴림으로만 판매 중입니다. 출력은 70마력으로 다소 아쉬운데 그래도 할 것 다 할 줄 압니다. 오랜 세월 괜히 사랑받은 게 아니죠. 6단 수동 변속기가 적용되어 있고 2026년이 마지막 해가 될 거라는 그런 얘기도 있는데, 아쉽습니다. 판다 크로스의 최저가는 14,240유로.

 

풀옵션, 혹은 고성능 모델은 전혀 고려대상 아닌, 오직 저렴한 가격에 초점을 맞춘 소비자의 니즈에 맞는 다양한 모델이 존재한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장 규모가 작고 그래서 다양한 수입차를 들여올 수 없는 우리 입장에선 더 부러운 모습이 아닐까 싶은데요.

 

물론 자동차로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또 누군가에게 자동차는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개인 이동 수단이기도 하다는 걸 생각하면 이런 저가 시장이 단단히 유지되고 있다는 건 의미 있습니다. 마진 올리기에만 매몰되는 게 아닌, 서민들의 발이 되어 줄 저렴한 자동차들의 생산, 저는 전기차 시대가 돼도 이런 자동차들이 계속 나와주었으면 합니다. 오늘은 싼 차 이야기 좀 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