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Daum)과 함께 유럽 자동차 박물관 탐방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한 것은 2018년이었습니다. 결정이 난 후 한 일은 100여 개가 넘는 크고 작은 자동차박물관 중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할 곳을 선정하는 것이었죠. 그리고 최종적으로 4개국의 31개 박물관이 선정됐습니다.
2019년 독일의 18개 박물관부터 시작해 프랑스, 영국, 그리고 이탈리아까지 열심히 돌았습니다.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요? 조금만 결정을 늦췄거나 탐방 일정을 늦게 잡았다면 코로나19로 인해 계획은 무산됐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현장 취재를 끝내고 탐방기를 써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21년 7월이 되어서야 모든 글쓰기가 마감됐습니다. 기획부터 원고 마감까지 무려 4년이나 걸린 긴 여정에 마침표가 찍힌 것입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그만큼 특별했고, 개인적으로도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박물관들은 그것 나름의 존재 이유가 다 있었습니다. 자기만의 색깔, 컬렉션과 얽힌 많은 사연도 가지고 있었죠. 지역 사회의 랜드마크처럼 여겨지는 곳도 있었고, 어떤 곳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그곳만의 유니크함으로 승부를 보는 곳도 있었습니다. 어느 하나 가치 없는 곳이 없었고, 어느 하나 즐겁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이중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에 남는 5곳을 꼽아봤습니다.
독일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
한 마디로 자동차박물관에 필요한 모든 게 갖춰진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네덜란드 건축가 벤 판 베르켈이 설계한 박물관 건물부터 범상치 않았는데요. 독특한 디자인의 건물은 설계 때부터 박물관 탐방을 위한 동선까지도 철저하게 계산한 듯했습니다. 자동차 역사를 이끌었다는 자부심이 박물관 곳곳에서 느껴졌고, 구성 또한 그들의 역사를 쉽고 체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사소하지만 중요한 것 하나 언급하겠습니다. 대다수 박물관이 관람객에게 식수 제공하는 것에 소홀했습니다. 만약 더운 여름철이라면 이 식수 부분은 더 중요하게 다가오는 부분이죠. 그런 점에서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은 합격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전시실 층마다 편하게 물을 마실 수 있도록 해놓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유럽에서 단 1개의 자동차박물관만 방문해야 한다면 결국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이 그 선택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독일 에르빈 하이머 캠핑카박물관
요즘 독일을 비롯해 유럽에서 캠핑카 인기가 하늘을 치솟고 있습니다. 매년 그 성장세가 무서울 정도인데요. 독일에는 이런 캠핑카 열기를 수용할 만한 멋진 박물관이 있습니다. 독일 자동차 전문지 아우토빌트가 쟁쟁한 곳들을 제치고 '꼭 방문해야 할 독일의 자동차 박물관'에서 1위에 이곳의 이름을 올렸을 때 어떤 곳인가 궁금했는데 직접 가서 보니 왜 추천을 했는지 알 거 같았습니다.
캠핑카 전문회사 하이머 그룹 창업자 에르빈 하이머가 자신의 회사 공장 바로 옆에 세운 이곳은 역시 멋진 건축물로 방문자들 시선을 빼앗습니다. 2개 층으로 된 넓은 전시실에는 테마별로 200대 이상의 모터홈과 카라반들이 시대를 초월해 잘 전시돼 있습니다. 그 어떤 곳보다 여행을 온 듯한, 혹은 여행을 가고 싶게 만드는 그런 박물관이 아니었나 싶은데요. 풍경 좋은 독일 남부에 위치해 관광 일정 속에 함께 하기 제격입니다.
프랑스 뮐루즈 국립 자동차박물관
우리에겐 '부가티 박물관'으로 알려져 있죠. 슐룸프 형제가 섬유공장을 운영하며 자신들이 좋아하는 자동차를 모았고, 그것이 지금의 국립 박물관으로 발전했습니다. 지역을 대표하는 자동차 브랜드이자 하이퍼 자동차의 상징인 부가티에 대한 슐룸프 형제의 수집 열정은 대단했습니다.
결국 그 열정 덕(?)에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수십 여대의 역사적 부가티 모델들을 이곳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박물관은 부가티 컬렉션만으로 평가할 수 없습니다. 그 외에도 대단한 자동차들이 있기 때문인데요. 거의 400여 대에 이르는, 엄청난 양의 자동차를 둘러볼 수 있습니다. 사실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꼼꼼하게 살피는 게 쉽지 않을 정도입니다.
만약 좋은 건물에 멋지게 조명을 받는 등, 디스플레이까지 배려가 됐더라면 더 유명했을 그런 곳이 이 뮐루즈 국립 자동차박물관이 아닌가 합니다. 프랑스가 자동차 초기 역사에서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도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보기 힘든 차들 참 많은 곳입니다.
영국 브리티시 자동차박물관
프랑스에 뮐루즈 국립 자동차박물관이 있다면 영국에는 브리티시 자동차박물관이 있습니다. 이곳이 특별했던 것은 영국 자동차들만을 위한 공간이라는 점입니다. 초기 영국의 자동차 역사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브랜드별로, 또 콘셉트별로 잘 배치가 되어 있었습니다.
재규어나 미니처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브랜드는 물론, 초기 영국 자동차 시장을 이끌었던 오스틴과 모리스의 다양한 유산도 이곳에서 경험할 수 있습니다. 소품과 사진들을 이용해 영국 자동차 산업의 역사를 잘 설명하고 있었고, 이처럼 다양한 영국 자동차들이 있었나 싶을 만큼 풍성한 콜렉션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둘러보게 됩니다.
영국에서는 총 4곳의 박물관을 둘러봤는데 런던에 있던 교통박물관을 제외하면 모두 한적한 시골, 또는 작은 마을에 있었습니다. 영국만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은데요. 기차나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다니면서 만난 영국인들의 소박한 친절이 영국 박물관을 더 기분 좋게 떠올리게 합니다.
이탈리아 알파 로메오 자동차박물관
이탈리아 하면 페라리와 람보르기니, 마세라티와 파가니 같은 고급 스포츠카 브랜드를 먼저 그리게 되죠. 공교롭게도 이들 모두 모데나라는 작은 지역에 모여 있어 이동 동선을 짜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런데 이런 쟁쟁한 브랜드박물관을 제치고 왜 알파 로메오 박물관을 저는 꼽은 걸까요?
사실 전시되어 있는 자동차 그 자체만 놓고 보면 당연히 대중성, 화제성에서 알파 로메오 박물관은 페라리나 람보르기니 박물관과 비교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알파 로메오는 자신들의 유산을 어떻게 보여주는지를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물 흐르듯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그들의 역사를 읽게 되는 동선도 좋았고, 쾌적한 전시 공간은 여유롭게 자동차들을 감상할 수 있게 해줬습니다.
또 시청각 자료 등을 잘 활용해 문화적인 향이 가득한 구성을 한 점도 좋았습니다. 특히, 알파 로메오가 레이싱 역사를 얼마나 화려하게 수놓은 곳인지를 보여주는 레이싱 전시실은 하이라이트 그 자체였는데요. 왜 방문객들의 만족도가 높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시점 기준으로 아직 알파 로메오 박물관 글이 게재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직접 찾은 유럽 자동차박물관 중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5곳을 소개해봤습니다. 5곳을 굳이 꼽기는 했지만 서른한 개의 박물관 모든 곳에서 의미 있고 즐거운 경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최대한 많은 정보를 바르게 전달하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썼습니다. 그 마음이 제대로 전달이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혹시 몰라 '유럽 자동차 박물관 탐방기' 주소 링크 걸어놓을 테니 궁금한 분들은 클릭하셔서 자세하게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유럽 자동차 박물관 탐방기 코너 바로 가기 ===> https://auto.daum.net/news/series/1707943?page=1
이번에 방문한 31개의 자동차박물관 외에도 가보고 싶은 곳이 꽤 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이 프로젝트와 별개로 그곳들도 소개를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일단은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 끝이 나야겠죠? 하루빨리 우리의 일상이 회복되길 바랍니다. 그래야 여러분이 원하는 해외 자동차박물관 방문도 이뤄질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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