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홍대 광화문 그리고...나의 옛날 이야기


오늘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돼 뜨거운 젊은 날을 지냈던 몇몇 장소와 얽힌 개인적인 넋두리를 해볼까 합니다. 그냥, 연극의 방백처럼 되뇌일 텐데요. 자동차 얘기를 기대하시던 분들껜 어설픈 감상주의적 포스팅이 아닌가 싶어 불편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ㅎㅎ (자동차 포스팅이요? 곧 갑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

눈에 덮인 조용한 독일, 그 크리스마스 아침에 들려드리는  옛날 이야기 한 번 들어봐 주시렵니까?



홍대 이야기

중학생이 되면서 영등포를 떠나 생활 공간은 마포구 연남동이란 곳으로 바뀌게 된다. 다녀야할 새로운 학교와 새로운 집... 모든 게 낯설던 내게는 익숙해지기 위한 시간이 많이 필요해 보였다. 하지만 그런 생경한 환경에 처한 13살 짜리의 빠른 토착을 도운 건 학교 친구들이었다.
 
주로 연남동 성산동 서교동 등지에 사는 어머어머한 부자집도령들이었다.-지금은 회사 건물이 들어섰지만 한 녀석의 집 정원이 얼마나 넓었던지 야구를 해도 공이 잘 담밖으로 넘어가질 않았을 정도였다. 우린 처음부터 야구를 진짜 잔디 위에서 했던 것이다...참 그리고! 그 때 부르마블 벌칙이 케익, 바나나 먹기 등이었으니 얼마나 호사스럽게 살았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나의 친구 그룹은 이들과는 정반대의 분위기였는데 바로, 난지도 아이들이었다. 난지도...지금이야 공원이 들어섰지만 그 때는 서울의 쓰레기가 모이는 곳이었을 뿐 아무 것도 아닌 곳이었다. 쓰레기밖에 없는 그곳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걸 난 이 친구들 때문에 알게 되었고, 극단의 삶을 사는 친구들 사이에서 처음엔 제법 혼란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우정을 쌓아가는데 별 장애가 될 수 없었고, 사실 난지도 친구들 덕에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일이 얼마나 재미난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

요즘도 가끔씩 '참 다행이야~' 라고 내 스스로를 다독이는 점이 있다면 바로 사람을 선입견 없이 바라보려는 자세라고 감히 얘기한다. 아마도 이런  부자든 가난하든, 잘났든 못났든...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어떤 선입견을 갖지 않으려는 자세를 정립되게 해줬던 기초가 아마도, 이 시절에 함께 했던 친구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어쨌든 서교동 쪽에 살던 친한 친구녀석들은 주로 홍대주변에 살고 있었다.  한 녀석 집에선 마란츠 오디오로 클래식을 개폼잡고 감상했고, 또 다른 녀석의 집에선 JVC 스피커 위에 올라 앉아 딥퍼플의 빽판을 듣는 등  음악이라는 새로운 황홀경에 빠져들던 시기였다. 아직도 기억한다. 라디오를 통해 영화 포세이돈 어드벤쳐의 주제가 'Morning after'라는 주제가를 처음 듣던 순간을...그게 팝과의 첫 만남이었고. 그 후에 내게도 피비 케이츠의 '프라이빗 스쿨'을 불법 복사해 베타 테잎으로 몰래 돌려보던, 질풍노도의 시기가 찾아온다.

막 그렇게 클래식과 메탈에 음악에 대한 유행병이 돌던 그 시절에 또 다른 즐거움은 다름 아닌 탁구였다. 딥퍼플 듣던 녀석의 집에는 2층 발코니가 어찌나 넓었던지 그 곳에서 탁구대가 놓이고도 남을 만큼의 공간이었다. 우린 거의 매일 이 녀석 집에서 탁구를 했다. 또 거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서교아파트(홍대를 바라보며 있던 오르막 길 좌측에 있던 아파트로 현재는 없어짐)에도 탁구대가 있어서 비가 오거나 할 때면 우린 실내에 있던 서교아파트 주민탁구대를 점령한 채 시간가는 줄 모르게 빠져들었다.

이 녀석들과 어울리던 당시의 홍대는 지금의 홍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조용한 주택가였고, 그나마 카페라고 한다면 '흙과 두남자'라는 것과 하이델베르그라는 커다란 맥주집이 전부였던 그런 시절이었다. 야타족이 출몰(?)하고, 미술학원들이 횡횡하고, 클럽들이 하나 두울 생겨날 때 즈음 이미 내 관심 골목은 광화문 일대로 옮겨지고 난 후였다.




광화문 이야기

광화문과의 인연의 공식적(?)시작은 겨울이었다. 겨울 방학을 얼만 남겨놓지 않은 11월. 나는 생전 처음으로 4대4 미팅이란 걸 나가게 됐다. 세종문화회관 앞 층계에서 당시 창문여고에서 온다는 여학생들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 해의 첫눈이었던지라 우리들은 괜히 더 설렜고, 버스에서 내려 우리에게로 다가오던 순백의 여학생들과 부끄런 눈인사를 나눈 채 분식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금은 화장품가게와 편의점이 들어서 있는 곳으로 바뀌었지만 그 때 그 광화문 모퉁이엔 작지만 제법 잘 알려진 레코드가게가 하나 있었다. 그 앞을 여학생들과 지나쳐 가는데 처음 들어보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상당히 인상에 남았던 멜로디... 나중에야 알게 됐다, 첫 미팅, 첫 눈과 함께 영원히 기억될 그 노래가 조덕배라는 가수의 '나의 옛날 이야기'였다는 것을...

그 후에 오랜 세월, 신촌에서 광화문까지 그리고 광화문에 다다르기 전 정동길과...경복궁에서 빠져 올라가는 삼청동가는 길, 삼청동 가기 전에 오른쪽 넓다란 골목 즉, 정독도서관을 지나 창덕궁 담벼락까지 다다르게 되는 그 길 등은 무작정 걷고 싶어질 때 찾는 나의 단골 코스가 되어주었다. 그런데, 현대계동 사옥과 우리나라 최고의 건축가 중 한 사람인 김수근 선생이 지은 공간사옥( 현대건물과 창덕궁 사이에 있는 작은 담쟁이 넝쿨에 감싸여진 곳으로, 한국적 건축양식과 공간활용의 가치가 잘 드러난 한국 최고의 건축물이다.) 뒤편 골목에 있던 쌈밥집은 아직도 장사를 하고 있을까?...

인사동을 뚫고 나와 만났던 종로서적과 교보문고 등은 내게 책 읽는 즐거움을 알게 해준 소중한 공간들이었고,  나의 감성들이 성장하고 자리잡게 도와준 친구같은 곳이었다. 또 광화문은 사랑했던 여자친구를 떠나보냈던 이별의 공간이 되기도 했고, 친구같은 형같은 소중한 분과 만날 때 늘쌍 기분 좋은 약속의 장소가 되어주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이 곳 독일에서 나는 홍대와 광화문을 지독히도 그리워 하며 살고 있다.


이 밖에도 '뉴욕제과'와 '샤갈의 눈내리는 마을' 이 있던 강남역 주변도 소중하다.  산타클로스라고 나를 불러주던 사촌여동생이 살던 동네였던 그 곳은, 애인없던 나를 위해 기꺼이 여자친구가 되어 주던 착하고 천사같언 동생과의 추억이 많은 곳이기도 하고, 나의 아내와의 운명적인 첫 만남이 이뤄진 잊을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이렇듯 누구에게나 기억 속에 소중하게 자리하고 있는 골목과 동네들이 다 하나씩은 있다. 그것은 추억이라는 제목의 빛바랜 사진첩 속에 고이 간직되어 있을 것이고, 아주 가끔씩... 그 사진첩을 넘겨보며 지내온 시간들을 회상한다. 그게...그 순간이...우리가 잔혹하게 삶을 살지 않게 하는 고마운 치료제라는 걸...우린 모두 잘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