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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업계 출신이 이끄는 자동차 회사들

자동차 회사의 최고경영자 자리는 자동차를 기술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엔지니어 출신이거나, 아니면 자동차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경제나 경영 전문가들에게 돌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곳 독일만 하더라도 이공계열, 그러니까 기계나 전기와 전자를 공부한 CEO들이 대부분입니다. 아우디의 전 CEO였던 루페르트 슈타들러의 경우만 예외적으로 경상계 쪽이었을 뿐, 전통처럼 거의 대부분 자동차 엔지니어 출신들이 지금도 기업을 이끌고 있죠.

지역을 더 넓혀보면 엔지니어 출신이 아닌 경우도 종종 보입니다. 영국 자동차 회사 재규어 랜드로버의 회장 자리는 파리에서 MBA를 취득한 프랑스인 티에리 볼로레가 차지하고 있는데요. 미쉐린에서 그의 사회생활은 시작되었고 다양한 직책을 맡아서 지금의 자리에까지 온, 비교적 자동차와 자동차 기업 생태계를 잘 이해하는 인물입니다. 마세라티 CEO 다비데 그라소도 비즈니스와 경제를 공부한 뒤에 MBA를 취득했고, 마세라티로 오기 전에 나이키에서 일한 경험도 있습니다.

티에리 볼로레 / 사진=재규어랜드로버


조금 더 특이한 경우라면 일찍 세상을 떠난 전 피아트크라이슬러 CEO 세르지오 마르치오네를 들 수 있을 듯합니다. 북미에서 회계사와 세무 전문가로 일했던 인물로, 재무와 관련된 많은 경력을 가지고 있던 그는 크라이슬러가 휘청일 때 자동차 회사와 인연을 맺으며 피아트크라이슬러를 위기에서 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가 살아 있었다면 푸조 시트로엥 그룹과 합병을 했을지도 궁금해집니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일론 머스크 / 사진=Auto-Medienportal.Net/Twitter


그런데 최근, 엔지니어와 경제 및 경영 계통이 쥐고 있던 자동차 기업의 최고경영자 자리가 조금 변화를 보이고 있습니다. IT기업 출신들이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한 겁니다. 대표적인 인물은 테슬라의 대주주이자 최고경영자인 일론 머스크죠. 워낙 유명하고 이슈가 하도 많아서 거의 헐리우드 스타의 느낌까지도 납니다.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물리학을 공부하다 와튼스쿨에서 경제학을 이수했고 스탠퍼드대 박사과정에 합격했지만 창업의 길로 바로 뛰어들며 그의 인생을 새로운 전기를 마련합니다. ZIP2라는 회사를 1995년 만든 그는 페이팔 전신인 X.com을 매각하며 2천억 원대의 자산가가 됩니다. 그리고 그 돈을 바탕으로 스페이스X를 세우고 테슬라를 인수해 새로운 주인으로 자리합니다.

이후의 일은 잘 아실 겁니다. 테슬라는 세계 최고의 전기차 회사가 됐고, 일론 머스크는 최고 갑부가 됐습니다. 화성에서 생을 마감하겠다고 외친 그가 과연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어쨌든 IT업계 출신의 대표적인 자동차 기업 경영자로, 테슬라의 성패 여부와 상관없이 일론 머스크라는 이름은 자동차 역사에 이름을 오래도록 남길 겁니다.

페라리의 베네데토 비냐

베네테토 비냐 / 사진=페라리


이탈리아 명차 페라리는 지난해 베네데토 비냐라는 인물을 CEO로 새롭게 발탁했습니다. 그런데 이 50대 남성은 자동차 전문가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경영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죠. 페라리가 처음으로 업계와 관련 없는 인물을 CEO 자리에 앉혔다고 해서 작은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베네데토 비냐는 이탈리아 피사대에서 물리학(일론 머스크도 물리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리고 스위스 반도체 및 전자 부품 회사인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에 입사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만 거의 30년 가까이 지냅니다. 말 그대로 청춘을 바친 직장이었던 것이죠. 거기서 아이폰에 들어가는 센서 개발팀에도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이처럼 전혀 자동차와 관련이 없는 쪽에서 공학적인 삶(?)을 살아온 그가 페라리라는 이 시대 최고의 스포츠카 브랜드의 최고경영자가 되었다는 건 굉장히 이질적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이런 선택은 시대의 흐름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전기차와 자율주행 등, 첨단 전자전기 자동차 시대로 가는 이 도도한 흐름을 페라리도 어쩔 수 없었던 것이겠죠.

볼보의 짐 로완

짐 로완 / 사진=볼보

인상 좋은 스웨덴 아저씨 하칸 사무엘손. 2012년부터 9년간 볼보 자동차를 이끈 이 인물은 볼보를 세련되고 멋진 브랜드로 도약시킨 성공적인 CEO였습니다. 그런 그가 올해 퇴임을 하고 볼보는 새로운 최고경영자를 맞았죠. 바로 짐 로완입니다. 스코틀랜드 출신인 짐 로완은 우리에게 바로 청소기와 헤어드라이어 등으로 잘 알려진 다이슨 최고경영자였습니다.

기계와 생산 공학, 전기 및 전자 공학 및 경영학 석사 과정을 거쳤고, 직장 생활은 자동차와 관련 없는 곳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다이슨의 최고경영자로 활동하기까지 했죠. 그가 자동차 업계의 관심을 받은 것은 바로 다이슨 CEO 시절 전기차 개발을 지휘했기 때문입니다. 또 그가 경영할 당시 영국에서 다이슨 본사를 싱가포르로 옮기기로 하며 영국을 발칵(?) 뒤집어 놓기도 했습니다.

다이슨이 전기차를 만든다는 소식은 정말 큰 화제가 됐는데요. 하지만 그들은 전기차 양산 계획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익을 낼 자신이 없다고 창업자 제임스 다이슨이 직접 밝힌 것인데요. 3조라는 엄청난 돈을 들여 전기차 생산을 준비했던 다이슨은 생활가전에 집중하기로 마음을 돌려먹었고, 이 결정 이후 짐 로완은 다이슨을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볼보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공학도에 경영까지 공부한 짐 로완이기에 볼보에서의 새 삶이 그에겐 더 잘 맞는 옷을 입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과연 하칸 사무엘손(기계 엔지니어 출신)이 일군 볼보의 성장을 다이슨 출신의 짐 로완이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요? IT 및 가전 업계 출신들의 자동차 시장에서의 활약, 어디까지 갈지 지켜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