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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 아우토반 시승기

벤츠 A클래스 시승기 & 하이델베르크 여행기

 

오늘 포스팅은 예고한 것처럼 메르세데스 A클래스 시승기입니다. 거기에 더해 하이델베르크 여행기도 함께 올리게 됐는데요. 전체적으로 글과 사진의 양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시간을 충분히 갖고 여유 있게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부족하지만 제 나름 최선을 다했는데 어떨지 모르겠네요. 자 그럼 A클래스로 떠난 하이델베르크 여행 이야기, 시작하겠습니다.

 

삼각별이 박혀 있는 차를 탄다는 것은 특별한 느낌을 준다. 어렸을 때 벤츠를 보고 자동차에 눈을 떴던 개인적 경험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차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겐 메르세데스는 한 번쯤은 몰아보고 싶은 그런 차다. 하지만 이러한 동경과 환타지는 자꾸만 나이를 먹어갔고 고향인 독일에서 조차 삼각별은 노쇠한 상징이 되어갔다.

 

독일의 최근 10년을 보자. 2002년 벤츠는 388,545대가 팔렸다. 반면 BMW는 242,206대, 아우디는 226,197대가 팔렸다. 경쟁자들은 그 때까지만 해도 벤츠의 상대가 되지 못하는 듯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2012년, 벤츠는 283,096대가 팔렸고, 아우디는 266,582대, BMW는 247,970대가 팔렸다.

 

프리미엄 브랜드의 특징 중 하나는 판매량이 세계 경제의 변화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기가 안 좋을 때도 경기가 좋을 때도 전체 판매량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한다. BMW와 아우디는 그래프가 수평을 유지했지만 이 기간 동안 벤츠는 계속 내리막길을 달렸다. 십만 명 이상의 벤츠 오너들이 삼각별을 버린 것이다.

 

안전과 편안함에 집중하고 있는 동안 경쟁자들은 젊은 고객들을 끌어올 만한 감각으로 무장했고 메르세데스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다임러 경영진은 ‘벤츠 일병 구하기’에 나섰다. 그 우선이 디자인의 변화였다. 급격히 줄어든 벤츠의 젊은 운전자들을 다시, 아니면 새롭게 끌어 와야 했다. 이 특명을 수행할 첫 번째 모델이 오늘 만나 볼 A클래스다.

 

기존의 A클래스와는 완전히 달라진 새로운 준중형 해치백은 나오자마자 관심을 끌었다. 작년 10월부터 본격적으로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 판매가 시작됐고, 올 초부터 탄력을 받기 시작한 판매량은 독일 내에서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곳곳에서 콤팩트 해치 벤츠가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A클래스는 여성과 젊은 운전자들을 끌어 왔다. 구형 A클래스의 경우 35세 미만 운전자의 비율은 4.4%에 불과했다. 하지만 신형이 출시된 후 10% 이상 상승했다. 여성도 7%이상 늘었다. 55세 이상의 운전자들 수는 급격히 떨어졌다 확실히 전체 판매량이 늘어났을 뿐 아니라 젊어졌다.

 

 

최고의 날씨, 그러나 모든 걸 주지는 않는구나

그렇다면 왜 독일인들은 메르세데스 A클래스에 이처럼 관심을 보이는 걸까? 과연 어느 정도의 성능을 보이고 있으며, 어떤 장점과 단점을 갖고 있을까? 많은 궁금증을 안고 A클래스를 만나러 갔다. 특히 이전 시승 때의 궂은 날씨와는 달리 더 바랄 것 없이 쾌청한 하늘이 우리의 시승을 반갑게 맞아 주고 있었다.

 

아~ 하지만 모든 게 뜻대로 풀리기는 어려운 걸까? 예약했던 가솔린 A200 모델이 약속시간까지 도착을 하지 않은 것이다. 하는 수없이 골프를 빌릴 수 있는지 물었지만 이미 모두 렌트가 된 상태. 아우디 A3가 한 대 있었으나 마력이 너무 낮았다. “시승기 쓰기 참 어렵네.” 나도 모르게 한 마디 툭 튀어 나왔다. 그 때 한 참 뒤적이던 렌터가 업체 직원이 A180 가솔린이 있는데 이건 어떠냐며 묻는다.

 

156마력의 A200이 현재 상황에선 한국에 들어가는 가장 낮은 트림이 되지 않겠나 예상되기 때문에 122마력의 A180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차의 색상이 뭐냐 물었더니 그레이 색상이란다. 개인적으로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이라 생각을 했던 터라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고민스러웠지만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래, 타자!”

 


겉모습

A클래스 뒤태는 풍성한 어머니의 모습 같다. 둔해 보이는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살갑고 편안하다. 화려하진 않지만 모자람도 없는 느낌이다. 두툼한 C필러는 골프를 그것과 닮아 있다. 사진상으로 보면 B클래스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지만 실제로 보면 영락없는 준중형 해치백이다.

 

볼륨감 있는 뒷모습에 비해 측면과 정면은 확실히 세련돼 보인다. 차의 높이가 낮기 때문에 좀 더 스포티한 느낌을 주는 것도 세련미를 더해준다. 전체적으로 라인이 강하거나 날카롭지 않아 시각적으로 부담이 덜한 것도 취향에 맞았다. 그릴에 큼지막하게 박혀 있는 벤츠 엠블럼 때문인지는 몰라도 내가 지금 특별한 콤팩트 차를 타는구나 라는 환상을 갖게 됐다. 과연 실내도 그럴까?

 

주차장에 현대 i40와 나란히 세워져 있는 A200. 도대체 저 차는 누가 예약을 했을까? ㅜ.ㅜ

 

 

실 내 

일단 문을 열면 킥플레이트 부문에 메르세데스 벤츠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선명한 것뿐 아니라 불까지 켜진다. 준중형 모델에서 킥플레이트 로고에 불이 들어오는 게 있던가?   메르세데스 이름표를 달고 나오는 가장 작은 엔트리급 모델이지만 작은 것에서 벤츠는 역시 벤츠임을 느끼게 해준다.

 

실내는 전체적으로 고급스럽고 젊다. 겉 모습의 단정하고 편안한 인상에 비하면 실내는 오히려 화려한 느낌까지도 준다. 특히 중앙 송풍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송풍구 디자인이 콕핏 이미지를 끌고 간다고 할 정도다. 뿐만 아니라 계기판도 크다. 다만 계기판 각도가 조금만 눕혀졌다면 보기가 더 수월하지 않았을까?

차량 앞과 뒤에는 메르세데스 특유의 장애물 감지센서가 달려 있다.

스포츠시트는 기본형에는 없지만 한국에 A클래스가 수입된다면 아마 이 시트가 적용되지 않을까 한다. 스타일도 멋지지만 등받이 부분이 몸을 잘 받아내고 잡아준다. 하지만 엉덩이는 장시간을 타면 좀 딱딱한 시트 때문에 불편해 할 수 있다.  또한 시트의 헤드레스트가 일체형이라 뒷좌석 승객의 전방 시야가 방해를 받을 수 있다.

 

찬찬히 실내 여기저기 살펴 보면서 느낀 점은 마감이 굉장히 꼼꼼하고 고급스럽다는 점이다. 벤츠 상위급 모델들에서 느낄 수 있을 그런 수준이라고까진 하긴 어렵지만 다른 준중형들의 실내 보다 더 완성도 높은 마감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확실히 이런 점은 벤츠를 타는 즐거움 중 하나다.

 

이런 즐거움이 있다면 반대로 시인성이 좋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전방의 경우 특별히 불편함을 느낄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 외의 경우 좀 답답한 느낌을 준다. 독일의 전문 조사업체가 운전석 기준으로 360도 시야를 체크했더니 총 145도가 사각지대로 나왔다. 이 수치는 시야 확보에서 중상급 수준인 골프의 95도 사각에 비하면 많이 떨어진다.

 

또한 대시보드가 각이 지고 다소 높아서 키가 작은 운전자나 동승자의 경우 시트 포지션을 좀 많이 올려 앉는 게 좋다. 네비게이션과 멀티시스템 모니터는 일체형이면서 마치 탈부착이 가능한 것처럼 되어 있는데 이 점도 약간 어색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굳이 트집을 잡자고 하지 않는다면 별문제는 없다.

 

내비게이션이나 블루투스의 경우 전체적으로 무난한 성능을 보여줬다. 특히 이 차는 전자식 브레이크를 사용하는데 브레이크 버튼이 핸들 왼쪽 하단에 위치해 있다. 기계식 핸드 브레이크가 차지하고 있던 공간이 확보됐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가는 기어박스와 컵홀더 주변이 방해를 받지 않고 있다. 하지만 기계식 브레이크가 적용됐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꼭 A클래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전자식 브레이크는 기계식 브레이크보다 더 많은 장치를 요구한다. 수동미션 차량의 경우 가파른 언덕길에서 출발할 때 밀림을 방지 위해 핸드 브레이크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전자식 브레이크가 적용됨으로써 이를 할 수가 없다. 결국 없어도 되는 경사로 미끄럼 방지 장치를 옵션이든 기본이든 적용이 되어야 한다. 다 차 값에 반영이 되는 부분이다.

 

그렇지 않다면 아예 수동미션이 아닌 비싼 자동미션을 선택해야만 한다. 한국에서야 대부분 오토매틱이지만 유럽은 산동네에 사는 사람들도 웬만큼 비싼 모델이 아닌 이상 여전히 스틱을 사용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배터리가 방전이라도 되며 이 전자식 브레이크는 작동을 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핸드 브레이크 손잡이 크기를 좀 줄이더라도 드드득~하고 잡아 당기는 그 손맛을 느낄 수 없다는 게 작은 아쉬움이다.

A클래스가 독일 전문지들에게 가장 많이 지적 당하고 있는 부분이 좁고 낮은 뒷좌석 공간이다. 실제 수치상으로도 무릎공간이나 머리공간은 좁은 편이다. 경쟁 모델들과 비교해 앉아 있는 사진들을 보면 거의 사진 속 인물들의 고개가 숙여져 있는 걸 볼 수 있다.

 

도대체 어느 정도인가 싶어 우리도 한 번 해봤따. 그런데 키 175cm 정도의 동승자를 앉히고 보니 머리와 무릎 공간이 최악의 수준이라고 할 것까지 없어 보인다. 190센티미터 넘는 독일 남자들 기준에선 고개가 숙여지겠지만 아직 한국은 그럴 정도(?)는 아니니 오히려 잘됐다 싶었다. 굳이 비교를 해보자면 BMW 1시리즈 2열 공간과 비슷하거나 조금 낫지 않나 생각된다.

트렁크 용량은 341리터로 신형 골프의 380리터 보다 적은 편이다. 실제 어떤 테스트에서는 유모차가 들어가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빈틈없이 꼼꼼한 트렁크 조립 상태와 두툼한 바닥판은 인상적이었다. 특히 골프나 파사트의 합판 수준과 비교하면 더 그랬다. 하지만 엔진룸을 보기 위해 보닛을 열었을 때 가스리프터가 없는 건 원가절감의 대표적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A클래스를 들어 올려 하부를 체크했을 때에도 원가 절감의 흔적이 여러 곳에서 보였다고 독일 전문지가 증언해줬다. 그도 그럴 것이 독일 메이커들 중에서도 벤츠는 시간당 제조원가가 가장 비싸다. 아무리 벤츠라도 준중형급에선 가격 경쟁력이 중요하다. 그런데제조 과정에서 고비용이 발생되고, 회사측에선 볼트 너트를 몇 개 줄이거나 플라스틱을 쓰는 등의 방법으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려 했다.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니지만 벤츠라는 이름에 걸맞는 모습은 아닌 것 같아 조금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뒷좌석은 6:4 폴딩 시스템

180CDI 디젤의 경우 엔진룸 오른쪽 끝 (헤드램프 바로 위)에 이상한 커버같은 것이 덥혀 있다. 그런데 그게 벗겼다 씌웠다 하기가 참 번거롭게 되어 있다. (그나저나 렌터카 회사여, 엔진룸 너무 더럽다!)


 

 

주 행

본격적인 시승에 들어갔다. 가솔린 엔진이라 확실히 시동을 켰을 때 엔진의 떨림이나 소리는 조용했다. 핸들은 전반적으로 묵직하다. BMW와 아우디 중간쯤에 위치하는 무거움이라고 하면 맞을 거 같다. 비교적 굵은 스티어링 휠은 다소 뻑뻑한 감이 있었지만 고속에서 안정감을 주기에 부족하지 않다.

 

특히 인상적인 건 수동기어가 매우 빠르게 변속이 된다는 점이었다. 독일 벤츠 홈페이지에서도 이 점을 분명히 설명하고 있다. ‘가볍고 빠른 변속.’ 연비효율을 높이기 위한 이런 구성이 과연 얼마나 효과적인지에 대해선 즉답을 할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수동 변속기가 갈수록 재미있어진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과연 한국에 수동 A클래스가 들어갈까?

 

A클래스는 유럽에서 판매되고 있는 동급 현대 i30 보다 100kg이 더 무겁다. 이는 신형 골프 보다 160kg이나 더 무거운 수치다. 하지만 유럽 복합연비 기준으로는 골프의 같은 급(가솔린, 122마력)과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실제로는 어느 정도 수준일까? 주행 연비에 대해선 여행기를 다 마친 후에 결과를 공개하도록 하겠다.

 

아우토반에 올라 힘껏 가속페달을 밟았다. 차가 무거워 굼뜰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경쟁 모델인 골프와 비슷했고 14마력 더 힘이 좋은 BMW 1시리즈(116i) 보다 조금 늦는 수준이었다. (제원상 제로백 9.2초) 참고로 1시리즈와 A클래스는 최소무게가 1360kg으로 동일하다.

바닥에 가속페달이 닿은 상태에서 최고속도를 확인했지만 제원에 나타난 202km/h엔 조금 못 미치는 196km/h를 기록했다. 16인치 휠에 에코모드에 맞춰 놓은 상태의 운행, 거기다 더운 날씨에 에어컨을 켜고 달리는 것 등이 변수로 작용한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대부분의 시승차들이 제원보다 최고속도가 더 나온 것에 비해 A클래스는 그 반대였다.

 

실내로 밀려 들어오는 바람소리는 160km/h 정도를 넘어서야 커졌다. 이는 바로 전에 시승했던 폴로가 130이 넘어가면서 시끄러워진 것과 비교해 좋은 수준이었다. 물론 체급이 다르기 때문에 직접적 비교는 불가능하지만 과거 시승한 1시리즈와 비교해 봐도 풍절음은 크지 않았다. 

 

이번엔 순간연비를 확인하고 싶어 계기판 속의 LCD창을 확인했다. 하지만 막대 그래프로 표시가 되고 있어 정확한 파악이 어려웠다. VW 폴로의 경우 현재 속도와 순간연비가 모두 숫자로 표시가 되어 있어 쉽게 운전자가 확인을 할 수 있었지만 A클래스는 그런 배려는 조금 부족해 보였다. 

 

A클래스는 스타일뿐만 아니라 하체 역시 스포티하게 조절했다. 동급 일반형 모델들 중 가장 단단한 하체가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여서 부드러운 서스펜션에 익숙한 운전자들은 적응 전까지 딱딱한 느낌을 계속해서 받을 것이다. 어댑티드 서스펜션이 옵션으로도 적용이 안된다는 게 좀 아쉬웠고, 단단한 하체에 비하면 코너링이나 핸들링이 특별히 인상적이 못하다는 점도 아쉬웠다.

 

크게 코너를 돌거나 짧게 돌아나갈 때 약간 밖으로 머리가 밀리는 (언더스티어) 느낌이 들었지만 전체적으로 도로와 차는 밀착이 잘된 편이다. 하지만 특별히 경쟁 모델들을 압도할 수준은 아니었다. 이런 평범함에 비하면 제동력은 확실히 인상적이다. 풀가속 주행에서 브레이크를 밟아주면 어떤 차들은 뒤가 좀 흔들리는 현상이 발생하는데 A클래스는 그런 동요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1차 결론을 내어 본다면, A클래스의 주행감은 딱히 어떤 특징이 있다고 말하기 애매한 수준이다. 자꾸 폴로와 비교를 해서 그렇지만 오히려 운전의 재미라는 측면에선 폴로가 더 낫지 않나 싶을 정도다. 이는 번갈아 가며 운전을 한 동료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누구보다 A클래스에 ‘꽂혀’ 있던 그 친구가 막상 운전을 하면서 받은 인상은 너무나 평범했다는 것.

 

왜 독일 자동차 전문지들이 가솔린의 경우 A250, 디젤은 A220 CDI 정도를 타야 그나마맛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는지 이해가 됐다. 안락함과 주행성능, 실내 공간 등은 상대 모델들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다. 최근 독일 유력지의 비교테스트에서 A250이 골프 GTI에게도 밀리는 것으로 평가됐다. 그렇다면 이 차의 도드라진 장점은 뭐가 있을까? Style이다. 실용성이나 좋은 성능을 원하는 이들 보다는 젊고 스타일리쉬한 벤츠를 원하는 운전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모델이다. 

 

하지만 아직 시승에 대한 평가는 끝난 게 아니다. 연비효율성이나 차에 대한 전체적인 느낌은 모든 일정이 끝난 후 다시 한 번 따져 보기로 하겠다.

 


고성 가도의 시작 하이델베르크(Heidelberg)

만하임에서 시작돼 체코의 프라하까지 1000km나 이어진 고성가도(Burgen Strasse)는 독일 가도들 중 가장 긴 여행 코스를 제공한다. 신성로마제국에 속한 두 나라는 당시 제국 안에서 같은 문화권에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프라하에서 보게 되는 고성과 독일에서 만나는 고성은 많은 부분 닮아 있다.

 

이 고성가도의 독일 시작점은 만하임이지만 실제로 여행객들에겐 하이델베르크가 본격적인 출발지가 되고 있다. 유럽의 하늘관문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에서 1시간 거리에 있다는 지리적 이점으로 해외 관광객들이 특히 많이 찾고 있다.

 

환승을 하거나 비즈니스로 독일을 찾았다 잠시 시간을 내 관광을 하고 싶을 때 하이델베르크만큼 공항에서 가까우면서 볼거리가 많은 곳은 없다. 하지만 지리적 이점만으로 이곳으로 사람들이 몰리는 건 아니다. 분명 사랑 받는 이유가 있다.

 

 

하이델베르크 성(Schloss Heidelberg)

하이델베르크라는 지명에서 베르크 (Berg)는 산을 뜻한다. 즉 지명에 베르크가 들어가면 그곳에 산이 있든지, 산에 고성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하이델베르크 성 역시 하일리겐베르크 중간쯤에 자리하고 있다. 당시 이 지역은 팔츠라 불렸고, 이 팔츠 지역의 수도 역할을 한 곳이 하이델베르크였다.

 

만약 당신이 이런 하이델베르크를 방문해 한 곳밖에 둘러 볼 시간이 없다고 한다면 주저 없이 성으로 향하라 말하고 싶다. 성을 둘러봤다면 모든 것을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하이델베르크 여행의 백미다. 이곳으로 올라가는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산악열차(Bergbahn)를 이용하는 게 재밌고 효율적이다.

 

걷기에 자신 있는 여행객은 걸어 올라가며 아기자기한 산등성의 풍경을 직접 경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만약 자동차를 가지고 왔다면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악열차를 타거나, 아니면 성 뒤쪽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을 따라 가면 된다. 좁고 많이 굽이친 길이지만 천천히 올라가는 그 길 자체에서 또 다른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성 뒤쪽 길로 올라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고풍스런 집들이 인상적이다.

후문쪽으로 하이델베르크 성으로 들어서면 만나는 첫 번째 풍경.

하이델베르크 성이 지금처럼 유명해진 것에는 성 주변의 아름다움과 멋진 전망뿐 아니라 처절했던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16세기 카톨릭에서 기독교로 개종을 하면서 30년 전쟁이라는 피비린내 나는 종교전쟁이 벌어졌고, 17세기에는 루이 14세에 의해 성이 점령(팔츠 계승 전쟁)되기도 했다.

 

특히 무너진 탑이 유명한데, 5미터나 되는 두꺼운 성벽은 외부에서 아무리 포탄을 날려도 파괴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당시 전쟁을 치르며 성이 제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자 프랑스 점령군들은 아예 재건이 불가능하도록 화약고로 쓰이던 이 탑을 폭파시키고 만다. 이 때 떨어져 나간 잔해 그대로가 지금의 모습이다.

많은 관광객들이 놓치는 장소 중에 하나가 성 기준 우측 정원으로, 무엇보다 네카강과 함께 구시가지의 전경을 가장 좋은 방향에서 바라볼 수가 있다. 또 산책로와 넓은 잔디밭은, 과연 이 곳이 처절한 전쟁터였나 싶을 정도로 평화로운 느낌을 받게 된다. 특히 하이델베르크 성을 8번이나 방문한 괴테의 동상과 그가 앉아 상념에 젖었다는 벤치 등도 뜻밖에 만나는 재미라 하겠다.

우측 정원에서 바라다 본 하이델베르크 전경

괴테의 동상. 그 우측에 돌로 만든 괴테벤치가 보인다.

정원 일부 모습

성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정면으로 보게 되는 화려한 프리드리히 건물을 만나게 된다. 이 건물 지하에는 그 유명한 22만 리터 용량의 와인통이 있는데 2~3층 건물 높이로 그 크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프리드리히 건물 우측엔 입주 전 날 벼락을 두 번이나 맞고 겨우 형태만 유지하게 된 비운의 오토하인리히 건물이 있다.  예술적으로도 매우 뛰어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이 건축물은 현재 약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사진 왼쪽이 프리드리히 건물. 오른쪽이 오토하인리히 건물이다.

하인리히 건물 중앙 입구로 들어가면 약사박물관이 나온다.

와인통 작은 것

22만리터의 와인이 들어간다는 문제(?)의 술통. (후레쉬 안 쓰고 찍으려니 초점이 안맞았다. 실제론 어두컴컴한 편임)

 


학생감옥

성에서 내려오면 구 시가지의 중심이랄 수 있는 마르크트 광장이 바로 나타난다. 성령교회화 시청이 마주하고 있는 이 광장은 중앙로인 하우프트슈트라쎄로 이어지는데 허기지거나 지친 여행객들의 미각을 자극하는 카페나 레스토랑이 길 양 옆으로 가득 늘어서 있다. 또 각 종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로 인해 쇼핑객들의 발길이 끊기지 않는 곳이다.

하지만 이 중앙로만 따라 걷는 것은 하이델베르크 시내를 반밖에 즐기지 못하는 일이다. 중앙로를 따라 걷다 보면 한 골목 모퉁이에 학생감옥(Studentenkarzer)이라는 표시가 있다. 여행책자에서 추천하는 명소의 입구라고 하기엔 초라하기 그지없다. 학생감옥은 당시 치외법권 지역인 대학 내에서 자체적으로 학생들을 벌하기 위해 만든 곳으로, 감옥 건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부터 낙서들이 건물을 채우고 있다.

 

당시 시대 상이나 개인사 등이 적혀 있는 낙서들 사이로 많은 한글도 볼 수 있는데, 한글 낙서를 금지한다는 경고문이 유일하게 붙어 있기도 하다. 하이델베르크 성에서도 시끄럽게 떠들며 사람들 인상을 찌푸리게 했던 한국 단체 관광객들을 만났던 터라 이 곳에 적혀 있는 경고문이 더 크게만 보였다.

낚서라는 오타가 눈에 띈다. (왜 유독 한글로만 경고문을 ㅜ.ㅜ)

학생감옥 입구 옆에 있는 허름한 철문을 열고 들어간 곳에 이런 놀라움이 있을 줄이야. 나중에 알고보니 대학박물관과 구 강당이 있는 건물이 엄청 컸다는...


TIP 하이델베르크 대학

1398년 루프레히트 1세에 의해 세워진 독일 최초의 대학. 신학, 철학, 법학, 그리고 의학 등의 학문은 지금도 독일 내에서 유명하다. 현재까지 노벨상 수상자를 7명 배출했으며, 학교 건물은 구시가 곳곳에 흩어져 있다. 네카강 건너편 철학자의 길도 철학과 학생들의 명상의 장소로부터 출발됐다.

 


네카강 즐기기

하이델베르크 성과 구 시가지가 주 메뉴라면 네카강을 즐기는 것은 맛있는 후식과 같다. 카를 테오도르 선제후에 의해 지어진 알테 브뤼케(오래된 다리)는 처음에 나무로 지어졌는데 지금처럼 석조 다리가 된 이유에 대해선 홍수로 목조 다리가 유실되었다는 설과 팔츠 계승 전쟁 당시 후퇴하던 프랑스군들이 불태웠다는 설로 나뉜다.

 

특히 다리 위에 청동거울을 들고 있는 원숭이 동상에 대한 여러 얘기가 있는데 현재 가장 유력한 것은, 동거울을 보기 위해 허리를 숙이는 것처럼 겸손해지라는 의미라고 한다. 또 언제부터 붙여졌는지 모르겠지만 사랑에 빠지고 싶으면 원숭이 왼손가락을, 아이를 낳고 싶으면 다리 사이의 쥐를 만지라는 얘기도 함께 전해 내려오고 있다.

카를 테오도르 다리의 모습

네카강의 전경을 잘 볼 수 있는 또 다른 곳은 테오도르 호이쓰 (Theodor-Heuss) 다리다. 멀리 카를 테오도르 다리가 멀리 보이는 풍경은 마치 그림엽서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아름답다. 또 다리 아래쪽에 있는 둔치는 햇살이 좋은 날이면 근처 주민들이나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학생들로 가득하게 된다.

 

이처럼 하이델베르크는 오래된 도시이지만 3만 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만들어내는 젊은 에너지가 가득한 곳이기도 하다. 젊음과 학문, 전쟁의 흔적과 다양한 중세 문화가 뒤섞여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작년 독일을 찾은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가장 인상적인 여행지 선정’에서 하이델베르크 성과 구 시가가 1위와 12위에 이름을 올린 것도, 단순히 지리적 이점뿐 아니라 이처럼 하이델부르크만의 맛과 멋이 있었기에 나온 결과였을 것이다.

테오도르 호이쓰 다리 위에서 바라본 풍경

 

 

바드 빔펜에서 만나는 소소한 즐거움

하지만 하이델베르크의 즐거움이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자동차 여행객들에게 반드시 권하고 싶은 게 바로 네카강을 따라 가는 하이델베르크 주변 도시 체험이다. 네카강을 우측으로 끼고 달리는 드라이브 코스는 쾌적하며 아늑하다. 운전히 어렵지도 않고 곳곳에서 만나는 작은 도시와 마을들의 소박함이 인상적이다. 또 갑자기 등장하는 이름 모를 고성들을 발견하는 것은 드라이브 코스가 주는 덤.

바드 빔펜 가는 길에 만나는 풍경들...


보통 하이델베르크에서 하일브론이라는 곳까지 가는 걸 권하지만 부담이 된다면 40~50분 정도 달려 도착할 수 있는 바드 빔펜(Bad Wimpfen)도 좋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오래된 도시는 하이델베르크의 북적이는 분위기와 달리 여유롭고 조용한 여행을 원하는 이들이 만족할 만한 곳이다.

 

조용한 골목과 뒤뜰. 편하게 널브러져 있는 고양이. 그리고 나무 위에 매달려 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바드 빔펜의 특징을 말해준다. 또 언제 지어졌는지도 모를 오래된 집들이 주는 정겨움은 하이델베르크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정취를 만든다. 가만히 보면 구 도시 건물들이 다 비뚤어 있다. 카페와 레스토랑도 그렇고, 하다 못해 도로까지도 그렇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모여 바드 빔펜만의 멋을 만들었다.

바드 빔펜 구 시가지의 골목

왼쪽 좁은 건물은 보석과 공예품 등을 판매하는 곳으로, 밤이면 조명이 예쁘게 건물을 밝혀준다.

똑바로 정돈되어 있지 않기에 더 세월의 흔적이 생생하게 와 닿는다.

동네 작은 서점. 한 켠에 이름 모를 화가들의 그림이 전시 판매되고 있다.

드디어 최종 목적지인 블라우어 투름에 도착했다. 하루 종일 걷고 또 걸었던 터라 지쳐있었지만 입장료 무료라는 말에 혹해 높다란 탑을 올라갔다. 하지만 2/3 정도 올라갔을까? 절묘하게 자리한 매표소를 발견했다. 다시 내려가기도 억울한 높이에 매복해 있던 매표소의 아주머니가 헉헉대는 우리를 웃으며 맞아줬다. 아 얄미워라. 하는 수 없이 우리 돈 이천 원을 내고 탑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그런데 만약 중간에 포기하고 내려갔더라면 얼마나 억울했을까?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풍경이 방문객의 고단함을 한 번에 씻어준다. 여정의 끝을 장식하기에 이만큼 좋은 곳이 있을까 싶을 만큼 가슴이 탁 트이는 전경이 펼쳐졌다. 

블라우어 탑

탑 꼭대기에서 보이는 풍경

프랑크푸르트로 돌아가기 위해 A6 아우토반을 선택했다. 유채꽃 흐드러지게 핀 들판이 아름다웠고 길도 막히지 않아 여러 면에서 좋은 도로다. 아우토반 진입하기 직전 마지막 사거리에서 신호대기를 했다. 그 때 우측으로 이름 모를 또 다른 작은 마을이 보였다. 왠지 차의 핸들을 돌려 그 곳으로 가보고 싶어졌다. 저 곳에선 또 어떤 즐거움이 우리를 맞아줄까. 하지만 신호는 바뀌었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아우토반에 몸을 실었다.

오전 10시에 시작된 여정은 오후 8시가 되어서야 마무리됐다. 잠깐의 틈도 허락하지 않았던 빡빡했던 일정이었다. 하지만 곳곳에서 만났던 여행지의 즐거움을 생각하면 몸의 피곤함은 아무 것도 아니다. 너무나 많이 알려져 어쩌면 질릴 법도 한 하이델베르크였지만,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경험하느냐에 따라 맛은 늘 달라질 것이다.

 

모든 여정을 마치고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넣었다. 오늘의 총 주행거리는 317km. 다시 기름 탱크를 가득 채우기 위해서 23.24리터의 가솔린이 필요했다. 전체 달린 거리의 70% 정도를 120~150km/h 사이로 달렸다. 약 15% 정도를 100km/h 미만으로, 그리고 나머지 15%를 160~190km/h로 달렸다.

 

날이 더워서 하루 종일 에어컨을 켠 채 주행했다. 그런 상태에서 연비를 계산했더니 리터당 13.6km가 나왔다. 제원상 연비인 리터당 18.2km엔 못 미쳤지만 연비운전을 한 게 아니고 에어컨을 켠 것까지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다.

 

차를 떠나 보내기 전 다시 한 번 녀석을 바라 봤다. 차를 분석하기 위해 이런저런 냉정한 평가들을 했지만 매력적인 자동차라는 생각은 오히려 타고 나서 더 들었다. 하지만 분명히 성능으로 즐거움을 누릴 모델은 아니다. 실용성도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이 녀석은 독일에서 잘 팔리고 있다. 실용적인 독일 국민성을 생각하면 기대 이상의 성과가 아닌가 싶다. 이 차를 선택한 운전자들이 A클래스를 실용성이나 성능을 보고 선택한 것은 아닐 게다. 젊어진 벤츠. 그 살아 있는 스타일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얘기일까? 길게 늘어진 햇살을 받은 녀석이 늠름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