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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자동차 교통 문제 대부분은 국가책임이다

1989년 천주교평신도 협의회가 벌였던 '내 탓이오' 캠페인을 기억하실 겁니다. 자동차 뒷유리에 '내 탓이오'스티커를 붙인 많은 자가용들. 실제로 접촉사고 시 이 스티커의 영향 탓이었는지 언성을 높이는 일이 적었다고 얘기들을 많이 합니다.

 

책임을 남에게 돌리지 말고 자신에게서 찾자는 뭐 그런 영성적 운동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그 취지를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를 하지만 요즘 한국에서 들려오는 갖가지 자동차, 교통정책과 관련한 소식들을 듣고 있자면, '내 탓이오'가 아니라 '정부와 정치인들, 늬들 탓이오!'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입니다.

 

사실 블로그에서 저 역시 우리나라 운전자들의 운전문화에 대해 비판을 많이 한 편입니다. 다른 나라의 경우와 비교도 하며 개선되길 바란다는 주장을 자주 펼쳤었죠. 하지만 운전자들의 변화는, 운전자들만의 변화만으론 완성되지 않습니다. 국가가 제도를 통해 기본 틀을 만들어 주고서 이런 운전자들의 양식을 운운하는 게 어쩌면 순서가 아닌가 아니, 더 효과적이지 않겠나 싶은 겁니다.

 

(사진 = 스케치북)

 

왜 이런 얘길 하는지 이미 짐작하는 분들도 계실 줄 압니다. 저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정부가 신경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 안전 규정 강화

엊그제 우회전 시 보행자와 충돌 위험이 높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법규에는 '우회전 시 차량은 보행자에 주의해 서행해야 한다.'로 되어 있는데요. 실제로 우회전을 할 때 횡단 보도 앞에서 운전자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우회전과 좌회전 차량이 동시에 진입할 때 우선 순위는 어디에 있는지 등, 다양한 상황에 대해 명문화 되어 있지 않아 많은 분들이 헷갈려 하고 있습니다.

 

그까짓 게 뭐가 어렵다고? 라고 말할 분들도 계시겠지만 의외로 모르는 분들이 많아 보입니다. 거기다 우회전을 하자마자 맞닥드리게 되는 횡단보도는 인명사고를 유도할 수 있죠. 횡단 보도 위치가 문제가 되기 때문인데요. 이런 건 조금만 위치를 바꿔도 사고 확률을 줄일 수 있는 문제인데 그게 잘 안되는 모양입니다.

 

여기 독일도 그런 지점들이 있습니다. 우회전 신호를 받아 꺾자마자 보행자가 파란불에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 것이죠. 이 땐 무조건 운전자가 멈추는 게 맞습니다. 사람이 없는지 있는지 주변을 긴장하고 살피면서 차량의 흐름을 이어주는 것은 분명 운전자들의 역량이자 의무이겠지만, 이에 대한 법적 규정이 좀 더 세밀하고,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이미 운전면허학원에서 철저하게 배우며, 면허시험 시 이런 상황들이 꼼꼼히 체크되고 있습니다.

 

매우 구체적인 경우를 들어 말씀을 드렸지만, 안전벨트가 2점식이나 3점식이니 하는 것, 에어백이 디파워드니 어드벤스드니 하는 차별적 부분, 차량 아연도금 문제 등은 제조사 스스로 개선을 하라고 하기 보다는 정책적으로 기준을 올려 버리면 해결이 될 수 있는 문제들입니다. 리콜에 대한 모호한 태도나 규정도 물론 마찬가지 입니다. 그랜저 배기가스 유입과 관련된 심각한 이슈 조차 리콜리 이어지지 못한 것을 보면서 참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나마 소비자들의 요구가 반영돼 새로운 연비측정방식으로 연비를 측정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처럼 얼마든지 법규를 통해 기준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합리적 요구들이 여전히 적정반영이 안된 채 있습니다. 적어도 한국땅에서 차를 팔려고 하는 메이커들은 정부가 정하는 기준을 따라야 하고, 이 기준은 소비자들의 안전과 합리적 소비를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과연 우리 기준은 그러한가요?

 

 

2. 교통시스템 개선

우회전 얘기를 앞서 했지만, 우회전 신호기를 만든다는 얘기가 현정권 초기에 있었는데 어째 흐지부지 된 것 같군요. 또 저 위의 사진을 보셔서 알겠지만 신호기 위치가 횡단보도 중간이나 사거리 중간에 있는 게 아니라 각 차로의 정치선 바로 앞에 있다면 꼬리물기 등의 문제는 기술적으로 간단히 해결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기사를 보니 끼어들기가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웃기는 건, 끼어들기를 단속할 수 있는 괜찮은 방식이 마련되어 있는데 국회에서 계속 묶여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진출로에 거리별로 몇 대의 카메라를 설치합니다. 처음 카메라가 있는 곳은 정상적으로 진출을 하기 위해 줄을 선 차량들이 잡힐 겁니다. 

 

그런데 마지막 카메라에 앞 카메라에 없던 차량이 보이면 이건 중간에 끼어들기를 한 것으로 간주를 해 과태료를 매기게 되는 것이죠. 헌데 이 게 실제론 역할을 못합니다. 교통법이 개정이 안된 탓이죠. 정치인들 입장에선 이런 경우들이 수많은 법규 개정안들 중 우선순위가 아니라고 보는 것이겠죠. 이럴 때 강력한 자동차 단체가 합법적 로비를 펼쳐야 하는데 이런 조직 조차도 우린 없는 실정입니다. 이래저래 교통법규는 다른 법들에 밀릴 수밖에 없는, 슬픈 현실 속에 있습니다.

 

 (사진 = 스케치북)

 

3. 자동차나 교통에 관한 정책적 의지

요즘 한국에선 택시법이 한창 이슈죠. 쉽게 얘기해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해 현재 버스 수준의 지원을 하겠다는 그런 법입니다. 정부는 반대했고, 여론도 좋지 않습니다. 저 역시 택시가 대중교통으로 한 번도 인식을 해보지 못했던지라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택시법의 구체적 지원내용이 아니라, 이런 엄청난 지원이 왜 필요하게 됐는지에 대해 뼈저린 반성이나 개선의 의지가 없다는 점입니다. 자동차가 지금 보다 적던 시대보다, 자동차가 훨씬 많아진 지금 오히려 택시의 댓수는 많이 늘어나 있습니다. 손님은 적어졌는데 먹고 살아야할 택시 기사는 더 늘어났다는 얘기죠. 이걸 왜 지자체나 정부에서 조절하지 못했는지 전 우선 이게 가장 의문입니다.

 

또 정부에서 택시법 말고 택시지원법을 만들어 충분히 택시업계를 배려하겠다고 했는데, 들리는 얘기로는 이런 식의 택시지원법이 벌써 오래 전부터 얘기가 됐지만 제대로 실행이 된 적이 아직 한 번도 없다고 하는군요. 어떤 기사에 보니 도급택시들이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데, 이런 도급택시를 지도 감독할 기관은 제대로 관리를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주들 탈세도 제대로 못 막는다고 한숨을 내쉽니다.

 

그러면 관리를 왜 못하느냐? 6개월에서 1년 미만으로 담당자가 바뀌는데 무슨 정책의 연속성이, 책임이 부여될 수 있겠습니까. 결국 중요한 개선사항들을 그대로 놔둔 채 법만 제정한다고 해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겠느냐는 회의적 목소리가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 뜨거운 여론의 관심이 사라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없던 일들이 될까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좀 다른 얘기지만 사설응급수송차량의 문제점이 토요일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물론 핵심은 보건법의 문제점이지만 사설응급수송차량들의 비도덕적 영업이 버젓히 자행되는데, 어떻게 저런 자들이 자격을 취득하고 거리에서 질주를 할 수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일부의 작은 문제를 가지고 전체인 냥 너무 확대해석하는 거 아니냐 말씀하실 분도 계실 겁니다. 네 저도 그러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만, 반대로 너무 썩어 곪아 있는 환부를 우리는 애써 멍자국 정도로만 보고 외면했던 것은 아닌지도 한 번 점검해 봐야 할 것입니다.

 

 

정 리

운전자들의 운전행태의 개선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국가는 운전자들의 양심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더 나은 문화를 영위하고 만들어갈 수 있는 기본적인 토양을 만들어 줘야 합니다. 이게 정부의, 정치인들의 당연한 책무가 아니겠습니까? 그런 후에 '내 탓이오' 캠페인을 한다면 훨씬 더 '내 탓'으로 여기는 운전자들은 늘어날 것입니다. 

오토타임즈 권용주 기자도 칼럼을 통해 주장했고, 모터블로그 테드님도 개인적으로 제게 얘기를 했지만, 이쯤에서 대한민국도 '자동차청' 같은 걸 하나 만드는 건 어떨까 합니다. 자동차산업, 자동차 법규, 도로교통 및 자동차 문화 등을 모두 총괄해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뒷받침하고 관리하는 그런 전문기관 말이죠. 독일의 교통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지 않겠나 싶은데요.

 

과연 대한민국의 자동차는, 자동차 환경은, 도로는, 그 법규와 문화는 어떤 모습으로 진행되고 다져지게 될까요? 이제 진지하게 큰 틀에서 생각하고 논의를 해봐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