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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미세먼지 필터를 장착하고 나오는 착한(?) 가솔린 차들

우리나라에 등록된 자동차의 수는 2250만 대가 넘습니다. 엄청나게 늘어났죠. 이렇게 차가 많으니 그로 인한 소음 공해나 대기오염 문제도 늘 수밖에 없을 텐데요. 환경 보호가 국제적인 이슈가 되면서 자동차 제조사의 이산화탄소 감축은 숙명이 되었습니다. 배출 기준을 못 지키면 엄청난 벌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에까지 처하게 됐죠.


어디 그뿐인가요? 질소산화물 과다 배출과 이와 관련 있는 디젤 게이트로 인해 디젤차는 지탄의 대상이 됐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다소 억울한 면이 있는) 미세먼지 오염의 주범이라는 딱지까지 붙어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성장하던 디젤 시장이 곤두박질치고 말았죠. 하지만 제조사 입장에서는 그럼에도 디젤은 CO2 규제에 대응할 수 있는 유효한 기술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자본과 기술력이 되는 일부 회사들은 디젤을 버리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될 때까지 시장에서 버팀목이 되어주길 바라며 엔진 개발 및 후처리 장치 개선 등에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 덕인지 최근에 나오는 일부 디젤 자동차의 질소산화물 배출량은 기준치 주변에 맴돌며 희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테온 TDI 엔진 / 사진=VW


또 다른 문제, 가솔린 직분사 엔진 

디젤의 질소산화물 문제가 여러 노력을 통해 다소나마 진정 되는 사이, 다른 한쪽에서는 가솔린 직분사 엔진의 오염 문제를 비판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디젤 게이트 이전부터 계속 지적되어 왔던 것으로, 엔진의 성능을 끌어 올리고 연비 효율을 높게 하는 가솔린 직분사 엔진이 늘면서 그것의 내구성과 불완전 연소에 따른 배출가스 문제가 함께 언급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 2012년 독일 자동차클럽 ADAC가 자체 실험 결과를 하나 공개하게 됩니다. 필터가 장착된 디젤 자동차보다 가솔린 직분사 엔진에서 훨씬 더 많은 양(많게는 수백 배)의 분진이 나온다는 내용이었죠. 미세먼지와 가솔린 직분사 엔진의 상관관계를 보다 많은 대중이 알게 된 또 하나의 의미 있는 계기였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3년, 스위스 베른 대학의 연구에서도 가솔린 직분사 엔진이 미세먼지를 많이 배출한다는 실험 결과가 나왔습니다. 베른 대학은 여기서 더 나아가 PSI와의 합동 연구를 통해 2015년에는 가솔린 엔진이 상당량의 2차 미립자 물질을 생성한다는 내용의 논문을 작성했고, 이 논문이 네이처지에 실리며 역시 이슈가 됐습니다.


다시 2016년에는 독일 기술 검증 기관인 튀프(TÜV)의 발표가 있었는데요. 가솔린 직분사 엔진의 자동차가 내뿜는 미세먼지가 많게는 WHO 지정 기준보다 1천 배 더, 디젤 엔진의 10배까지 배출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소식 또한 곳곳으로 퍼져나가며 여론을 환기시켰습니다.

가솔린 직분사 엔진 활성화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카리스마 / 사진=favcars

같은 해, 독일 전문지 아우토빌트는 배출가스 실험 결과 하나를 공개합니다. 디젤 자동차는 필터(DPF) 덕에 거의 미세먼지 배출량이 없었던 반면, MPI 엔진, 그리고 가솔린 직분사 엔진이 장착된 자동차들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미세먼지를 배출했던 것이죠. 당시 이 소식을 제가 처음 우리나라에 전했는데 '뭔 풀 뜯어 먹는 소리냐'는 등의 비판 댓글이 여럿 달렸던 것이 기억납니다. 자동차에 관심 있는 일부를 제외하면 여전히 직분사 엔진의 이런 문제는 대중의 눈 밖이었습니다.

당시 모터그래프에 관련 글을 썼을 때의 자료 / 출처=모터그래프

이 외에도 많은 단체가 가솔린 직분사 엔진의 미세먼지 과다 배출 문제를 이야기했습니다. 더는 방치할 수 없는 상황까지 흘러왔습니다. 결국 가솔린 직분사 엔진(GDI)에도 필터(GPF)를 장착해야 한다는 공통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죠. 이에 대해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EU 역시 대책을 내놓게 됩니다.


필터 장착하라는 목소리 쏟아져

EU의 강공으로 해법 마련된 유럽

2017년부터 새롭게 적용된 연비 및 배출가스 기준이 해답이었죠. 새 연비법은 디젤은 물론 가솔린 자동차의 배출가스 기준까지 강화했습니다. 이제 필터를 달지 않고서는 가솔린 직분사 엔진을 유럽에서는 팔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디젤 게이트로 잔뜩 눈치를 보던 VW은 2016년 1.4 TSI 엔진이 들어간 티구안에 가솔린 미립자 필터(GPF)를 장착했습니다. 2.0 TFSI 엔진이 들어간 아우디 A5 앞바퀴 굴림 모델에도 역시 GPF가 들어갔죠.

티구안에 들어간 GPF / 사진=VW

볼보는 XC 40과 XC60, XC90 등 거의 모든 라인업에 트림별로 GPF를 장착했고, BMW와 벤츠, 푸조와 오펠, 포드 등도 모델에 따라 가솔린 미립자 필터를 장착하고 있습니다. 마쯔다의 경우는 이 필터를 장착하는 대신 다른 방법으로 가솔린 직분사 엔진의 미세먼지 기준치를 달성하려 하고 있죠. 따라서 우리나라 언론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가솔린 미립자 필터가 의무 장착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EU의 기준을 달성하기 위한 가장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이 필터가 쓰이고 있는 것입니다.

A5 / 사진=아우디

XC40 /사진=볼보


필터와 직분사 엔진의 역사 (feat. 벤츠)

사실 배기가스용 필터와 직분사 엔진 역사는 제법 오래된 것입니다. 직분사 엔진이 자동차에 가장 먼저 장착된 것은 해당 기술이 나오고 수십 년이 지난 1955년 메르세데스 벤츠 300SL이 처음이었습니다. 이후 1997년형 미쓰비시가 카리스마라는 세단에 현대적 형태의 직분사 엔진이 장착되었고, 이후 계속해서 발전해 지금은 모든 제조사가 이 방식을 가솔린 자동차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55년형 300SL / 사진=다임러

필터 역시 가장 먼저 달린 것은 메르세데스 벤츠 모델이었는데요. 1985년형 W126 북미형 S클래스(디젤)에 처음으로 미립자 필터(DPF)가 장착됐습니다. 하지만 심각한 내구성 문제로 3년 후 필터는 사라지게 되죠. 그리고 2000년 이후 프랑스와 미국 부품 업체들의 노력으로 효과적 디젤 미립자 필터가 개발돼 푸조 등에 달리며 대중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가솔린 미립자 필터 경우는 2010년 이후에야 본격 연구되기 시작했는데, 역시 프랑스 부품 업체인 포레시아에 의해 2014년 처음 시제품이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같은 해 메르세데스 S500에 처음으로 가솔린 미립자 필터가 장착되죠. 그러고 보니 공교롭게도 직분사 엔진부터 디젤, 가솔린 미립자 필터 모두 벤츠와 관련이 있네요.

2014년 GPF를 채택한 S500 / 사진=다임러


그 누구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대책, GPF

이제 유럽은 올해부터 GPF가 없이는 가솔린 자동차를 판매할 수 없는 환경이 마련됐습니다. 디젤과 가솔린 모두 배출가스 기준을 강화한 덕에 미세먼지의 공포로부터 한 발 멀어질 수 있게 됐죠.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가요? 한국의 경우 디젤은 유럽연합의 법을 적용받지만 가솔린은 미국 배출가스법을 가져다 쓰고 있습니다.


그러니 유럽처럼 당장 가솔린 직분사 엔진용 필터를 장착하지 않아도 됩니다. 자동차 회사가 자발적으로 GPF를 달지 않은 이상 강제할 근거가 없고, 여전히 직분사 엔진으로 인해 발생하는 많은 양의 미세먼지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 등으로부터 밀려오는 엄청난 양의 오염 물질이 우리 내부 요인과 합쳐져 국민들은 지금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차량 2부제나 공짜 대중교통 정책도 꼭 필요한 것이라면 펼쳐야겠죠. 하지만 가솔린 미립자 필터는 세금을 들이지 않고도 미세먼지 문제를 일정 부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내용이 아닌가 합니다. 최근 독일의 한 언론에서는 자동차 등 이동 수단으로 인해 발생하는 대기 오염 문제가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제 이런 뉴스, 한국에서 계속해서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추가 : 얼마전에 작업했던 <유럽인들만 타는 한국의 자동차들>이라는 동영상입니다. 편하게 감상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