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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멈춰선 공장, 지금 폴크스바겐에선 무슨 일이?

배출 가스 조작 프로그램을 사용하다 적발된 폴크스바겐은 이후 여러 문제에 부딪히며 바람 잘 날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배상 등을 통해 사태가 완전히 마무리될 때까지 얼마나 더 큰 비용이 들지 모르는 상태이고, 한국에서는 인증서류 조작과 관련해 판매 중지 조처가 내려졌습니다. 그 외에 독일을 비롯해 여러 국가에서 디젤 게이트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한 행동이 이뤄지고 있죠.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독일 다수 언론을 통해 폴크스바겐 공장이 멈출 거라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디젤 게이트 이후 전열을 정비, 올 상반기 세계 판매량 1위를 차지한 폴크스바겐 그룹이었기에 생산 라인 가동 중지 소식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도대체 폴크스바겐 그룹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폴크스바겐 츠빅카우 골프 생산 라인 / 사진=폴크스바겐

협력업체의 납품 거부

폴크스바겐 그룹은 최근 협력업체 두 곳으로부터 부품을 납품받지 못해 부분적으로 공장이 중단되는 사태를 맞았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차동기어를 감싸는 구조물(하우징) 납품업체 ES Guss와 자동차 시트 커버를 납품하는 카트림(Cartrim)이 폴크스바겐으로부터 당한 계약 해지가 부당하다며 보상을 요구했고, 이를 폴크스바겐이 거부하자 부품 납품 거부로 대응한 것입니다.

여기까지 내용만 놓고 보면 부품업체들이 거대 자동차 기업을 상대로 무모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겠지만 현재 독일의 다수 자동차 전문가와 언론은 폴크스바겐에게서 이번 사태의 원인 찾고 있습니다.

계약 해지 이유

독일 대중지 빌트 주말판 빌트 암 존탁은 폴크스바겐 그룹이 카트림이 납품하는 포르쉐 카이엔 시트 커버와 투아렉 커버가 자신들이 원하는 수준의 품질을 보여주지 못했다며 지난 6월 말 팩스로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품질 이상을 이유로 삼았으니 일단 명분은 분명해 보이는데요. 그런데 카트림에 보낸 해지 통보에 ES Guss까지 납품 거부에 동참, 폴크스바겐 그룹 미션 생산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는 카셀 공장이 당장 근로시간 단축은 물론 미션 조립 불가에 따른 그룹의 생산라인 가동 중단이라는 긴급 상황을 맞게 됐습니다.

포르쉐 카이엔 시트 / 사진=폴크스바겐

진짜 이유는 디젤 게이트로 인한 협력자 쥐어짜기?

위에 언급된 두 협력업체는 프리벤트(Prevent) 그룹이 올봄 인수를 한 곳으로, 프리벤트의 모회사는 보스니아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간 폴크스바겐 그룹에 부품을 납품하며 성장해온 회사들이기에 이번 파동은 말 그대로 사운을 걸고 벌이는 저항인 셈인데요. 이렇게까지 강하게 맞서며 고소 등, 처절한 법적 분쟁까지 간 진짜 이유는 시트 커버 품질이 아닌 다른 것에 있다는 것이 일반적 시각입니다.

작년 9월 디젤 게이트가 터진 이후 폴크스바겐은 엄청난 배상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미국 이외에는 어떤 나라에서도 배상을 하지 않겠다는 강수를 띄운 것도 천문학적 벌금이 회사 존립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돈을 마련해야 한 폴크스바겐은 협력사에게 납품 단가를 낮춰줄 것을 요구했고, 거기서 나온 이익금을 디젤 게이트 대응 자금으로 쓰려고 한 것이라는 게 이곳 현지 언론 분석 내용입니다. 

파사트 시트를 조립 중인 직원 / 사진=폴크스바겐

그런데 카트림과 ES Guss 등이 납품 단가 인하라는 폴크스바겐 측 요구에 응하지 않으며 반발했고, 결국 폴크스바겐이 계약해지라는 악수를 두며 극단적인 상황에까지 오게 됐습니다. 현재 폴크스바겐은 법원을 통해 부품 인수에 대한 강제 집행을 허락받았지만 프리벤트 그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독일 법원에 다시 항소했습니다. 그러자 폴크스바겐은 다시 협력사 대표 고소나 강력한 손해배상 등의 모든 법적 방법도 동원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물론 양측 모두 극단적 상황까지 가지 않기를 바라며 협상과 중재 노력을 계속 진행하고 있지만 당장 이번 주부터 볼프스부르크의 골프 생산라인이 멈춰 섰고, 그 외에도 여러 공장에서 근로시간 단축이나 라인 가동 중단 등의 조치가 이뤄지고 있어 생산 차질에 따른 손해는 피할 수 없게 됐습니다. 

하지만 앞서 밝혔듯 디젤 게이트로 인한 일종의 협력자 쥐어짜기에 따른 분쟁이라는 분석이 대부분이라 폴크스바겐에게 여론이 무작정 동정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미 디젤 게이트가 터졌을 때 우리나라를 포함, 세계 곳곳에 있는 폴크스바겐 협력사가 염려했던 부분이 바로 납품 단가 인하 요구라는 얘기가 있었는데 결국 이렇게 곪았던 곳이 터져 나온 게 아닌가 싶습니다.

볼프스부르크 공장 전경 / 사진=폴크스바겐

트럭을 포함 거의 모든 그룹 내 제조사 차량 생산에 차질이 생길 것으로 보이는 이번 납품 거부 사태는 기업의 부도덕한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게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협력사와의 갈등과 분쟁에 따른 손해, 부품사는 물론 폴크스바겐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받아야 하는 감원 공포와 월급 감소 등의 경제적 피해, 그리고 첨예한 노사 갈등 예고. 무엇보다 디젤 게이트 이후 계속해서 브랜드에 대한 신뢰 감소라는, 돈으로 선뜻 환산할 수 없는 후유증에서 쉽게 벗어나기 힘들어 보입니다.

어떻게 결론이 나든 폴크스바겐 그룹이 디젤 게이트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아니 어쩌면 온전히 그때로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꼬일 대로 꼬여버린 폴크스바겐 디젤 게이트를 두고 독일 자존심에 상처이자 부끄러움으로 오래도록 남을 거라는 어느 독일인 이야기가 새삼 크게 와 닿는 그런 날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