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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독일에서 디젤차 판매가 늘어난 5가지 이유

독일 연방자동차청(KBA)이 최근 발표한 상반기 독일의 신차 판매 결과는 많은 이들의 예상을 빗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작년 9월 터진 디젤 게이트로 더 이상은 디젤의 판매가 늘지 않을 것이라 봤는데 그와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결과가 공개된 후 독일 경제지 매니저 매거진은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지를 분석하는 기사를 냈습니다. 해당 언론의 분석에 제 개인적 의견을 더해 그 원인을 한 번 짚어봤습니다.


1. 신차 판매 자체가 늘었다

매니저 매거진은 우선 전체적으로 독일에서 올 상반기 동안 굉장히 많은 신차가 판매됐다는 점을 원인 중 하나로 꼽았습니다. 총 1,733,839대의 자동차가 판매됐는데 이는 2015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7.1%나 증가한 수치입니다. 2009년 폐차 보조금제도가 시행돼 많은 판매량을 기록한 이후 가장 높은 수치죠. 이런 분위기는 하반기까지 이어질 거로 보이는데요. 독일 내 경제 상황이 안정되어 있다 보니 자동차 구매 수요도 계속 늘어나는 듯합니다.

최근 4년 상반기별 독일 내 디젤차 판매량 및 점유율 비교

2013년 상반기 디젤차 판매량 및 점유율 : 711,148대 / 47.3%

2014년 상반기 디젤차 판매량 및 점유율 : 738,605대 / 48.0%

2015년 상반기 디젤차 판매량 및 점유율 : 778,608대 / 48.1%

2016년 상반기 디젤차 판매량 및 점유율 : 812,440대 / 46.9%

올 상반기 독일에서 디젤 승용차 판매량은 총 812,440대로 2015년 상반기 디젤 자동차 판매량보다 4.3%가 늘어났습니다. 다만 디젤 자동차 점유율을 보면 46.9%로 약간 줄어든 것을 볼 수 있는데, 결과를 보면 아예 디젤 게이트의 영향을 안 받았다고 할 수 없으나 생각했던 것만큼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라 할 수 있겠습니다.


폴크스바겐 TDI 엔진 / 사진=폴크스바겐


2. 업무용으로 여전히 선호되고 있는 디젤차

매니저 매거진은 두 번째 디젤 판매량의 증가 이유로 여전히 법인들의 디젤차 선호현상을 거론했습니다. 자동차세가 가솔린에 비해 적고 유류비 등에서도 이점이 있기 때문에 여전히 많은 회사가 업무용으로 디젤차를 사고 있다는 본 것입니다.


3. 계속해서 잘 팔려 나가는 SUV

SUV는 세그먼트별로 따졌을 때 C세그먼트인 준중형(25.9%) 다음으로 높은 20.4%의 점유율을 보입니다. 판매되는 모델들만 90여 종에 달할 정도로 다양한 SUV가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아니 오히려 우리는 40%에 육박할 정도로 SUV 구매 비중이 훨씬 더 높은 편이죠.

SUV가 이처럼 많이 팔린다는 건 디젤차 증가와 밀접합니다. 독일에서 판매되는 SUV의 약 70%가 디젤이기 때문인데요.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는 SUV의 디젤 비중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SUV가 일각에서 '이기적인 자동차'라고 비판받기도 하지만 인간의 소비는 대체로 개인적이고 욕구가 그대로 반영되는 행위라는 점, 따라서 환경이나 대기오염이라는 큰 사회적 이슈가 SUV가 주는 편리함이나 경제성을 당장 넘어서기는 어렵다는 것 등이 냉정한 현실이 아닐까 합니다. 따라서 디젤차 배기가스 문제도 이런 소비 성향을 이해해야 좀 더 현실적 해법이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독일 2016년 상반기 SUV 베스트 셀러 TOP 10

1위 : 티구안 (27,016대)

2위 : 포드 쿠가 (17,276대)

3위 : 오펠 모카 (16,168대)

4위 : 아우디 Q3 (15,620대)

5위 : 닛산 캐시카이 (14,869대)

6위 : BMW X1 (13,831대)

7위 : 현대 투산 & iX35 (13,514대)

8위 : 메르세데스 GLC & GLK (13,023대)

9위 : 아우디 Q5 (12,672대)

10위 : 스코다 예티 (11,111대)


쿠가 / 사진=포드


4. 반디젤 정서, 아직 소비 심리에 영향 못 끼쳐

디젤 게이트 이후 번지고 있는 반디젤 정서가 정착 차를 구매하는 소비자 전반에 파고들지 못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언론에서 끊임없이 폴크스바겐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고, 또 대기오염이나 인체 유해성을 지적하고 있지만 여전히 디젤차에 대한 선호도가 쉽게 무너지지 않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독일 연방정부나 지방 정부 등에서는 디젤차의 도심 진입을 막으려는 움직임이 있긴 하지만 당장 디젤차를 소비하는 데 영향을 끼칠 정도로 쟁점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당장 디젤의 문화, 디젤의 시대가 저문다고 보지 않는 소비자들이 여전히 많다고 보는 게 무리는 아니란 생각입니다.


5. 만족스럽지 못한 대안 세력들

이처럼 독일의 운전자들이 당장 디젤이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보는 이유 중 큰 것이 바로 대안 세력이 제대로 성장을 못 하고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먼저 가스충전소 자체가 독일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인프라가 제대로 안 갖춰진 상태에서는 빠른 성장세를 기대하는 건 무리일 수밖에 없겠죠. 이는 전기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전기차 활성화를 메르켈 총리가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여전히 판매량은 제자리걸음 수준입니다. 올 상반기 독일에서 판매된 전기차는 총 4,357대인데, 이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오히려 19.3%나 줄어든 결과입니다. 그나마 플러그인 하이브리드가 14.7%의 성장세를 보여 가능성을 보여줬는데요. 충전소 문제와 높은 구매가격 등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전기차나 수소연료전지차 활성화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전기차 i3 / 사진=BMW

그 외에도 디젤차 판매량이 독일에서 흔들리지 않고 있는 이유를 들자면 지금처럼 문제가 된 질소산화물 관련한 다양한 테스트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합니다. 폴크스바겐으로 시작된 디젤 게이트는 디젤차 전반의 배기가스 위해성 논란으로 확장됐죠. 그런데 유럽 각국의 조사, 또 자동차 매체나 연구 기관의 조사 결과들이 나오면서 유로6 엔진을 단 디젤의 경우 모델별로 제조사별로 질소산화물 배출량에 편차가 크다는 점이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독일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폴크스바겐이나 BMW의 유로6 엔진들이 비교적 실제 도로테스트에서 좋은 결과를 보여줬기 때문에 이런 내용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어느 정도 구매에 영향을 끼친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또 발 빠르게 디젤 배기가스에 대응하기 위한 기술적 대안을 제시하면서 소비자들을 안심시키려 한다는 점도 의미 있는 움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개인적으로도 한동안 다음 차는 디젤을 선택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질소산화물 문제 등이 실도로 테스트를 통과해 규제 수준 이하로 해결이 된다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은 디젤차를 후보군에서 완전히 제외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일부에서 가솔린 직분사 엔진의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디젤만큼이나 높다는 조사 내용도 있으니 이 점도 디젤 구매에 작용을 하지 않았겠냐 물을 수 있을 텐데요. 적어도 독일을 기준으로 본다면 그리 큰 이슈는 아닙니다. 참고로 한국 환경부나 독일 환경부, 그리고 언론 등이 일관되게 가솔린 엔진에서 나오는 질소산화물보다 디젤엔진에서 나오는 질소산화물 독성이 더 높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제조사 반디젤 전략, 영향을 끼칠까?

디젤 게이트 이후 폴크스바겐은 디젤차보다는 장기적으로 전기차나 수소연료전지차 쪽에 무게중심을 둔 것으로 보입니다. 폴크스바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제조사가 디젤을 줄이거나 그 대안으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와 전기차 등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질소산화물 문제만이 아닌, 이산화탄소 배출과 관련해 강력한 규제 정책이 전 세계 시장을 흔들고 있기 때문에 큰 틀에서 디젤이나 가솔린 자동차는 지금과 같은 인기를 누리기 어려워질 것입니다.

하지만 디젤 게이트 이후 독일에서 큰 폭으로 떨어질 줄 알았던 디젤차 판매량이 오히려 증가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보수적인 유럽 소비문화 등을 고려할 때 전기차 등으로의 전환은 인프라 구축 문제 등과 맞물려 생각만큼 빨리 디젤차를 대신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따라서 제조사들 역시 적절하게 디젤과 그 대안들의 공존을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적어도 한동안은 말이죠. 2016년이 다 지난 후 시장 전체를 돌아봤을 때 디젤차 판매량에 어떤 변화가 생겼을지, 벌써 궁금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