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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긴급차량 길터주기를 위한 1000시간의 노력

모세의 기적이라는 표현, 잘 아실 겁니다. 긴급차량이 출동할 때 다른 차들이 길을 터주기 위해 좌우로 갈라서는 모습에 언젠가부터 붙여쓰기 시작했는데요. 어찌 보면 당연히 취해야 할 행동이 '기적'처럼 보여진다는 게 씁쓸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에 이 '기적' 자주 좀 일어나 하루빨리 일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독일에 유독 눈에 띄는 자동차 관련 기사가 있습니다. 바로 위에 언급한 길터주기 관련한 내용으로, 독일 하면 비교적 긴급차량 길터 주기를 잘하는 나라로 알려져 있는데요. 제가 이런 독일의 길터주기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면 꼭 보여드리는 사진이 한 장 있습니다.


독일 아우토반 / 사진=위키피디아

누군가 2005년에 찍은 A66 아우토반 사진입니다. 개인적으로 자주 이용하는 고속도로이기도 한데요. 비스바덴과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그리고 하나우까지 이어지는 비교적 짧은 구간의 도로입니다. 사진을 보면 차들이 모두 좌우로 바짝 붙어 정차해 있죠. 아마 사고가 있었고, 그로 인해 정체가 심해 모두 저렇게 대기를 하는 모습인 듯합니다. 

모든 차가 중앙을 저렇게 넓게 비워둔 이유는 긴급차량, 그러니까 소방차나 구급차, 또는 경찰차 등이 위급한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출동하게 되는데 그때를 위한 마련된 비상통로입니다. 저 길을 독일에서는 보통 레퉁스가쎄 (Rettungsgasse)라 부르는데, 우리 말로 직역하면 '구원의 골목길' 정도가 되겠네요.

독일은 운전학원에서부터 이 긴급출동차량을 위한 길터주기에 대해 굉장히 자세히, 중요하게 배웁니다. 실제로 독일 도로에서 긴급차량이 출동할 때 차들의 움직임을 보면 교과서적일 때가 많아 놀라곤 합니다. 올 4월에 올라온 긴급차량 출동 당시의 동영상 한 편 보시죠.


물론 항상 동영상에서처럼 완벽한 건 아닙니다. 보통 저런 경우는 차량이 적은 상태에서 사고가 났고, 그래서 비교적 여유 있게 뒤따라 오던 차들이 대응을 할 수 있을 때 가능합니다. 복잡한 도심이나 차량 통행이 잦은 시간 때 사고가 발생하면 도로가 뒤엉키는 경우가 많아 길터주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고가 났다는 걸 감지하면 그때부터 정해진 규칙에 맞게 최대한 공간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배우며, 또 그렇게 하려 노력합니다. 가끔 벌금이 세서 잘 지키는 거 아니냐고 묻는 분이 계신데, 독일의 경우 긴급출동 차량 방해를 하게 되면 기본적으로 벌금은 20유로, 그러니까 3만 원이 채 안 되는 액수만 내면 되는 수준입니다. 

길터주기는 벌금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걸 잘 알기 때문에, 또 운전면허학원에서 한 번 배운 정도로는 완전히 익힐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에 독일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말 지.겹.도.록 방송과 신문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길터주기 요령을 국민들에게 알립니다. 그것도 시도 때도 없이 말이죠. 말이 나왔으니 독일과 우리나라의 길터주기 방법이 어떤지 잠깐 확인해 볼까요?


편도 1차로 : 우측으로 밀착 (한국 및 독일)

편도 2차로 : 한국은 우측으로 밀착, 독일은 차로의 좌우로 밀착

편도 3차로 이상 : 한국은 1차로 및 3차로로 밀착해 2차로 확보, 독일은 1차로와 2차로 사이길 확보


독일 및 오스트리아 등에서 3차로 이상 길터주기 방법 / 사진=위키피디아, DJ3tausend

편도 2차로 도로에서 모두 2차로 우측으로 서행하거나 정지하라는 우리나라의 규정은 유럽식으로 바뀌는 게 좀 더 현실적이지 않나 싶습니다만,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을 겁니다. 이처럼 규정이 있긴 하지만 이를 정확히 아는 운전자들은 생각 외로 적습니다. 이는 독일도 마찬가지여서, 두 나라 모두 제대로 규칙을 숙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대응은 좀 다른 느낌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독일은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수시로 길터주기 요령을 알립니다. 특히 요즘처럼 휴가철이 되면 언론의 바지런함은 극에 달하죠.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관련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나 뉴스나 신문에 소개되는 정도이고, 아니면 소방훈련이 있을 때 지역 언론 등에서 간단히 소개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좀 더 적극적으로 언론이 이런 부분을 다루고 지속적으로 알리는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끝으로 최근 많은 독일 언론을 통해 알려진 동영상 한 편을 보여드릴까 하는데요. 독일 북부의 도시 함부르크에 있는 미니아투어 분더란트(miniatur wunderland)라는 미니어처 박물관이 있습니다. 한 번 소개해드린 적 있는 곳인데, 놀라운 미니어처의 세계가 펼쳐져 있고, 1년에 백만 명 이상의 관람객들이 여기를 찾고 있습니다. 


사진출처=miniatur-wunderland.de

그런데 이 미니어처 박물관이 길터주기와 관련한 동영상을 공익적 차원에서 직접 제작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 비디오는 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라는 문구로 시작되는 2분 55초 분량의 영상은 어떻게 해야 흔히 말하는 골든타임(5분)에 맞춰 긴급차량이 현장에 다다를 수 있는지를 미니어처를 이용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짧은 영상을 위해 자그마치 1,000시간을 투자했다고 하는데요. 독일어로 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냥 화면만 봐도 충분히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영상 마지막엔 기본적인 길터주기 요령도 덧붙였는데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우선 사고로 차들이 정체하게 되면 라디오 볼륨을 줄여 긴급출동 차량의 사이렌 소리나 안내를 잘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좌우로 밀착해 통행로를 확보해야 하며, 앞차와의 간격을 둬서 비상주행로를 막는 차량이 있을 때 끼어들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무척 간단한 내용이지만 모두가 이와 같은 방법으로 길을 터주기 위해서는 요령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이해는 꾸준한 교육과 홍보를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단속이나 벌금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여러분도 이 영상 보면서 다시 한 번 길터주기의 중요성을 인식하셨으면 좋겠고, 그래서 처음 말씀드린 것처럼, 길터주기가 기적이 아닌, 자연스러운 일상적 대응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