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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현대 내수 역차별 논란, 제조사와 소비자 가상 대화

엊그제 현대차 투산이 미국 고속도로 안전보험협회(IIHS)가 실시한 조수석 스몰 오버랩 테스트에서 같이 테스트를 받은 6개 모델을 제치고 유일하게 '우수' 등급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런데 이 소식을 전한 온라인 자동차 매체 모터그래프는 범퍼레일 구조가 한국과 미국이 다르다는 점을 소개했고, 이로 인해 다시 한 번 현대차의 국내 시장 역차별 논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논란에 대해 현대차는 억울하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반대로 소비자는 '차별은 없다더니 이럴 줄 알았다'는 반응들을 보이며 비판을 이어갔죠. 과연 제조사는 무엇이 오해이며 억울하다는 입장을 보이는 걸까요? 서로 맞닿을 거 같지 않은 차별 논란에 대해 가상의 인물을 내세워 주장하는 바를 대화 형식으로 풀어봤습니다. 제조사 입장은 관련 제조사 관계자에게 직접 확인한 내용을 중심으로 기록됐다는 점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투산 / 사진=현대자동차


소비자 : 기사 보셨죠? 범퍼레일이 미국에서 판매되는 투산은 측면까지 길게 보강돼 있고 한국에서 판매되는 투산은 짧게 돼 있더군요. 왜 이런 차이가 있는 건가요?

제조사 : 미국은 2012년부터 스몰오버랩 충돌 테스트라는 걸 실시하고 있습니다. 차량 전면부를 기준으로 운전석 쪽으로 약 25% 부분을 시속 64km/h로 벽과 충돌시켰을 때 얼마나 안전한지를 측정하는 겁니다. 이 테스트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시장에 판매하는 모든 차들은 보강재를 덧대고 있어요. 현대차만의 대응은 아닙니다. 

그리고 범퍼레일의 길이와 스몰오버랩 충돌 테스트에 따른 안전과 얼마나 상관이 있는지 사실 말씀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충돌은 시뮬레이션 해석보다 실차 충돌 결과를 토대로 보강하고 있죠. 다만 범퍼레일 구조 뒤에 있는 것들이 실질적으로 스몰 오버랩 테스트에 대응하기 위한 구조물들이라 보는 게 맞냐고 물으시면, 네. 맞습니다.

하늘색 표시 부분이 국내용(사진 아래)에는 없는 범퍼레일 코너 익스텐션 부분. 그 뒤에 녹생과 주황색 표시된 부분이 충돌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알려진 구조물로 보임. 그리고 범퍼레일의 형태가 다르게(민자형) 되어 있음. / 사진=모터그래프 유튜브 영상 캡처

*사진은 모터그래프의 동의 하에 캡처한 것으로, 무단 사용은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소비자 : 어떤 언론의 보도를 보면 한국과 유럽형의 범퍼레일은 보행자 충돌 테스트가 있는 국가에선 범퍼가 충격을 빨리 흡수하게 하려고 짧게 되어 있는 거라고 하던데...

제조사 : 글쎄요. 보행자 충돌 테스트에 대응하는 구조는 차량 보닛이 더 중요합니다. 범퍼레일은 부품 보호를 통해 보험료 산정에 더 유리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봐야 할 거예요. 

소비자 : 보행자 보호와 범퍼레일 구조는 직접적 관련이 없다?

제조사 : 제가 아는 바로는 그렇습니다. 좀 다른 얘기지만 충돌 시 타이어가 이탈하느냐 마느냐도 중요합니다. 로어암이 휘든 부러지든 해서 타이어가 실내로 밀려들어 가지 않도록 해야 하죠. 반대로 A필러는  잘 버텨줘야 합니다.  이 모든 부분이 스몰 오버랩 충돌 테스트를 위해 강화된 것들이죠.

소비자 : 그렇다면 A필러를 비롯해서 앞부분이 전체적으로 스몰 오버랩 테스트에 대응하기 위해 더 강화되었다고 봐야 한다는 얘긴가요?

제조사 : 정확하게 말씀 드리긴 어렵지만, 무관하다고 말씀은 못 드리겠습니다.

소비자 : 이야기를 좀 정리해 보죠. 범퍼레일은 부품 보호와 관련이 있지 충돌 테스트에 큰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범퍼레일의 길이가 아니라 그 외 구조물들이 중요하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스몰 오버랩 충돌 테스트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A필러 등을 포함해 앞부분 상당 부분이 보강이 될 수밖에 없다. 맞나요?

제조사 : 네. 이건 어느 한 제조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에서 자동차를 팔고 있는 모든 제조사가 동일하게 고민하는 대목입니다.


C클래스의 차체. 노란색 화살표로 표시된 부분이 보통 충돌 시 안전을 위해 중요한 부분들이며, 스몰 오버랩 테스트에서는 이 부분들이 주로 보강이 된다고 합니다. / 사진=다임러

소비자 : 그러니까 현대든 벤츠든, 어떤 회사가 됐든 미국에서 판매되는 차들의 충돌 안전성은 더 보강될 수밖에 없고, 이는 국내용보다 더 강회된 구조물이라고 봐도 된다는 거네요. 법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다는 건데 그렇다면 질문을 하나 드리고 싶어요. 범퍼레일 가격이 만 원 이하의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미국식 범퍼레일은 부품 보호에 좀 더 좋은 구조이고요. 그렇다면 국내에서 투산을 타는 고객들에게도 부품보호에 도움이 되는 범퍼레일을 달아주면 안되는 겁니까?

제조사 : 그 부분에 대해선 할 말이 없습니다. 

소비자 : 늘 하는 이야기이지만, 우리나라 정부는 이런 안전에 대해 정말 무심하다는 생각입니다. 우리 정부가 선제적 조치를 하지 못한다 해도, 적어도 미국에서 어떤 테스트를 진행할 때 이게 국민에게 더 안전한 거 같다고 공감한다면 발 빠르게 움직여 이를 적용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니겠냐는 거죠. 그리고 제조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디파워드냐 어드밴스드냐 등의 에어백 논란도 그렇지만, 미국은 미국만의 법규를 정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에 맞춘 것일 뿐, 우리나라에도 그런 법규가 있다면 동일하게 하게 된다고 늘 말하는데요. 그런데 법규 이상의 노력을 보여주는 게 큰 틀에서는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내수 시장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 전략이라는 생각은 안 하나 봐요.

예전에 머리보호대 논란이 심각했죠. 현대차 구형 쏘나타 택시 등에 보면 2열 중앙석에 머리보호대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승합차도 중앙의 접이식 좌석들은 구조적으로 머리보호대가 없죠. (말도 안되는 10인승 이상의 승합차 법부터 없애야겠지만) 이에 대한 비판이 있어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현대가 일부 모델들부터 2열 중앙석에도 머리보호대를 설치하기 시작했어요. 

상품성 강화 차원이라고 현대차 관계자는 이야기를 했지만 법으로 강제하지 않아도 이런 식으로 헤드레스트를 설치하는 전향된 자세를 보여줬잖습니까? 범퍼레일 부분도 그렇고, 이왕이면 충돌 안전성 강화 차원에서 비용 상승을 최소화해서라도 안전성 강화를 자발적으로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오히려 저는 박수받을 수 있을 거라 봐요.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하기 위한 훨씬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합니다. 그래야 불필요한 논란에 휩싸이지 않을 겁니다. 

제조사 : 저희도 노력을 한다고 하지만 아직 부족한 게 있다는 거 인정합니다. 하지만 의도적인 차별은 하지 않습니다. 미국에선 미국에 맞게 모든 제조사가 대응합니다. 아까 머리보호대 말씀하셨지만, 유럽에는 모든 차가 머리보호대를 탑승정원 수에 맞게 설치해야 합니다. 그건 그 지역에 관련 법이 있기 때문이죠. 오히려 미국은 이게 없습니다. 우리도 그렇고요. 법으로 정해주면 제조사는 따릅니다. 그러니 저희로서는 법을 자꾸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조만간 미국에서 스몰 오버랩 충돌 테스트보다 더 강화된 테스트를 진행할 거라고 하더군요. 그러면 저희를 비롯한 모든 제조사는 다시 강화된 대응책을 내놓아야 하고 결국 다시 차별 논란이 일어날 겁니다. 이런 현실을 좀 이해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소비자 : 국가가 제대로 이런 문제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 비판해야죠. 저도 화가날 지경이니까요. 하지만 기업이 존경받고 박수받는 건 법을 따르는 것 이상의, 법이 챙기지 못하는 부분까지 소비자들을 챙기려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나라가 어떻게 하든, 다른 기업이 어떻게 대응하든 그것보다는, 우리가 우리를 그간 응원해주고 키워준 국민을 위해 기업으로서 할 수 있는 게 뭔지를 철저히 고민했으면 합니다. 저는 거기서 논란 해결의 답을 얻을 수 있을 거라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