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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독일에서 논란 중인 과속운전 사망사건

지난 주말, 곳곳에서 끔찍한 사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미국에서는 급진적 이슬람주의자 테러로 추측되는 최악의 총기 사고가 발생했고, 중국 상하이 공항에서는 누군가가 만든 사제폭발물이 터져 여러 명이 다쳤습니다. 또 유로 2016에 참가 중인 러시아와 잉글랜드의 팬 폭력사태가 발생해 급기야 유럽축구연맹은 한 번 더 이런 일이 일어나면 두 나라를 유로대회에서 제외하겠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렇게 폭력으로 가득한 주말을 보내면서 마음이 무거워진 제 눈에는 또 하나의 논란이 될 만한 기사가 들어 왔습니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자동차에 치여 숨진 한 가장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사고를 낸 운전자에게 내려진 판결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를 물었고,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교통사고 현장 / 사진=픽사베이


사람이 죽었는데 집행유예?

슈피겔이 전한 내용은 이랬습니다. 53세의 마리오 씨는 의사를 만나러 가기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시내를 걷던 그는 반대편 도로로 길을 건너려 했죠. 하지만 그 순간 검은색 메르세데스 E 500이 그를 치를 치고 달아났습니다. 차에 부딪힌 마리오 씨는 몇 미터를 날아가 머리부터 땅에 떨어졌고, 그 자리에서 사망하게 됩니다. 

1988년생인 벤츠 운전자는 몇 시간 후 변호사와 함께 경찰서를 찾아 자수합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난주, 이 사건에 대한 최종판결이 내려졌습니다. 결과는 의외였습니다. 판사는 우선 현장에서 도망쳤다 자수를 한 행위에 대해 1년의 집행유예를, 그리고 1년 11개월 동안 운전을 하지 말라며 면허정지 명령을 또한 내렸습니다. 


정치인까지 가세한 비판 여론

목격자들은 검은색 벤츠가 사고 이전부터 뭔가 위험한 느낌을 줬다고 증언했습니다. 또 한 목격자는 제한속도 50km/h 구간에서 벤츠 차량은 75km/h 정도의 속도를 내며 과속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판결은 두 명의 전문가 증언에 더 집중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마리오 씨의 경우 설령 제한속도 내에서 차에 받혔다 해도 죽음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증언을 한 것이죠.

운전자와 보행자 모두 충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일찍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다 하더라도 큰 사고로 이어졌을 거라고 했습니다. 슈피겔은 판결 소식을 접한 많은 독일인이 비판을 쏟아냈다고 전했습니다. 여당 측 한 정치인은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관점에서 판결을 내리지 않은 것은 옳지 않다고 했고, 운전자에 의해 보행자가 다치거나 죽는 경우 감옥에 무조건 보내야 한다는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거기다 평생 면허증 발급을 받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도 했죠.


처벌 강화 VS 훈련을 통한 위험 자각

하지만 일각에서는 처벌을 강화하는 게 현실적으로 큰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슈피겔과 인터뷰를 한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대학의 얀 조프스 교통법 전문교수는, 사람이 죽었다는 결과만 놓고 보면 어떤 판결도 약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며, 과속운전을 하는 사람들은 배려심 없고 이기적인 운전자들이기는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과속운전을 한다고 인식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처벌이 강화된다고 해도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과속운전에 대해 스스로 경계하지 않는다는 것인데요. 얀 조프스 교수에 따르면 가장 좋은 것은 훈련을 통해 과속이 얼마나 위험한지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슈피겔은 스위스의 예를 들며 처벌 강화와 훈련을 통한 자각 중 어떤 것이 맞는지를 독자들에게 물으며 끝을 맺었습니다.

참고로 스위스는 제한속도를 확실하게 넘은 운전자의 경우 적어도 1년을 무조건 감옥에서 보내거나 면허를 취소시키도록 법이 강화된 상태입니다. 독일에서도 지난 2012년 일부 법조인들이 사람의 생명과 건강이 최고 수준에서 보호받아야 한다며 인명 교통사고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습니다.


사진=픽사베이


처벌은 강화하되 경우 별로 처벌 정도는 차이 둬야

사실 우리는 누구나 보행자로서 언제든 사고를 당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우리는 누구나 운전자가 돼 가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평소 안전한 운전을 하다 한 번의 실수로 가해자가 되는 경우, 또 늘 위험한 운전을 일삼던 운전자가 사고를 내는 경우, 이런 두 가지는  구분이 되어야 한다는 게 또한 독일 내에서 많은 이들이 공감한 의견이기도 했습니다.

독일 운전자들은 아우토반에서는 매섭게 질주하지만 주택가나 도심에 들어서면 표지판에 나와 있는 제한속도를 최대한 맞추려 하죠. 제한속도 10, 30, 50km/h 등의 구간에서 바짝 앞차에 다가서며 빨리 가라고 위협하거나 경적을 울리는 등의 비매너 운전을 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복잡한 도심일수록 서로 속도를 지키며 운전하는 게 중요합니다. 내가 지금 달리고 있는 곳의 최고제한속도가 얼마인지 인식하는 건 기본 중 기본이니까요.


사진=픽사베이

마지막으로 슈피겔은 이 내용과 관련한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독일에서 자동차에 치여 사람이 사망하는 경우 최대 5년 형을 선고받지만 많은 이들이 집행유예를 받는다. 적당하다 보는가?'라고 질문을 던졌고,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85.4%(30,793명)로 절대적이었습니다. 반대로 13.6%(4,899명)는 지금 법으로 충분하며, 경우 별로 따져 봐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당신이라면 이 물음에 어떤 의견을 내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