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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삼각대는 알아도 안전조끼는 모르는 운전자

얼마 전이었죠. 한 설문조사에서 안전삼각대 등, 자동차 고장 표시 장비를 운전자들이 고속도로에서 사용하지 않겠다고 답한 비율이 51%에 달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삼각대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합니다. 하지만 절반 이상이 설치를 하지 않겠다고 답했고, 다른 조사에서도 상당수가 고속도로에서 삼각대 설치는 하지 않을 것이라 했습니다. 현실과 법이 충돌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삼각대 사진=위키피디아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그 위험성 때문입니다. 실제로 고속으로 주행하는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고장이 난 차량으로부터 100m (야간 200m) 떨어진 곳에 삼각대를 세워놓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상황에 따라선 매우 위험한 행동이 될 수 있죠. 이런 이유로 영국에서는 고속도로에서의 삼각대 설치는 금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이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지만 아직도 명확한 해답이 안 나오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LED 삼각대를 설치하자는 이야기하지만 이 역시 삼각대 자체를 도로 위에 세워야 하기 때문에 운전자들에게 얼마나 호응을 얻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또 아예 삼각대를 설치하지 않거나 그 거리를 현실적으로 좁혀야 한다는 현실론들이 나오고 있지만  조심스럽게 접근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개인적인 의견은 이렇습니다. 우선 일반도로에서 삼각대 사용은 의무화해야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삼각대 설치가 고속도로에서만 의무화되어 있죠. 일반도로 역시 사고가 났을 때 삼각대 설치를 하는 게 필요한데 이 부분이 빠져 있는 겁니다. 그리고 고속도로 경우는 설치가 가능한 상황이라면 짧은 거리에, 그리고 설치가 어렵거나 야간의 경우 갓길이나 차량 지붕, 혹은 트렁크 위쪽에 세워두게 하는 것도 방법이 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삼각대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나라의 많은 운전자가 모르거나 이용하지 않고 있는 안전조끼, 흔히 말하는 형광조끼에 대한 것입니다. 혹시 자동차 트렁크에 안전조끼를 두고 있는 분 있나요? 삼각대 조차 없는데 이런 안전조끼가 있을 리 있겠냐고요? 


형광조끼를 입고 있는 독일 경찰 / 사진=adac


또 다른 보호장비 형광조끼

지난 금요일 겪은 일을 들려드리겠습니다. 비가 많이 내리던 밤이었죠. 아내가 운전하고 제가 동승한 상태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사거리에 다다르자 신호등이 고장이 났는지 꺼져 있더군요. 운전을 하던 아내는 어두운 사거리에서 수신호를 보내던 경찰관을 보지 못했고 자칫 사고가 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굵은 빗줄기 속에 전조등에 반사된 경찰의 형광조끼가 보였습니다. 우리 쪽을 향해 멈춤 수신호를 보내고 있던 경찰을 발견하곤 아내에게 알렸고 급하게 사거리 진입 전 멈춰 설 수 있었습니다. 어두운 독일 도로에 비까지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하마터면 경찰을 발견 못할 수 있었는데 형광조끼가 제 역할을 톡톡히 해줬던 겁니다.


많은 나라에서 안전조끼 의무화

우리도 의무화해야

지난 2014년 독일은 삼각대 의무화에 이어 안전조끼도 트렁크 등에 비치하도록 법으로 정했습니다. 그동안 운전자 자율에 맡기던 것을 정부가 나서 강제한 것이죠. 그리고 이 안전조끼는 이미 여러 나라에서 의무적으로 비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스페인, 이탈리아, 크로아티아, 룩셈부르크, 뉴질랜드 등, 제가 아는 나라만 이런 정도고 프랑스나 벨기에 불가리아 등은 동승자용 안전조끼까지 마련해 놓도록 정해놓았습니다. 

독일은 한발 더 나아가 탑승 인원수에 맞게 안전조끼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만약 4명이 장거리 운행을 하는 차량에 탑승을 했다면 4명에 해당하는 안전조끼가 갖춰져 있어야 하는 겁니다. 프랑스는 아예 오토바이와 자전거 운전자에게까지 안전조끼 입는 것을 법으로 정해놓았고, 벌금도 최대 130유로가 넘게 해 엄격하게 의무화를 따르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여러 나라에서 안전조끼를 자동차 탑승자들의 필수품으로 강조하는 것은 그만큼 인명 사고를 예방하는 데 나름 효과가 있기 때문인데요. 독일도 안전조끼 외에 삼각대와 응급키트까지 갖춰야 기본 응급품목을 제대로 구비한 것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기본적으로 안전을 위해 갖춰야 할 것들에 대해 각국 정부는 명확하게 그 기준을 마련해놓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삼각대 문제조차 제대로 해결을 못 하고 있습니다. 

삼각대 문제뿐 아니라 이제라도 안전조끼를 포함해 정부가 차량 내 응급품목 의무화에 대해 의지를 갖고 당장 논의를 해나갔으면 합니다. 그리고 운전자 역시 법으로 강제돼 있지 않았더라도 자신의 안전을 위해 안전조끼나 응급키트, 그리고 삼각대에 관심을 가져야겠습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훨씬 더 안전한 자동차문화를 만들 수 있다는 거, 잊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사진=ad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