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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당신은 횡단보도에서 앞지르기를 하십니까?

재작년쯤 삼성교통문화연구소에서 자료 하나를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신호기 있는 횡단보도에서 보행자들의 교통사고 특성을 분석한 내용이었는데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오히려 신호기가 없는 횡단보도보다 사고도 많았고 사망자도 3배나 더 많은 결과를 보였습니다. 

2010년부터 3년 동안의 사고를 분석해보니 사고 건수는 신호등 있는 횡단보도에서 60% 이상 발생했고 사망자 수 역시 신호기 있는 횡단보도에서 75%나 발생했습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난 것일까요? 


사진=픽사베이

신호기가 있는 곳에서 발생한 사고의 유형을 보면 보행자의 잘못에 의한 경우는 30% 정도였고 나머지는 신호위반과 보행자 보호의무 위반 등, 운전자 과실이 70%를 차지했습니다. 보행자의 경우 파란 불빛이 점멸이 되는 시점에 횡단보도에 진입하면 (법적으로) 안됨에도 이를 무시하고 급히 건너려다 역시 급하게 신호를 받고 달려 나가던 차에 부딪힌 경우들이 많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 신호가 바뀌기 무섭게 횡단을 하다 미처 정지하지 못한 자동차 등에 치인 경우도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아무리 신호등이 있고 보행자 보호의무 구역인 횡단보도라 할지라도 이렇게 보행자가 횡단보도 이용규칙을 제대로 준수하지 못해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는 상황에 따라 보행자에게 더 큰 과실이 있다는 판례들이 있으니 늘 이 점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런데요.

이처럼 횡단보도에서 사고가 나는 많은 경우들 중 우리가 잘 모르고 있는 내용이 하나 있습니다. 횡단보도를 앞에 두고 추월을 시도하다 보행자와 사고를 내는 경우죠. 횡단보도 앞에서 추월을 시도한다? 독일을 비롯해 유럽의 많은 나라들은 법으로 아예 횡단보도 앞에서는 앞지르기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정차한 차량은 물론 주행 중인 차량 또한 횡단보도 앞이나 횡단보도 내에서는 추월을 하지 못하게 엄하게 규정을 정해 놓은 것이죠. 미국의 경우는 정지해 있는 경우만 추월하지 못하도록 정해 놓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까요?


도로교통법상 추월 금지 장소

횡단보도는 어디에?

우리나라의 도로교통법에 보면 우선 내 앞차의 좌측에 다른 차가 앞차와 나란히 가고 있는 경우에는 추월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 내 앞차가 이미 다른 차를 앞지르기하려 하는 경우에도 해선 안되게 되어 있죠. 좀 애매하긴 하지만 정지하거나 서행하고 있는 차 또한 추월할 수 없습니다. 그 외에 경찰 지시로 서행하는 차, 경찰에 의해 정지한 차량 또한 앞지르기하면 안됩니다. 

장소의 경우는 교차로, 터널 안, 다리 위, 도로의 구부러진 곳, 비탈길의 고갯마루 부근 또는 가파른 비탈길의 내리막 등 지방경찰청장이 도로에서의 위험을 방지하고 교통의 안전과 원활한 소통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하다 인정한 곳으로서 안전표지로 지정한 곳 등에서도 앞지르기를 해선 안됩니다. (교차로나 터널 안, 그리고 교량 위 등, 실선으로 차선이 그어져 있는 곳에서 별생각 없이 추월하는 분들 이 글 보고 뜨끔해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이 법 조항에 보면 중요한 횡단보도가 빠져 있습니다. 교통선진국들이 엄하게 횡단보도에서 앞지르기 금지를 법으로 강제한 것과 다른데요. 왜 횡단보도가 빠져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법으로 규정을 했든 안했든, 운전자라면 모두 횡단보도 앞에서 일단정지하는 게 가장 좋고, 그게 안된다면 속도를 줄여 서행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횡단보도에서 추월이 왜 위험할까?

그렇다면 횡단보도에서 앞차를 추월하는 게 왜 위험한 걸까요? 편도 1차로의 도로 위에 있다고 가정을 해보죠. 내 앞에는 버스, 혹은 SUV가 신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파란불이 들어왔음에도 앞차가 움직이려 하지 않습니다. 반대편 차로에는 차가 없네요. 약속 시간이 급한 마음에 추월해 횡단보도를 지나가려는데 노인 한 분이 아직 횡단보도를 다 건너지 못한 걸 발견하게 됩니다. 급정거하며 다행히 사고를 면하긴 했지만 하마터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습니다.

이런 상황이 아주 낯설지만은 않을 겁니다. 이처럼 횡단보도 상황을 앞차로 인해 잘 확인이 안되는 것을 스크린 효과라고 부릅니다. 횡단보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없는 이런 경우 무리하게 추월을 하면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또 이런 경우도 있을 겁니다. 우회전 구간입니다. 앞에 차가 파란불이 들어왔음에도 움직이지 않아 앞지르기로 코너를 크게 돌아 나가려는데 횡단보도 상황은 파란불이 들어와 있는 겁니다. 길 건너고 있던 보행자들은 추월하려던 내 차로 인해 모두 깜짝 놀라고 이내 차가운 시선들이 쏟아집니다.

정리를 해보죠. 횡단보도 상황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어려울 때는 아무리 급하더라도 조금만 참고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그 잠깐을 못 참다 큰 사고를 낸다면 그것만큼 후회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또 행정 당국도 이제는 횡단보도에서 앞지르기 금지를 법으로 명확하게 해줘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면허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에게 제대로 가르쳐야겠죠.

얼마 전 우리나라의  보행자 교통사고 사망자가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여러 상황에서 자동차와 보행자 간의 충돌이 빚어졌겠지만 일단 횡단보도를 이용하는 보행자에 대해 철저한 보호 문화부터 뿌리는 내리는 게 우선이 아닐까 합니다. 언제까지 횡단보도에서 좌우를 살펴 차가 없으면 뛰듯 길을 건너야 하고, 언제까지 보행자 신호를 지키는 차량이 뒤차들에게 경적음 테러를 당해야 하는 걸까요? 적어도 횡단보도 주변에서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경적음도 그리고 무리한 앞지르기도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운전자이면서 동시에 보행자 아니겠어요?

사진=AD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