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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수동에서 자동변속기로, 독일이 변하고 있다


몇 년 전 일입니다. 독일에 거주하게 된 한국 여성분이 지인으로부터 독일인 중고차 딜러를 소개받았습니다. 차가 필요했기 때문인데요. 어떤 차를 원하냐는 물음에 경차급이며 자동변속기여야 한다고 말을 했습니다. 딜러는 좀 난감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좀처럼 조건에 맞는 차를 원하는 기간 안에 구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죠. 결국 인터넷을 통해 몇 매물을 찾았고, 거주지에서 100km 이상 떨어진 곳까지 가 한달 반 만에 적당한 차를 살 수 있었습니다.

유럽은 아시다시피 수동변속기 달린 차가 많습니다. 특히 C세그먼트, 그러니까 콤팩트 클래스 이하의 경우 자동변속기가 달린 차를 찾기가 쉽지 않은데요. 독일은 그나마 큰 차들이 많은 편이지만 이태리나 프랑스 같은 곳은 작은 차들 천국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죠. 이런 작은 차들엔 대개 수동변속기가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강력하게 똬리를 틀고 있던 수동 지배구조에 변화가 찾아오고 있습니다. 자동변속기 차량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Q7 자동변속기 / 사진=아우디


자동변속기 증가 이유 : 노령화, 도심집중화 

조사기관 DAT에 따르면 1999년 독일 내 자동변속기를 장착한 승용차의 비율은 10%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2014년 조사에서는 자동 비율이 25%까지 늘었습니다. 15년 만에 2.5배 증가한 것이죠. 전체적으로 변화 속도가 느린 유럽에서, 특히 독일에서의 이런 변화 속도는 눈에 띄는 수준입니다. 반대로 미국의 경우 한 해 판매되는 신차의 3~4% 수준만이 수동 변속기가 달려 있고 우리나라는 더 심해 승용차의 수동 장착률이 1% 수준이라고 합니다.

북미나 우리나라 등에 비할 바는 안되겠지만 독일뿐 아니라 유럽 전체가 자동변속기 장착이 증가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왜 이렇게 빠르게 유럽에서 변속기 문화가 변화하고 있는 걸까요? 독일 자동차 클럽 아데아체(회원 1,800만 명) 한 전문가는 독일인들이 자동변속기에 마음을 주는 첫 번째 이유로 '생활의 도시화'를 꼽았습니다. 점점 사람들이 도시로 생활의 터전을 옮기고 있고, 도심 내 차량 정체가 높아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경우가 잦기 때문에 이 때 일일이 변속기 조작을 해야 하는 것이 번거롭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로는 운전자의 평균 연령층이 높아지는 걸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니까 장년층 이상 비중이 증가하면서 자연스럽게 운전 부담이 덜한 자동변속기로 돌아 선다는 것이죠. 세 번째는 이유로는 자동변속기도 이제 연비효율성이 높아졌다 점을 들었습니다. 6단에서 8단, 최근엔 9단 자동변속기까지 달리면서 과거에 비해 효율이 좋아졌습니다. 특히 수동변속기의 경우 적절한 변속 시점을 찾아가며 운전을 해야 연비를 줄일 수 있는데 변속기 작동이 미숙한 운전자들에겐 그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자율주행과 전기차 등은 자동변속기에 최적화

그리고 또 다른 이유를 들었는데 바로 자율주행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당장 사용을 할 수 있는 부분자율주행 시스템을 보죠. BMW나 EQ900 등에 장착이 되었다는 그 기능으로, 정체되는 고속도로에서 부분적으로 차가 알아서 운전을 하게 됩니다. 이때 가다 서다를 반복하게 되고 자동차는 스스로 기어변속을 시도해야 합니다. 만약 수동이라면, 사람이 변속해야겠죠? 그렇다면 이는 자율주행이라 할 수 없습니다. 또 전기차나 수소연료전지차 등도 개발단계에서부터 수동 보다는 자동변속기에 맞춰 만들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수동변속기 완전히 사라지는 걸까?

이처럼 사람들의 생활이 바뀌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자연스럽게 수동변속기 천국이던 유럽도 자동 쪽으로 방향을 계속 틀어가고 있습니다. 한 독일 전문가는 20년 후쯤 되면 수동변속기와 자동변속기의 독일 내 비율이 적절하게 균형을 잡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자동과 수동이 반반 정도의 비율, 혹은 6:4 정도로 역전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 정도 수준에서 유지될 걸로 본 것입니다. 

저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일단 수동변속기는 가격이 자동에 비해 저렴합니다. 때문에 소형차 등에 유리하죠. 무게도 가벼워 기어 변속에 능한 운전자 입장에서는 연비효율을 높이는 데도 좋습니다. 무엇보다 운전의 재미를 찾는 운전자들이 유럽엔 굉장히 많습니다. 이 수요가 존재하는 한 수동변속기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포르쉐 같은 스포츠카 업체도 PDK 같은 듀얼클러치 변속기를 전면에 배치하며 변화를 꾀하고 있지만 또 GT4와 같은 오로지 수동변속기만 있는 원초적 차를 내놓아 전통적 팬들의 마음을 달래고 있습니다. 이들에겐 다단 자동변속기가 주는 안락함 보다는 내가 직접 변속하며 느끼는 다이나믹한 운전의 즐거움이 더 클 뿐입니다.

또한 도심으로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고는 해도 독일의 경우 여전히 시골과 인구 2만 명 전후의 작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 비율이 전체의 1/3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곳은 대체로 정체 구간이 적고 운전하기 좋은 외곽도로가 많죠. 오르막 구간도 별로 없습니다. 그러니 수동변속기 차량이라고 해서 특별히 불편할 게 없습니다. 


유럽, 수동과 자동변속기 적절히 뒤섞인 시장으로

현재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는 계속해서 자동변속기 수요가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비중은 더 커질 것입니다. 그렇다고 수동 변속기 장점을 알고 있는 유럽인들이 완전히 이를 포기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유럽인들의 손은 기어 노브를 쥐고 변속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일 것입니다. 물론 완전 자율주행 시대가 일상화 된 이후에는 또 모를 일이겠지만요.

사진=오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