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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유럽에선 왜 디젤이 사랑받았던 걸까?


요즘처럼 디젤차 운전자들 마음이 불편한 때가 없을 겁니다. 미국발 폴크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사건이 해당 브랜드만의 문제를 넘어 디젤 엔진 자체에 대한 불신과 실망감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인데요. 특히 우리나라가 한창 디젤자동차 붐, 그 중에서도 독일자동차의 성장이 두드러진 상황에서 이런 문제가 터졌기 때문에 운전자들이 느끼는 배신감과 허탈감은 더 크리라 봅니다. 하지만 독일을 비롯해 디젤차를 좋아하는 유럽인들이 느낀 상실감은 그 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겁니다. 참 디젤 차 좋아하는 유럽인데요. 그렇다면 언제부터, 왜 유럽에선 디젤이 사랑을 받게 된 것일까요? 

골프 TDI 블루모션 / 사진=VW


80년대 온난화 연구 본격화

90년대 들어서며 CO2 배출 문제 국제사회 공동 대응 시작

18세기부터 본격화된 산업화는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가져 왔습니다. 그리고 이 산업화는 또한 엄청난 화석연료 소비를 가져왔죠. 20세기 들어와 학자들은 화석연료의 과소비가 지구에 인위적 기후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을 밝혀내기 시작했습니다. 제러미 리프킨 같은 학자는 1980년 엔트로피라는 책을 통해 기후 문제를 다뤘고 많은 경제학자와 기후학자들은 화석연료 사용량을 조절하지 않으면 미래가 위험해진다는 보고서를 내놓게 됩니다. 화석연료가 지구온난화의 주범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고, 지구온난화 그 자체에 대한 반론도 있지만 곳곳에서 화석연료와 지구온난화의 상관관계를 밝히는 작업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린하우스 이펙트, 흔히 온실효과라 불리는 현상으로 지구온난화는 발생합니다. 온실가스가 대기 중에 많아지고 이게 태양 에너지를 가두게 되면서 지구 기온이 올라가 됩니다. 온도 상승은 생태계 변화는 물론 궁극적으로 생태계 파괴로 이어지게 될 거라는 것이 지구온난화의 기본 논리입니다. 그리고 이 온실가스 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으로 이산화탄소가 지목됐습니다. 유엔 차원의 기후변화협약이 채택되었고 이를 변형한 교토의정서가 1997년 다시 채택되게 됩니다. 이때부터 이산화탄소 배출과의 싸움이 본격화되게 됩니다.


유럽, 이산화탄소 감소의 한 방법으로 디젤차 제안

이처럼 CO2 배출을 줄여야 하는 상황에 처하자 자동차 제조사들은 그 대안으로 디젤 엔진을 제시하게 됩니다. 전기차나 수소연료전지차와 같은 탈 내연기관 방식은 당시만 해도 너무 먼 대안이었기 때문에 당장 이산화탄소를 감축해야 하는 입장에선 디젤이 답이 되었습니다. 사실 디젤은 가솔린과 나란히 놓고 1리터를 태우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조금 더 나온다고 하죠. 그런데 어떻게 이게 이산화탄소 감축 대안이 될 수 있었을까요? 


기본적으로 디젤 엔진은 열효율 면에서 가솔린 보다 낫습니다. 즉 100km의 거리를 가솔린 차와 디젤 차로 나란히 달리면 디젤 소비량이 가솔린 소비량 보다 적기 때문에 결국 총합에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가솔린 보다 적게 되는 것이죠. 특히 유럽 메이커들이 1990년대 들어서며 적용하기 시작한 커먼레일 디젤 엔진(CRDi)으로 인해 디젤은 유럽에서 더 설득력을 얻게 됩니다. 


커먼레일 엔진은 연료를 고압으로 미세하게 직접 실린더 안에 분사하며 동시에 양을 정확하게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아껴 쓰고 소음과 진동을 줄일 수 있게 됐습니다. 물론 엔진 생산비용도 이전의 플런저 방식보다 덜 들어 제조사 입장에선 선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디젤 엔진 개발기술이 계속 좋아지면서 내구성은 물론 진동과 소음을 더 줄여나갔습니다.


정부는 세금 정책으로 디젤에 날개를 달아줘

여기에 더해 DPF (디젤 미립자 필터)는 과거에 비해 눈에 띄게 미세먼지 배출을 줄였습니다. 이는 각 종 질환의 발생 가능성을 낮췄다는 의미가 됩니다. 또 매연이 지구온난화에 이산화탄소 못지 않게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결과도 있기 때문에 매연 배출량 감소는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이처럼 디젤 엔진의 긍정적인 효과를 확인한 유럽의 여러 나라는 가솔린 보다 세금을 적게 붙이는 방법으로 디젤차 소비를 자연스럽게 증가시켰습니다. 


1990년 독일의 디젤차 비중은 9.8%로 매우 낮았습니다. 그런데 세금에 차이를 두는 것은 물론 보험료까지 할증을 받게 되면서 디젤 비율은 급격하게 늘어났고 현재 47% (2014년 기준)까지 이르렀습니다. 거기다 신차만 놓고 보면 디젤 비율은 50%를 넘긴 상태입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독일뿐 아니라 유럽 내에서 디젤차 점유율이 높은 국가들에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프랑스는 전체 차량의 70%, 신차의 80% 넘게 디젤차가 점령했습니다. 스페인(69.7%), 벨기에(76.2%), 이태리(44%) 등도 디젤 비율이 높은 나라들이죠. 하지만 영국 같은 곳은 디젤 비율을 줄이기 위해 세금 혜택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스위스와 함께 디젤의 가격이 가솔린 가격 보다 더 비싼 나라 중 하나이기도 하죠. 하지만 여전히 유럽 전체로 놓고 보면 디젤 가격이 싸며 신차의 디젤 비율은 가솔린 보다 높습니다. 굳건하게 디젤이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EU 4년 간 신차의 연료 유형 / 자료=ACEA 보고서 발췌


완벽할 것만 같았던 디젤, 간과했던 질소산화물

이처럼 엔진 자체의 동력 성능 향상, 그리고 이산화탄소와 매연 배출의 감소 등으로 승승장구하던 디젤은 몇 년 전부터 유럽에서 반발 기류에 휩싸이게 됩니다. 디젤 천국이라던 프랑스에서 스모그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인 질소산화물이 디젤차들로 인해 과다 배출되고 있기 때문에 이 발암물질을 막기 위해 과감하게 반디젤 정책으로 돌아서겠다고 선언을 한 것입니다. 특히 질소산화물은 매연(분진)과 묘한 관계에 있는데요. 매연을 줄이면 질소산화물이 늘어나고, 질소산화물을 줄이면 매연 배출이 늘어나는 트레이드 오프가 발생합니다. 제조사들의 눈에 보이는 매연 줄이기엔 성공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질소산화물 제어가 문제가 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결국 이 질소산화물 문제가 VW의 미국발 조작 사건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됐고, 그렇지 않아도 디젤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유럽에겐 새로운 반디젤 정책을 세울 분명한 명분이 되어 주었습니다. 일정 기간 안에 질소산화물 배출 문제가 완전히 신뢰할 수준으로 떨어지지 않는 이상, 다시금 디젤차가 유럽에서 예전의 호황을 누리긴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작은 차를 선호하는 유럽의 경우 작은 가솔린 엔진들의 연비효율이 좋아졌고,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나 전기차 등, 과거에 비하면 훨씬 현실화된 대안 세력들이 등장하면서 더욱 디젤의 입지는 더 좁아지게 됐습니다. 


스모그로 뒤덮여 있는 멕시코 시티 / 사진=위키피디아, Fidel Gonzalez



그렇다면 유럽에서 디젤차는 완전히 소멸될까? 

독일의 한 환경기구는 이미 법정에 디젤차가 돌아다니지 못하게 해달라는 소송을 내겠다고 선언한 상태입니다. 거기다 폴크스바겐 사태는 디젤에 호의적인 유럽인들에게 큰 배신감을 안겨줬기 때문에 지지 기반의 상당 부분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디젤차가 종말을 맞게 된 걸까요? "그렇다"라고 선뜻 대답하긴 어렵습니다. 우선 제조사들이 새로운 측정법에서도 유로6의 기준을 충분히 만족시킨다는 것을 증명해 낸다면, 그리고 후처리장치 강화에도 여전히 가솔린 보다 연료 효율이 좋은 것이 확인 된다면 디젤차는 경쟁력을 어느 정도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여전히 이산화탄소 배출에서는 가솔린 보다 낮은 수준이며 동시에 높은 토크가 주는 즐거움이 분명 있기 때문에 질소산화물 문제만 해결된다면 이런 장점을 기억하고 있는 소비자들은 다시 디젤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물론 과거의 화려한 영광을 되찾긴 쉽지 않겠죠. 이미 폴크스바겐 사태와 상관없이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나 순수 전기차라는 대안이 속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년을 넘게 유럽에서 사랑받아 온 디젤. 과연 유럽인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그럼에도 계속 사랑을 보내줄까요? 그 과정을 조심스럽게 지켜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