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일 자동차 세상/독일 아우토반 시승기

아우디 A1, BMW 1시리즈 맞수가 맞나요?


5년이나 됐습니다. 아우디 A1이 우리나라에 수입되었으면 한다는 글을 썼던 것이 말이죠. 그 사이 시승도 해보았고, VW의 폴로를 베이스로 했지만 두 차량의 운전 재미가 다르다는 이야기도 드렸습니다. 경쟁 모델 MINI와 숱한 비교테스트가 독일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죠. 그렇게 오래 기다림 끝에 한국에서도 이 차를 만날 수 있게 됐습니다.


A1 / 사진=아우디

흔히 독일에서 소형 럭셔리카로 소개가 될 정도로 A1 성능에 대한 평가가 좋은 편입니다. 타보면 바로 느낄 수 있죠. 물론 너무 비싸다는 게 가장 큰 아쉬운 점입니다. 다만 유럽에선 수동변속기가 달린 깡통 모델은 우리 돈으로 2천 백만 원 (환율 1,250원 기준)에 살 수 있는데요. 하지만 여기서도 적당하게 옵션이 들어가면 2천만 원 중후반, 거기다 좀 화려하게 넣었다 싶으면 3천만 원은 가뿐하게 넘어갑니다. 


가격 부담을 감수하고 프리미엄급 풀옵션 차량을 수입한 것은 한국 시장의 소비 패턴 고려와 브랜드 이미지를 유지라는 게 수입사의 입장이더군요. 이렇다 보니 미니(MINI) 외에 BMW 1시리즈까지 경쟁 상대로 포함을 시켰습니다. 물론 아우디코리아 사장 스스로도 1시리즈는 아우디 A3가 제원상 경쟁 모델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가격, 사양, 제원 등, 다양한 비교가 모호해지고 있다고도 덧붙이긴 했지만요.


이 얘기를 소비자 입장에서 조금 삐딱하게 해석해 보자면, "사실 아우디 A1의 직접적 경쟁 상대는 미니다. 하지만 높은 가격으로 인해 1시리즈까지 같이 포함을 시키고 싶다. A1과 1시리즈를 같이 놓게 되면 자연스럽게 A1의 가격에 대한 저항도 조금 줄지 않겠나." 정도로 이해할 수도 있겠습니다.


어쨌든 출시행사에서 이렇게 발표를 해서 그런 탓인지 벌써 여러 언론 매체가 아우디 A1이 BMW 1시리즈의 경쟁 상대라는 기사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심지어 IT 전문 매체 한 곳은 1시리즈와 A1의 제원부터 시작해 장단점을 꼼꼼히 비교해놓았더군요. 그런데 과연 이게 소비자 입장에서 정확한 정보가 될 수 있을까요?


1시리즈와 A1 맞수 주장은

프라이드와 아반떼가 동급이라는 얘기

아우디 A1은 폴크스바겐의 소형(B세그먼트) 차 폴로를 기본으로 해서 나온 모델입니다. 반면 소형 라인업이 없는 BMW의 경우 현재 가장 작은 모델은 1시리즈 (C세그먼트)입니다. 1시리즈의 직접적 경쟁 상대는 아우디 A3와 메르세데스 A클래스, 그리고 골프와 푸조 308 등이죠.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나라에서는 A1과 1시리즈가 동급이 돼 버렸습니다. 실제로 두 차량이 맞수라며 소개한 기사 속에도 두 차량 제원상 체급이 같을 수 없다는 게 나와 있습니다. 


전장

아우디 A1 : 3,973mm

BMW 1시리즈 : 4,329mm


배기량 및 출력

아우디 A1 30 TDI : 1.6리터 116마력

BMW 118d : 2.0리터 150마력


차의 길이로 보든 배기량과 마력으로 보든, 두 차는 직접 비교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독일 자동차 매체의 A1 비교테스트를 수십 개 이상 검색을 해 봐도 이런 식의 체급을 뛰어넘는 비교를 하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억지스러운 맞수 기사들이 등장하는 걸까요?


독일 매체들의 A1 비교테스트 캡쳐 화면 (좌상부터 아우토빌트, 아우토모토운트슈포트, 아우토차우퉁, 아우토빌트 순)



차종 분류에 대한 제대로 된 기준이 없다

저는 이미 우리나라의 차종 분류 기준이 잘못 돼 있다는 얘기를 수 차례에 걸쳐서 했습니다. 특히 정보 취득의 가장 중요한 공간인 인터넷,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다음과 네이버 등의 양대 포털의 분류 기준이 잘못돼 있다는 것을 말씀 드렸었죠. 이 문제는 지금까지도 해결이 안된 상태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폴크스바겐 골프 : 4,388mm ( 다음 : 준중형 / 네이버 : 소형)

현대 i30 : 4,300mm (다음, 네이버 : 준중형)

BMW 1시리즈 : 4,329mm (다음 : 소형 / 네이버 : 중형)

아우디 A3 세단 : 4,456mm (다음 : 준중형 / 네이버 : 소형)

푸조 308 : 4,255mm (다음, 네이버 : 준중형)

보시는 것처럼 제 각각입니다. 심지어 네이버는 어떤 이유인지 1시리즈를 중형으로 분류를 해 저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혹 배기량에 기준을 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분들이 계시겠지만, 배기량의 경우 다운사이징 흐름 이후 차종을 구분하는 의미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르노삼성 SM5 디젤만 해도 1.5리터 이하 엔진이 장착되었고, 유럽으로 건너오면 포드 몬데오 같은 중형급에 1.0 에코부스트 998cc 엔진이 들어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차를 경차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처럼 차의 길이나 배기량 어느 하나만으로 차의 크기를 정하는 것은 잘못되었거나, 불가능해졌습니다. 


배기량과 크기 중 하나로 분류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승용차 분류 기준법은 이미 정보로써 가치는 무너진 상태고, 이로 인해 소비자들에게 정확하게 어떤 차가 어떤 차종으로 분류되어야 하는지 통일된 기준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유럽의 세그먼트 분류법을 따르는 현실을 반영해 유럽 방식을 도입하는 건 어떨까 합니다. 독일 같은 나라가 좋은 예가 될 수 있겠네요.


세그먼트 분류표 / 사진 위키피디아 영문판


獨, 차종 분류 협의해 결정

차종 분류와 세금은 별개로

독일은 신차가 출시되기 전 정부측에서 자동차청(KBA), 제조사 측에선 자동차산업협회(VDA)와 수입자동차협회(VDIK)의 관계자들이 모여 차종을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해 결정을 내립니다. 모여서 그냥 수다 떨다 결론짓는 게 아니고, 차의 크기 / 무게 / 엔진 배기량 / 성능(최고속도) / 트렁크 크기 / 좌석수 / 1열 좌석 높이 / 차량 가격 등의 여러 요소들을 가지고 결정을 하게 돼있습니다. 


또한 이산화탄소 배출량 + 배기량으로 자동차세를 부과하기 때문에 차종분류와 세금은 다른 기준을 따른다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입니다. 우리도 이제는 차종 분류를 좀 더 현실에 맞게끔 고쳐야 합니다. 국토부와 제조사 등이 독일처럼 협의 과정을 거쳐 차종을 정하는 것이 좋겠고, 만약 이를 신뢰하기 어렵다면 전문성을 갖춘 소비자 단체까지 포함을 해도 좋겠습니다. 이쯤 되면 이런 의문이 드실 겁니다. '차종 분류가 뭐라고 그리 신경을 써야 하지?'


정보 왜곡, 정보 비대칭을 방지하는 효과

무엇보다 소비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1시리즈와 A1을 맞수로 보는 순간, 차에 대해 잘 모르는 소비자들 입장에선 "동급이라면서 성능과 가격의 차이가 왜 이렇게 심한 거죠?" 라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티볼리가 나왔을 때 현대 투산과 비교를 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인데요. B세그먼트의 티볼리가 C세그먼트 베이스의 투산과 비교된다는 자체가 소비자에게 혼동을 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전문 매체를 포함한 언론의 역할이 무척 중요합니다. 언론이 소비자들에게 주는 잘못된 정보, 왜곡된 정보로 정보 비대칭 현상을 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보 비대칭이란 표현은 중고차 시장에서 발생하는 불량 자동차 거래를 분석한 조지 에클로프의 논문 'The Market for Lemon'에서 처음 등장했는데요.


중고차 딜러가 잘못된 정보를 주거나 감춤으로써 소비자가 제대로 된 소비를 할 수 없는 문제를 학문적으로 분석했습니다. 이런 정보 비대칭 상황이 계속되면 시장은 신뢰를 잃고 무너지게 됩니다. 따라서 이를 막기 위한 신뢰할 만한 객관적 기관이나 언론의 역할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콘텐츠 유통 창구인 포털이나 언론들이 기본적인 차종 분류부터 제대로 하지 못해 상위급과 하위급을 지금처럼 뒤섞어 버리면, 정보력이 약한 소비자들은 잘못된 정보를 기반으로 한 소비를 하기 쉽습니다. 신뢰를 줘야 할 기관들이 되레 신뢰를 잃게 만드는 것이죠. 정부가 나서 체계를 잡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아우디 A1의 경우처럼, 또 국내 모 제조사처럼 자사 신모델을 내놓으며 의도적으로 상위급 모델이나 타사의 고급 모델과 비교를 하는 행태를 취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도 신뢰할 만한 기준이 세워져 있다면 소비자들은 공급자의 마케팅에 마냥 휘둘리지 않고 정보를 가려 들을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그깟 차종 분류 좀 틀리면 어때?'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본, 작은 것부터 체계를 세우고 소비자 중심으로 개선되지 않으면 더 큰 소비에서 그에 비례하는 손해와 불합리한 소비를 막을 수 없습니다. 자동차 판매 세계 5위라는 수식어의 바탕엔, 이런 꼼꼼하고 정확한 노력들이 초석처럼 깔려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자동차 강국, 자동차 문화 강국이 될 수 있는 것일 테니까요. 차종 분류요? '그까짓 것 이 아닌 그것부터'라는 생각으로 제대로 이뤄지길 다시 한 번 바라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