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현대차 임원들이 수입차를 타야 하는 이유


카를 벤츠가 가솔린 자동차를 만든 지 130년이 지났습니다. 그 시간 동안 몇 안되는 국가만이 커다란 산업으로 자동차를 키워낼 수 있었죠. 이런 그룹 안에 우리나라도 늦게나마 발을 담갔고, 이제 현대자동차 그룹이라는 세계 5대 생산량을 자랑하는 회사를 보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짧은 역사, 빈약한 기술력의 회사가 이처럼 빠르고 높게 비상하리라곤 현대차 스스로도 쉽게 예상치는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그간 국가의 보호와 저렴한 가격이라는 두 가지 마술봉을 가지고 나라 안팎에서 승부를 펼쳤다면, 앞으로는 이런 혜택을 지운 상태에서 온전히 실력으로만 경쟁을 할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아시다시피 현대차는 고부가가치 브랜드로 거듭나려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일단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를 푸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내수시장에서 점점 커져가는 비판적 분위기, 현재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프리미엄 브랜드와의 기술 차이, 또 자기정체성 확립 등, 어느 하나 고민스럽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 꼬인 실타래 풀기'가 의외의 접근법을 통해 해결될 수도 있다는 주장이 현대차 주변으로부터 나오고 있습니다. 임원들이 자비로 수입차를 사 직접 몰고 다니며 장단점을 몸으로 느껴 보라는 것이죠. 여기서 잠깐 현대 기아 남양 연구소 얘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남양 연구소는 경기도 화성에 위치해 있습니다. 백만 평이 넘는 부지를 촘촘히 사용하고 있죠. 연구원이라 불리는 개발 인력만 약 9천 명에 달합니다. 협력업체 연구원들까지 포함하면 1만 명 수준의 두뇌들이 여기서 매일 차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섀시, 디자인, 차체 등 각 분야별 전문가들이 분석하고 연구하고 실험합니다. 지금도 계속해서 연구를 위한 시설투자는 물론, 알베르트 비어만 같은 고급 기술인력을 데려오는 등, 나름 인력에 대한 투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가에서 고급 모델까지 가리지 않고 경쟁업체 자동차를 들여와 너덜너덜하게 될 때까지 타고 분석합니다.


이런 노력들이 있었기에 현대차의 성장이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기 위해선 다른 접근법들이 필요합니다. 기술적인 면 외에도 브랜드의 가치, 기업의 전략, 무엇보다 내수 시장에서 승승장구하는 수입차와 제대로 된 경쟁을하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전략이 필요한데, 그 전략 중 하나가 바로 ‘임원들의 수입차 심도 체험’이 될 수 있습니다.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현대차 그룹 역시 신차를 내놓기 전 으레 자신들이 목표한 경쟁차와 각 항목을 숫자로 비교합니다. 그리고 이 결과는 임원들 책상 위에 올라가게 되죠. 수치 상 더 좋은 결과가 나오면 임원들에겐 그것이 곧 자신들이 내놓을 신차의 가치가 됩니다. 수치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차의 종합적 경쟁력을 이해하지 못한 채, 출시 행사장에서 “우리 차가 oo보다 더 낫습니다.” 라고 자신 있게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이 반복되는 한 현대차가 극복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요즘 많은 운전자들이 수입차에 높은 관심을 보이는지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몇 년 전 정의선 부회장이 내수 점유율 하락과 수입차 시장의 성장에 위기감을 느끼고 임원들에게 현대차 매장과 수입차 매장을 방문해 그 차이를 정리 보고하라고 한 일이 있었죠.


하지만 영업점에서 차이를 찾는 것 보다 직접 경쟁차, 혹은 롤모델로 삼고 있는 수입차를 타고 다니며 차가 갖는 성능의 장단점, 그리고 서비스의 질, 마케팅의 다양성을 소비자 입장에서 종합적으로 익히는 것이 더 낫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임원들 중에는 가끔 연구소에 들러 시승을 해 본다든지, 아니면 트랙에서 차를 타보기도 합니다만 이런 정도로 과연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요.


현대차 내부에서도 요즘이 위기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수입차의 성장은 이런 위기를 타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현대가 정말 위기를 느끼고 있다면, 그리고 어떤 해답을 찾고자 한다면, 몸으로 부딪혀 보길 권합니다. 백날 연구원들만 경쟁차 타고 숫자 가득한 보고서 올리게 하지 말고, 과감하게 회사 차원에서 임원들이 경쟁차를 제대로 경험하고 배울 수 있는 적극적 전략을 세워 보기를 권합니다. 


외제차가 사내에서 보이기라도 하면 ‘애사심’ 없는 어떤 이가 다른 브랜드 차 타고 다닌다며 눈총 주기도 하는데 좋은 물건 써 봐야 그게 왜 좋은지, 어떻게 그 수준에 다다를지 배울 수 있는 거 아닐까요? 현대차 그룹 자신들의 위기 극복을 위해서뿐만이 아니라, 현대 기아차를 소비하는 소비자들을 위해서라도 진정성 있는 도전과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사진=현대자동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