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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넌 세상에서 가장 운전을 못 하는 사람이야"


오늘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나 할까 합니다. 그러니까 정확히 4년 전이네요. '남 몰래 운전면허증을 갱신한 사연' 이라는 제목으로 제 아버지와 관련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내용은 대충 이렇습니다. 몸이 다소 불편하신 아버지께서는 운전을 하는 게 어려운 상황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게 됩니다. 아버지가 면허증을 새롭게 갱신하셨다고요.


운전면허증이 필요없는 상황인데 왜 갱신을 하셨을까 싶어 어머니께 여쭸더니 이런 대답을 주셨습니다. "당신은 운전도 안 하면서 그거 뭣하러 갖고 있어요. 라고 물었더니 니 아버지가 그러시더라, 면허증이라도 있어야 덜 늙는 거 같다고. 그리고 꼭 한번 예전처럼 운전대 쥐고 운전을 할 수 있었음 좋겠다고. 그래서 면허증을 못 버리시겠댄다..."


그 얘기를 듣고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한국 방문을 했을 때 렌터카를 빌렸고 아버지께 운전대 한 번 잡아 보시는 게 어떻겠냐고 여쭸습니다. 슬쩍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으시더군요. 그렇게 아버지의 운전에 대한 가족들 사이의 관심은 잊혀져갔습니다. 그리고 지난 1월 말, 새벽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게 됩니다. 실감이 나질 않더군요. 밤을 꼬박 새운 채 저녁 비행기로 한국으로 향했습니다.


정신없이 장례를 치른 후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 유품을 정리했습니다. 그러다 서랍장 한 쪽에서 두 장의 면허증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마지막에 갱신한 면허증과 과거의 면허증 중 하나가 나란히 포개져 있더군요. 아들들에게 아버지의 대한 기억, 특히 운전을 하던 아버지의 기억은 늘 멋진 장면으로 남아 있습니다. 저 역시 그러했고요. 어머니께 이 면허증들 제가 독일로 가져가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버지의 유품들 중 제가 간직한 유일한 것이 되었죠.



70년대 1종 보통 면허를 땄으니까 지금 기준으로 보면 나이에 비해 다소 늦은 면허취득이었습니다. 물론 요즘처럼 차가 흔한 시절이 아니었으니 직접 비교는 무리겠죠. 어쨌든 제 기억 속에 아버지는 가족을 태우고 전국 곳곳을 안 다닌 곳이 없을 정도로 운전을 좋아하셨고 가족들과 함께 여행 다니기를 즐기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건강으로 인해 운전을 못하게 되었을 때 느꼈을 남모를 아픔이 어땠을까를 생각하니 마음이 많이 무거워지더군요. 왜 그 땐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사실 어머니께 말씀을 안 드린 내용이 하나 있는데요.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다음 날이 면허증 적성검사 기간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우연이었겠지만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던 면허증과 아버지의 삶이 동시에 마감이 된 것이죠. 이제 아버지의 면허증들 끝까지 잘 간직할 겁니다. 그리고 그 면허증을 보며 아버지께서 제게 늘 건네셨던 말씀을 되새길 겁니다.


 " 결코 운전을 잘한다는 생각을 하면 안돼. 니가 세상에서 가장 운전을 못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라." 


처음 운전을 가르쳐주셨을 때, 그리고 처음 면허를 땄을 때, 처음 제가 차를 장만했을 때, 그 때마다 제게 하셨던 말씀을 이젠 매일, 매순간 가슴에서 꺼내보며 살도록 노력할 겁니다. 운전에 익숙해져서, 운전에 자신감이 붙어 혹이라도 방심하게 될까 봐, 그리고 남을 무시하는 건방을 부릴까 봐 항상 건네셨던  유언같은 말씀 단단히 붙잡고 겸손한 운전자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께서 이 글을 읽으실 거라는 믿음을 갖고 한 말씀 올릴게요. "지금 그 곳에서는 마음껏 운전을 하고 계시겠죠? 멋진 풍경 만끽하며 신나게 달리고 계시겠죠? 그렇게 행복하게 계실 거라 알고 저도 열심히 살겠습니다. 그리고, 이 얘기를 왜 살아 계셨을 때 못 해드렸는지 후회스럽기만 해요. 아버지, 사랑합니다. "


사진=다임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