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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노인을 위한 자동차는 없다?' 광고의 숨은 뜻


'고급 수트를 걸친 키 크고 잘 생긴 남자가 있습니다. 비싼 차에서 내리는 그를 주변 사람들은 부러운 듯 바라보죠. 무엇보다 그는 젊은 나이에 성공을 거뒀습니다. -A 자동차 잡지'


'멋진 스포츠카 옆에 미니스커트를 입은 금발의 아가씨가 서 있습니다 야릇한 눈빛과 붉은 립스틱을 바른 도톰한 입술은 섹시하기 그지 없네요;; 차를 보는 건지, 여성 모델을 보는 건지 분간이 안 됩니다. -B자동차 잡지'


젊고 잘 생긴, 늘씬하고 예쁜 남자 모델 여성 모델이 자동차와 함께 다양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진을 우리는 잡지 등을 통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잡지에서 뿐만이 아니죠. 자동차 회사들이 내놓는 홍보용 사진, 또 TV 광고 등에서도 대체로 선남선녀가 등장합니다. 그게 어떤 분위기를 얘기하는 것인지 이쯤에서 3분 40초짜리 벤츠 광고 한 편 보실까요?


<메르세데스 GL 광고 영상>

 

메르세데스 벤츠 GL 모델이네요. 우리나라에서는 판매가 안되는 벤츠의 가장 큰 SUV입니다. 가격요? 그냥 비쌉니다. 비싼 차예요. 자동차에 집중에서 잘 못 느끼셨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차를 운전하는 남자가 꽤 젊습니다. 광고 끝에 아이들이 나오기 때문에 대충 30대 후반 정도로 가늠을 할 수 있겠지만 실제 모델이 주는 느낌은 그 보다 더 젊습니다. 


사진=재규어


이건 또 뭔 차인가요? 재규어 F타입입니다. 수동 기어봉을 쥔 남자가 얼핏 제바스티안 페텔 닮았네요. 어쨌든 젊습니다. 두 차량 모두 1억이 넘는 비싼 차들입니다. 그런데 다들 젊고 부유한 모습들을 하고 있네요. 

 

사진=netcarshow.com

사진=netcarshow.com


볼보 XC 쿠페 컨셉도, 심지어 포르쉐 911 타르가까지도, 젊은 남녀들이 홍보 사진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그렇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요?



▶신차 구매를 주도하는 건 50대?


독일의 유명한 자동차 관련 연구소인 뒤스부르크 대학 자동차 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작년 기준 독일의 신차 구매 평균 연령이 52세였다고 합니다. 조사 이후 가장 평균치가 높게 나온 것이죠. 그러고 보니 제가 2010년에 이와 관련해 포스팅한 내용이 있었는데, 그 때 주요 제조사별 신차 구매 평균 연령을 잠깐 다시 볼까요?

 

Mini : 44.7세

스마트 : 47세

포드 : 47.8세

폴크스바겐 : 50.7세

아우디 : 50.9세

BMW : 52세

렉서스 : 55세

벤틀리 : 55.7세

벤츠 : 56.1세

재규어 : 56.5세

 

저 당시 독일의 신차 구매 평균 연령이 50.8세였으니까 지금은 좀 더 연령대가 오르지 않았겠나 생각됩니다. 물론 독일이 고령화 사회라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겠죠. 2010년 독일 평균 연령이 43세였고, 우리나라는 38세. 국가 전체적으로 5살 정도 더 많은 것인데, 인구수도 독일이 더 많기 때문에 중장년, 그리고 노년층 인구수는 우리 보다 더 많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점을 감안해도 자동차는 비싼 것이고, 이를 구매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중년층 이상에서 확률적으로 더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와 잠시 비교해 볼까요? 정확한 평균연령 수치가 없긴 하지만, 일단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첫 차 구입 평균 연령이 30세라는 자료가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첫 차는 꼭 신차를 의미하진 않습니다. 대체로 중고차가 많을 겁니다. 실제로 시장 자체가 중고차가 신차의 3배 이상이죠.

 

그리고 우리나라 수입 신차 구입 평균 연령도 자료가 있었는데 작년 기준 43.7세라고 하더군요. 보통 47세에서 43세 사이에서 평균값이 잡히고 있었습니다. 이 부분은 여러가지 고려해야 할 내용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단순히 독일과 비교하긴 어렵습니다. 일단 눈여겨 볼 대목은, 수입차를 타다가 다시 수입차를 선택한 이들 중 44%가 월 급여 천만 원 이상자들이었다고 하는 부분입니다. 즉, 고소득자들이 주로 수입차를 탄다는 점입니다.

 

물론 요즘은 3천만 원대, 그리고 그 이하의 수입차들도 판매가 이뤄지고 있어 연령대가 더 내려간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래도 수입차 중 구매 비중이 가장 큰 가격대가 5~7천만 원대라는 걸 보면 연봉 1억 이상 (보통 자기 연봉의 절반 정도를 적정 차량 구입가로 봅니다), 혹은 그 근처가 아니면 구매가 쉽지 않다고 해야 할 겁니다. 하지만 수입차 시장 비중이라고 해봐야 15% 정도니까 자동차 구매자 10명 중 8.5명은 여전히 국산차를 탄다는 얘기겠죠. 그리고 그 국산차 구입의 평균 연령 또한 독일 만큼은 아니지만 높은 수준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 그 외 여러 이유

우리나라의 퇴직 평균 연령대가 50대 초반이라고 하는 점도 독일 보다 신차 구입 평균 연령이 낮은 것과도 무관치 않을 겁니다. (독일은 비교적 정년이 잘 보장 돼 있고, 정년은 65세) 거기다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좋은 차를 타고 싶다는 소유욕과 과시욕 등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겠고, 또 다양한 할부 제도의 활성화, 국산차 회사에 대한 반발 등, 여러 요소들이 뒤엉켜 수입차나 고급 차 구매 연령층을 낮추게 있는 게 아닌게 생각됩니다.

 

*우리나라 수입차 구매 평균 연령 (자료 한국수입자동차협회)

미니 : 37.3세 / 일본차들 (도요타, 렉서스, 혼다, 인피니티 등) : 42.5세 / 폭스바겐 : 40.9세 / 아우디 : 42.4세 / BMW : 42.5세 / 벤츠 : 45.6세 / 포르쉐 : 46세


*우리나라 연령대 별 평균 연봉 (남성 기준)

20대 : 2,500만 원 / 30대 : 3750만 원 / 40대 : 5050만 원 / 50대 : 4900만 원 

이 평균 연봉의 1/2 수준에서 차 가격을 고려하면 어떤 차가 맞는지 나오겠죠. 참고로 연봉 1억을 받는 고소득자들은 2011년 기준 전체 수입자의 2.3% 수준입니다. 


메르세데스 C300 하이브리드 왜건. 사진=다임러

 

 


그렇다면 왜 광고엔 젊은이들만 등장할까?


이렇듯 자동차 구매 연령대가 주로 한국 기준 40대 중 후반, 독일 기준 50대 초반에 있음에도 광고에 등장하는 모델들은 왜 다 젊은 걸까요? 왜 실제 구매층을 고려하지 않고 있을까요?

 

독일 자동차 경제 연구소의 윌리 디츠 이사는 독일의 한 주간지와 인터뷰에서 " 자동차 회사들 마케팅 성격은 25~35세의 고수익자들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 연령대에선 중고차 구매를 더 많이 한다." 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바로 이 지점이 현실과 광고의 괴리가 생기는 대목입니다. 

 

우선 그들의 전략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요소로는 브랜드나 차량의 이미지를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비록 현실에선 평균적으로 50대 중후반의 남성들이 구매를 하는 벤츠라고 할지라도 위에 사진에서처럼 젊은 모델을 이용해 브랜드가 젊다는 점을 인식시키고 싶었을 겁니다.

 

특히 벤츠는 몇 년 전부터 디자인 변화를 시도하며 '젊어지는 삼각별'을 공개적으로 선언했고, 구형 A클래스가 유럽에서 노년층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모델이었음에도 그들을 버리면서까지 핫해치 스타일로 신형 A클래스를 바꿔버렸죠. 이런 시도는 캐딜락의 광고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캐딜락 XTS 광고 영상>


캐딜락은 미국에서 노인들이 타는 차라는 인식이 강하죠. 어디서 보니까 캐딜락 구입의 평균 연령이 60세가 넘는다고 나왔었는데, 차의 익스테리어와 인테리어의 변화는 물론 광고에서도 철저하게 젊고 잘 생긴, 그러면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모델을 내세워 브랜드의 이미지를 새롭게 하려는 노력을 기울입니다.

 

또 다른 이유라면 미래의 고객을 선점하겠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광고 속 모델과 비슷한 젊은이들을 지금부터 고객화하겠다는 장기적 계획이 있을 겁니다. 또 젊고 예쁜 여자들이 자동차 광고에 많이 등장하는 것은 여성들을 주 타겟으로 하는 게 아니라 남성들이 타겟으로 하기 때문이라는 개리 시드 같은 마케팅 전문가의 분석을 책으로 읽은 적이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유럽 자동차인 오펠의 홍보 담당자의 발언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 젊은이들의 이미지는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도 호감을 준다." 그러니까 모델이 굳이 나이가 많아야지만 공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젊은 모델들, 젊은 광고를 통해서도 실질 구매층을 매료시킬 수 있다는 얘기로 풀어지는 대목이라 하겠습니다. 


독일의 시니어협회의 관계자도 비슷한 얘기를 했었습니다. " 자동차를 살 때는 아무도 자신이 나이가 든 이라는 걸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채우고 싶어할 뿐이고 멋있게 보이길 원합니다." 그러니까, 이 얘기들을 묶어 보면 "어떤 자동차를 소비자에게 인식시키는 데 있어서 그 대상이 젊었든 나이가 들었든, 감각적인 방법으로 이미지를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 라고 정리를 할 수 있을 거 같네요. 



자동차의 안락함은 젊은이를 상대로 한 게 아니다?


시트로엥 C4 피카소. 사진=netcarshow.com


이처럼 광고의 이미지는 무조건 젊은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실제로 만들어지는 차들은 점점 중장년층이 선호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습니다. 앞서 소개해드린 독일 자동차경제 연구소의 윌리스 디츠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동차가 점점 더 편안해지는 쪽으로 가고 있다. 사각지대 경고센서, 피로 경고 장치, 차선 이탈 방지 시스템, 자동 주차 시스템, 후방 카메라 등은 모든 운전자들에게 만족을 주지만 특히 중장년 층 이상의 고객들을 우선 고려한 기능들이다. 심지어 포르쉐 조차도 이제는 안락함을 무기로 돈 많은 장년층 이상의 고객들을 유혹한다."


사실상 자동차 회사들이 광고는 젊게 하지만 장년층 이상의 소비자들에게 자신들의 차가 이렇게 당신들에게 좋다는 신호를 끊임없이 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디츠 씨는 SUV 붐도 연령대와 연결해서 설명을 했는데, 높은 좌석이 주는 탁트인 시야와 타고 내릴 때의 편안함 등으로 인해 (중년 이상의) 여성들이 선호하고 있고, 이런 점이 SUV 붐에 일조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여기서 잠깐 재미난 광고를 보여드릴게요. 같은 BMW 2시리즈 액티브 투어러 밴에 대한 총 3개의 홍보 영상인데 하나는 TV 광고이고, 또 하나는 타고 내리기 편하고 시야가 좋다는 점을 강조하는 동영상,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실제로 길거리 시승행사를 가졌을 때의 동영상입니다. 한 번 비교해서 보시죠.


<2시리즈 액티브 투어러의 노년층 타겟 광고>


<안락함과 탁트인 시야를 강조하는 홍보 영상>

 

<독일 길거리 시승 이벤트 동영상>


세 개 영상의 특징은 모델들이 대체로 나이가 있다는 겁니다. 마지막 세 번째 영상이 사실은 2시리즈 액티브 투어러가 어떤 고객층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시리즈 밴의 경우는 특히 폴크스바겐 골프 밴과 벤츠 B클래스와 함께 독일에서는 장년층 이상의 고객들을 놓고 치열한 싸움을 펼쳐야 하고, 후발주자로서 아예 대놓고 노년층을 대상으로 광고 등을 펼치고 있는데, 사실 흔한 경우는 아닙니다. 


그런데 아예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거나 평범한 중년층을 모델로 써서 광고를 만들고 있는 브랜드도 있습니다. 폴크스바겐이죠. 





위의 두 광고 다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것들로 좀처럼 보기 힘든 노인들을 모델로 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폴크스바겐은 평범하고, 대체로 연령대가 어느 정도 있는 사람들을 광고의 주인공으로 자주 쓰고 있는데요.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일종의 색깔이나 철학 등이 광고에 녹아 있다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역시 대체적으로 실질 구매층 보다 훨씬 젊은 모델들이 잡지와 TV 광고 속에서 등장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렉서스의 펌프질 광고>




▶광고에 휘둘리지 마세요~


사진제공=모터그래프


자동차 론칭 행사 때마다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멋진 남녀 모델들이 차를 빛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저 차량을 타는 사람들의 평균 연령은 50대라는 거. 젊은 모델들 서 있다고, 광고에서 젊은이들이 비싸고 멋진 차를 탄다고 해서 굳이 '나는 뭐하고 있나' 라며 자기비하 할 필요 없다는 겁니다. 비정규직이 넘쳐나고, 박봉에 가볍디 가벼운 지갑을 꽂고 다녀야 하는 '나는 뭔가' 라며 광고 보며 낙심할 필요 없는 겁니다. 


사실인즉슨, 자동차 회사들은 오늘도 구매력을 갖고 있는 중장년층 이상의 고객들에게 끊임없이 자신들의 차를 사라고 몰래몰래 손짓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노인들을 위한 자동차가 없는 게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젊은 모델들 등장하는 광고 홍수 속에서 젊은이들을 위한 자동차가 없다고 해야 하는 게 맞는 거예요. 그게 엄연하고도 냉정한 우리의 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