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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페라리 엠블럼과 한 도시에 얽힌 수수께끼


페라리(FERRARI)

많은 팬들을 갖고 있는 이태리 최고의 자동차 브랜드...

이렇게 말하면 파가니나 마세라티, 람보르기니가 기분 나빠하려나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페라리만큼 열광적인 팬들을 보유하고 있는 브랜드도

드물 것이며, 그들이 내놓는 자동차의 성능과 인기 또한 두 말할 필요 없이 뛰어납니다.


한정 생산을 하는 통에 돈 있다고 아무나 소유하기도 어렵고, 

설령 성공적으로 계약서에 사인을 했어도 1년에서 1년 이상을 애태우며

기다려야 하는, 사람 맘 녹일 줄 아는 콧대 높은 빨간 이태리 명마이기도 하죠. 

어디 그 뿐인가요? 오히려 새 차보다 중고차 가격이 더 치솟고, 

세계 최고 자동차 경매가를 경신하는 것도 이 이태리 로쏘(붉은)들입니다.

페라리 458이탈리아(2009년식) 사진=netcarshow.com


두 집 살림에, 괴팍하기까지 해서 수족들이 줄줄이 나가 떨어지게 했던 엔초 페라리에 의해 만들어진 이 회사는

어찌되었든 F1 레이스의 산 역사이자, 이태리 자동차의 꼿꼿한 자존심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모든 면에서 부족할 것 없고 완벽한 페라리를 이야기할 때 

늘 한 가지 걸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엠블럼(로고)이죠. 




강렬한 색의 대비감을 통해 쉽게 잊혀지지 않는 로고를 완성시켰습니다.

자존심 강하기로 둘 째 가라면 서러운 영국인들 조차 최고의 엠블럼은 "페라리!" 라고

말을 할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데요. 헌데 늘 이 로고를 이야기할 때

걸리는 대목이 있습니다. 바로 독일이란 나라입니다.


독일이 왜? 혹시 포르쉐 엠블럼과 연결해서 이야기하려고? 이렇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오늘은 포르쉐가 아니라 독일의 도시 슈투트가르트와 얽힌 페라리 로고의

3가지 기막힌 우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마치 수수께끼와 같은 이 엠블럼 탄생 이야기는 1923년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됩니다.




첫 번째 우연 : 비행기에 그려진 말


엔초 페라리는 13살부터 자동차를 운전할 줄 알았던, 에너지 그 자체의 소년이었습니다.

군 제대 후 피아트에 입사를 시도했지만 떨어진 그는 트럭운전을 하다 운이 좋게 

레이서를 만나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되죠.



엔초 페라리 (1898-1988) 사진=위키피디아


레이서의 추천으로 한 스포츠카 제작사의 테스트 드라이버로 들어가게 된 그는

1919년 첫 대회에 출전하는 기회를 잡았고, 이후 회사가 어렵게 되자 자신을 이끌던 이와 함께

알파 로메오 팀으로 자리를 옮기며 그의 전설은 시작되게 됩니다.


좋은 성적을 거두며 성장하던 그는 1923년 작은 서킷에서 우승을 이루게 되죠.

그 때 그의 경기를 인상깊게 지켜보던 부부가 있었는데 백작 엔리코 바라카 부부가 그들이었습니다.

이들과 인연을 맺은 뒤 얼마 후 백작의 부인은 페라리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게 되죠.


1차 대전 당시 죽은 자신의 아들 프란세스코 바라카 비행기에 붙어 있는 말 로고가

페라리에게 행운을 가져다 줄 것이라며 사용하기를 권했던 것입니다. 페라리는 이를 받아 들였고, 

이후 레이싱 자동차에 말 로고를 붙여 쓰다 페라리가 내놓은 첫 번째 양산 모델에 적용되며 

비로소 세상에 로고가 알려지게 됐습니다.



프란체스코 바라카 (1888-1918). 1차 대전 당시 이태리의 최고 전투기 조종사. 30세의 젊은 나이로 전사할 때까지 총 34대의 적기를 격추시켰다. 사진=위키피디아

 

여기까지는 거의 사실로 이야기되는 부분인데요. 문제는 그렇다면 저 말은 어디서 왔냐는 것입니다.

바라카 그 자신이 전쟁 중 사망했기 때문에 정확한 사실을 알기는 어렵지만

일단 가장 흔히 얘기되는 것이 바로 자신이 격추시킨 독일 전투기에서 그려진 말을 보고 

자신의 비행기에도 그려 넣었다는 설입니다.


특히 당시 격추된 독일 비행기의 비행사가 독일 슈투트가르트 출신이라는 얘기까지 전해지고 있지만

명확한 것이 아니라서 그냥 떠도는 이야기 정도에 머물러 있습니다. 

어쨌든 페라리 엠블럼과 슈투트가르트의 우연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두 번째 우연 : 검은 말에 노란 바탕


두 번째 절묘한 우연이라고 한다면 바로 로고에 들어간 색깔, 

특히 검정말과 노란색 바탕에 얽힌 부분입니다.




나란히 있는 그림 중 우측의 것이 페라리이고 좌측의 것이 슈투트가르트 시의 문장 (紋章), 

그러니까 상징표시입니다. 역동적인 말의 모양과 색상이 기본적으로 닮아 있죠?

슈투트가르트라는 도시에는 이런 말을 이용한 문장이 이미 12세기부터

사용이 되었다고 합니다.


도시 주변으로 기마용 말을 키우는 목장이 있었고, 이로 인해 슈투트가르트는 말로

잘 알려지면서 자연스럽게 말이 지역을 알리는 상징 동물이 된 것이죠.



12세기에 쓰여진 슈투트가르트 시의 문장 표시. 사진=위키피디아


현재까지 쓰이는 슈투트가르트 문장과 깃발. 사진=위키피디아



엔초 페라리는 페라리 엠블럼의 바탕을 노란색으로 한 이유를 

자신의 고향이자 페라리의 시작 지점인 모데나의 상징색이 노랑이어서 그걸 썼다고 했죠.

모데나의 상징색에 대해선 제가 알 수 있는 방법이 한계가 있어서 일단 모데나시의 문장이 어떤지를 

찾아 봤습니다.



이태리 모데나의 오래된 문장. 사진=위키피디아


모데나 기. 사진=위키피디아


위에 것은 예전부터 쓰인 문장이고 아래는 모데나 시기(Flag)인데요. 

노랑과 블루가 함께 사용되고 있습니다. 

물론 모데나가 북이태리에 위치해 있고 슈투트가르트가 남독일에 위치해 있어서

지리적으로는 그리 멀지 않다는 점이 있지만, 그게 어떤 개연성을 만든다고 할 순 없을 거 같습니다.


어쨌든 두 도시의 상징들이 

절묘하게, 혹은 묘하게 연결되어 있네요. 이렇게 해서

말에 이어 색상에서 다시 한 번 페라리 엠블럼과 슈투트가르트시는 우연한 인연을 만들었습니다.


참고로, 포르쉐 언급들을 많이 하시는데요. 포르쉐의 엠블럼은

1953년부터 자동차에 부착되어 나오기 시작했고 페라리의 엠블럼은 그 전부터 사용이

되었기 때문에 포르쉐에 영향을 받은 거 아니냐는 이야기는 맞지 않습니다. 


다만 포르쉐의 본사가 슈투트가르트에 있고, 포르쉐 역시 

시의 문장과 슈투트가르트가 있는 바덴 뷔르템베르크 주의 문장을 섞어 만들었기 때문에

페라리와의 유사성은 어쩔 수 없다고 하겠습니다.



슈투트가르트 시가 있는 바덴 뷔르템부르그 주의 문장. 사진=위키피디아





세 번째 우연 : 이름!


위에 두 가지 엠블럼 관련한 이야기만 놓고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정말 우연으로 볼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하고 그냥 넘겨도 문제가 없을 거라 봅니다.

하지만 마지막 경우를 보면, 정말 이걸 우연이라고만 봐야 하는지 고개를 갸웃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페라리 스쿠데리아 로고. 사진=conceptcarz.com


페라리 엠블럼에 SF라는 이니셜이 적혀 있는 게 보이시죠?

바로 엔쵸 페라리가 1929년 직접 만든 레이싱팀 스쿠데리아 페라리(Scuderia Ferrari)를 나타내고 있는 약자인데요.

Scuderia는 이태리어로 마구간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 이름이 또 다시 슈투트가르트와  

연결이 된다면 믿으시겠어요?


Scuderia =마구간


이번엔 Stuttgart란 단어를 볼까요?

이 도시의 이름은  Stuten이란 단어와 Garten이란 단어가 합쳐 생긴 이름이라고 합니다.

Stuten은 말(암말)을 뜻하고, Garten은 정원, 혹은 목장을 의미합니다. 

즉 말 목장이란 뜻이 되죠. 실제 영어 위키피디아에 보면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The German City of Stuttgart gets it's name from Stud Farm


Stuttgart 어원은 Stutengarten = 말 농장


여기까지 놓고 보면 스쿠데리아와 슈투트가르트가 비슷하긴 하지만

의미가 좀 다르게도 볼 수 있습니다. 농장과 마구간이란 차이가 분명해 보이거든요. 

그런데 이 차이를 확 줄여주는 단어가 하나 등장합니다.


Gestüt =마구간

Gestüt의 어원 = Stutengarten



결론적으로, 슈투트가르트의 어원이 갖고 있는 의미와 스쿠데리아의 뜻이

같은, 그러니까 같은 뜻을 지닌 단어라는 얘기가 됩니다. 


슈투트가르트 ← Gestüt → 스쿠데리아


다 적고 보니까, 이게 뭐하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들고 그러네요. ㅎㅎ 

하지만 예전부터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부분이었고, 누구도 여기에 대해

속 시원한 답을 주지 않아서 혼자 찾아 들어가다 보니 이렇게까지 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페라리 엠블럼의 독일 한 도시와 세 번에 걸친 우연한 만남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요? 만약 이것이 진짜 우연의 일치라고 한다면 정말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만약 우연이 아니라 어떤 의미가 담긴 거라면 그 의미는 과연 뭘까 궁금하고요.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엔초 페라리만이 알고 있겠죠? 하지만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결국 지구상에서 가장 핫한 페라리 로고에 대한 궁금증은

앞으로도 수수께끼처럼 남아 있을 겁니다. 


엠블럼 기원에 대한 판단은 여러분 각자의 몫으로 넘길게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아, 그리고 더모터스타 카페도 많은 관심 바랍니다.

카페는 이곳 클릭 ==> http://cafe.daum.net/themotorstar



페라리 458이탈리아. 사진=netcarsho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