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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정부는 언제까지 자동차 분류 방치할 건가요?


지난 주말 택시 관련한 뉴스 하나가 꽤 많은 분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르노삼성이 내놓은 SM5 디젤 모델이 좋은 연비로 택시 기사분들에게 인기가 높지만 정착 이 차량은 중형 덩치를 하고 있으면서도 배기량이 1600cc 미만이라는 이유로 소형택시로 분류가 됐다는 겁니다. 그럼 이게 무슨 문제일까?


SM5 D 기본 요금이 일반택시(중형급 이상)에 비해 500원 정도 저렴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택시 기사들 사이에 불만이 생겼고, 이를 중형택시로 인정해 달라며 한 택시회사 대표가 국토교통부에 건의문을 보냈다는 것이 기사의 골자입니다. 현행 법규에 따라 결정한 것이니 국토부도 난감하겠죠. 심지어 어떤 분들은 택시 기사들이 이기적이라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SM5 D 택시를 소유한 기사분들 입장에서야 억울할 법하지 않겠어요?


그렇다면 왜 이런 이상한(?) 일이 발생하는지, 과연 뭐가 문제이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저는 이 문제에 대해서 끝까지 가보자는 그런 심정으로 내용을 준비해 봤습니다. 분명히 해결이 되어야 될 사인이라 보고 이 악물어 글 써내려 갈 테니, 찬찬히 정독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럼 출발해 보죠!!!! (심호흡)



SM5 디젤. 사진=르노삼성 제공

 



다음과 네이버는 어떻게 표시했을까?


보통 이런 복잡한 글은 어떻게 쓸지 미리 구성을 간략하게라도 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오늘 내용은 제 스스로도 정리가 제대로 안되는 겁니다. 하도 뒤죽박죽이고 얽히고설켜 이걸 심플하게 정리해 보여드리기 쉽지 않을 거 같더란 얘기죠. 그래도 최대한 쉽게 풀여보자는 마음으로 고민하다 우선 다음과 네이버의 SM5 디젤 모델에 대한 차종 분류는 어떤지 확인해 보기로 했습니다.



다음 자동차 캡쳐화면


먼저 Daum을 보니 차종을 '중형'으로 적어놓고 있네요. 1.5리터급 디젤 모델이 맞죠? 그렇다면 네이버는 어떨까요?




네이버 자동차 캡쳐화면


어? 네이버는 차종을 '소형'으로 분류를 해놓았습니다.


이처럼 두 곳이 차종 분류에서 다른 것은, 다음의 경우 SM5라는 자동차에 대한 일반적 기준을 반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차를 크기, 그 중에서도 전장 (전체길이)으로 주로 분류하는 우리나라의 방식을 따른 게 아닌가 싶은데요. 그에 반해 네이버는 배기량 기준에 따른 분류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 모델을 두고 체급 분류가 이처럼 다를 수 있다는 게 재밌기도 하고, 또 씁쓸하기도 한데요. 


예전에 두 차례 정도 포털의 자동차 분류에 오류가 있다는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만 포털측에 이 문제를 따지는 것은 사실 본질을 건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혼란은 결국 정부가 벌써 개선을 했어야 하는 자동차관리법상의 차량 분류 기준을 '나 몰라라~'하고  방치하고 있어서 나타난 결과들인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차량 분류 기준, 어떻게 돼있나?


승용자동차 분류표. 표=위키피디아


우리나라의 승용차 분류는 경차/소형차/중형차/대형차 이렇게 4개로 나뉘어 있죠. 특히 내용을 잘 보시면 알겠지만 경차와 소형차는 배기량과 차의 크기를 모두 만족시켜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소형차는 배기량이 1,600cc 미만이면서 동시에 길이 4.7미터, 너비는 1.7미터, 높이는 2.0미터 이하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길이 4.7미터, 즉 전장이 4.7미터 이하를 소형이라고 하니까 그 범주에 들어가는 차들이 애매해지게 됐는데요.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현대에서 내놓은 엑센트의 차 길이는 4370mm이고 역시 현대에서 내놓은 아반떼는 4550mm입니다. 심지어 아반떼는 배기량도 1,600cc미만이죠. 법적 기준대로라면 두 차량은 모두 소형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둘 다 소형이라고 하기엔 현대차 입장에선 좀 아니다 싶었겠죠? " 같은 소형인데 좀 크다고 엑센트와 가격 차이가 이렇게나 나?"라고 단박에 소비자들이 들고 일어났을 테니까요. 결국 현대자동차는 '준중형'이라는 표현으로 소형과 중형 사이에 새로운 체급을 하나 만들어 넣으며 이 문제를 해결해냈습니다. 이후 어느 언론에서도 아반떼를 소형이라 하지 않고 모두 준중형으로 분류를 하게 됐죠.



현대의 대표적 준중형 모델 아반떼. 수출명 엘란트라. 사진=netcarshow.com




준중형은 현대가 만든 꼼수?


현대차는 준중형을 만들듯 중형과 대형차 사이에 준대형이라는 체급을 만들어 그랜져를 중형이 아닌 준대형으로 해 놓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현대차의 이런 행태를 거세게 비난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현대의 분류는 세상에 없던 현대만의 꼼수였을까요? 당시 우리나라의 여건에서 따져 보면 영리한 꼼수라고 할 수도 있지만, 준중형 체급을 현대차가 세계 최초로 만든 건 아니었습니다.


이미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콤팩트 클래스와 C세그먼트라는 준중형급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용어만 우리식으로 만들었지 이미 있던 체급이었고 준대형 역시 유럽의 E세그먼트에서 따온 것이었습니다. 특히 현대차는 유럽의 세그먼트식 분류법을 따랐다고 보여지는데요. 이를 우리 방식과 비교해 보면 정확하게 들어맞게 됩니다.


한국    :   유럽

경차 : A세그먼트

소형차 : B세그먼트

준중형 : C세그먼트

중형 : D세그먼트

준대형 : E세그먼트

대형 : F세그먼트



<유럽 세그먼트 분류와 해당되는 차량들>

유럽 세그먼트 분류표. 표=위키피디아 영문판



이렇게 유럽식 분류법에 맞추다 보니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분류법과 달리 총 6개의 체급으로 나뉘게 되었고, 이 점은 국산차의 경우 예외없이 적용을 하고 있습니다. 벌써 여기서부터 현실과 법이 따로 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소비자들 입장에선 또 헷갈리는 문제가 발생하는데 바로 수입차와 국산차의 체급 적용이 다르다는 점이었습니다.




현대 i30는 준중형인데 아우디 A3 세단은 왜 소형?


작년 연말쯤 작성한 포스팅의 한 부분을 우선 보여드리겠습니다.


아우디 A3 세단 길이 : 4460mm

VW 골프 길이 : 4250mm

벤츠 A 클래스 길이 : 4305mm

BMW 1시리즈 길이 : 4320mm

현대 i30 길이 : 4300mm


지금 차의 전장으로만 놓고 보면 현대 i30가 가장 짧고 아우디 A3 세단이 가장 길죠. 그런데 당시 다음과 네이버 양대 포털에서는 현대 i30는 동일하게 준중형이라고 했지만 네이버는 A3 세단을 소형으로, 골프는 준중형으로, 나머지 역시 소형으로 분류를 했죠. 다음은 그나마 아우디 A3 세단을 준중형으로 분류를 해놓았더군요. 


이처럼 수입차에 대한 체급 분류가 제각각이었는데요. 언론의 경우(전문지 포함)도 상당수가 수입 준중형급 모델들을 소형차로 분류를 해놓고 있습니다. 그냥 복잡하니까 단순하게 대.중.소로 잘랐다는 이야기를 한 기자분께 들은 적이 있는데요. 수입차든 국산차든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야 소비자들에게 정확한 정보가 전달되는 게 아닐까요?




유럽은 어떻게 하고 있나?


우리나라 차량 분류가 유럽의 세그먼트 방식을 채택했다고 말씀을 드렸는데요. 그렇다면 유럽의 세그먼트 분류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사실 명확하게 정해놓은 기준이 없습니다. "에잉? 그게 무슨 소리?" 그러게요. 세그먼트 방식으로 차량을 분류하고는 있지만 정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진 않습니다. 예를 들어 중형급인 D세그먼트는 전장 4600~5000mm 사이라고는 하지만 준대형급 (E세그먼트)으로 분류되는 BMW 5시리즈 같은 경우는 전장이 5미터가 안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자동차세그먼트 설명. 독일 위키피디아 캡쳐화면

  

이 내용은 독일의 위키피디아 한 대목으로, 독일 자동차청이 어떻게 차량의 체급을 분류하고 있는지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영어 위키백과에도 나온 표현은 바로 "분류의 형식이나 규정이 없다"였습니다. 그렇다면 제조사들이 체급을 일방적으로 정하느냐? 아니면 언론에서 정해주느냐? 아닙니다. 독일자동차청(KBA)과 자동차산업협회(VDA), 그리고 수입자동차협회(VDIK), 이렇게 세 곳에서 조사 후 합의를 거쳐 차종을 분류를 한다고 하네요.


그리고 그 분류는 주로 차의 크기/무게/엔진 배기량/ 성능(최고속도)/ 트렁크 크기/ 좌석수/ 1열 좌석높이/ 차량 가격 등의 여러가지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결정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정해진 수치상의 규정은 없지만 훨씬 심도 있게 차의 체급을 정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요.


여기서 굉장히 중요한 사실 한 가지가 있습니다. 독일의 경우 자동차 등록증에 세그먼트가 표시가 되어 있긴 하지만 이것은 세금을 부여하는 배기량 크기와는 별개로 다뤄지고 있다는 겁니다. 무슨 얘기냐고요?




배기량은 차량 분류 기준에서 제외해야


다시 처음 택시 이야기로 가보죠. 여객자동차운수업법이라는 게 있습니다. 차로 영업을 하는 모든 것을 다루는 법이죠. 여기에는 배기량이 1,600cc 미만이면 택시를 소형택시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저도 법조항을 좀 읽어 봤지만 하필 이 부분을 못 찾겠더군요.) 어쨌든 배기량을 기준으로 차를 분류해서 나온 결과물이었습니다. 실제 전장으로만 놓고 보면 현대 쏘나타 보다 더 긴 sm5 디젤 모델이 택시 기준으로는 소형차가 되어 버린 겁니다. 만약 이런 식이라면,



폴크스바겐 파사트 (유럽형). 사진=netcarshow.com


푸조 508. 사진=netcarshow.com


오펠 인시그니아 스포츠투어러. 사진=netcarshow.com


르노 라구나 그랑투어. 사진=netcarshow.com


여기에 나와 있는 유럽산 중형들 (모두 4800mm를 넘거나 근처, 특히 오펠 인시그니아는 4미터 9십센티가 넘기까지) 모두 1.6리터 이하급 엔진을 엔트리급으로, 그것도 가솔린과 디젤엔진 모두에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차들 모두 소형이 되게 됩니다. 하지만 배기량과 차의 체급을 별도로 다루는 유럽에서는 이런 일이 발생할 일이 없죠. 


독일의 경우도 자동차 세금은 배기량과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합산해 책정합니다. 그리고 이 것이 차량의 세그먼트, 그러니까 체급 분류에는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습니다. 별개라는 얘기죠. 반면에 우리나라는 배기량만으로 차량의 세금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배기량이 차의 체급을 결정하는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죠. 하지만 다양한 엔진 라인업을 가지고 있는 유럽산 차들이 밀려 들어오고 있는 이 시점에서, 또 그에 대응하고 있는 국산차들을 보면서, 과연 현재 방식으로 제대로 차를 분류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비록 처음 소개한 sm5 디젤의 경우는 택시라는 특수성이 작용을 했다고 하겠지만 큰 틀에서 볼 때 우리나라 차량 분류법도 이렇게 바뀌면 어떨까 합니다.


1. 좀 더 체급이 세분화 (현 4개에서 최소 6개 정도로)되어야 한다. 

2. 배기량이 체급 분류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기준에서 제외시키거나, 아니면 유럽처럼  다양한 기준들 중 하나로 활용하는 수준으로 비중 낮춰으면 한다.

3. 독일의 경우처럼 우리도 국토행정부와 자동차업계, 그리고 자동차 전문가 그룹(전문 기자)들이 신차 출시 때, 정한 규칙에 따라 차의 체급을 결정하는 합의 과정을 만들었음 한다.




경차 기준도 큰 틀에서 다시 생각


그리고 이 기회에 경차에 대한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고 봅니다. 현재 경차 기준은 배기량 1,000cc 미만과 전장 3.6미터 너비 1.6미터 높이 2.0미터 이하이어야 한다고 되어 있죠. 그런데 문제가 되는 부분은 차의 너비, 그러니까 폭 부분입니다. 1.6미터 이하로 맞추다 보니 차의 주행 안전성에서 아무래도 손해가 됩니다. 기아 레이같은 차가 경차 기준을 맞추려다 보니 폭은 좁고 높이는 높은 그런 불안정한 박스카 형태를 띠고 있죠.


반면에 유럽산 경차들(뿐 아니라 모든 체급이 대체로)  폭이 넓은 편입니다. 하지만 차이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그 묘한 규정으로 인해 다양한 경차들이 한국땅을 밟지 못하고 있죠. 물론 우리나라 제조사들의 경차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국가 정책의 일환이라 말하면 할 수 없겠지만, 다양한 경차가 많아지면 큰 차 안 사고 작은 차를 사는 소비도 늘어날 것이고, 그것으로 인해 환경적인 측면, 경제적인 측면 모두에서 이익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무엇보다 지금 기준보다 폭이라도 넓혀 조금이라도 더 안전한 주행이 가능하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마무리해야겠네요. 읽느라 힘드셨죠? 좀 더 시간을 갖고 잘 정리를 했어야 하는데, 그 점 아쉽고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가 무엇을 얘기하고자 하는지 이해하셨을 거라 봅니다. 현재 우리나라 차량 분류법은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분류 좀 제대로 안 했다고 해서 당장에 어떤 큰 문제가 나는 거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현실을 이제는 어느 정도 반영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차는 점점 다양해지고, 엔진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고, 거기다 전기차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같은 전에 없던 형태의 차들도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는데, 이런 것들에 대비한 법이 나올 때가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무엇보다, 자동차를 소비하는 국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한다는 차원에서 이 문제를 생각했음 합니다. 이런 변화된 태도 하나 하나가 쌓여 자동차 생산 강국, 문화 강국으로 발전되는 거 아니겠어요? 관계자분들의 진지한 고민을 기대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참, 그리고 한 가지를 빼먹었는데요. 

다음 주 월요일(8월 4일) 더모터스타 인터넷 카페가 오픈합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 사랑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