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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정신 못차린 GM, 50년 전 사건 벌써 잊었나?



미국의 최대 자동차 그룹 GM과 관련해 관심을 끄는 두 가지 사건이 있습니다. 하나는 내년 유럽 시장에서 철수하는 쉐보레의 비용을 한국GM이 떠안게 되었다는 내용인데요. 수천 억에 달하는 비용이라 한국 GM에겐 엄청난 타격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GM 본사의 속내가 무엇인지 여러가지 의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제네럴모터스(GM)가 쉐보레 코발트와 폰티악 G5 등 160만 대를 리콜했는데, 이게 지금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과연 무슨 일이 GM에선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오늘은  두 번째 내용과 관련해 간단히 정리를 해드리고 50년 전의, 결코 잊을 수 없는 GM의 흑역사를 통해 무엇이 문제인지 한 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0년 동안 감췄다고?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GM의 리콜사태와 관련한 소식들을 접하셨으리라 압니다. 리콜 사유는 이렇습니다. '점화장치 불량으로 엔진이 꺼지거나 전자시스템 오류로 에어백이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좀 더 쉽게 설명을 드리면, 엔진을 켜기 위해선 키를 꽂아 돌리게 되어 있죠. 요즘이야 버튼식이 흔해졌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도 대부분은 키를 돌리게 되어 있었죠.

 

어쨌든 이 자동차 키에는 집 열쇠나 사무실 열쇠 등이 같이 달려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묵직하죠. 그런데 쉐보레 일부 모델에서 이 무게 때문에 ACC 상태( 엔진 켜기 전 상태로 계기반과 오디오 등이 작동된다)로 키가 돌아가버리게 될 수 있다는 거죠. 그렇게 되면 달리던 차의 엔진은 꺼지고, 이로 인해 추돌 혹은 충돌 사고가 나고, 이 때 에어백이 작동을 하지 않게 될 수 있게 됩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한 상황이죠? 이런 위험 때문에 리콜을 한 건데요.

 

문제는, 이런 오류가 있다는 걸 GM 측에서는 이미 10년 전부터 인지하고 있었고  GM의 엔지니어가 이미 해결 방법을 마련했지만 윗선에 의해 무시됐다는 것입니다. 또 GM측은 문제를 제기한 고객들 일부는 조용히 해결을 했지만 결국 위험을 안고 운행을 하던 이들 가운데 13명이 사망하는 비극적인 일이 최근에 드러나게 됐습니다. 모두 시동 꺼짐과 에어백 미작동에 의한 사망사고였다고 하는군요.

 

아직까진 이 모든 것이 의혹의 단계입니다. 하지만 인과 관계에 있어 개연성이 있다고 본 미국고속도로교통안전국에서 공식적으로 이를 조사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 법무부도 나서 늑장 리콜 사태의 진상을 파악하기로 결정을 내렸고, 더 나아가 미국 의회에서도 청문회를 열어 이 문제를 그냥 넘기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만약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면 370억 가량의 벌금을 물게 됩니다. 그런데 이 벌금은 사실 아무 것도 아니죠. 벌써 해당 차종을 소유하고 있는 운전자들, 그리고 이미 사망 사고를 당한 운전자의 가족들이 변호사들을 앞세워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려 옵니다. 또 이들과의 문제가 어찌어찌 해결이 된다고 해도 결정적으로 GM은 파산 후 극적으로 회생해 부활을 날갯짓을 하던 시점에 브랜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 소식을 접하면서 거의 동시에 50년 전의 사건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큰 곤경에 빠져 톡톡히 댓가를 치른 바 있는 GM이 제대로 교훈을 얻지 못한 채 어리석은 길로 다시 빠져든 것이 아닌가 싶더군요. 그렇다면 50년 전 GM에겐 어떤 일이 일어났던 걸까요? 1965년 미국으로 가보도록 하죠.

 

 

'어떤 속도에서도 안전하지 않다'

레바논 이민자의 아들로 미국에서 태어난 랄프 네이더는 정치와 법에 관심이 많은 똑똑한 사람이었습니다. 명문 사립대학교들을 두루 거치며 변호사 자격을 얻었고, 1963년엔 노동부 차관인 대니얼 패트릭 모이니핸의 보좌관으로 일을 하게 됩니다. 원래 법과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정의감 넘치는 아버지로부터 어렸을 때부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듣고 배워왔죠. 그런 그에게 모이니핸과의 만남은 운명이었나 봅니다.

 

모이니핸은 오래 전부터 자동차가 안전하지 않다는 점을 역설하며 기업들을 공격하고 안전을 강화할 것을 끊임없이 강조했던 인물입니다. "탐욕스러운 자동차 회사들"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던 모이니핸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을까요? 랄프 네이더는 1965년 여러 조사와 증언을 토대로 집필된 한 권을 책을 내놓게 되는데 이것이 '어떤 속도에서도 안전하지 않다' 였습니다.

 

랄프 네이더 (1975년 모습) 사진= 위키피디아

   

 

 

치명적인 문제 그리고 추악한 GM의 대응

'어떤 속도에서도 안전하지 않다' 라는 책은 판매되기 시작하며 미국 사회를 뒤집어 놓았습니다. 자동차 안전에 대한 전방위적 압박이 8개의 챕터에 나뉘어 담겨 있었죠. 그리고 그 중에서도 GM이 감추고 있던 비밀스러운 내용이 첫 장부터 여과없이 공개되었습니다. GM을 비판적으로 보는 이들의 눈엔 이 회사는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한 이익에 눈먼 자동차 기업이었고, 디자인에 치중해 겉멋만 부린 채 성능과 안전은 소홀히한 회사였습니다. 그 상징적인 것이 쉐보레 코베어 사건입니다.

 

이미 차량 소유주들로부터 계속된 불만이 제기된 내용이었는데요. 코베어의 타이어 압력이 떨어지면어 차량이 롤오버, 그러니까 전복의 위험이 높아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앞바퀴 쪽에 원래 있어야 하는 스태빌라이저, 그러니까 차의 롤링을 억제하는 안티롤 바가 빠져 있던 겁니다. 이런 원가절감의 결과가 차량의 전복 위험이라는 결함으로 이어진 것이죠. 뜻밖의 공격에 GM은 당황했습니다.

 

쉐보레 코베어. 사진출처=favcars.com

 

*쉐보레 코베어

쉐보레 콜베어는 미국 차로는 최초로 엔진을 뒤쪽에 장착한 RR 모델이었습니다. 서스펜션도 독립식이 적용이 되었고요. 나름 새로운 시도를 펼친 모델이었지만 역시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원가절감이 문제였습니다. 어쨌든 이 차량은 1960년 처음 선을 보였고 1969년에 단종이 되게 됩니다.

 

이처럼 랄프 네이더에 의해 코베어의 치명적 위험이 공론화됐습니다. 상황이 이쯤 되면 GM 측에서도 자체적으로 조사를 한 뒤 설계 결함이 드러나면 사과를 하고 개선책을 내놓겠다고 말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죠. 오히려 그들은 전혀 반대의 방법을 동원합니다. (바로 이 지점, 그러니까 어떤 문제에 대한 기업의 대응 방법이 늘 문제입니다. 뭐 요즘 한국에서도 )

 

GM은 화가 단단히 났던 모양이에요. 아니 절박했을 겁니다. 무시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공개적으로 문제를 들춰냈으니까요. GM은 일단 조심스럽게 탐정을 고용해 랄프 네이더의 뒷조사를 실시했습니다. '털면 먼지 안 나오겠느냐' 뭐 이런 생각이었겠죠. 그걸 가지고 협박을 하고 모종의 합의를 이끌어 내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워낙 깨끗해서 털어 보니 먼지가 안 나오더란 겁니다.

 

안되겠다 싶었는지 이번엔 네이더의 주변인들에게 그에 대한 험담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 다 감시하고 그가 무얼 사는지, 은행에서 얼마를 찾는지 샅샅이 캐고 다녔습니다. 심지어 하다 하다 안 되니까 매춘부에게 돈을 쥐어주고 랄프 네이더를 꼬시도록 시키기까지 했습니다. 그럼에도 랄프 네이더 털기에 GM은 실패하고 맙니다. 어떤 방법도 안 통했던 것이죠. 이 양반 수도승 보다 더했나 보네요. 어쨌든 이게 GM의 대응방식이었습니다. 이게 정말 기업이 할 짓인가요?

 

GM의 이런 추악한 랄프 네이더 공격이 드러나면서 여론은 최악의 방향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그리고 네이더는 1966년 엄청난 금액의 소송을 하게 되죠. 그리고 GM 입장에선 정말 다행스럽게도, 처음의 액수 보다 훨씬 적은 42만 달러에 네이더와 합의를 보게 됩니다. 천신만고 끝에 네이더와 합의를 보긴 했지만 GM은 이번 일로 인해 씻을 수 없는 추한 역사를 남기게 되었고 기업의 이미지는 만신창이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합의를 본 네이더는 그 돈을 어떻게 했을까요? 개인적으로 사용했을까요? 아닙니다. GM 감시하는 것에 사용을 했습니다. 보다 체계적이고 적극적으로 시민사회 운동을 전개해 나가기 시작한 것이죠. 그리고 1966년,  '고속도로 안전법과 교통안전법'이라는 새로운 법이 발효가 됩니다. 이 법으로 차량 안전과 관련된 기관이 생기게 됐고, 이곳을 통해 문제가 되는 차들을 법적으로 강제 회수하게 할 수 있게 되었죠. 바로 리콜의 시작입니다.

 

하지만 랄프 네이더 노력의 열매는 이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이전까지 안전벨트는 옵션이었어요. 그것이 랄프 네이더의 영향으로 기본 장착이 되어 나오게 되었죠. 또 머리 보호대가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앞유리는 깨져도 튀지않고 가루가 되는 강화유리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몇 가지가 더 있는데요. 암튼 랄프 네이더의 영향으로 그동안 소홀히 여겼던 안전이 자동차 판단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1957년 쉐보레 벨 에어. 당시 유행했던 저런 디자인들이 위험할 수 있다고 랄프 네이더는 주장했습니다. 사진 출처 = favcars.com

 

랄프 네이더 얘기를 조금 더 해드리면요. 이 사람은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자동차의 안전과 관련한 소비자들을 각성하는 책을 내고 운동을 펼칩니다. 또 나중에 정당에 가입해 대통령 후보 경선에도 나서고 실제로 민주당을 탈당한 이후엔 녹생당이나 개혁당의 이름으로 대통령 선거에 계속 참여하고 있습니다. 1934년 생이니까 나이도 참 많은 분인데 여전히 정치 일선에서 뛰고 있고, 친환경, 소비자 권리, 규제 등에 관한 수십 여가지의 법률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는 한미 FTA에 비판적이고, 슈퍼리치들의 헌신이 자본주의의 소득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다는 주장을 책으 통해 펼치고 있습니다. 요즘 우리식으로 말하면 그는 종북 빨갱이 진보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어떤 속도에서도 안전하지 않다>는 '20세기를 빛난 저널리즘 100' 순위에서 38위에 올랐다.

 


 

GM, 교훈을 잊지 말아라

랄프 네이더의 주장은 "GM에 좋은 것이 미국에도 좋은 것" 이라며 큰 소리치던 GM의 오만함을 한 방에 꺾은 강력한 것이었습니다. GM이 잘되어야 미국이 잘되는 것이고, 미국이 잘되면 GM도 잘된다는 끔찍한 논리로 미국을 쥐락펴락했던 이 기업은 결국 2009년 파산의 역사를 맞게 되죠. 그래도 정부의 지원으로 죽었던 공룡이 되살아 났습니다만 최근 사건으로 GM은 다시금 위기에 처하게 됐습니다.

 

세상이 변하고 세월이 흘렀어도 기업의 태생, 그 본질은 바뀌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기업의 중심 가치, 그 철학이 어떠하느냐가 왜 중요한지 저는 GM을 보면서 느끼게 됐습니다. 그저 얼마의 이익을 남기는 게 최고인가, 어떻게 하면 소비자들이 자동차를 계속해서 소비하게 할 것인가 등의 얄팍함에만 모든 신경이 쏠려 있는 기업은 결코 좋은 기업이 될 수 없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이런 기준은 비단 GM에게만 적용될 것은 아닐 겁니다.  

 

GM사태를 GM 스스로도, 그리고 모든 자동차 회사들도 반면교사, 혹은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서 국민의 안전을 지켜주는 정부를 우린 원한다고 소리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랄프 네이더처럼 공룡을 향해 용감하게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더 많은 세상이 되길 바래야 합니다.

 

저의 이런 주장은 결코 기업을 해하기 위한 선동이 아닙니다. 더 좋은 기업이, 더 멋진 자동차 회사가 되어 달라는 고마운 채찍질로 받아들여 주면 좋겠습니다. 그게 진심이니까요. 자 이제부터 GM 사태를 더 눈여겨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GM이 보일 앞으로의 대응이 어떠한가에 따라, 50년 전의 교훈을 그들이 가슴에 새기고 있었는지 아닌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저 또한 계속해서 GM을 주시할 것입니다."